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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136화 (136/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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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연

'아직, 아직이야...'

아직 쓰러질 수는 없다. 천을 바라보는 영약의 숫자로 인해 영맥과 비견되는 마력량 덕분에 조금 오랫동안 버틸 수 있겠지만 그것이 끝나면 분명 바로 기절 해버릴 터였다.

그것은 안된다. 요연이라면 나에게 죽는 계획을 들킨 이상 자결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최대한 요연의 입을 빨리 불게 해야한다.

내 급박한 사정을 아는 것일까, 요연은 느릿느릿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아니, 옛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날. 여름방학 때 저는 듣고 말았습니다."

여름방학 때라면 슈랑 내가 크로스카운터를 먹이던 밤이었다. 솔직히 이길 줄 알았던 상대에게 패배 했던지라 남자로서는 상당히 뼈아쁜 기억이 있는 방학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묻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요연은 슈와는 사이가 상당히 좋았으니까. 하지만 이것 외에는 짚히는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마.... 바다에서 돌아오고 난 지 열흘정도 되었을 무렵이었을겁니다. 그날 밤, 요님은 제게 말씀해주셨지요."

머릿속의 시계를 역회전시키면서 그날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되돌아보았다. 서서히 그날 밤을 되돌아 보았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날은 요연에게 누님이 이야기 해주었던 진상을 말 해 주었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숨겨둘 수 만은 없는 일이었고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모르는 모든 일을 알고 싶었다고 말했기에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그게 어때서?

"요의 누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황룡에게서 황룡의 심장을 얻어 제게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개인적으로 누님을 의심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하기는 이상했다.

황룡이 살리고 싶은 꼬마를 위해 심장을 내주었다.... 겉보기로는 이상 할 것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황룡이 가진 힘을 짐작 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황룡은 굳이 자신의 목숨을 포기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황룡이라면 자신의 힘으로 병을 낫게 하거나 심장을 새로 만들어 교체하면 되었을 터. 꼭 자신의 심장을 줄 필요는 없었다.

이런 경우에 예상되는 상황은 두가지.

첫째는 누님이 거짓말을 했을 경우. 이 경우에는 누님에게 필요한 것이 황룡에게 있어서 살해..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유명세 같은 것은 누나가 신경쓰는 바가 아니고).

둘째는 황룡 스스로가 목숨을 끊은 경우다. 이럴 경우 누님은 상황을 모르는 상태가 된다. 황룡이 죽고자 하는 이유 따위는 모르겠지만 어느쪽이든 가능성은 있었다.

요연은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이것이... 이유입니다. 이걸로 끝입니다."

요연의 양 어깨를 잡았다. 요연은 불안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눈을 감았다.

저런 상태의 요연에게 말하기는 조금 부적절한 말이었지만, 이번에는 해야만 했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일갈했다.

"거짓말!!"

"으윽!?"

갑작스런 외침에 요연이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자기가 말하고도 허술한 것을 눈치챌 거짓말을 하면 곤란하다. 가뜩이나 시간도 얼마 없는데 사람 성질을 돋워 받자 좋을 것 없다.

"그 정도로 날 속이려 했냐 요연? 그렇게 구멍이 숭숭난 거짓말로는 날 속일 수 없어."

확실히 동기가 될 법한 이야기는 했지만 지금 일어난 상황과 전혀 맞지 않았다. 정말로 저 이야기가 동기라면 날 죽이려 한 것이 옳을 터였다.

요연은 들킨 것을 알자 몸을 사시나무처럼 부르르 떨었다. 아마 동기가 충분한데 들킨 것이 놀란 거겠지.

난 담담하게 말했다.

"진짜 이유를 말해라."

"제가.......니다."

너무 작아서 뭐라 그런건지 못 들었다. 나는 귀를 들이대며 다시 해보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제가 당신을 사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뭐?

사모한단다. 옛날에나 쓰일 법한 말이기는 했지만 사극 같은 것을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익히 들을, 안듣더라도 알고는 있을 그런 말이다.

그 말을 해석하자면(해석 할 것도 없지만) '사랑'한다. 누구를? 나를.

담담하게 말을 걸며 어떠한 거짓에 속지 않겠다고 마음 잡았던 나조차도 그녀의 그런 말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슈 때와는 다르다. 슈야 애초부터 날 좋아한다는 기색을 만연하게 보이고 있었고 요연은 오히려 친한 친구를 대하는 느낌이 강했다.

스스로가 연애 같은 인간관계에 둔하다고 생각 한 적은 없는 나로서는 크나큰 충격이었다. 간혹 그렇지 않을까하고 생각 한 적은 있었지만 그런 생각은 자의식 과잉이라고 생각하는 본인이니 무리는 아닐 것이다.

요연은 어스름하게 붉은 얼굴을 감추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전, 당신에게 죄를 졌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곁에 있어선 안됩니다."

드디어 본주제를 내놓는 요연을 마음을 가라앉히고 바라봤다.

고백도 고백이지만 그것은 일단 다음 문제다. 그런 건 나중에 서로가 생각해보면 될 문제. 지금은 그녀의 말을 듣는 것이 우선이다...만, 요연이 나에게 죄를 지었다고 생각되는 일은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다.

요연은 말하는 것이 두려운 듯, 목소리를 떨며 입 밖으로 말을 뱉어냈다.

"제가 처음... 요님과 대화를 했을 때, 기댈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 기억하십니까?"

"...응, 기억하지."

직접 내게 기대라고 했던 날이다. 잊을 턱이 없다.

"하지만 그 당시의 전 요님에게 기대지 못 했습니다. 아니, 기대려 하지도 않았어요."

그녀의 말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노. 나나 누님처럼 타인에게 내비치는 무용(無用)한 분노가 아니라 자신에게 보내는, 자신을 갈고 닦을 초석이 될 분노다.

요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요님과 소야 뿐만이 아니라, 요님을 보는 모두를 기만했습니다. 그건, 용서 받을 수 없는 일. 용서 받아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너무나도 애절한 목소리라 아무런 이유도 짐작가지 않는 지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누르고 잠자코 기다리자 요연이,

"처음 당신에게 입술을 들이댔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아아. 잘 기억하고 있다. 그 때 덩달아 말 한 '주인님'이란 단어 때문에 슈와 호지에게 엄청나게 바가지를 긁혔으니 잊을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자체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은 대충이나마 짐작 할 수 있었다.

보통 그럴 때는 키스나 입맞춤이라고 하지 입술을 들이댔다는 표현은 쓰지 않으니까.

"그것이, 그 때부터 저는 '죄'를 저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발적인 것도, 슈처럼 타의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순수한 자의에 의한 것. 그것은..."

요연이 말하기 힘든 듯, 말을 끊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요님이 저를 사랑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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