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176화 (176/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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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엑, 우, 으응..."

몇 번의 끊기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며 다리 위에서 몸을 뒤척이던 능파는 이내 움직임을 멈추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 역시 들켰네..."

자신의 행동이 이상했다는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머리가 좋은 능파였으니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할 터.

내 질문에 대답 같은 혼잣말을 내뱉은 능파는 숨을 크게 들이켜 가슴을 키우더니 껴안고 있는 나를 밀어냈다. 평소와 같은 철벽의 마음이 아닌,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뭉글뭉글한 마음을 드러낸 능파는 가볍게 내 목덜미에 키스했다.

"요연이나, 슈. 그리고 엄마까지. 할아버지는 참 인기가 많아서 싫지만.... 그래도, 역시 좋아해요."

평소의 나라면 싫은지 좋은지 하나만 하라고 장난스럽게 소리칠테지만 어린 몸에 걸맞지 않게 요염하게 쳐다보는 능파의 시선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맙소사. 능, 능파가 이런 아이였던가?

"능, 능파야? 저기... 에, 그... 내가, 좋아? 어째서? 난 보시다시피 얼굴은 평범한 수준이고 실력은 근래에 와서는 그럭저럭 되는 모양이지만,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위험한 수준이야. 이런데도 내가 좋아?"

"피. 그렇게치면 슈나 요연도 좋아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까지 사람이 모인거지요."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던 나조차도 뻘쭘해질 것만 같은 능파의 발언에 나는 괜히 머쓱해져서 볼만 긁었다. 능파는 그런 내 손을 잡아채더니 자신의 가슴께로 가져갔다. 내가 설마설마하면서 손의 이동행로를 추적하고 있는데, 돌연간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후후후! 왜요? 가슴에라도 만지게 해줄 줄 알았어요?"

나는 손끝이 능파의 목덜미에 닿아있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낚였다고 소리쳤다.

솔직히 말해 남자로서, 그런 분위기에, 그런 몸짓. 그런 짓을 예상하지 않으면 성적으로 문제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나는 정상이다, 정상.

스스로에게 마인드 컨트롤을 걸며 왠지 모를 분함을 억누르고 있는데 능파는 내 귀에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을 가져왔다.

"그래도 좋아한다는 것은 진짜에요. 절 좋아해준다면 만지게 해줄 수도 있고요."

"으으.. 그, 그것이..."

성욕과 윤리, 인연의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는 소리없이 입술에 닿는 감촉에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대답은 다른 사람들이랑 같은 때에. 지금은 진지한 걸 묻고 싶어요."

분위기를 고조시킨 주제에 적당히 넘겨버리는 것이 마음에 안들었지만(덧붙이자면 순간 자신이 로리콘이 아닌자 고심했다) 능파가 표정을 딱딱하게 나오자 나는 짧게 해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되살아났을 때. 아니, 되살아니기 전에. 부활할거라고 알고 있었죠?"

말을 돌리는 것도 없이 대뜸 목적만을 말하는 능파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나는 케이슨 덕분에 내가 살아날지도 모른다고 짐작했었다. 이유는 짐작가는 구석이 몇 군데가 있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안 거지? 케이슨의 이야기 같은 건 쪽지에 안 써놨는데.

내 생각을 읽은 능파는 어린아이 답지 않은 미소를 지으면서,

"살아날 때 별 감흥이 없었잖아요. 그냥 자다가 일어난 것처럼 행동한 것만 보면 알 수 있죠.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운명은 뒤집힌 것이 아니겠군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할 수 밖에 없었다.

운명은 뒤집을 수 있다. 하지만, 사막에서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운명을 뒤집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게 힘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거의 모두가 전투불능인 상태였고 지원군이 왔었음에도 난 한번 죽었다. 그렇게 위험한 상태에서 부활했는데도 이것은 예정된 일. 정말로 내가 죽을 운명을 마주했을 때는 얼마나 골치아픈 상황일지 짐작되지 않는다.

"역시 케이슨?"

".... 넘겨 짚은 것 같지만, 맞아. 그녀석이야. 내가 무너지기 직전, 그녀석은 나보고 다음 재회를 기대하겠다고 했어. 광진 육식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투로 동료들을 말리던 녀석이 어떻게 내가 되살아날 것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째서 내가 되살아날 것을 알았나.'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치우회에 있는 예언의 마수, '은함 까마귀'는 나의 죽음을 예지했다고 전에 징벌포좌를 만들 때 들었다. 하지만 그 예언에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그런 것들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그저 '죽는다'는 사실만을 내놓고 있었다. 그런데 케이슨은 지금 내가 죽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째서? 그저 감?

"케이슨은 루그로의 말대로 확실히 요주의 인물이네요. 할아버지는 짐작 가는 것이 있나요?"

이것은 절망적인 이야기다. 만일 내 말이 맞다면 케이슨 혼자서 이쪽으로 쳐들어와도 우리는 막지 못 한다.

나는 헛점 투성이의 짐작을 입에 담았다.

"...그녀석은 아마도, '광진 사용자'일 가능성이 높아. 그것도 꽤나 높은 수준... 적어도 나와 동렬의 능력자겠지."

충격을 먹은 듯, 능파가 입을 벌렸다.

확실히 충격일 것이다. 케이슨은 광진을 쓰기 전에도 팔대간부와 비슷한 위압감을 내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광진을 쓰기라도 한다면, 만일 죽을 것을 각오하고 육식을 개방한다면. 누나는 모르겠지만 우리측은 전멸할 것이 불 보듯 뻔 했다.

충격을 밀어낸 능파가 떨리는 음성을 입밖으로 뱉어냈다.

"즈, 증거는...."

"케이슨의 쌍검. 그 검, 순간적이었지만 내 징벌포좌에 담긴 광진을 흡수했어."

그것이 단 하나의 실증이다.

광진은 능력상 스파크를 일으키기는 하지만 진짜 전류가 아니다. 마력을 반발시킨 증거. 그런 것을 일반적인 검이 빨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력을 빨아들이는 검이라 하더래도 광진의 마력은, 육식의 마력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검이란 물건의 특성상 공격적인 물건이다. 간혹 그것은 예로 끝나는 무도이니 하는 개소리도 있기는 하지만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물건으로 탄생한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 검은 광진의 힘을 흡수만 했을 뿐이다. 날카로움을 강화한다던가, 마력적인 무언가를 쏟아낸다던가. 하다못해 축적하지도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의 생각을 전부 입에 올리자 능파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대(代)광진용 무기일 가능성도 있지 않나요?"

"그건 불가. 새로운 갈림길이 또 있어."

새로운 갈림길. 그것은 무효화는 무효화인데 완전한 무효화가 아니라는 것.

그 검은 광진을 완전히 빨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계에 도달해 부서진 것도 아니다. 애초에 전부 못 막을 것을 고려하고 그 정도로 만든 것이라기엔 그 검의 능력이 닿는 범위가 이상하게 되어있다.

상대방의 공격을 검으로 막으면 보통 검날, 검면이다. 그런데 당시 내 눈에 보인 광진흡수의 도달 영역은 '손잡이'까지 미치고 있었다.

설마하니 손으로 잡고 있는 부분까지 막으려고 쓸 생각은 아닐 터. 폼멜부분으로 막아내는 경우도 더러 있겠지만 그 윗부분까지 무효화가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 사실들이 하나로 모여 나오는 대답. 그것은,

"광진 사용자가 쓰는, 자기 억제의 쌍검. 그것이 그 검의 정체. 그저 주워서 썼다면 내 예상도 빗나가겠지만... 그리 날카로워 보이는 검도 아닌데 그건 아닐거야."

"으음... 확실히 그럴 수도 있지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네요."

고민하는 능파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번쩍 들어올렸다. 가벼운 능파가 허공에 떴다.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한 능파를 향해 나는 슬쩍 미소 지었다.

"하지만 알고 있을 법한 사람을 하나, 알고 있지."

"...누구요?"

"내일 학교를 가자. 그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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