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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에, 도깨비!? 설마...."
호지의 경악에 나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싸웠을 때의 모습을 빨아들이고 사라졌던 그 감투. 그리고 저 인간의 모습. 확실히 도깨비가 맞고, 호지의 친아버지가 된다.
광진 육식을 펼친 상태일 때는 상당히 많은 일이 가능했는데 내가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인원을 살피는 것이었다. 특히 요주의로 보였던 것은 아수라왕, 시바, 케이슨, 그리고 가온. 이렇게 네명이다.
일단 앞의 세명은 적이니 제쳐두고 가온은 기본적으로 도깨비. 처음 그 모습으로 등장했던 것은 자신이 도깨비라는 것을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일 것이다.
감투라는 것은 애초에 사용자를 보이지 않게 한다는 것이 본 목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부가 능력이고 실재로는 '감투를 사용한 뒤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는 것이 주능력. 자신의 신분도 감출 겸 도와줄 생각으로 그런 모습으로 온 것이리라.
하지만 그런 감투의 능력이지만 서도 가온은 나의 눈을 피하지 못 했다. 생각해보면 팔대간부를 혼자서 쓸어버리고 있었는데 이정도 결과는 당연할 것이다.
나는 호지를 강하게 끌어안으면서,
"그래서, 양육권을 포기하신 아버님께서 이곳에 왜 오셨지? 방금 보았으니 알 것이라 생각하지만, 호지는 내가 좋아서 몸부림치는 것 같은데."
내 말에 확신을 가진 호지는 자신의 친아버지를 향해 싫다는 듯이 으르렁 거렸다. 우르카도 이유를 깨닫고 검을 수평으로 세워 전투자세를 취했다. 그런 우리들은 묵묵히 내려다보던 가온은 담담하게 말했다.
"양육권 따위는 필요 없다. 솔직히 그런 것, 누구에게라도 줄 수 있지."
잔혹한 말이었지만 이곳에서 그 말에 상처 받은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기뻐하는 사람(호지)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치기에는 기이한 상황에 나는 침을 삼켰다.
가온은 지금 분명히 양육권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릴 구해준 이유가 불분명해진다. 그럴 경우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약 두가지.
하나는 자신의 의지로 구한 것이 아닐 경우고 둘째는 호지를 제외한 우리들 중 구해야 할 사람이 있을 경우다. 하지만 후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챠이는 말재주가 어색하다. 척보기에도 사람을 많이 대해 본 것은 아닌 것 같으니 일단 논외. 능파 또한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패스.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은 나인데, 도깨비들은 '은둔'한 종족이니...
생각이 차츰 뒤로 넘어가면서 나는 가온의 목적, '호지의 정체'를 깨닫고는 챠이를 향해 매섭게 외쳤다.
"가온을 날려버려!!!!"
촤아악!
피가 흩뿌려지면서 가온이 멀찍이 날아갔다. 능파는 나의 강한 반응에 당황했는지 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할아버지, 어째서...?"
"도깨비의 종족 특성을 생각해봐라!"
"특성? ....! 설마!?"
단 한마디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깨닫다니, 과연 능파다. 하지만 나에게 감탄할 틈은 없었다. 가온이 일어나서 우리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육왕의 품에 안긴 2대째의 여왕이오. 다른 것에는 관심없다."
대놓고 자신의 목적을 입에 담는 가온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루그로가 말하기를, 여왕은 은둔자들의 지배자라 했다. 도깨비는 은둔자이니 혹시나 했는데, 직접 불다니.
거절의 말을 날리려는 순간, 호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떤 이득이 있지?"
"선대 여왕의 힘을 일부나마 이어받을 수 있고, 지금 네가 가지지 못 한 감투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전세계에 퍼져있는 도깨비들의 절대적인 통솔권을 갖는다."
내가 호지를 질책하기도 전에 날아오는 달콤한 제안에 나는 순간 귀가 확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선대 여왕의 힘과 감투 같은 것은 그리 신경 쓸만한 것이 못 된다. 하지만 가장 뒤에 있는 '도깨비들에 대한 절대적인 통솔권'은 확실히 탐나는 물건이었다.
난 죽을 운명이다. 이번 일로 인해 그 운명을 타파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기는 했지만 케이슨이 했던 말을 보면 이 또한 '예지 된 일'. 운명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도깨비들의 절대적인 통솔권이 있다면 어떨까? 가온 수준만큼은 아니지만 날 되살렸던 녹색 도깨비정도의 실력자가 몇 백명이나 있다면 어떨까?
살아남을 가능성은 충분히 50% 가까이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득 되는 제안에도 나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전처럼 호지가 어디를 가는 것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누구를 따라가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 상대방이 어디서, 언제, 어떻게 돌변할 줄 알고 따라간단 말인가? 요즘 아이들도 사탕 같은 것으로는 꼬셔지지 않는다.
호지는 되물었다.
"얼마나 걸려?"
"길면 석달. 짧으면 한 두 달 정도."
길다. 그정도 시간이라면 호지의 뇌속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가온은 육체파인 것 같으니 그런 류에는 별로인 것 같지만 도깨비들 중에서는 감투를 쓰면 영체가 될 수 있는 놈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
위험하다. 저런 놈과는 더이상 상종할 가치가 없다.
"좋아, 가겠어."
"안된다! 아빠의 이름으로 거절하겠어!"
호지를 거칠게 끌어안았다. 하지만 광진의 패널티로 너덜너덜한 내 몸으로는 품 안에서 나가는 호지의 힘을 이겨낼 수 없었다.
가온을 뒤 따라 가려는 호지의 등을 보면서 외쳤다.
"고호지!!!! 분명 네 입으로 말했을텐데! 내 말을 잘 듣겠다고! 그 말은 거짓말이냐!!"
절규와도 같은 외침에 몸 내부가 뒤틀리면서 입밖으로 피를 토해냈다. 어찌해야 될지 몰라 안절부절하던 챠이는 내가 피를 토하자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 나를 부축했다. 호지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슬쩍,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곤 말했다.
"난, 강해지고 싶어. 그래서.. 아빠를 지켜주고파. 하지만, 지금은 너무 약해. 그러니까 강해져서 올께. 그걸로는... 안되는거야?"
너무나도 애절하게 울리는 호지의 목소리에 일순간 입이 막혀버렸다. 그리고 이내 할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호지의 저 표정을 보아하니 더이상 말려보았자 나만 아플 뿐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인정해주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물론, 조금 끝맺을 건 끝맺은 뒤에.
"알았다, 허락할께. 대신, 일찍 돌아오렴."
호지가 기쁜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를 돌려는 호지에게 손가락을 까딱이면서 내쪽으로 불러들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온 호지의 목덜미를 팔로 감아...
쪽.
입술을 맞췄다. 그것을 깨달은 호지는,
뻐끔뻐끔.
붕어가 되었다. 순식간에 종족의 정체성조차 잃어버린 호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이것으로 너도 슈, 요연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됬다. 기뻐해."
"아아..."
자그마한 탄성. 그에 맞대응하듯, 나는 웃었다.
호지는 여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로 웃어주었다. 그리고 가버리는 호지의 앞에 있는 가온에게 호지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텔레파시를 보냈다.
[만일 호지의 몸에 이상이 있다면 이 지구상에서 도깨비란 종족을 말살시키겠다.]
가온은 말 없이 내게 등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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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이젠입니다.
다음편이면 이제 사막편도 끝나는군요. 등장인물이 여러모로 많은 편이어서 상당히 힘든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쓰고 있는 공습편은 상당히 길어지고 있습니다. 보통은 한 파트가 끝날쯤에는 다음 파트를 쓰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뭐, 여하튼 재밌게 즐겨주세요.
그런데 말입니다, 호지가 여왕이라는 것 짐작 하셨던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