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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138화 (138/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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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나는 운명은 저항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왔다. 이미 한번 뒤집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눈물을 닦아냈지만 눈물은 내 의지를 허무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눈물샘마저 붕괴시켰다.

"....울지마라. 보는 내가 더 쪽팔리다."

청결을 상징하는 백색의 가운을 입은 의사이며 삼가 중 마법을 관장하는 신가의 현 가주인 하군 아저씨가 별종을 보는 듯한 눈으로 질책했다.

아니, 어째서 이게 울 일이 아니란 말인가. 아무리 이례를 벌여도 운명에 굴복해버리지 않았는가? 새삼 삼가의 잔혹함과 비정함에 치가 떨린다.

하군 아저씨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실소하고는,

"나참. 겨우 병실에 다시 오게 된 것 가지고는..."

겨우 병실에 오게 된 것이 아니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병원에 신세지는 나의 운명을 루그로 때 타파했는데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온 것이 마음에 안드는 것 뿐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요연의 개인적인 심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만큼 병원비도 개인이 부담해야 될 터.

슬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났다. 그런 나를 보던 하군 아저씨는 설레설레 고개를 젓다가 차트를 보더니 다시 나를 봤다.

"어찌되었든 병원비 말인데..."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하고 마음을 다 잡으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병원비는 유운이 전부 처리했다. 말리지 않은 자신의 탓이라면서."

순간 예상했던 대사가 아닌 말이 그의 입에 튀어나오자 이미 병원비와 딸과 손녀, 요연의 식비까지 계산하고 있던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이해했다.

생각해보면 학교에는 유운도 있었다. 소유나 능파야 용들의 정점인 황룡의 대룡마법진에 걸려 쉽사리 무력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유운은 논외일 것이다. 아니, 설사 요연이 진심으로 덤볐다고 해도 순식간에 절단났겠지.

왜 유운이 말리지 않은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이쪽으로서는 좋은 일이니 잠자코 넘어가기로 했다.

"이만 실례하도록 할까. 병원 원장이란 직업은 그리 시간이 남는 직종이 아니니까."

차트를 장난스럽게 흔들어 인사하며 나가는 하군 아저씨의 등에서 눈을 돌렸을 때, 하군 아저씨는 잊었던 것이 기억난 것처럼 말을 덧붙였다.

"아, 그러고보니 말을 안 했는데."

"뭐 더 남았나요?"

"아아.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고, 오늘을 포함해서 닷새동안 입원이라고. 저번에는 호지란 꼬마 덕분에 치유시간이 빨라졌지만 지금은 없으니까."

"에엑! 말도 안돼! 우리학교는 딱 일주일 뒤에 시험이라고요!?"

내가 그날부터 이틀을 죽은 듯이 잤다니까 일주일 뒤에 시험이 있는 것은 확실 할 것이다. 그래서 문화제를 뒤로 미루자던가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시험의 난이도를 낮추는 쪽으로 선생님들 사이에서 의견이 모아진 모양이었다.

어쨌든, 나는 학생이다. 육왕들의 일이고 뭐고 간에 공부를 해야하는 나이인 것이다. 광진의 영향으로 뇌의 활용력이 높아지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알고 있는 영역의 이야기. 모르는 단원의 문제가 나오면 끝장이다.

하군 아저씨는 병실의 문을 닫으며,

"미안하지만 법이 그러니까 잠자코 쉬고 있어."

"젠장, 빌어먹을 국가권력!"

...이라고 소리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부모님이 성적에 연연해 하는 것은 아니(정확히는 외국에 나가있느라 신경 쓸 틈이 없다)고 어차피 정해둔 미래도 없다. 여차하면 전업 마법사로 전직해서 돈이나 벌러 다니면 그만일 것이다. 의외로 소득도 있는 것 같고.

하군 아저씨가 나간지 몇 분이나 되었을까. 잡생각을 털어버리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가 잊고 간 거라도 있나?

"아, 하군 아....요연."

"일어나셨군요."

요연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침대 근처에 굴러다니는 의자 하나를 집어서 그대로 앉아버렸다. 그리고 말을 꺼내는 것조차 실례일 것 같은 침묵.

그런 침묵 속에서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요연이었다.

"죄송합니다. 전... 그 당시에 그렇게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사죄하려면 이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전..."

따악!

요연의 사죄가 이어지기 직전, 나는 그녀의 이마에 손가락을 번개 같이 튕겼다. 용비늘로 인해 데미지를 거의 입지 않을 요연을 위해 뇌전을 부여한 강력한 일격이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어이를 상실한 요연이 나를 멀뚱멀뚱 바라봤다.

"바보로구나. 내가 말했지? 나한테 기대라고. 그러면 돼. 어리광이라 생각하고 받아줬으니 너는 호지처럼 골골대면 되는거야."

"...감사합니다."

"그거면 됬어. 그리고 학교 진도 나간 만큼 교과서에 적어서 가져다주라. 닷새동안 여기에 죽치고 있으려면 공부라도 해두어야지."

요연은 짐을 털어버린 미소를 지으면서 알았다고 답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잠시 웃고 있을 때, 잊고 있던 의문이 기억났다.

"그러고보니 요연. 죽겠다고 생각한 시간이 사신검주를 대체 할 수 있단 소리 다음이었지?"

"... 그렇습니다만, 무언가 잘못되었습니까?"

"아니아니. 내가 이과냐 문과냐를 물었을 때도 반응이 미묘하게 이상했잖아. 그 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해서."

이과나 문과를 요연에게 물었을 때 요연의 반응은 상당히 특이했다. 지금 상황을 대입해보면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 같기도 했다. 하지만 죽을 각오를 한 것은 그 다음이란다.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지사.

요연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 요님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제대로 끝맺지 못 한 그녀가 얼굴을 붉히자 덩달아 나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고보니 요연은 내 면전에다가 사모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당시에는 진위를 묻느라 신경을 쓰지는 못 했지만 그것은 엄연한 고백인 것이다.

모든 것이 정리되면 답해달라던 슈의 말이 지금에서야 떠올랐다.

슈는 선견지명이 있는 것이 분명해.

"요님은 의미없는 존재란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뜸 화제를 바꾸는 요연의 말에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 그랬지."

"저는 저에게 존재의미를 부여해주신 요님과 함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는 저 나름대로의 존재의미를 부여 할 겁니다."

'함께 있도록'이라는 부분에서 내 얼굴이 붉게 타올라 고개를 숙였지만 이내 덧붙이는 요연의 말에 고개를 쳐들었다.

쪽.

담담하게 울려퍼지는 소리에 순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곧이어 느껴지는 감촉에 입술을 매만지다가 손끝의 감각을 느끼다가 요연의 얼굴을 봤다.

그녀의 얼굴은 사상최고로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날의 키스는... 잊어주시고 지금 것을 기억해 주시, 그....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후다닥 문밖으로 도망가던 요연이 발을 멈췄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푹 쉬십시오 요애."

이내 완전히 사라지는 요연의 뒷모습을 보았다가, 머리를 싸맸다. 완전히 카사노바가 되어가는 자신에대한 한탄이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생각 할 것도 생겼으니 자잘한 것은 뒤로 물리기로 했다.

"요애라.... 사랑 애(愛)..겠지."

난 다시금 머릴 싸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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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도 마무리군요.

재밌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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