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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를 가장한 특별편 하(下)
콰앙!
문이 부서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정도로 커다란 소리와 함께 호지가 문을 열어재끼고 밖으로 달음박질 쳤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요연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하게 찻물을 찻잔 안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면서 고대하던 찻물을 영접하려는 순간, 능파가 찻잔을 후려쳤다. 찻물이 마치 화염방사기에서 뿜어져 나간 것처럼 요연을 덮쳤다.
때 아닌 물벼락을 맞은 요연은 별 감흥 없는 얼굴로,
"무슨 짓..입니까?"
그런 요연의 말을 듣자마자 능파는 그 말에 대답하기보다는 몸으로 행동하는 것을 우선시 했다.
뻐억!
백색의 용비늘이 드러난 주먹이 요연의 얼굴에 깨끗하게 적중하면서 요연의 고개가 꺽어지는 돌아갔다. 요연은 타격당한 부위 손으로 어루만졌지만 누가 때린 것인지 모르는 것처럼. 아니, 맞은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반격을 하지 않았다.
능파가 요연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무슨 짓이냐고..!?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어쩌자고 그 사실을 가르쳐준건데? 그냥 모르고 살았다면, 그냥 모르고 웃었다면! 그것으로도 어머니는 충분했을거야! 그런데, 왜!?"
요연은 찻물 때문에 눈이 잘 안 떠지는 옷소매로 찻물을 닦아내고는 별 감흥 없는 목소리로 능파에게 대답했다.
"그 이유는 이미 말 했을텐데요."
너무나도 담담한 그녀의 말에 도리어 능파의 말문이 막혔다.
그 이유. 진짜 사랑이 아니니까 만일 요가 사랑하는 일이 생기면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요연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애초에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능파는 단정할 수 있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요는 호지를 애인 혹은 연인쪽으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딸을 보는 아버지의 시선에 불과하다. 그것도 실질적인 예가 있었다.
능파와 호지의 합동으로 요를 꼬시려고 했던 그 작전. 그것은 대실패였다. 요는 직접 호지를 알몸으로 만들어놓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옷을 입혔다. 아니, 그 사실은 호지의 수치심 때문에 능파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요의 성격을 나름 알고 있는 요연이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요라면, 그녀의 할아버지라면 이미 자궁에 관한 것을 이미 눈치챈 뒤일테니까.
능파는 요연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지막히 물었다.
"...뭘 꾸미는 거지? 자칫하면 할아버지까지 위험하게 돼."
요연은 '글쎄요'라며 아저씨처럼 턱을 매만지더니,
"반드시 성공할 계획...이지요."
"에, 난 호지를 쫓아가 볼께."
그 둘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 한 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호지를 뒤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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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지는 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기분을 무시하는 맑은 하늘도, 맞바람의 시원함도,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웃는 사람들도, 그녀에게는 신경 쓸 것이 되지 못 했다.
[자궁의 마음을 잊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그런 방법이 없었다면 장시상천 일족은 이미 노예가 되었겠지요. 마수들에게 1, 2천살은 문제도 아니니까.]
요연의 말이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끼자, 호지는 머리를 싸맸다.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도 자궁출신이라고 단언한 적이 있었던 남자에게 가보십시오. 그리고 자궁의 마음을 잊어보십시오. 그러고도 당신이 요애를 사랑하실 수 있다면... 우리의 연적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겠지요.]
입술이 헐어버릴 것만 같은 통각을 이빨로 주면서 호지는 자기 아버지의 학교, 수상고를 향해 달려나가며,
"두고 봐.... 내가 아빠를 정말로 좋아한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어."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호지의 가슴에는 무슨 응어리 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당신이, 그럴 용기가 있다면 말입니다.]
'용기'. 그것은 분명히 자신의 참 된 마음을 볼 용기가 있냐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호지는 그 '용기'의 의미가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호지는 고개를 흔들며 잡생각을 털어내곤 발의 속도를 높이는데 주력했다.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사고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그녀의 아버지가 입에 달고 다녔던 몇가지 말 중 하나였다.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은 그저 앞으로 나아가면 되었다.
이윽고, 학교에 도착한 호지는 문을 뚫어버릴 기세로 이사장실의 문고리를 밀어버렸다. 문고리를 돌리고 민 것이 아니라, 문고리를 걸레나 다름 없게 부서져버렸다.
이사장실의 안에서 드물게 용의 모습으로 있던 소유는 멀쩡하던 문짝이 갑자기 부서지자, 화들짝 놀라며,
"뭔, 뭔 일이냐!...고 생각했는데 너였나. 그래, 이번에는 무슨 일로 왔지?"
"....웃기는 비명을 질러놓고 근엄한 척해도 소용없어.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넘어가겠지만."
장난치는 것을 즐기는 호지가 담담하게 나오자 소유도 무언가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진중한 표정으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호지는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자궁의 마음...을 잊을 수 있는 물건이 있다고 들었어. 그걸... 줘."
호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궁의 마음을 잊는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 좋아하고 아니고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욱신.
소유의 말에 가슴을 찌르는 감각이 느껴지면서 여기로 오던 중에 느꼈던 불안함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착각일 것이다. 그렇게 위안하면서 반문했다.
"뭔...데."
"....자궁 출신의 마물은, 자궁의 마음을 잃는 즉시, 사랑했던 존재를 죽이려들 정도로 증오하게 된다."
"....!!!"
사랑했던 사람을 죽이려고 할 정도로 증오하게 된다. 그것은 지금 여기까지 온 호지의 용기를 무너뜨리는 말이었다.
소유는 호지의 반응을 보면서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일단 경험담을 말하자면 나 또한 나의 아버지를 죽이고자 했지. 이유는 모른다. 아이로서는 버려진 슬픔일수도 있고, 자궁이란 것이 본디 내부는 낙원이나 다름 없는 상태니 깬 것에 대한 분노 일 수도 있다. 100%는 아니지만."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선례에 호지는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어떠한 이유인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자신이 아빠를 죽이게 된다는 것이 중요했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상대를 자신의 손으로....?
호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희망은 있었다. 100%는 아니라고 소유가 말했다. 작은 확률이라도 아버지를 좋아할 수만 있다면 자신은 용기를 얻을 것이다.
"아닐 경우에는..? 100%가 아니니까 다른 경우도 있겠지?"
"확실히 아까 것은 9할의 이야기. 다른 경우는....... 남을 보는 것처럼 대하게 된다고 들었다. 그것이 나머지 1할. 다른 결과는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하겠나?"
희망 따위는 없다. 그것을 인지한 호지가 귀를 틀어막았다.
있을 수 없다. 자신과 아버지는 항상 함께 할 것이고 자신의 애정에는 둔했지만 그래도 어느날에는 이해해 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
소유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난 개인적으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만한 강자가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니까.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치않다면 주겠다."
호지의 앞으로 은색의 단약이 굴러갔다.
"자궁의 생성자, 장시상천의 살점으로 만들어진 단약이다. 이것을 먹는다면 넌 완전히 자궁의 마음을 잊겠지."
호지는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사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문에 기댄체, 누구보다도 서럽게 울었다.
뭐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앞길은 항상 아버지와 함께이니까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정해야한다.
이것으로.
"그만둬도 상관없다고 생각 해."
호지는 옆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집에 있어야 할 슈가 벽에 기댄체 서 있었다. 아마 걱정되어서 따라온 것이리라. 그녀는 마음이 넓으니 그럴 것이다.
슈는 계속해서 말을 잇기 시작했다.
"난 한번이지만 요를 죽이려고 했어. 진심은 죽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죽이려고 했지. 하지만 실패했어. 나는 가끔씩 자문했어. 그 둘 중 무엇이 진심이냐,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지. '둘 다'."
호지가 의아한 눈으로 올려다보자 슈는 빙긋 웃으면서,
"나도 조금쯤은 화가 났으니까. 이렇게 좋아해주는데 왜 요는 나만을 봐주지 않을까...하고. 그래도 난 요가 좋았어. 어렸을 때의 동경은 그저 바라보는 사랑이었지만, 지금은 달라. 그의 옆에서 영원히 함께 하고 싶어. 그의 옆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나 밖에 없었으면 좋겠어. 화도 내고 사랑도 하는... 두개의 마음이지."
"두개의 마음...."
"후후. 하지만 결국 하나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사랑하기 때문에 화내고, 절박해지고. 설사 네가 그것을 먹고 요를 죽이려들더라도 그것 또한 사랑의 다른 형태일지도 몰라."
슈는 그 말을 끝으로 침묵했다. 호지 또한 더이상 질문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던 것도 잠시, 호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 이제, 결심했어."
슈는 할머니가 생각될 정도의 인자한 미소를 띄우며 호지의 말을 기다렸다.
호지가 입을 열었다.
"먹겠어. 슈의 말을 이해하고는 있지만... 역시 슈의 마음과는 조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 내가 가진 지금의 마음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니까. 그러니까... 먹겠어."
슈는 말리려는 듯이 몸을 크게 뺐다가, 양어깨를 감싸쥐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런 슈를 보면서 호지는 빙그레 웃었다.
"슈. 사실 엄청 강하다면서? 요연도 이길 수 있다면서?
슈는 괴로운 듯,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호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은색의 단약을 입가로 가져갔다.
"만약에 말이야... 내가 아빠를 죽이려 든다면 날 막아줘."
꿀꺽, 하고 삼키는 소리와 함께 슈가 마력을 전부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솟아오른 마력의 파동이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호지가 눈을 뜨자마자 입을 열었다.
"....? 별로 다른 게 없는데?"
슈는 호지의 맥 빠지는 대답에 숨을 깊게 토해냈다. 그러곤 한쪽 눈을 찡긋했다.
"잘됐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마음은 진짜란 거 잖아?"
호지는 그제야 인지한 듯 천장을 보다가, 바닥을 보다가, 자신의 손을 보고는 소리없이 기뻐했다.
자신은 잘 못 되지 않았다. 자신의 사랑은 진실이었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호지는 한도를 모르는 기쁨에 몸부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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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보고는 마치겠습니다~."
능파의 손등에 앉은 금와가 학교에 있던 일을 온전히 전한 후에 바닥으로 폴짝 뛰더니, 선반아래로 사라졌다.
능파는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흐응. 너의 계획은 실패한 것 같네...라고 생각했지만 노린거지?"
요연은 어깨를 으쓱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말했잖습니까. 목적은 세가지라고. 그저 세번째 목적이 달성 된 것 뿐입니다."
요연은 소파에 몸을 맡기며 눈을 감았다. 능파는 그런 요연의 모습을 보더니 피식하고 실소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유별났다. 그것은 할아버지조차도 알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 중에서 어머니는 이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너무 오랫동안 자궁에 있었다. 일그랫토 왕이라는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왕이 살았던 시대라면 족히 수천년은 지났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궁이 열렸을 때 양수도 나오지 않았고. 그런 상황이었다면 낙원이었던 자궁은 지옥이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둘째로, 할아버지는 어머니의 친부모가 아니었다. 소유가 언급했던 가설대로라면 친부모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할아버지를 싫어 할 턱이 없다.
앉은뱅이 탁자를 들어올리는 능파의 귀로 요연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남은 것은 요애의 사랑을 얻는 것 뿐인가."
능파는 탁자를 든 체 키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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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