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4 / 0340 ----------------------------------------------
축제
발이 교실문의 바로 앞에 당도 했을 때, 나는 평소보다 교실이 시끌시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친구들이 모여있는 것치고 너무 시끄럽다. 그렇다고 평소에 조용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시끄러운 교실은 아니었다.
의아해하면서도 나는 교실의 미닫이 문을 옆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그 직후. 모든 친구들의 시선이 내쪽으로 집중되었을 때.
모든 소란이 멎었다.
"....뭐지 이 데자뷰는."
"그런 것보다는 원인의 해명이..."
혼잣말에 냉큼 태클을 걸던 요연은 말을 미쳐 다 잇지 못하고 다가오는 학생들에게 이끌려 교실 뒷편에 마련된 의자에 앉혀졌다. 나와 함께. 그리고... 주변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학우들 덕분에 기억났다. 이런 일은 옛날에도 한번 있었다.
분명히 호지와 내가 백화점에 옷을 사러갔을 때. 그 때는 슈 본인과 호지의 등장, 소유의 개입으로 무마되었다.
터억.
같은 반 여학우의 발이 내가 앉아있는(앉혀있는) 의자 등받이를 눌렀다. 의자가 앞뒤로 위태롭게 흔들렸다.
"자아~ 설명해주실까요 요군?"
평소라면 경홍이 할 행동이거늘 다른 학우가 하는 것이 의아해서 그녀의 말을 무시한 체 주변을 둘러봤다. 이사장실 패밀리는 멀찍이 떨어져서 우리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일단 시선을 돌려 나를 포박한 학우를 마주 봤다.
"무, 무엇을 말입니까?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도 모르게 존대가 나왔다.
"모른다고? 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네 여친을 내버려두고 딴 여자랑 바람이라니 그게 될 성 싶으냐!"
내 존대에 분위기를 탄 것인지 앞의 학우는 사또 같은 말투로 무장한 체 부채(어디서 꺼낸거지?)로 내 이마를 꾹꾹 눌렀다.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대번에 깨달았다.
아마도 나와 요연이 같이 등교하는 것을 말함이리라. 이미 공식커플로 명명된지 오래인 내가 딴 여자와 같이 있으니 이 반응인 것일 터. 하지만 무언가가 이상했다.
나와 요연은 평소에도 같이 있었고 이 일은 분명히 처음 요연이 입학 했을 때 처리(기억하고 싶지 않다) 되었을 터이다. 그런데 요연과 함께 등교 한 것이 그리 잘못이란 말인가? 아니면, 능파랑 같이 밖이라도 돌아다니는 것을 본 건가?
나는 급히 입을 놀렸다.
"하, 하지만 사또. 본인은 전혀 짚히는 것이 없사옵니다. 재고해 주시옵소서."
"허허. 죄인은 고개를 들라!"
이미 들었는데요... 라고 말 할 자신은 없어서 드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러자 다른 여학우가 슈를 포박한 것처럼 데리고 왔다. 슈는 사과와 누가 더 붉은지 내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슈는 속삭이는 것 같은 목소리로 작게 말을 꺼냈다.
"요... 그, 이게..."
하지만 그녀의 말은 작은 소리로 편집되어 내 이름외에는 전혀 이해 할 수 없었다. 여학우는 나에게 손가락을 들이밀며 외쳤다.
"이제 알겠지!?"
나는 대답해주고 싶었다.
뭘?
"...제대로 대답하십시오. 슬슬 짜증이 솟기 시작하니까."
보다 못 한 요연이 살기를 띄운 체 그녀를 쏘아봤다. 인외의 존재이면서 많은 전장을 거쳐온 전사의 살의를 정면으로 받은 학우는 다리를 오들오들 떨더니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주변의 분위기를 경직시킨 당사자는 주저앉은 학우를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젓더니,
"...머리를 식히고 오겠습니다."
하고 간단히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당당한 걸음걸이로 교실밖으로 걸어나갔다. 주위에서 불평섞인 웅성임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내가 분위기와 화제를 바꾸지 않으면 요연은 정말 학생들에게 평가가 뚝 떨어질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슈를 지지하는 애들 덕분에 지지도가 낮은데 이런 사소한 일로 계속 떨어진다면 앞으로의 학창생활은 암울해질지도 모른다.
경직된 공기가 풀려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화제를 바꿀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으자자자잣.... 아우, 몸 굳는다. 근데, 정말 뭔 일이야?"
"으, 응? 아아. 그거 말이지. 슈가 너에게 고백했다는 거, 전교생에게 파다하게 퍼져있거든. 그러니까 다른 여자랑 같이 있는 것은 조심하라, 그런 이야기지."
아하. 전교생에게 퍼져있구나. 그래서 학교에 올 때 시선이 따가웠구나... 라고 할 것 같냐!
즉시 날카로운 눈으로 슈를 돌아봤다. 슈는 이제 눈물이라도 뚝뚝 흘릴 것처럼 눈이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젠장, 그런다고 내가 봐줄 것 같아!? 여자의 눈물따위는 내게 통하지 않아!!!
"딱히 질책하는 것은 아니야. 아니니까, 울지마. 응?"
직방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슈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주면서 옷소매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자 마음을 진정시킨 것인지 슈는 홍조를 띄운 얼굴로 미소지었다. 그렇게 슈를 진정시키고 나서 슈에게는 더이상의 정보를 얻기 힘들 것 같아 질문의 화살표를 근처에 있던 련택에게로 돌렸다.
"그런데 어떻게 그게 소문 난거야?"
"아아. 그거? 며칠전에 학교에 남아있던 몇 반 애가 너에게 소리지르면서 고백하는 소릴 언뜻 들었다더라구."
"잠깐. 그렇다고 소문이 날리가 없잖아? 고백한 사람이 누군지 알고?"
맞다. 설사 소문이 난다고 해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고백했다더라.. 라든가, 어쩌면 누가 고백했을지도 모르겠다든가하는 소문으로 퍼질 것이다. 그런데 바로 당사자인 것을 알아맞추다니, 그런게 가능할리가 없다.
련택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정말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너는 모르는 모양이지만 너하고 슈의 관계는 우리학교에 파다하게 퍼져있어. 그냥 여친인 것도 아니고 외국인이잖아? 소문이 퍼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하물며 네 이름까지 들었다는데 슈 밖에 더 있겠어?"
너무 논리정연한 말이라 부정할 부분을 찾지 못했다...기보다 너무 이해가 가는 말이라 나도 모르게 수긍하고 있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리라.
다른 학교는 모르겠지만 외국인이 학교에 있으면 그것은 그것만으로도 유명해진다. 게다가 그 학생이 국내인의 누군가와 사귄다(진실의 여부는 넘어가더라도)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더더욱 유명해지는 것은 당연 할 것이다.
생각하고 있던 나를 세현이 살짝 째려보면서 덧붙였다.
"게다가 그 대상이 영명하신 언데드 퀸이라는데 소문이 안나면 이상하지."
"...그것도 소문났어?"
언데드 퀸은 어렸을 적, 내가 출전했던 세계적인 체스대회에서 얻은 칭호다. 그 당시 굴욕적인 승리로 인해 잠적했기 때문에 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당시에 내가 체스에 빠져 있었거든. 너희가 얘기하던 것들 대충 엿들었지."
세현의 대답에 후우하고 안도의 한숨을 빼냈다.
가뜩이나 목숨도 간당간당한데 내 평온한 삶까지 간당간당하면 곤란하지. 아니, 어차피 슈와의 열애설 때문에 유명세는 탈 수 밖에 없는건가.
나는 본의 아니게 얻게된 인지도로 인해 한숨을 내쉬는 것 밖에 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