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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림
너무 성과없이 돌아가는 것은 뭐해서 뱀파이어와 라이칸스로프들이 있는 주거지까지만 알아내고 돌아오자 소유가 인간의 상태로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맞아주었다.
"여어. 돌아왔나? 성과는?"
"이냥저냥이지. 신경 쓸 것 없어."
정확히는 이냥저냥조차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말하기면 빙룡성의 주인인 자비나타가 어디서 내 말을 엿들을지 몰랐기 때문에 대충 얼버무린 것이다. 하지만 소유는 그것을 강한 자신감으로 받아들인 건지,
"그건 또 그것대로 좋겠지. 후후, 기대하겠다."
그렇게 말하고는 등을 돌려 코너로 사라져버렸다. 그런 소유의 등에서 시선을 땐 나는 사막을 함께 갔던 요연과 슈, 리토를 보면서(리토는 시야 밖에 뒀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서 쉬자는 소리를 하고 헤어졌다. 모두를 배웅해주고 나도 기지개를 피면서 방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허리에 묶인 벨트를 잡아당기는 감각에 혼이 송두리째 날아갈 뻔 했다.
도대체 누구야!? 남자의 생명이라는 허리를 망가뜨리려는 놈이!
"돌아오셨네요, 할아버지."
아직 미혼인 나의 미래생활을 깨부수려는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나의 손녀인 능파였다. 능파는 지금 어려운 문제에 골머리를 썩는 것인지 표정이 어두웠다. 아니, 기이하게 능파의 시선이 적의를 띄고 있는 것을 보아선 내가 관련된 일인 것 같기도 했다.
능파는 내가 능파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알아챘다는 것을 눈치채고 한숨을 내쉬며 질문을 시작했다.
"할어버지는 만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다른 사람은 어쩔거에요?"
능파가 말하고자 하는 다른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요연과 슈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짚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되물었다.
"누굴 좋아하는데?"
"누구라도요."
아마 그녀가 묻고자 한 취지는 내가 '누구를 선택했을 때 남겨진 사람들의 처우'를 말함이리라. 그것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대답은 '선택했음을 말한다'이다.
나는 여러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만큼 마음의 도량이 넓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지내서 다른 누군가를 상처줄 생각도 없다. 지금 이런 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상처를 줄 것이란 것을 알고는 있지만 언젠가 올 상황에 대해서 생각은 해두었다.
"말하겠지. 능파가 말하는 누구를 좋아한다고. 전부라면 그건 그것대로 좋겠지만 말이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
"할아버지다운 대답이네요. 하지만, 예상대로니 상관없어요."
예상대로라는 말을 하는 순간, 능파의 표정은 어느 나라의 신이 되고자 한 사람이 계획을 성공시켰을 때 지은 표정이랑 매우 흡사해 보였다. 한순간 이상한 글자가 적힌 검은 노트를 든 남자의 환영을 본 나는 눈을 비비면서,
"그런데 그런 건 왜 물어본거야?"
말하기 힘든 것일까, 능파는 침묵을 지키며 나를 거칠게 쏘아보았다. 언뜻 살의가 보이는 능파의 눈빛에 나는 퇴로를 막힌 범죄자의 심정으로 나도 모르게 양손을 들어올렸다.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총과 같은 눈초리로 날 쏘아본 능파는 나에게 등을 보이면서 말했다.
"할아버지가 나쁘지 않다는 것은 알아요. 아마 그것도 의도한 것은 아닐테지요. 할아버지는 '선'을 아는 분이니까."
선. 그것은 도형의 한변을 그리는 선을 말함일까, 아니면 두 개의 영역을 만드는 경계의 선일까. 그것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지만 아무래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돌아가서 주무세요. 전 저 나름대로 노력... 해볼테니까요."
무엇을 노력하려는지는 몰랐지만 딱히 추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는 능파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방향을 틀어 방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앞을 걸어가는 자그마한 소녀가 보였다. 비녀를 세개나 꽂아넣어 머리칼을 틀어올린 특이한 머리스타일은 단 한사람의 트레이드 마크다.
나는 호지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 뛰어들 생각이었지만 이내 지금 호지와 나의 상황을 상기하곤 그 방법을 포기했다.
만일 내가 이름을 부르며 껴안으려들면 호지는 반드시 피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며, 호지도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나는 살금살금 호지의 뒤로 다가가 와락 껴안았다.
"아아아...! ....아아아."
뭔가 놀란 듯한 음성이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아지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평소의 호지와는 명백히 다른 반응에 나는 황급히 호지에게서 떨어졌다.
평소의 호지라면 놀란 그대로 나에게 안겼어야 했다. 나와 싸웠기 때문에(라고는 말했지만 실재로는 일방적으로 거절당한거다) 못 안기더라도 밀치는 것이 정상. 그런데 호지는 기묘한 느낌의 한숨만 내뿜을 뿐이었다.
호지가 날 돌아보고 눈이 마주쳤다.
오싹.
언뜻 살의마저 느껴지는 호지의 차가운 눈빛에 나는 무언가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호, 호지야. 내가 뭔가 잘 못 한거야? 난 바보라서,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잘 몰라. 그러니까..!"
여기서 호지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 한다면 정말로 우리집안은 끝장이다. 현재 우리집에 거주하는 인원 중 능파와 호지를 빼면 나와 요연뿐. 그야말로 반파(半破)다.
그런 마음에 성급히 사과를 하며 호지의 손을 붙잡았지만 호지는 돌아보지도 않고 앞으로 걸어나갈 뿐이었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내가 끌려가기 시작했다.
난 혀를 차면서 호지의 팔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제야 힘의 균형이 맞았는지 끌려가던 몸이 정지했지만 호지는 그대로 몸을 돌리면서,
짜악.
손을 뿌리침과 동시에 내 얼굴을 손등으로 가격했다. 호지는 내 얼굴을 보다가 자신의 손을 보더니 내 시선의 밖으로 사라졌지만 나는 그런 것보단 내 볼에 느껴지는 통증에 더 주목했다.
내가 맞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호지한테. 내가 고이고이 키워오면서 그 누구에게 보다도 잘 대해주었는데.
난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호지는 저럴 아이가 아니다. 분명히 나에게 실망한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내이며 생각하던 중,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능파의 질문. 그것을 상기해낸 나는 호지가 그렇게 삐뚤어진 이유를 알아냈다. 이유를 알면 관계 회복도 가능하다.
하지만, 어떻게? 내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을텐데 설득이 가능할까? 설득하려다가 더 틀어지는 것은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나는 사고를 정지했다.
더이상 생각했다간 정말로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버린다.
".....수를 쓰는 수 밖에 없나."
나는 석상마냥 서 있던 몸을 움직여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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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참입니다.
개인적으로 '아, 이거 재미없다. 그런데 빼놓을 수 있는 편이 아니네'라는 마음에 그냥 삼연참을 했습니다.
뭐, 비축분은 아직 넘치니.
그건 그렇고 주인공, 부모님에게도 맞지 않은 뺨을 딸에게 맞았군요.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