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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솔직히 나는 내가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내 강한 친우들이 곁에서 날 지켜주기 때문이라던가 하는 나약한 생각 때문이 아닌, 그 때 그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케이슨. 그는 분명히 나를 보고 외쳤다. '광진 육식'이라고. 광진 사용자들로 가득했던 녀석들을 다루고 있었으니 알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이것은 뒤에 나올 말의 이상함을 뒷받침하는 소재에 불과하다.
그 때, 동료들을 이끌고 도망치던 그 순간. 케이슨은 말했다.
"당신과의 다음 재회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광진을 썼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도 육식인데 저런 말을 할리가 없다. 그저 광진 육식의 패널티를 몰랐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녀석이 가지고 있던 쌍검도 이상했다.
징벌포좌의 탄환이 그에게 날아갔을 때, 그건 너무나도 쉽사리 뿌리쳐졌다. 당시 내가 광진 육식을 쓰고 있던 것을 감안하면 징벌포좌의 위력도 강력했을 터. 자비나타를 단번에 박살 내버린 것을 보면 위력이 약해졌다든가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검은 너무나도 쉽게 징벌포좌의 탄환을 쳐냈다.
마치 광진의 힘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그런 이유들로 나는 죽지 않는다는 기묘한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말들을 호지나 능파에게 남긴 것은 나 나름의 보험이었다.
내 생각들은 케이슨의 말이 어디까지나 광진 육식의 패널티를 알고 있다는 것에 한해서 성립하는 것. 만일 아니라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렇기에 유언이나 다름 없는 말을 남겼지만... 필요 없는 모양이었다.
어둠속에서 수많은 빛줄기들이 쏟아졌다. 그 중 가장 크고 강대한 녹색빛이 나를 비추는 느낌이 들자 나는 상체를 세웠다.
"으으으...."
나도 모르게 고통 어린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내 예상대로 살아남기는 한 모양이지만 모든 상처를 전부 처리한 것은 아닌 듯, 뱃속에서 오장과 육부가 서로 손을 맞잡고 탭댄스를 추면서 배 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간신히 살아났는데 못 난 꼴을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눈을 뜨자마자 배를 짓누르는 강력한 압력에 의해 속으로만 비명을 지르면서 날 살해하려한 자를 바라보았다.
호지. 나의 딸이며 근래에 들어서 나를 상당히 싫어하게 된 도깨비다.
"미안해..! 아빠. 나, 아빠 말 잘 듣고 착하게 살께. 군것질거리고 사 달라고 안 하고 때도 안 쓰고, 화도 안 낼께. 미안해, 아빠...!"
아팠지만, 나는 피식하고 웃음만 나왔다.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미성년자지만)의 도량은 그리 좁지 않다. 부모님한테도 맞아본 적이 없는 뺨을 맞았던(하나에게 가장 먼저 맞았지만) 것은 충격이기는 했지만 다시 친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얼마든지 잊어줄 수 있다.
호지는 울먹이면서 덧붙였다.
"좋아해, 사랑해 아빠."
얼굴을 슬며시 붉히며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를 잘 움직이지 않는 팔로 감아올렸다. 옷 위로 느껴지는 체온과 살의 감촉은 부드러워서 한순간 고통을 잊게 해주었다.
"나도 사랑한단다, 나의 딸."
우지직.
이것은 현재 분위기를 표현한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바닥을 지탱하는 얼음들이 강력한 압력을 받아 깨져나갔다.
갑작스런 괴사에 내가 두리번 거리고 있자니 호지가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싫어."
"응?"
"딸은, 싫어. '연인'은.... 안돼?"
호지의 말에 나는 침묵했다.
호지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몇 번이나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아주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호지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자궁의 마음에 의해서 날 좋아하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 타의에 의한 사랑은 나도 호지도 바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요연이나 슈에게도 그런 마음은 폐가 될 터. 애석하지만, 나는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미안하다. 그건 내가 받아들일 수 없...."
"자궁에서 태어났으니까?"
말을 자르고 즉답하는 덕분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호지가 설마 저것을 알고도 멀쩡할리가 없을 터. 그런데도 저렇게 담담하게 입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은....
문득, 시선의 끝에 가볍게 웃고 있는 능파가 보였다.
"후후. 엄마는 이곳에 오기 전, 자궁의 마음은 다 풀었어요."
"그랬나...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언제부터 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근래에 오면서 호지의 감정표현이 더욱 다채로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 나에게 보디블로를 날리기 전, 내가 입원 했을 무렵이리라.
나는 기대하는 눈초리로 올려다보는 호지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호지는 살짝 발버둥치다가 헤헤하는 웃음을 흘리며 마주 껴안았다.
"고맙다. 하지만... 대답은 아직 결정하지 못 했어. 기다려주겠니?"
"응!"
"미안. 그리고 고마워."
내가 그렇게 답하고 호지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고 있자니 챠이가 바닥에다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전형적인 왕따의 표본인 검은 오오라를 망토처럼 두른 그 모습을 보아하니 말을 걸어주면 안될 것 같았다.
나는 부드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챠이."
"옙, 폐하."
신속. 광진을 웃도는 속도로 내 앞에서 기립하고 있는 챠이는 명령을 내려주길 바라는 개처럼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일견 부담스럽기도 한 그 눈빛에 나는 난처한 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깨어나자마자 미안하지만 조금 명령할 것이 있는데, 괜찮을까?"
"물론입니다. 저의 모든 것은 폐하를 위해서. 폐하의 명령이라면 모든지 받들어야죠."
"그래? 그렇다면 말이야..."
시선을 돌려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는 괴물을 바라보았다. 불꽃의 속에서 미세하게 보이는 눈빛이 압도적이다.
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것."
"...가온 말인가요?"
저자의 이름이 가온이었나.
나는 두말 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온을 여기서 쫓아내라. 저자는 여기 있어서 좋을 것이 없는 놈이다."
챠이는 나의 갑작스런 명령에 의아해 했지만 이내 의문 따위는 던져버리고 검을 들어올려 가온의 앞에 섰다. 하지만 가온은 검도 들어올리지 않고 묵묵히 그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것 같아 나는 말했다.
"넌 여기에 설 자격을 버렸다. 본디 이 자리에는 내가 아니라 네가 있어야 했겠지만 말이지. 그것을 버린 것은 너였다는 사실을 잊지마라."
그는 나의 말에 손을 올려 머리에 갖다댔다. 그리곤 휘익하고 잡아당겼다. 그러자 전신을 뒤덮었던 화염과 몸은 마치 손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사라지고 그곳에는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검은 머리의 동양계 남자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가온은 손에 든 나무짚 같은 것으로 만든 '감투'를 지워버리더니,
"그것이 내 의지가 아니었더라해도 말이냐."
"물론이다. 지켜내지 못 할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야..."
나는 처음으로 듣는 가온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듯이 덧붙였다.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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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마디로 모든 직책의 주인이 드러났군요.
모르시겠으면 다음편을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