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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스트로피
본 적도 없는 인물들이 8명이나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아픈 몸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켜 몸을 서서히 전투상태까지 몰아넣고 있었다.
쓰면 위험하다는 것쯤은, 당사자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누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 일어난 일은 예상 밖의, 최악 중의 최악이라 칭해도 잘못 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난 단 한사람으로 인해 저들의 정체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저들의 맨 오른쪽에서 시커먼 갑옷을 입은 장신의 미청년. 그가 입은 저 갑옷은 언젠가 요연이 재료거리라면서 가져다 준 그것과 매우 흡사했다.
나는 이를 갈았다.
"흑기사단... 단장 케이슨. 멋진 계략이었어."
설마 이쪽보다 먼저 적들이 중립세력의 포섭에 나섰을 줄은. 아니, 어쩌면 이미 모조리 포섭됬을 가능성도 있었다.
씁쓸하게 내뱉는 나의 말에 그는 과연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손뼉을 쳤다. 자비나타의 개인실에 남는 것은 순수한 케이슨의 감탄뿐이었다.
"굉장하군요. 겨우 옷차림만 보았을 뿐인데 저의 이름을 알아내다니. 어떻게 알아내신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나는 혀를 찼을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정체를 눈치챘던 것은 거의 운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일전에 루그로가 말했다시피 케이슨은 위험인물이었고 흑기사단의 갑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 예상밖의 행동으로 지금 우릴 이꼴로 만들었다. 그 루그로가 위험하다고 판단했을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라면 이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해서 찍은 것이었지만, 정답이었던 모양이었다.
속이 타들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말을 씹어뱉었다.
"무서운 녀석이 왔어. 그래, 동료들이나 차근차근 소개해 보는 것은 어때? 누군지는 알아야할 것 같은데."
"아아. 그거 좋지요. 우리 팔대간부의 이름정도야 알아두셔도 상관없을 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케이슨을 향해 나는 속으로만 죽을 상을 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팔대간부 중 전원이 나왔을 줄이야. 우리측이 전부 멀쩡하다해도 동귀어진, 아니면 패배. 운이 좋으면 도주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케이슨의 계략에 넘어가 이 상태니 결과는 예상되는 바다.
살아날 방도는 없다. 천운이 따라 이곳에 누님이 온다면 모를까 살아날 가능성은 전.....
갑작스레 떠오른 '살아날 방도'에 크큭하고 비웃음을 짓고 말았다.
내가 지금 생각해낸 방도는,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운명 그대로였다. 난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없다. 대신...
케이슨이 앞으로 나와 옆에 있는 백색거인을 잡았다.
"일단 첫번째로 이분. 우리들 중에서 가장 난폭하신 옴팔로스이십니다."
옴팔로스는 신화속에서 그저 신성시되던 돌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움직이는 모습을 보아하니 힘을 얻어 골렘의 형태가 된 것 같았다.
살아온 나이만 해도 우리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소유보다도 더 많다. 골렘의 특성상 재료에 따라 힘이 결정되는 만큼 신성시되고 오랫동안 살아왔으니 강할 것이다.
케이슨이 옆으로 붉은 피부의 여럿의 팔을 가진 거인을 잡았다.
"이분은 아수라왕. 아마 이름정도는 들어보셨을거라 생각합니다."
수많은 아수라들의 우두머리이며 제석천왕과 상당히 사이가 나쁘다는 것정도는 알고 있다. 문제는 힘이 측정되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케이슨이 옆으로 넘어가기 직전, 열개의 팔과 4개의 얼굴을 가진 청람빛 피부의 남자는 기이한 리듬에 맞춰 몸을 계속 떨면서 말했다.
"쓸데없는데 시간 쓰지마라 케이슨. 우리가 목표랑 농담이나 할정도로 시간이 많았던가?"
"흐음, 애석하군요. 조금만 더 안되겠습니까 시바?"
애석하다는 말에 뒤이어 나오는 단어에 나는 경악했다.
아직까지도 인도에서 가장 숭배받는 힌두신인 시바. 그의 힘은 우주최강이라 불릴정도. 신화이고 여러가지 세계가 합쳐지면 우주최강까지는 아니겠지만 저런 타입은 대개 숭배받는 정도에 따라 힘의 크기가 늘어난다. 인도에서의 지명도를 생각해보자면 최악의 적이다.
나는 혼을 담아 외쳤다.
"젠장, 자비나타아아아!!!! 넌 자존심도 없는거냐!!! 구소가 너에게 배풀었던 은혜를 어디에다 묻어둔거얏!!!!!"
갑작스레 나에게 이름을 불린 자비나타는 약간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난 은혜 따위는 모른다. 내 길은 내가 개척할 뿐. 나에게는 이용되는 자들만이 있을뿐이다."
나조차 공감할 수 있는 발언인지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를 쏘아보았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받아들이고, 필요 없는 것은 배척한다. 이것은 진리이며, 살아가는 자들의 기본소양이다.
시간이라도 벌면 어떻게든 될 거란 생각조차 무너진 나는 결국 그것을 써야하는 순간에 봉착하고 말았다.
쓰려고 했지만 손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몸이, 이성이, 본능이 그것의 사용을 금지시키고 있었다. 쓴소리를 뱉어내면서 이를 갈았다.
써야한다. 써야만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다. 어쩌면 나도 살아남을 수 있다. 가능성은 있다. 그러니까...!
순간, 세상이 돌변했다.
세상은 점점 파문을 일으키며 일그러지고 마력도, 공간도 일그러뜨려 세상을 비틀어버리기 시작했다. 그 강대한 힘은 강렬한 빛을 동반하며 우리를 덮쳤다.
"크으윽...."
신음소릴 내던 것도 잠깐. 눈꺼풀조차 관통하던 섬광은 이미 사라진 듯, 눈꺼풀은 시커먼 암흑을 만들고 있었다. 눈을 뜨자, 내가 서 있는 곳이 빙룡성이 아니라 드넓은 사막이란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에, 뭐가 어떻게 된거야?"
리토가 바닥에 주저앉은체 말을 토해냈지만 그것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신을 차린 슈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에, 호지가 없어. 더불어 능파도."
"그럴리가..."
휙, 휙.
고개를 빠르게 돌려 주변을 살펴보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자식과 손녀가 사라진 지금과,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이곳까지 탈출하게 된 경위. 이 두가지를 합치면 답은 금방 나온다.
호지와 능파는 자신을 그곳에 남김으로서 우릴 탈출시킨 것이다. 설마 케이슨쯤되는 녀석이 공간이동계 마법에 장해를 걸어두지 않았을 턱이 없으니 자신들을 탈출시키지는 못 했던 것이리라.
생각을 끝 마친 내 눈앞에서는 능파와 호지가 무참히 살해되는 장면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나는 양손을 맞잡았다.
"슈. 가속 걸 수 있지?"
"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되물었지만 그녀의 몸은 이미 나를 향해 가속마법을 걸고 있었다. 몸이 부양되는 것을 느끼면서 낮게 말했다.
"외부병장(外膚兵裝) 악마륜(惡魔輪)."
루그로를 상대할 때 썼던 강화식. 여러종류의 강화를 한꺼번에 사용하는 것으로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나의 개인비술이다.
나는 뒤이어 외쳤다.
"광진 육.....!"
울컥.
피가 한모금 튀어나왔다.
광진은 최종식인 육식은 커녕 오식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만한 패널티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쯤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바다.
나는 군인도 놀랄정도의 악바리를 보이며 뒷말을 이었다.
"광진 육식 발도오오오옹!!!!!!!"
말을 끝 마치기가 무섭게 엄청난 고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겪어왔던 어떤 고통보다도 강력했지만 나는 정신의 끈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몸이 부서질 것 같은 통각은 각오하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사용하는 것인데 이깟 고통이 대수랴.
끼릿.
몸이 기이하게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의지와는 다르게 몸은 이미 한계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뭐, 아무렴 어떠냐...."
나는 그 즉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