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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내가 퇴원한 그 다음날.
나는 능파와 함께 밖으로 나갈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내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으레 요연이 따라붙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적이 나빠서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편이니 그런 이유로 수업을 받을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방학 때 누구든 빠짐없이 보충수업을 들어야하기 때문에 요연은 나를 향해 눈을 글썽이면서 학교를 간 것이다.
나도 가야하기는 했지만 요양이라는 명목 하에 가지 않아도 되니 상관은 없었다.
"차라리 요연이랑 같이 나가도 됬는데..."
목표지점은 요연과 같은 학교이니 아침에 나가려고 했었지만 능파가 '단둘이 걷는 것이 좋아요'라면서 내 팔을 붙잡는 바람에 지금 출발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말해서 아까 능파가 했던 그 말을 들었을 무렵, 요연의 얼굴이 인간적으로 불가능하게 뒤틀려 있었을 때는 미안하지만 조금 웃겼다.
문고리를 잡고 뒤로 돌아보자 하얀색 원피스 위에 검은 색의 가벼운 패딩 하나를 덧 입은 능파는 빙그르르 한바퀴 돌았다.
"어때요? 할아버지와 같이 가기 위해 마련'시킨' 특별한 옷인데."
간단히 말해서 백색의 머리카락과 검은색이 어우러져 상당히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감상이고, 능파가 원하는 답은 다른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 칭찬하는데 말재주가 별로 없는 나로서는 상투적인 말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잘 어울리네."
"피. 뭐, 오늘의 데이트를 봐서 용서해 드릴께요."
분명히 본 목적은 '광진'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을 찾으러 가는 것이지만 능파가 무지 기뻐보이는 터라 가만히 있기로 했다.
문고리를 한바퀴 돌려 밖으로 나가려던 중, 나는 능파의 말 중에서 하나 걸리는 것을 집어냈다.
"그런데 능파야. 옷을 마련시키다니? 누구한테?"
"후후후, 제 부하들이요."
능파의 뒤로 시선이 갔다. 거실의 소파 바닥이라던가 집안을 장식하는 물건들 사이로 마수들이 피곤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하들이라고 할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설마하니 전부 동원했을 줄이야. 아마도 마음에 드는 옷과 안 드는 옷들을 구분해내느라 저런 인원이 쓰였겠지만 조금 안쓰러웠다.
나는 능파에게 보이지 않도록 우리집 세입자들에게 편히 쉬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집밖으로 나왔다. 문 밖에는 피처럼 불길하게 시뻘건 빛을 내고 있는 코트를 입은 남자가 수행원처럼 단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챠이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손을 뻗더니,
"자, 가시지요."
".... 뭐야, 따라올 생각?"
단둘만의 알콩달콩한 시간을 방해 받을 것만 같은 느낌이라도 받았는지 그런 질문을 날린 능파에게 챠이는 뭐가 이상하냐는 듯이 반문했다.
"당연하지. 난 폐하의 세번째 검인 단심검주다. 여린 나의 왕을 지키기 위해 항상 호위하는 것이 나의 임무니까."
능파는 그 말에 반론을 제시하는 것보다 먼저 나를 바라보았다.
'저 멍청한 단심검주를 끌어내!'라는 사심이 능파의 눈 안에 타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챠이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집에 남아주면 안될까? 사적인 거니까 말이야."
본 목적은 일단 케이슨이 광진 사용자인가하는 명제의 참과 거짓을 알기 위해 가는 것이니 사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런 말을 했다간 능파에게 맞아죽을 것 같아서 그냥 능파의 말을 따랐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챠이는 마치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리고는 벽에 기댔다.
"후후후, 폐하께 버림 받다.... 후우우... 역대 단심검주 중 내가 최초일테지."
"아니아니, 그런 소리가 아니라....."
서서히 자신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챠이를 간신히 설득해 집에 모셔두고 집을 온전히 빠져나온 나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악동스럽게 킥킥 웃던 능파는 내 팔을 잡아끌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속 알맹이와는 다르게 완전히 어린아이로 탈바꿈 된 능파는 너무나도 즐겁게 웃었다. 덕분에 살짝 치솟았던 짜증은 금세 가라앉았다.
학교를 향해 가끔씩 군것질도 하면서 걷던 우리는 제법 진지한 화제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학교에 이쪽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소유하고 이사장실 패밀리 뿐이에요. 하지만 소유에게 기대할 것은 없죠."
확실히 소유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이다. 처음 광진을 그에게 보여주었을 때에도 굉장한 기술이라는 것 외에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 분명 가보아도 의미가 없다. 능파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능파의 말은 전제가 잘못됬다.
"학교에 갈뿐이야. 거기 있는 소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무슨... 아하."
이내 내가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깨달은 능파는 감탄하면서 손뼉을 쳤다. 과연 능파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어느 덧 학교 앞까지 다다른 발을 제촉했다. 금세 소유가 있는 이사장실로 들어가자 소유가 인간의 모습을 한체 우리를 맞았다.
"오호. 몸은 괜찮은가? 사막에서의 피로가 다 치유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걸릴텐데. 이번 방학동안 나오지 않아도 좋아."
일반적인 학생인 나로서는 굉장히 기쁜 말. 하지만 케이슨이 광진 사용자인지 아닌지의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찬 지금은 그런 것을 기뻐할 정신적 여유는 없었다.
"아쥴에게 연락되나?"
아쥴 레이키아. 바다에서 살고 있는 강력한 마수이면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귀수산이라는 종족의 현 생존자. 내가 처음 광진의 이름을 듣게 된 것도 그녀의 입을 통해서 들은 것이니 그녀라면 광진에 관해서 그럭저럭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녀가 있는 바다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가볍게 연락이라도 취할 생각으로 이곳에 온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들은 소유는 흐음하고 턱을 끄덕이더니 허공에서 고풍스러운 전화기를 하나 소환하더니 바닥에 내려놓고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화가 걸리자마자 소유는 인사라도 나누려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상처는 괜찮은가 아쥴?"
그 즉시. 수화기에서 굉장한 포효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야 당연하리라. 소유는 어렸을 적, 치우회를 배신함으로서 수많은 마수들의 미움을 샀다. 덕분에 노마수(老魔獸)인 아쥴이 저렇게 비명을 지르면서 싫어하는 것이다.
이윽고 잠잠해 질 때까지 기다린 나는 귀를 부여잡으며 뒹굴거리는 소유를 옆으로 치워놓고는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아쥴?"
"응? 뭐야, 너였나. 내 주소를 모르기 때문에 그 놈을 이용한건가... 나중에 전화번호라도 가르쳐줄테니 저런 놈에게 부탁하지마라."
분명히 나를 향하는 살기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섬뜩해지는 목소리에 나는 난처한 웃음 밖에 내놓을 것이 없었다.
잠시동안 그녀의 푸념을 듣고 있자니 아쥴이 먼저 용건을 물어왔다.
"그런데, 네가 이런 사이임을 모르는 것이 아닐텐데 어째서 나에게 연락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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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아이젠입니다.
능파가 마음을 숨기는 것이 오래갈 것이라 생각하신분들, 뒤통수를 좀 맞으셨겠군요...랄까, 저도 쓰다가 왜 이렇게 빨리 들켰을까하고 생각했었답니다.
그건 그렇고, 시험도 끝난 이 마당에 놀거리가 없습니다.
플스로 놀만한 건 없고, 컴터도 질린 것들 뿐이고. 곧 나온다는 진여신전생 이매진을 기다리고 있기는 지금은 없고.
덕분에 비축분만 쌓일 것 같은 느낌이듭니다.
자, 내일도 삼연참으로 다시 한번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