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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교장 선생님의 길고 지루한 연설과 이사장, 소유의 열심히 즐기라는 격려(이 부분에서는 여학생들 여럿이 환호했다. 놀라워라 양소유 페르몬)가 끝나고 문화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다른 학생들에 비해 이사장실 패밀리는 상대적으로 할 일이 없어 느긋했다.
우리의 이벤트는 전부 유운이 관할(보기가 무서워진다)하는 데다가 우리 문화제에는 놀러오라는 포스터를 근처 동네에도 뿌려서 외부손님의 출입을 허가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학생들은 할 일이 많았고 그 일거리가 없는 우리는 여유롭다.
덕분에 상당히 일찍부터 문화제를 즐길 수 있게 된 나는 옆에서 눈을 감은 체 주위의 활달한 분위기와 달리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고수하는 요연을 돌아보았다.
"왜 그래 요연? 네가 초청한 데이트잖냐. 네가 기운내지 않으면 곤란해."
"그렇기는 합니다만...."
불쾌한 듯, 말을 끌면서 요연이 내 오른 팔에 뱀처럼 감겨 있는 능파(옷 소매 때문에 보이지는 않겠지만)와 그 옆의 슈를 노려봤다.
토끼처럼 나긋나긋한 슈의 성격상 요연의 공격적인 눈초리에 슈는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지지 않겠다는 듯이 요연의 눈빛을 마주했다. 능파처럼 '난 너를 의심하고 있다' 같은 느낌의 눈초리가 아닌, 연적을 상대하는 눈빛이었다.
요연은 능파만을 상대하다가 슈의 간질간질한 분위기에 상대할 가치를 못 느끼는 지 고개를 돌려 슈의 시선을 피했다.
"헤헷, 이겼다."
그런 사소한 걸로 경쟁심을 키우지 마라...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경쟁의 꼬투리를 만든 당사자가 할 말이 아니었기에 가볍게 실소하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그럼... 이제 어딜 갈까? 아침에 대충 둘러보기는 했지만 잘 모르겠거든."
노점을 세워도 아직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였고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
나는 시선을 돌려 요연을 바라봤다. 그녀는 나보다 일찍 학교에 온데다가 나와의 데이트를 위해서 장소를 물색했다고 했으니 놀만한 장소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오. 솔직히 일반적인 심미안 같은 것은 없기 때문에 그다지..."
내 예상에 정확하게 빗나가는 요연의 대답에 뒤통수를 긁는 것 밖에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혹시나해서 슈에게 물어봤지만,
"요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아."
남자로서 기쁜 대답이기는 한데 솔직히 책임을 떠 맡은 것 같아서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별 수 없지. 그렇다면 친구들이 하는 곳이나 순례 해보도록 할까."
내 말에 두 여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장실 패밀리들은 이벤트나 노점에 전혀 관여를 하지 않지만 이사장실 패밀리 외에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니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겨 도달한 곳은 CA 비즈공예부. 이곳에는 동아리의 정원이 모두 다 차서 이곳으로 밖에 올 수 없었던 나의 친구인 노련택이 가입한 곳이다.
1층에 있는 1반 교실을 사용하고 있는 비즈공예부는 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다트 맞추기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의외로 사람이 있는 그곳에서 여러가지로 힘 쓰고 있는 련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어! 련택, 벌이는 좋냐?"
"응? 아아, '남자의 적'이구나."
남자의 적. 어제 요연이 데이트 신청을 했을 때부터 시작된 나의 새로운 별명. 자랑스러운 별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남을 놀려먹기에는 최적의 별명이었다.
교실의 문 앞에서 들어가려던 슈와 요연을 정지시키고 나는 그녀들의 뒤까지 물러난 체, 둘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양손의 꽃이지. 쿠후후후."
".... 더러운 자식. 뭐, 어쨌든 잘됬다. 너희도 한판하고 가."
한 없이 일반인에 가까운 련택은 주먹을 날리려는 몸을 진정시키고 능숙하게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련택의 인도를 따라 도착한 곳은 보통 게시물을 걸어두는 벽. 그 벽에는 농구공의 지름만한 크기의 다트판이 걸려 있었다.
"의외로 재밌어. 다섯발당 500원. 현재까지의 최고점수는... 50점. 상품은 비즈공예부에서 만든 액세서리들이지. 대부분 내가 만든 것이 하위품에 섞여 있고 좋은 건 대게 90점 위에 있다."
련택은 겉보기에도 손재주가 있어보이는 스타일은 아니니 비즈공예를 잘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게다가 미적 심미안은 대개 여성들이 우위니 남자인 련택이 만드는 것은 하품에 속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게 상품목록."
련택이 아래에 있는 박스에서 자줏빛의 자그마한 통을 꺼내들었다. 그 안에는 자그마한 꼬리표가 붙은 액세서리가 늘어서 있었는데 아마추어가 만든 것치고는 굉장해 보이는 것들도 더러 있었다.
옆에서 슈가 내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녀를 내려다보자 그녀는 남자라면 절대로 거부 할 수 없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요. 나, 이거 줄 수.... 있지?"
의문사라서 일까, 더욱 불타오르는 마음을 느끼면서 살짝 요연을 곁눈질 했다. 그녀도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지 눈길을 빼앗긴 상태다.
간만에 이 몸이 나서야 하는 건가.
"좋았으. 련택! 2000원이다. 4회 분량 줘."
다트판을 보아하니 다섯발로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점수는 100점. 그렇다면 슈와 요연, 능파와 호지까지 합쳐 도합 400점. 2000원으로 충분하다.
안전성을 추구한 자석 다트가 아닌, 다트 끝에 날카로운 송곳이 달린 오리지날 다트를 들고 온 련택이 대놓고 비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여자 앞이라고 힘 쓰다간 패가망신 할 것이야."
"호오? 배짱좋군. 날 부른 이상 상품이 남아 있길 바라지 않는 것이 좋을텐데?"
대화는 여기까지. 나는 다트를 통에서 하나 뽑아들고 다트판을 바라봤다.
내가 노려야 할 곳은 정중앙. 그곳이 20점이다. 그곳을 노리지 않으면 슈와 요연에게 줄 선물이 없어진다. 하지만, 불안감 따위는 없었다. 내가 저것을 맞추지 못 할 턱이 없다.
누님에게 텔레포트 나이프를 받고, 그것을 전술에 사용하기 위해 얼마나 단련했는 데 움직이지도 않는 표적에게 빗나갈 턱이 없다.
쉬잇, 팍!
첫발이 정중앙에 꽂혔다.
"우웃... 우연의 산물이로군."
"잔말말고 다트나 뽑아."
"왜?"
"다트 뒤에다가 던질 수는 없잖아."
오만한 나의 발언에 련택이 비웃음을 그리며 다트판에서 다트를 뽑았다. 그것과 동시에 손에 있는 두번째 다트도 사출시켰다.
팍.
여지없이 정중앙에 꽂혔다.
"우어어엉!?"
곰 같은 비명을 지르는 련택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전투에서 얻은 다트실력을 열심히 뽐낸 나는 결국 대망의 400점을 얻을 수 있었다.
새하얗게 불태운 나머지 움직일 힘조차 남지 않은 련택을 무시하고 상등품이 든 통을 바라봤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것 하나 꿇리지 않는 것이라 선택하기가 애매했다.
"슈, 뭘 줄까?"
"응? 아.. 그, 반지. 파란색과 하늘색의 반지."
그녀의 말에 시선을 다시 통안에 보냈다. 슈가 말했던 탓인지는 몰라도 눈꽃무늬의 비즈반지는 유난히 빛을 내고 있었다.
그것을 집어들고 요연에게로 질문의 화살을 돌렸다.
"요연은 뭐가 좋아?"
"전... 오랜지색과 붉은 색의 소용돌이 팔찌가 좋습니다."
오랜지색의 비즈팔찌에 붉은 비즈들이 뱀처럼 얽힌 것을 말하는가 보다. 확실히 여자라서 그런지 나보다 눈이 높다.
그것을 집어들고 각자에게 나누어준 뒤, 적당히 내키는 데로 집어든 나는 의자에 앉은 체 '불태웠어, 새하얗게'라는 말만 중얼거리는 련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어, 재밌었어. 열심히 해. 그리고..."
내가 말을 덧붙이려는 것 같자 하얀 배경을 치워버리고 련택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뒤에 있는 누님(이라고는 했지만 동급생)들을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야."
련택이 광진에 버금 갈 속도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자신과 같은 비즈공예부의 여학우들이 서 있었다.
필시 나처럼 다트에 능한 사람을 데려온 것 때문이리라. 나는 처참한 광경이 예상되는 그곳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이윽고, 뒤에서는 한 남자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