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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군
한쪽 무릎을 꿇으며 아까까지의 경박한 탄성 따위는 갖다 버리고 호지가 있는 방향으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그저 평범한 인사가 아니었다. 주변에 산재한 투기조차 가라앉힐 것만 같은, 그 누구의 간섭도 불허하는 관례. 팔대간부라고 소개했던 자들은 그 상황에 끼어들 생각도 하지 못 한체, 그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자신을 단심검주라고 칭한 남자, 우르카가 고개를 들어올려 호지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시선 끝에 있는 존재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라? 육왕은 남자 아니였어?"
"긍정. 이 사람은 육왕이 아닙니다."
자신의 말에 무표정하게(철로 됬으니 표정을 만드는 것도 무리겠지만) 대답하는 앤트로아의 말에 우르카의 얼굴은 비참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우르카는 며칠이나 내달린 상태였다. 간혹 쉰 적이 있는지라 컨디션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앤트로아의 인도로 여기까지 찾아오는데 달린 길은 엄청나게 급한 커브를 여러번 그리는, 그야말로 지그재그식의 코스를 경유해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이곳에 없다. 목적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앤트로아가) 했으니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것은 이해가 됬지만 바로 '눈앞에 있다'며 사람을 기대에 부풀게 해놓고는 이제 '없습니다'? 우르카는 폐하의 우군이고 자시고 간에 옆의 기계인형을 베어버릴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2미터에 육박하는 키를 가진 기계인형, 앤트로아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우르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담담하게 덧붙였다.
"더불어 저기 있는 여성들은 육왕의 딸과 손녀. 인척관계입니다. 피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피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이라는 대목이 나올 때쯤에 우르카는, 전혀 앤트로아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호지와 능파를 구함으로서 왕에게 어떻게 점수를 딸까하는 생각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우르카는 호지의 곁으로 다가가 팔대간부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시바{파괴신(破壞神)}, 베헤모스{지신(地神)}, 그라드(라이칸스로프), 프리아가(켄타우러스계), 아수라왕(아수라), 옴팔로스(골램), 기레(뱀파이어). 팔대간부는 일곱명에 외주인 케이슨이라.... 이거, 쟁쟁하신분들만 모였군. 유해의 뱀은 어디로 간거냐?"
이곳에 모인 것은 팔대간부 전원이 아니었다. 카타스트로피와 가장 많이 (게릴라전으로) 싸워보았기에 알고 있었다.
유해의 뱀은 통상적으로 카타스트로피의 본단에 잘 돌아가지 않는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부에서 팔대간부 중 여덟번째는 암묵적으로 케이슨이라 정해진 상태. 그리 큰 정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겨우 이정도의 정보를 얻는 것으로 우르카는 죽을 뻔 했었다.
케이슨은 그런 정보가 알려진 것이 의외인 듯,
"어떻게 아신겁니까, 우르카?"
"조금 간세를 심어놨거든. 배반과 내분을 일으키는 것이 너희의 전매 특허일 턱이 없잖냐."
거짓말이다. 우르카는 간세는 고사하고 적들의 본진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허세인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연기에 소질이 없다. 거짓말을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니 금방 들킬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우르카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들 사이에선 상당한 파장이 일고 있었다. 상당히 불안해 보이는 것이 '배신자가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케이슨은 손뼉을 치며 불안한 것처럼 튀는 분위기를 일거에 잠재웠다.
"거짓말 마십시오, 우르카. 설사 간세가 있더라도 당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그럴 시간적 여유 따위는 없어요."
역시나 케이슨. 우르카의 거짓말 따위는 단박에 꿰뚫어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쉽사리 인정할 우르카가 아니다.
그는 붉은 코트를 펄럭거리며 앞으로 나서, 양손을 맞잡았다. 그의 손이 일견 붉게 빛나는가 싶더니 그곳에서 새빨간 검이 솟아올랐다.
그 검에 이름은 없다. 하지만, 단심검주란 이름이 대를 이어올 때마다 그들은 자신의 충의를 담아 이렇게 불렀다.
'충의의 적색'.
"후우우우...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싸워보면 알겠지. 너희는 어찌됬건 적이니까."
우르카는 그렇게 말하며 뒤에 있는 앤트로아를 눈짓했다. 앤트로아는 손목 아랫부분에 붙어있는 창을 적들에게 보이며 전투자세를 취했다. 호지도 앞으로 나서며 비녀의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그런 호지를 보며 우르카가 말했다.
"공주님은 빠지시지요? 공주님은 아바마마의 검인 제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응원만 하시면 됩니다."
장난스런 어조에도 아랑곳않고 호지는 맞받아쳤다.
"이길 자신은 있어?"
우르카는 쓴웃음을 지으며 침묵했다. 하지만 그것은 호지의 물음에 말로 대답한 것 이상의 대답이 되었다.
솔직히 우르카는 적들을 보고 바로 도망칠 생각부터 했다. 그것은 그의 주특기 였으며, 그렇게 몇 십번이나 자신의 목숨을 연명해 왔었다. 하지만 이곳에 펼쳐져 있는 장해들을 보고 이미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상황을 보아하니 육왕을 잡기 위해 펼친 것이 분명한 이곳에서 어떻게 육왕을 탈출시켰는지는, 우르카는 모른다. 단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왕을 만나기는 글렀다는 것. 본 적도, 은혜를 입은 적도 없는 사람에게 무엇이든 해 줄 필요가 없겠지만 그것은 우르카가 믿고 달려왔던 과거조차 부정하는 일이다.
최소한 왕을 위해서라도 케이슨만큼은 길동무로 삼을 필요성이 있었다.
"시작부터 쓰기에는 위험하지만...."
그는 낮게 중얼거리며 코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딱딱한 감촉의 물건을 집었다. 그 순간, 케이슨의 표정이 일변했다. 그것을 눈치챈 아수라왕이 물었다.
"뭔가?"
"아니오... 제가 레플리카들로 진을 짜뒀다고 말씀 드렸잖습니까? 그게, 무참히 파괴되고 있습니다. 숫자는 얼핏 잡아 셋. 그 중 하나는 엄청난 속도로 레플리카들을 섬멸해서, 벌써 그것에게 무너진 레플리카만 해도 500이 넘어갑니다. 아직 거리가 있어서 이곳에 도착하는 것이 늦을 것 같습니다만... 곧 이곳에 당도하겠지요."
팔대간부들은 전부 침음성을 흘렸다.
레플리카는 애초에 그들의 주전력이기도 한 마법생물이었다. 양산이 가능하고 가진 전투능력도 어지간한 마수에 육박한다. 그런데 그것이 무너졌다.
그것도 케이슨이 이상을 느끼자마자 500. 상대방이 범상치 않은 놈이라는 것은 머리가 나쁜 편인 옴팔로스라도 이해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프리아가가 물었다.
"혹시, 불패인가?"
"아니오. 불패였다면 이 사막째로 우리또한 증발했겠지요."
"그거 좋은 소식인데. 그 굉장한 놈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우리의 승리란 소리 아니냐."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우르카는 기쁨에 몸서리치면서 말했다. 케이슨은 우르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맞는 말입니다....만, 우리가 유리하다는 사실은 여전하지요."
그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우르카는 생각했다.
케이슨은 마수만을 취급하는 카타스트로피에서 유일하게 인간이다. 정확히는 마인이라 불리는 존재이지만 마수들에게 있어서는 마인이나 인간이나 거기서 거기다. 하여튼 그런 장소에서 케이슨이 받아들여지고 팔대간부와 동등한 위치가 되었다.
케이슨을 자신이 막고, 앤트로아가 팔대간부 하나. 마지막으로 공주님이 다른 하나를 막는다고 해도 6명이나 남는다.
방법이 없.....
"음? 다른 두명이 도착한 모양이군요. 적인지 아군인지는 모르겠지만."
케이슨이 그렇게 말하며 우르카와 앤트로아가 뚫고 들어온 벽쪽을 쳐다보았다. 우르카도 '그러고보니 세명이라고 했었지'라며 중얼거리곤 자신이 뚫고 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을 바라보기가 무섭게 엄청난 괴성이 빙룡성을 덮쳤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