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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
사막으로의 출정에 드는 공금에 대한 이야기가 일본에서 보내온 지원군의 이야기로 바뀌고, 끝나자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출정자금에 관한 논의로 더 몰아붙이고 싶었지만 늦기도 했고 아직 방학까지는 충분히 시간이 있어기에 적당히 포기하고 집으로 귀환한 것이다.
나는 겉옷을 적당히 의자에 걸쳐두고 크게 한숨을 뿜어냈다. 긴장하고 있어서인지 뱃속으로 들어간 숨은 사우나에 들어갔던 것처럼 더웠다.
"어른들의 이야기는 끝났어요?"
호지의 간식을 담았던 접시를 치우던 능파가 가벼운 미소로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나에게 저 가증스러운 얼굴에 그렇다고 대답할 여력 따위는 없었다.
능파는 강하지 않다. 용족이기는 하지만 어린데다가 힘을 키울만한 전장에 섰던 적이 적다. 하지만 능파에게는 그것을 뒤집을 만한 정보력과 지략이 있었다.
마수에게 세를 들어주고 그 댓가로 정보의 동력원으로 부려먹는다. 정보를 접하는 곳은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그 말인 즉, 결과 따위는 이미 알고 있다는 소리.
나는 능파의 단정한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흐트러뜨렸다.
"알고 있을테니 조금만 도와주라. 이번에는 우리의 스폰서인 소유도 힘 쓸 수 없어보이고 다른 구석에서는 돈을 구할 방법이 없어."
계속해서 소유를 몰아붙이고는 있지만 그것은 '진짜로 돈이 없는 것인지'와 '돈이 나올 구석이 없는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미묘하게 비슷한 그 두개를 소유를 몰아붙이면서 한꺼번에 실험해보았지만 두쪽 다 가망이 없어보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학교는 거대하고 소유는 배반룡의 칭호로 인맥을 잃었다. 학교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것이다.
그나마 소유가 습격 받거나 학교의 공사를 방해 받지 않는 이유는 우리라는 삼왕과 성녀가 버티고 있기 때문일 터. 우리는 본의가 아니더라도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존재인 것이다.
능파는 어린애답지 않게 웃더니,
"저도 어떻게든 수를 써볼께요. 뭣하면 일본에서 요연이 꺼냈다는 그 방법을 써도 좋고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거야?"
"오늘 어른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으니까 그런 소리도 나왔던데요. 리토라는 사람의 입에서."
실제로 그 이야기를 알고 있을 사람은 하나겠지만 그녀는 리토와 동문이다. 리토가 알고 있어도 무리는 없는 일.
나는 쓸데없는 소릴 지껄인 리토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젠장, 그 가벼운 주둥이. 바다에 던져넣어도 익사는 않겠군. 그런데, 호지는?"
"아, 엄마는...."
능파가 말을 미쳐 다 잇기도 전에 등짝에 지름 1미터 쇠구슬로 쳐맞은 것만 같은 왠지모르게 구체적인 통각이 허리에서 일었다. 잠시 말을 끊은 능파는 들고 있던 넓적한 접시를 부엌쪽으로 가져가면서 말을 덧붙였다.
"지금 할아버지 뒤에 있지요."
그런 건 빨리 말해줬으면 좋겠다. 호지의 돌격은 그야말로 기사의 마상돌격과도 같은 고통이다. 일반인이 아닌 이상에야 그것을 견뎌낼 수 없다.
나야 어찌어찌 견뎌냈지만.
"아빠! 헤헤헤."
나는 등에 매달리다시피 껴안긴 호지를 정면으로 안아주면서 볼을 부비적거렸다. 나의 그다지 매끄럽지 못한 볼에는 아까운 감촉에 넋을 놓을 것만 같다.
그렇게 딸내미의 속살을 즐기고 있(별 의미 없다. 믿어주기 바란다.)을 때, 품안에서 호지가 별안간 사라져버렸다.
"....놓으십시오."
요연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리기에 고개를 들어보니 호지는 고양이처럼 뒷덜미를 잡힌체 요연의 손에 들려있었다. 호지는 마치 고양이처럼 '컁'거리더니 그녀의 손에서 빠져나와 다시 내 가슴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 모습을 본 요연은 못 마땅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나는 왜 나에게 질책의 시선을 던지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내 수긍해버리곤 호지를 등에 업었다.
요연도 슈처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아무리 딸이라지만 호지도 여자아이. 요연의 입장에서는 불안할지도 모르겠다.
토라진 요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자 그녀는 새침한 표정으로 내 어깨에 기댔다. 등에 있던 호지는 감자를 지르며 위협했지만 요연은 어디서 개가 짖냐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러던 것도 잠시, 등에 있던 호지가 앞으로 와 배를 껴안고는 날 올려다봤다.
"그런데 아빠. 능파랑 무슨 이야기하고 있었어?"
"응? 아아, 돈 이야기. 이번에 받은 의뢰에 비행기표 값을 의논했지."
내 말에 호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의...뢰? 일본에 갔던 거? 그건 소유가 내주지 않았어?"
이번 의뢰에 대해 백지상태인 호지를 보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호지가 외국에 영약을 구하러 간 답시고 갔던 것(결과는 미비하더라도)은 분명 의뢰에 대해서 안 다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요연의 배반 의혹 때문에 의뢰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게다가 호지가 내 소식을 듣고 막 달려왔을 때는 운명타파 실패의 증거인 입원과 학생의 사대지옥인 중간고사(다른 세 개는 1학기 중간 기말고사, 2학기 기말고사다.)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말할 틈이 없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 있자 호지는 기어이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우우우. 나, 따돌려진거야?"
"아, 아니란다 호지. 이건 참치 통조림에 들어간 참치가 되는 기간의 설명이 필요한 사연이란...."
"얼마 안 걸리는 사연이로군요."
"입 다물어, 요연!"
바라지도 않던 태클에 반박을 해버리고 말아버린 나는 내 배에 안겨 있는 호지를 내려다 보았다. 호지는 눈물과 함께 '분노'라는 감정을 배출하면서,
"아빠 바보!"
내 허리에 슈도 놀랄만큼 완벽한 보디블로를 적중시켰다.
뻐억!
크리티컬 히트! 플레이어의 체력이 위험합니다. 체력을 보충해주세요.
...라는 말이 나올 것만 같은 위력에 나는 아름다운 천국에서 손짓하는 외할아버지의 존안을 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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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몸을 둥글게 만 것은 고슴도치였다. 나는 주인이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고슴도치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고슴도치의 가족이 살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만 했다. 하지만 난 죽을 수 없었다. 고슴도치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소중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싸우고 말았다.
고슴도치는 강했다. 작은 몸이었지만 몸에 달린 수백개의 검날들은 내 여린 몸과 소중한 것에 흠집을 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아아, 약하도다. 나보다 아래의 인간에게 이리 무력하다니. 하지만 나에게는...
세상이 일그러지면서 가라앉았던 의식이 부상했다.
"으으으..?"
"일어나셨습니까? 하지만 곧 주무실 시간입니다."
침대에서 상체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니 내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천천히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되살리던 것도 잠시, 어렵지 않게 기억해 냈다.
"보디블로를 맞고 정신을 잃었나..."
"예. 솔직히, 한심한 이야기지요."
울컥하는 것을 느끼면서 요연을 어떻게 골려줄까 생각할 무렵. 요연은 순수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기에 저는 당신을 그렇게 갈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요연은 막힘없이 부끄러운 말을 내놓았다가 말을 한 뒤에나 부끄러운 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그그그, 그럼 늦었으니 이만 주무십시오."
두다다다다. 아랫층 사람들에게 미안해 질 정도로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