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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
"그, 그만 울어 요."
책상과 찐한 사랑을 나누려는 것처럼 책상에 볼을 부비며 울고 있던 나에게 슈는 위로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저번에 타파하지 못 했던 운명(병원과의 인연을 끊는 것.)보다도 더욱 충격이었다.
울고 있는 나와 위로하고 있던 슈의 옆에 앉아 있는 하여가 우리를 보더니 늙은이처럼 혀를 차면서 우릴 조롱했다.
"가지가지한다. 저번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면서? 뭘 그리 울어?"
"저번과는 다르단 말이야! 저번에는 하루도 안되서 마음을 풀었는데...!"
으헝헝헝. 내가 생각해도 추할 것만 같은 울음을 터트리는 나를 보고 지나가던 경홍이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쟤는 왜 저래?"
"호지가 상당히 삐진 모양이야. 본인은 이유도 모르고."
경홍은 한심하다는 듯이 흐음하며 콧소리를 냈다.
내가 울고 있는 이유는 바로 호지 때문이었다. 어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 보디블로를 쳐맞고 난 뒤로부터 화가 난 것 같은데 이유가 짐작가지 않는 것이다. 아니, 그것뿐이라면 생각해보면 될 문제다. 사과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삐진 것이 상당히 오래가는 것이다. 시간상으로는 겨우 반나절이지만 내가 껴안아주기만 해도 화를 풀었던 호지를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긴시간이다.
아무리 달래도, 먹을 것으로 유혹해도, 안아줘도. 마치 함락을 불허하는 철옹성처럼 호지는 사과를 거부했다. 같이 잘 때도 나에게 등을 보이고 잔다.
이것은 큰 문제다. 언제 어디서라도 화목을 중시하는 우리집에서 이런 트러블이 일어나다니.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모르겠단 말이지..."
딱히 내가 둔한 것은 아니었다. 사귄 사람은 없지만 남녀관계에 대해서 문외한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모르겠다. 아니, 짚이는 것이 있어서 사과를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호지는 흥하며 콧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사과의 내용이 잘 못 된 것인지 아니면 사과한 것들 중에서 삐진 이유가 있는데 앙탈을 부리는 것인지.
울던 것을 멈추고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는 나에게 경홍은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했다.
"너무 오냐오냐 한 것 아니야? 조금쯤은 혼내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봐. 어딜봐도 너의 딸사랑은 과하다고 생각되거든. 뭐랄까...."
경홍은 한마디로 표현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지 이마를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면서 인상을 썼다. 내가 그녀의 말을 받았다.
"예컨대 반항기?"
"맞아, 그거."
나는 경홍의 동조에 턱을 매만지면서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호지를 대해 왔는지 차근차근 생각을 해보았다.
매일 같이 이쁘다고 연발해주었으며, 케잌이 먹고 싶다고 하면 매번 사주었고, 호지가 응석부리면 다 받아주고.
....반항기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변화가 갑작스럽다. 그 전까지만해도 호지는 아빠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의 표상이었다. 갑자기 변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역시나 삐진 이유인데...
"모르겠네. 요연, 뭔가 알고 있는 것 없어?"
당시에 요연도 같이 있었으니 요연 또한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요연은 살짝 고개를 갸웃하다가,
"짐작가는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째서?"
"제가 말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 크게 마음 쓰지 마십시오. 곧 스스로 말할 겁니다."
무언가 아리송한 그녀의 말에 나는 일단 호지에 관한 생각은 뇌의 구석에다가 보관하기로 했다.
이제 곧 소유와 돈에 관한 대담도 해야하고 그것이 끝나면 나중에 상대할 라이칸스로프들과 뱀파이어에 대한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사적인 일을 앞세우고 싶지만 지금은 공적인 일을 생각해야 할 때다.
어차피....
"요, 시간됬어. 소유 만나러 가자."
"으응. 요연, 따라와."
외톨이처럼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나를 붙드는 슈의 행동에 사고를 정지한 나는 불확실한 대답으로 슈에게 답하고 요연을 불렀다. 잠시 자기 자리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던 요연은 나의 부름에 마치 플랜더스의 개 같은 속도로 내게 다가왔다.
교실에 남아 있을 친구들에게 대충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한 뒤 이사장실로 직행한 우리는 용으로 변신한 소유와 리토. 그리고 어제는 오지 않았던 아야세 하나까지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들어온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한 하나가 공손히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투귀."
"여어, 리토에게 왔다는 거 들었어. 머리가 길어졌네?"
내 말에 하나는 얼굴을 붉히며 손끝으로 자신의 날개뼈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돌돌 말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슈가 내 멱살을 잡아챘다.
"요요요요요, 지금 이 상황은 어찌 된 일이야...?"
"내 이름을 다섯번이나 부를 필요 없어. 그리고 별 관계는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나랑 별 관계인 사람은 너랑 요연 밖에 없으니까."
저쪽은 나에게 호감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쪽은 그냥 구면이상의 감정은 없으니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슈는 나의 단호한 대답에 조금 미심쩍은 듯 했지만 이내 수긍하고는 내 팔을 꼬옥 끌어안으면서 살의를 내비쳤다.
그런 슈의 반응에 나는 한숨을 내쉬고 소유에게 말했다.
"어제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야할까?"
어제는 리토의 개입으로 흐지부지 넘어갔지만 지금은 안된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돈에 관한 문제다.
소유는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을 철혈의 의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소유는 나의 말에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을 빛냈다.
"물론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돌파구도 왔으니 이야기가 길어지지는 않을 터."
소유가 살짝 하나들을 곁눈질하자 그들은 마치 호랑이 앞의 토끼처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용이라는 존재 자체가 지닌 상위종의 존재감 때문이리라. 소유가 약체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용수준. 용들의 존재감은 확실하게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런 하나들을 무시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빌려올 곳도 없다, 스스로가 가진 돈도 없다. 어제 했던 이야기는 여기까지 였지? 네가 말하는 돌파구는 저기 있는 하나들일테고."
내 말에 소유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절친한 친구인 광이라면 빌려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짐작했을 소유를 향해 나는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바보 같은 소리. 애석하게도 그 생각은 불가능 해."
이것은 심술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일본의 결사들은 저번의 청룡 때문에 반수 이상이 괴멸했으며 결계도 팔할이 넘도록 찢어졌다. 게다가 청룡회가 관리하던 구역까지 새로 정리하려면 상당한 양의 돈이 들 것이다. 요 반년간 힘을 회복했다 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 우리에게 벌려줄 손 따위는 없을 것이다.
내가 그 사실을 설명하자 소유는 침음성을 흘렸다. 기본적으로 마음씨가 좋은 소유로서 힘든 친구에게 부탁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 때,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열려진 문에서 한남자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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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남자의 정체는!?
솔직히 너무 쉬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