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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하늘은 맑다. 너무 티 없이 맑아서 오늘 무엇인가가 벌어질 것 같은 불안감을 심어주는 그런 느낌이었다.
"아니, 그저 내 심사가 꼬여 있는 것 뿐인가."
평소와 달리 혼자서 학교로 향해가는 나의 입에는 한숨만이 달려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어제 있었던 일로 문화제 당일인 오늘이 상당히 꼬여버릴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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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를 하루 앞둔 교실의 적경홍을 제외한 이사장실 패밀리는 무력감에 젖어 전부 책상에 늘어져 있었다. 그것은 오늘까지 자신의 CA가 하는 일을 최종확인하는 것 때문이었다. 당연히 공식적으로는 다른 동아리에 들고 있는 적경홍은 우리처럼 힘이 빠질 일은 없었다.
경홍은 내 어깨를 치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위로를 날렸다.
"뭐, 힘내라구. 그렇게 단언하잖아."
"말이 되냐... 그 꼬라지를 보고서 어떻게."
나는 물 먹은 스펀지처럼 늘어져서 우리가 해야 할 이벤트의 전권을 위임 받은 유운이 벌여놓은 일을 되새김질했다.
유운이 한다고 했던 일. 그것은 바로 '점집'이었다. 물건을 파는 점포의 점자도, 성형수술을 하면서 점을 빼주는 집도 아니었다. 여성잡지나 신문에서 보여주는 신년운세나 별자리 점을 칭하는 그런 점이었다.
물론, 유운이 하는 일(실제론 유령이겠지만)이니 성능은 보장 할 수 있겠지만 그 점집에는 상당히 큰 약점이 있었다.
장소의 협소함과 무대의 막 같은 천으로 대충 둘러둔 점집자체도 문제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다른 것. 점이란 것은 대개 미래의 일을 알아내는 것이다보니 증명이 늦다는 것이다. 아무리 제대로 된 점이라도 결과가 뜨지 않으니 인지도를 얻을 수 없을 거란 이야기다. 게다가 유운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라 나쁜 점괘가 나오면 남의 기분 같은 것은 무시하고 그대로 읊어줄게 뻔했다. 그렇다면 인지도는 받지도 못 하고 후야제에서 춤이나 춰야 할지도 모른다.
후야제는 물론이고 사진찍기도 가능한 그 날밤에 춤을 춰야하다니. 오한이 몸을 엄습하는 것이 느껴졌다.
"괘, 괜찮을거야. 유운을 믿자, 요."
어느샌가 옆으로 다가온 슈가 위로하려는 듯이 책상위에 엎드린 나의 손을 잡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그렇게 몸을 떠는 상태론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괜찮겠어 슈? 만일 나가게 되면 낯을 가리는 너로서는 조금 괴로울텐데."
요즘에 들어서는 나름 괜찮아진 듯 하지만 여전히 슈는 낯을 가린다. 그런데 무대에 나가게 되면 혼절이라도 할지 모른다.
슈는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로,
"으, 응. 물론 괜찮지. 힘낼게."
유치원생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은 거짓말을 했다. 나는 그런 슈의 머릴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슈는 아까까지의 암울한 기분은 날려버리고 귀여운 얼굴을 했다.
음. 개인적으로는 막 고등학교에 입학 했을 때의 그 반응이 더 보기가 좋았는데. 뭐, 조금만 더 강도를 높혀 골려주면 그 때 이상의 반응을 보여주겠지만.
좋아하는 여자애를 괴롭히는 초등학생 같은 생각을 하던 나는 자신의 성격과 취향에 대해 심히 고찰을 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난 S인건가. 심히 고찰해 볼 문제다.
"정말 너희 사귀는 거 아니야?"
경홍이 훈훈한 찰나를 보내는 우리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학교의 소문상 나와 슈는 사귀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나와 슈는 그것을 부정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귀는 것과 다음 없는 태도로 상대방을 대한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지만 그 날밤에 슈가 모든 것이 정리될 때 대답해달라고 했으니 이걸로 된거다.
그렇다고 그것을 말했다간 주변의 친구들에게 맞아 죽겠지만, 별 수 있나.
"요님."
"우왓!?"
슈의 뒤에서 그림자가 솟아오르는면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내 이름의 뒤에 님을 붙일만한 사람은 단 한명, 요연 밖에 없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요연이 평소와 같은 무심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금세 마음을 추스른 나는 질문했다.
"깜짝이야. 그래, 무슨 일이야?"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들어주시겠습니까?"
아까까지의 무심한 얼굴은 지금 작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를 감싸고 있는 미미한 오오라가 '설마'하는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마치, 고백이라도 하려는 아가씨 같은 것이 상당히 불안하다. 이런 곳에서 고백을 당했다간 주변사람들에게 깔려죽는다.
요연이 찰나조차 영겁의 시간으로 느끼는 나를 향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일은 데이트를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응?"
....
요런 일로 인해 학교에서는 비상사태(되묻는 '응?'이 아니라 수락의 '응.'으로 받아들였다)가 일어났다. 다른 반에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슈의 숭배자들과 우리반의 인간들이 합격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학교고 공격이라고 해봐야 장난스러운 것이니 상관은 없었지만 문제는 집에 돌아온 뒤부터 였다.
능파가 집에 세를 들어준 마수들로 학교를 염탐했는지 그 소식을 모조리 알고 있었던 것(능파도 물론 수긍의 '응.'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이다.
능파는 강력하게 그 데이트 신청을 거부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하지만 나는 일단 데이트는 해보기로 했다.
최근과 처음 만났을 때의 요연이나 남과 함께 어디를 놀러다니자고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심지어 바다에 갔을 때조차 바다에 가자는 소리를 누군가가 할 때까지는 그저 검을 잡고 명상하거나 여러가지 삭막한 전술적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그런 요연이 직접 함께 가자고 했으니 아마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 등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절대로 안되요! 할아버지랑 단 둘이 데이트? 할아버지는 그 여자를 이길 수 없어요. 광진을 쓰면 도망은 칠 수 있겠지만 아직 5식도 완성하지 못 한 상태로 뭘 어떻게 상대하려고요?"
하지만 능파는 역시 납득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일단 믿..."
"못 믿어요. 이번에 엄마가 영약들을 구하러 갈 때, 할아버질 부탁한다는 소릴 들었어요. 이번에도 루그로 때처럼 된다면 정말로 위험해요!"
호지는 저번에 공방으로 가서 틀어박힌 후 재료가 부족했는지 삼일 전에 아빠를 위한 영약을 구하러 간다며 또 여행을 갔다. 이번에는 중간고사 끝나자마자 돌아올 것이라 했는데, 그러면서 능파에게 당부했던 모양이었다.
한숨을 내쉰 나는 그대로 능파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높이 들어올리면서,
"단언하지. 난 죽지 않아! 딸내미가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그 순간까지!"
".... 별 수 없죠. 할아버지가 고집을 부리면 아무도 못 말리니까. 대신, 보험을 들어둘께요. 그래도 계속 조심하세요. 요즘 무슨 짓거리를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잠을 거의 안 자는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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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어젯 밤의 일은 끝이 났다.
일단 요연과의 데이트로 인해 주변 학생들의 눈총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슈의 질투라던가 능파의 개입이라던가. 여러모로 파란이 일 것은 당연 할 것이다.
나는 학교를 향해 외로이 걸으면서 머리를 휘둘렀다. 잡생각을 털어버리려는 의도였다. 한번 과거를 되새김질을 했던 탓일까, 생각외로 잡생각은 금방 잊을 수 있었다.
즐거운 마음을 담아 경쾌한 발걸음이 이내에 파란이 있더라도 재미있을 일상이 가득한 학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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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5연참입니다.
재밌게 즐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