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121화 (121/340)

0121 / 0340 ----------------------------------------------

운명

"내가 짐작하고 있는 바를 이야기해도 상관없는 거겠지?"

주위를 둘러보며 그렇게 말하자 선생님은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고 유운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가장 중요한 소유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천천히 나를 가리키고, 다음은 유운에게로. 그 다음은 소누에게로 이동시키면서 하나씩 인물을 지목해 나갔다. 내 손끝이 향했던 사람은 총 여섯명. 나, 유운, 소누, 우, 하여, 선생님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부 예언이 있었을거야. 나를 포함한 삼왕은 물론이고 성녀도. 아마 가신들에게도 있었겠지. 그리고 그 예언은 아마도...."

나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닫아버렸다.

말하면 여기 모인 모두의 유대가 깨져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해야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며 나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모인 것에 왠지모를 중압감을 느끼며 나는 입을 열었다.

"전쟁의 승패. 그리고 예언에 나온 인물의 생사가 기록되어 있었겠지. 가신들에 대한 것도 함께."

유운과 소화, 선생님, 소유를 제외한 모두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나의 발언에 강한 충격을 받은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몸만을 사시나무처럼 부르르 떨 뿐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죽음이 내정되어 있는 사람은 유운, 나, 컬러나이츠의 몇명. 그외에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정확하겠지. 어디, 내 말 중 틀린 것이 있나?"

처음 유운과 소화의 사랑이야기를 들으면서 미묘하게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 있었다.

유운은 자신의 힘에 강한 자존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정도도 못된다? 아니, 그저 걱정이 큰 것일 수도 있었지만 선대 왕. '천왕'의 예를 들 때 예언을 언급한 것을 듣고는 혹시 죽음조차 내정되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 진실과는 거리가 좀 있다. 그렇기에 생각하는 바를 내놓음으로서 소유를 떠 본 것인데 그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자니 정확하게 짚은 모양이었다.

짝짝짝짝....

길고 메마른 박수소리가 충격으로 인해 조용해진 공동안을 체웠다. 박수를 친 당사자. 유운은 계속해서 박수를 치며 웃었다.

"핫하하하! 굉장해! 멋진데 육왕? 대략적인 경력은 알아뒀지만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

감탄. 순수한 감탄이었다. 그 어떠한 사심도 곁들어진 감탄이 서서히 잦아들면서 유운은 손가락을 하나 들어올렸다.

"하지만, 하나 틀린 것이 있습니다. '그것의 끝에, 삼왕 중 두왕이 생명의 빛을 잃고 육신의 왕을 지키는 가장 강한 검 또한 부러진다. 불패는 불패가 아니게되고 불사는 불사가 아니게 될지니. 빛을 이어갈 자는 누구고, 빛을 넘길 자는 누구랴.'"

노래가락이라고 생각되는 말이 끝나면서 그는 가볍게 덧붙였다.

"작사 작곡 소유운. 예언 자체를 상당히 편집시키기는 했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지요. 하지만 어디에도 컬러나이츠에 관한 죽음은 언급되지 않았어요. 소유가 그녀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예언에 오르지 않은 것. 예언에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다는 것이니까요."

콰앙!

"잠까아아아아안!!! 이런, 말도 안되는 것이 어디있어! 갑자기 모아서 한다는 말이 너희 죽을 운명이라니!?"

호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앞의 책상을 내려쳤다. 책상이 마치 해머로 내려친 것 마냥 푹 꺼져버렸다. 하지만 호지의 감추지 않는 분노 속에서 그런 것을 신경 쓸만큼 담이 큰 사람은 없었다. 아니, 나를 제외한 모두는 그랬다.

난 호지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시선이 내쪽으로 돌려지자 마주친 호지의 얼굴에 나는 고개를 저어보였다.

"하, 하지만! 아빠가, 아빠가, 아빠가 죽... 우, 우에에..."

급기야 울먹이며 울음을 터뜨리려는 호지를 끌어안았다. 품에 안긴 호지의 작은 몸은 크게 들썩이면서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어찌 위로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등을 토닥여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울지마렴 호지. 나의 여린 딸."

나는 진정 될 때까지 호지를 끌어안고 있기로 결심하고는 소유를 마주봤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살짝 눈을 돌렸다. 그런 소유의 반응에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하지만. 난 뭐가 되었든 이 가짜 후인계획. 카타스트로피의 대응에서 빠지지는 않아. 설사 죽더라도."

나의 선언과도 같은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나는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그도 그럴 것이 카타스트로피의 목적이 인간말살이래잖냐. 하고 죽으나 안하고 죽으나..."

"무슨 소립니까."

장난스런 말투라 화가 난 것 일까, 상당히 경직된 표정의 유운이 벌떡 일어나서 나를 바라봤다. 처음보는 듯한 그의 정색한 표정에 나는 방금 했던 말을 다시 한번 입에 올렸다.

"카타스트로피의 목적이 인간말살이래잖냐. 어라? 너희 몰랐던 거야?"

생각해보면 소유나 유운이 알고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겨우 중간관리직에 불과하다고 한 루그로(흑룡을 한시적이나마 아래로 둔 것으로 보아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지만)가 아는 일을 모른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반응을 보아하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럴수가...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세컨드 워에서 너무 사심이 많았는데... 아니, 그 당시에는 불사가 없었기 때문인가. 고요, 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겁니까?"

여러가지로 생각되는 그의 혼잣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에게 질문이 날아들었다. 나는 딱히 감출 것도

없는 이야기인지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털어놓고는 그의 안색을 살폈다. 그의 얼굴은 역시나 잘 읽어내기 힘든 표정이었다.

"그랬군요.... 하지만 이상하군요. 인간을 싫어하는 카타스트로피가 인간을 팀으로 들이다니. 그저 체스말로 쓰기만 하는 것치고는 흑기사단의 강함은 심상치 않고.... 머리가 복잡한데요."

그는 흡사 웃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미소를 지어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서 이 자리는 파(破) 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소유? 어차피 참가의 여부를 결정하자고 만든 자리였지만 참가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으니."

"... 그러도록 할까. 자세한 것은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 하도록 하지."

유운의 말에 동의 한 소유는 뼈의자에서 일어나 하윤과 함께 어떠한 징후도 보이지 않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것과 동시에 원탁처럼 놓여있던 책상이 사라지면서 공동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좁은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추욱 늘어뜨리고 한숨을 하늘로 향해 뿜어내며 눈을 감았다.

죽는다. 그저 감이기를 바랬건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예언에 나온 육왕의 죽음. 그것은 육왕인 나의 죽음을 알리는 것. 하지만 회피불능인 것은 아니다.

'이례.' 그것은 소유가 일으키고 후대에 희망을 쥐어준 단 하나의 기적. 아마 가정이지만 천왕도 아마 죽음이 예정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살았다. 소유가 만들어낸 반란으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예언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믿을 것은 이제 '이례'뿐이다.

공동안에 머무는 바닷속 깊은 것의 심연 같은 무겁고 조용한 이 침묵이 덕분에 나의 죽음이 예정되었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

어머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