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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히던 열기의 근본인 사막. 그것은 마치 신기루처럼 연기가 된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눈에 비치는 것은 모래를 대신해 쌓여있는 눈더미들과 늪처럼 불안한 바닥이 아닌 단단한 얼음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 아니라 함박눈을 배경으로 한 거대한 고딕 양식의 뾰족한 얼음 궁전이 세워진 설원이었다.
눈에 비치는 것만 보면 완전한 극지방에서나 볼 수 있을 모습. 하지만 하늘에서 내리고 있는 눈도, 바닥의 얼음도. 차갑지 않았다.
보통 사막을 횡단하는 사람들은 긴 두건 같은 것으로 몸을 가린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빛과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함이다. 하지만 힘으로 그런 부분을 커버할 수 있는 우린 그런 것들을 착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공간도, 눈도, 얼음도, 추측이기는 하지만 저 궁전도. 모조리 마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용이란 존재는 이런 걸... 만들 수 있단 말이야?"
나의 혼잣말을 소유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받았다.
"너희와 함께 있던 학교 지하의 그 공동. 그것도 이것과 같은 공간이다만. 물론 범위도 좁고 형태도 단순하지만 못 할 수준은 아니지. 게다가 고룡급이니 어려울 것도 없다."
고룡. 용종이란 본디 나이를 먹을 수록 강해진다. 강해지는 속도의 고저차가 있기는 하지만 어디서 상처라도 입지 않는 이상 약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자비나타의 힘이 기본을 훌쩍 뛰어넘은 강자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소유의 경우에는 종족자체가 오감을 어지럽히는 환룡. 그러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전문분야다. 하지만 빙룡이 이만한 공간을 유지하면서 뱀파이어와 라이칸스로프들의 균형을 잡았었다? 왠지모르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그 부분을 입에 올렸다.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실력자라면 차라리 잠시동안 이 공간을 줄여서 회복에 돌리는 것이 더 빠르지 않아? 아니면 직접 행동에 나설 수도 있고"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말을 받은 것은 소유가 아니라 요연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녀 또한 용종. 그것도 용들의 정점에 위치한 황룡이다. 아무리 이어받았고 힘을 모두 개발하지는 못 했더라도 용에 관한 지식은 상당할 것이다.
요연은 빙룡성에 시선을 주면서,
"걸으면서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초대받은 자로써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꼴불견이니까요."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말에 우리는 황급히 뒤쫓았다. 뒤쫓아오는 것을 살짝 곁눈질한 그녀는 앞만을 바라본체 입을 열었다.
"자비나타는 저와 비슷합니다. 순수한 용이 아니지요."
요연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이 왠지 기이하게 느껴졌다.
"본디 용이 아니라고? 그리고 너와 같다? 하지만 그런데 '용'의 이름을 얻었다고? 그건 조금 어이가 없는데."
용은 자존심이 굉장히 강하다. 세상에서 최강이라 불리는 몇 종족 중 하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세상에 간섭하며 사람들에게 떠받들여진 시간이 길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자들이 용이란 칭호를 갖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물론, 가끔 인간들 중에 용의 칭호를 받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동경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반응을 하지 않는다. 허나 요연처럼 용의 힘을 이어받은 자들은 조금 사정이 다르다.
힘을 이어받은 존재는 종족의 경계선에 서게 된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심각한 문제였다. 자신들의 우월주의를 무시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우월주의 관점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소유였다. 그는 그들에게 있어서나 다른 종에 있어서도 죄인이다. 그런데도 그의 칭호에는 용이 들어간다(배반룡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죄인조차 용이란 칭호를 내릴정도로 종족이기주의가 강하단 소리다. 그런데 요연과 비슷한 혼종이 용의 칭호를 얻는다는 건 믿기지 않았다.
요연은 웃으면서,
"후후, 예. 맞습니다. 어이가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가능했습니다. 그 당시에 존재했던 저의 할아버지, 황룡 구소께서 그를 인정해주셨거든요."
"아아. 그런 거라면 이해가 가지."
잘은 몰랐지만 구소는 마음이 넓었을 것이다.
세계의 배반자인 소유를 감싸주었고 자신과 친했던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목숨마저도 바쳤다(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서도). 그 정도 일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인지 자비나타는 할아버지가 은거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탄압을 받으셨습니다. 후견인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수순이었지요. 아마 그 때 이 사막으로 넘어왔을겁니다. 할아버지로서는 은거를 깨고 싶었던 모양이시지만...안된다고 하시더군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흐응. 그래?"
요연의 어투에서 살짝 어두운 기미가 보였다. 나는 그 어둠의 존재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당시 그녀가 나에게 죽고자 했을 때 거짓이유로 내뱉은 그것 때문이었다. '황룡이라면 자신을 죽일 필요없이 요연을 살릴 수 있었다'라는 명제는 누님의 거짓증언이란 이유로 부술 수 있었다. 하지만 방금 요연이 한 말을 듣자면 스스로도 비밀이 많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아까 것과는 다른 가능성의 제시.
'누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황룡이 의도한 것'이라는 명제다. 요연으로서는 믿기 힘든 일 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상당히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누나와 나는 우애가 좋다. 일반적인 가정(당시에는)의 남매라고는 생각하지 못 할 정도로. 특히나 누나가 나에게 쏟는 애정은 내가 호지에게 쏟는 애정과 비견 될 수준. 그런데 그런 누나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솔직히 현실감이 없게 느껴졌다.
"아니,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나."
삼천포로 빠져버린 생각을 뇌의 구석에 밀어넣으며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집중했다. 얼음궁전에 가까워진 것 때문인지 내리고 있던 눈발이 서서히 약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느 덧 가까워진 궁전을 올려다보자 그 높이를 실감 할 수 있었다. 이정도 높이라면 내 '비기'의 높이와 비슷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소유가 얼음으로 만들어진 대문에 손을 댔다. 문은 소유가 밀지도 않았는데 미끄러지면서 열렸다.
그 광경에 능파는 혀를 찼다.
"집주인이란 작자가 직접 마중도 안나오다니, 버릇이 없네요."
"그러지 마라. 다쳤다고 하잖냐. 못 나와도 어쩔 수 없는거지."
나의 질책에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나름대로 수긍한 능파는 흥미를 잃은 것처럼 마력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우리도 능파를 따라 앞으로 발을 내딛으면서 주변에 나열한 물건들을 구경했다.
과연 빙룡이라 그런지 성 자체는 물론이고 모든 장식들도 공기방울 하나 들어가지 않은 깨끗한 얼음으로 되어있었다.
얼음일색의 그 광경을 구경하면서 시선을 돌리고 있을 무렵, 나는 성의 구석에 있는 커다란 쇠의 원통을 발견했다.
크기를 보아하니 기둥 같은 것과는 다르고.... 무슨 대포의 포신같다.
"다 왔어요. 아마 여길테지요. 어디 한번 빙룡의 면상을 보도록 할까요?"
웃어른에게 하기에는 무례한 어투로 말한 능파는 성의 대문과 엇비슷한 크기의 얼음의 문을 밀었다. 하지만, 마치 본드로 고정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능파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면서 다시 한번 문을 밀었다. 하지만 역시나 열리지 않았다.
소유는 한숨을 내쉬면서 능파를 옆으로 밀어냈다.
"자비나타는 성격이 나빠서 자기가 인정한 사람이 아니면 들여보내주질 않아. 아마 나밖에 열지 못 할거다. 부수는 것은 모르겠지만."
나는 능파가 옆에서 '까다로운 놈'이라 혀를 차는 걸 들으면서 소유가 문 여는 것을 바라보았다. 소유의 말대로 그가 문에 손을 대자 밀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런 문의 틈새로 보이는 거구의 몸체.
"저것이...."
"그래."
나의 말을 소유가 받았다. 그리고 그는 잠깐의 갭을 두고 그것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빙룡 자비나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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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짜증납니다. 일학년때의 선생 정도만 되었어도 괜찮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