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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군
밖의 공간은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빙룡 자비나타가 만들어놓은 눈보라의 공간이 강렬한 태양광이 내뿜는 사막의 공간과 잔뜩 마블링 되어 있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요가 이 공간에 침투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 이전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만일 공간과 공간의 사이를 부수고 들어온 것이라면 경계의 구분이 명확하거나 눈보라의 공간 자체가 무너져서 사막에 덩그러니 빙룡성만이 남아있는 기괴한 상황이 연출되어야만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빙룡성째로 공간이 반토막 나던가.
그 셋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케이슨은 얼이 빠진 얼굴로 사막의 붉은색과 눈보라의 파란색이 기분 나쁘게 마블링 된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현상을 입에 올렸다.
"마력장해...."
마력장해. 보통 강한 마력을 지닌 것이 미세하게 내뿜는 마력의 영향이다. 허나 보통 그런 마력장해는 그리 큰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 같은 마법사도 잘 못 느끼는 것이 큰 일을 저지를리가 만무. 보통 일반적인 의미로 마력장해가 일어나는 때는 수많은 마법사들이 집회라도 열었을 경우, 마법사들의 마력장이 얽히고 얽혀서 만들어내는 상황뿐.
하지만 지금 사태는 단 한사람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예언에 나온 사람들 중, 전투 특화자들 사이에서 최약이라 불리는 육왕에 의해서.
하지만, 그는 지금 일어난 상황에 별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는 단지 이곳으로 '걸어왔을테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공간과 공간의 경계는 무너졌고, 빙룡성 안에 존재하는 모두들에게 강력한 존재감을 남기고 있었다.
"광진 육식인건가...!"
광진. 빛처럼 나아간다는 이름 그대로 사용자에게 절대적인 속도와 힘을 부여하는 절세의 비술. 그것의 극을 사용한 사람은 누구도 사용자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사용자의 기백은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말을 피부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케이슨은 죽을 맛이었다. 그에게는(정확히는 이곳에 있는 마수들 전부) 기백인지 뭔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인 것은 그와 '그녀'의 계획. 광진 육식의 '정체'를 알고 있는 그로선 저것이 끝나고 일어날 뒤의 일이 더 두려웠다.
'예언대로라면' 일단은 괜찮겠지만.
"과연! 나, 단심검주 우르카의 왕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하지만 그런 케이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심검주는 기쁨의 환호성만을 올렸다. 케이슨은 그런 우르카에게서 눈을 돌려 침을 삼키며 사막과 눈보라의 영향으로 나타난 물방울 사이에서 나타난 육왕을 바라보았다.
일단, 인간의 모습은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탕이되는 부분 뿐이었다.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솟아오르는 강렬한 섬광. 번개가 아닐까 싶을정도로 번뜩이는 눈동자. 누가 보더라도 그 모습은 이렇게 표현 할 것이다.
'뇌신'.
"...너희들은 누구냐."
그것이 뇌신. 아니, 육왕이 우르카들에게 시선을 던지며 입을 열고 담은 첫마디였다. 우르카는 순간 말을 알아듣지 못 했지만 앤트로아가 가르쳐준 어눌한 한국어를 머릿속으로 상기해내며 성치 않은 몸을 육왕의 앞으로 끌고 가 무릎을 꿇었다.
"아아.... 저의 왕이시여. 전 300년, 300년간 당신을 만나기 위해 세계를 배회한 당신의 세번째 검인.. 챠이 우르카라고 합니다."
우르카는 기쁨으로 전율하고 있었다.
자신의 왕은 약하다고 선대 단심검주들에게 들어왔기 때문에 무력에 대해서는 그다지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강했다.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었지만 막연하게 기뻤다. 그리고 저 눈빛, 카리스마, 당당함. 그 무엇도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지 않은 것이 없었다. 300년 동안 방황하고 걸어온 길들이 아깝지 않은, 그야말로 자신의 이상형.
요는 손을 뻗어 고개 숙인 그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주었다. 그리고 내뿜는 왕의 패기와는 정반대의 상냥함을 담아 말했다.
"고맙다. 300년이나 기다려주어서. 그리고... 내 딸을 지켜주어서."
"아, 아닙니다! 별 말씀을! 저의 모든 것은 폐하를 위해 존재합니다. 명령,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가슴이 북받쳐올라 말을 더듬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폐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우르카는 여세를 몰아 이야기 했다.
"저 뒤의 강철 기계는 요님의 친인이 보냈다는 가디언입니다. 굉장히 강하고 효용성도 좋습니다. 그리고 뒤의 둘은...... 그, 그게.."
앤트로아를 설명할 때까지는 무리가 없었지만 불꽃의 괴물이나 나무줄기의 미라등을 설명하려고 할때는 무리가 따랐다. 아니, 무리 이전에 저것들의 정체를 우르카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왕에게 미움 받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말을 끝 맺기로 했다.
"정체는 모르지만 아군인 것 같..."
말을 미쳐 다 잇기도 전에, 요는 다시 한번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
"착하구나."
혼절. 이렇게까지 기쁨으로 충만한 세상은 우르카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요는 반쯤 넋이 나간 우르카를 옆에 두고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나머지는 누구냐고 묻고 싶지만 일단 아군인 것 같으니까 생략하도록 할까. 중요한 것은...."
요의 시선이 팔대간부를 향했다. 섬뜩한 눈빛에 모두가 몇 발자국이나 물러났다. 케이슨은 뒤로 물러나면서 외쳤다.
"동지여!"
꿈틀, 휘이익!
바닥에 고이 잠들어 있던 백룡이 거대하게 몸을 부풀리며 요가 있는 곳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에도 요는 별 반응 없이 그 모습 바라보았다.
턱.
빠르고 강하게 날아간 것치고는 맥 빠지는 소리와 함께 능파의 돌격이 요의 손에 가로 막혀 무위로 돌아가버렸다. 요는 언뜻 무감정해 보이는 얼굴로 백룡을 벽쪽으로 던져버렸다. 가볍게 날아간 능파는 뱀정도의 크기로 돌아가 바닥에 내팽겨졌다.
그것을 바라본 호지는 지금까지와의 아빠와는 외모뿐만이 아니라 속도 다르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게는 저런 행동을 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미 자신을 바라보는 것조차 거부했었으니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상이 능파였다. 잘은 모르지만 아빠와 같이 있던 사람들 중 가장 아빠가 마음을 터 놓을 수 있었던 대상이 바로 능파. 그런데도 저런 행동을 취했다. 게다가 저 모습은 호지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상태.
호지는 지금 눈 앞에서 천하를 오시할 것만 같은 왕의 기운을 내뿜는 사람이 자신이 그렇게나 따랐던 아빠가 맞는지조차 의심했다.
호지는 살짝, 아주 살짝. 자신의 입에 평소에 그를 부르던 호칭을 담았다.
"아빠....?"
휙하고 요의 고개가 돌아가며 시선이 호지에게로 향했다.
개미 같은 목소리임에도, 인간의 청력으로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였는데도 요은 그것을 듣고 호지에게 고개를 돌린 것이다. 평소의 요라면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소리임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가까이 있는 자신의 말을 듣지 못 한 우르카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아빠와 지금의 아빠의 갭이 무서워진 호지는 요의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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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전투씬이 없군요. 하지만 다음편부터는 나올 겁니다.
자, 시험기간에도 올라오는 저의 글. 비축분에 찬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