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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군
괴물의 아가리처럼 벌려졌던 공간이 입을 다무는 것처럼 사라지는 모습을 요는 멍하니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무언가를 본다기보다는 '생각한다'에 가까운 모습이라 말을 거는 것이 꺼려졌지만 우르카는 망설임 없이 요에게 다가갔다.
우르카는 왕에게 완전히 콩깍지가 씐 건지 입에 찬양의 말을 담았다.
"아~ 폐하의 고뇌하는 모습도 멋있습니다. 이 단심검주 인생의 최고 행운은 당신 같은 분을 폐하로 모시게 됬다는 것이지요."
우르카는 멋집니다를 넘어서 줄줄이 나오는 각종 미사여구를 자신의 머리를 있는데로 짜내서 입에 담고 있었다.
사실, 우르카는 이런 칭찬에 관한 말들은 처음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어지간해서는 혼자서 카타스트로피와 싸웠으니 칭찬을 하고 싶어도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르카는 조금 어색하지만 점수라도 딸 겸해서 신격화하고 있었다. 요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서 우르카를 보고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리 기분이 나빠보이지 않은 것 같아보이는 요에게 우르카는 여세를 몰아 칭찬하기에 전념했다. 그런 우르카에게 손을 뻗어 말을 제지시켰다. 우르카의 시야 끄트머리에 요가 무언가를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을 발견했다.
"에, 폐하. 방금 집어넣으신 것은 무엇인지요?"
"챠이."
담백하게 자신의 말을 무시해버렸지만 우르카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우르카에게는 자신이 만든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감동하고 있는 우르카에게 요는 잔인하게 덧붙였다.
"널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그리고...."
그가 반쯤 남아있는 빙룡성의 벽에 기대면서 주르륵 미끌어져 내렸다. 아까까지 도깨비 불처럼 넘실거리던 패왕의 기세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한명의 평범한 남자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절대의 패왕과 평범한 남자. 그 갭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던 우르카는 자신의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짧은 만남이라 미안하다."
"무슨 소릴...!?"
대답을 촉구하는 것처럼 우르카가 반문했지만 요의 시선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얼음조각들이 어지럽게 쌓인 곳.
능파가 묻혀 있는 곳이다.
"정신이 들었지? 뒤는... 너에게 맡긴다. 주머니에... 적어두었으니까."
그의 말에 능파는 마치 잠 자리에서 막 일어난 것처럼 얼음덩이 사이로 머리를 디밀었다. 그녀는 인간으로 변신해 연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요의 시선은 호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갑작스런 시선을 받은 호지는 몸을 크게 움찔했다.
기세는 사라졌지만, 그녀는 아직도 요가 무서웠다. 적들을 섬멸하던 그 순간의 너무나도 달랐던 모습은 기분 나쁜 액체처럼 머릿속에서 떨어지길 거부했다.
그런 호지에게 요는 짤막하게 말했다.
"난 네가 싫다."
호지는 괴로움으로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무서워도 아빠는 아빠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뜸 싫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괴로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호지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아빠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다. 자신 같은 사람보다는 슈나 요연이 차라리 아빠에게 더 어울린다. 자신과 달리 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빠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혀를 슬며시 깨물었다. 입안에서 퍼져가는 쌉싸래한 고통이 슬픔과 괴로움으로 무너지려는 신체를 각성시켰다.
자신은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쉬워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네가 우리집에 들어온 뒤부터 각종 군것질거리를 사랴, 옷가지를 사랴. 재정상태는 파탄나기 일보직전까지 가고 말았어. 평소에 내가 즐기던 것들을 줄였음에도."
그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이기심에서 빠져나온 것. 그렇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필요도 없었다.
그런 것에 굴하지 않고 자신을 바라봐 주니까, 사랑해주니까, 알면서도 거부 할 수 없었다. 잃고 싶지 않았다.
요는 덧붙였다.
"그런 너에게 재밌는 것을 가르쳐주지."
부드러워진 것만 같은 목소리에 호지가 고개를 들었다. 요는 여느 때와 달리 소악마처럼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유녀석이 언젠가 주었던 물건이지. 굉장히 달고 맛있는 거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을정도로 굉장한 것이란 말이야. 그, 이름이 뭐라더라...."
전혀 고뇌하지 않는 것 같은 얼굴로 고뇌하는 듯한 리액션을 취한 그는 몇 초 뒤에 말을 꺼냈다.
"'장시상천의 단약'...이었던가?"
호지는 요의 말에 전신이 부서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장시상천의 단약. 그것은 자궁의 마음을 잊기 위해 만든 유모의 살점으로 만든 망각의 약이다. 그것으로 자궁의 마음을 잊을 수 있지만 높은 확률로 자신을 키우는 사람에게 살의가 향할 수도 있다는 위험한 물건이기도 했다.
그것의 소재를 아빠는 알고 있었다.
"그게 또 정말 맛있어 가지고 말이지... 내가 죽거든 소유에게 달라고 한번 해봐라. 내가 말했다고 하면 분명히 줄테지."
아빠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 죽어가는 아빠를 향해 아빠라고 부르지도 못 하는 자신을 위해서.
호지는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주는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직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제 전혀 무섭지 않은데도.
요는 자조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더니 단조로운 리듬으로 웃었다.
"아아, 난 역시 이런 건 안 어울려."
그렇게 말한 요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사악한 모습도, 강함도. 어떠한 것들도 보이지 않았다. 남아 있는 것은 호지가 늘 보아왔던 부드러움 뿐.
요는 자신의 시선이 가장 오른편에 있는 챠이를 지나쳐가면서 말했다.
"날 폐하라 불러주어서 고맙다. 아무 것도 해주지 않고 받기만 한 처지라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뭐하지만 말이다."
우르카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지금의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은 폐하를 만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왕에게 받기만 했다.
그의 시선이 능파에게 닿았다.
"고맙다, 능파야. 무능하고 약한 할아버지라, 난 너 밖에 믿을 사람이 없었단다."
능파는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크게 떨었다.
누구라도 알고 있을 것이지만 누구보다도 그가 하는 말을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말하는 것.
그것은 '유언'이다
다시금 그의 목이 돌아가면서 불꽃의 괴물과 나무줄기의 미라에 닿았다.
"당신들은 누군지 짐작하고 있고, 그렇기에 당신들이 싫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없었다면 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끝났을 겁니다."
둘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 하는 요로서는 메마른 미소 밖에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요의 시선이 호지에게 닿았다.
"내가 아까까지 한 말들은 대부분이 사실이지만, 딱 한부분만 바꿀게."
단호하게 말하면서 요는 호지가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이 향한 호지는 부르르 떨면서 뒤로 물러났다.
요는 괴롭게 웃으면서,
"네가 날 싫어하더라도, 무서워하더라도... 넌 내가 사랑하는 딸이다."
들어올린 손이 바닥으로 떨어져가면서 요는 독백했다.
"마지막에 호지의 볼살을 만져보지도 못 한다는 것은 슬픈 걸."
조금 변태적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는 독백이었지만, 그것은 누가 묻더라도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요의 진심이었다.
그의 눈이 스르르 감길 때가 되어서야, 남아있는 생명의 끈을 놓칠쯤이 되어서야 호지는 입을 열 수가 있었다.
"아빠....!"
그것은 다름 아닌 요의 사랑한다는 말 때문이란 것을 호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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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사막편도 막바지군요.
사막편의 끝자락에 드러날 충격적인(예상하신 분들에게는 전혀 아닌) 사실이 밝혀지니 기대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