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9 / 0340 ----------------------------------------------
역사
"영왕... 유운 말인가요?"
"그렇지. 그녀석은 원래 영들이랑 접촉하는 거니까 잘하면 첫번째 광진 사용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녀의 말에 나는 참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했다.
어째서 그것을 생각하지 못 했을까. 아군의 전력은 항상 머릿속에 염두해 두고 행동해서 작전을 만들었을 터이다. 그런데 그 생각을 남에게 들을 때까지 생각하지 못 하디니. 요즘 케이슨과 광진에 대해 파고드느라 신경 쓰지 못 했나보다.
나는 황급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수화기를 부술 것처럼 전화기의 본체에 던지고는 소유의 앞으로 득달 같이 달려갔다.
"소유! 유운, 유운은 어디 있어?"
그녀석의 반이 어딘지 정도는 알고 있지만 지금은 방학 보충 기간이다. 과목에 따라 반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이치.
하지만 소유는 냅다 고개부터 저어 보였다.
"유운은 학교에 없다. 그녀석은 방학 때 학교에 나오지를 않아. 가끔씩 소화를 마중 나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째서? 그녀석은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성실한 녀석이라고. 설마 귀찮다는 이유는 아닐테지."
그녀석이 미래에 대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은 전부터 익히 들어왔다. 만일 귀찮다하더라도 유운은 소화가 있는 학교에서 떨어지려 할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유는 대충 두가지 밖에 남지 않는다.
카타스트로피를 상대하기 위해 포석을 까는 해야만 하는 일과 일단 살아가기 위해 해야하는 일. 이 두가 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쯤, 소유는 입을 열었다.
"아마 집안 소유의 '산'에 있을거다. 이유는 일 때문이겠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한 나는 그를 잠시 삐딱하게 쳐다보았다.
"산? 위산이냐 염산이냐."
".....뫼 산(山)이다."
나도 알고는 있다. 그저 믿기지 않았을 뿐이다.
처음 유운이 백화점에서 자신이 했었던 일을 말할 때, 분명 돈벌이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막연히 지갑사정이 안좋았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설마 산을 가지고 있을정도로 부자였을 줄이야.
산이 돈벌이가 좋아져서 살 수 있는 땅덩이가 아니니 일단 내 생각은 옳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게다가 그 돈벌이는 대체적으로 영험한 산이어야 하는데 그런 땅은 오죽 비쌀까.
돈 문제에서 지금 쫓아갈까, 아니면 오늘 소식을 보내고 내일갈까로 생각하던 것을 바꾼 나는 바닥에 주저 앉아서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 나에게 소유는 팔을 펼쳐보이며,
"지금 당장 보내줄 수는 있는데. 가겠나? 돌아오는거야 유운이 해줄테고."
"그럼 당연히 가야지. 그런데 당신 실력으로 되겠어?"
"...이래뵈도 용이다."
살짝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소유는 허공에 선을 한번 긋더니 선이 만드는 허공의 틈세에 손을 찔러넣어 그 사이를 벌렸다. 공동의 안과는 확실하게 다른 대자연의 냄새가 허공의 틈세로 은은하게 스며들었다.
나는 능파의 손목을 붙잡곤 소유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그 틈세로 몸을 던졌다. 순식간에 이름 모를 산의 어느 곳에 발을 딛은 나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리곤 눈을 감았다.
영험한 기운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은 산의 기운이 아니다. 산은 오히려 평범한 수준. 이 영험함은 정면으로 몇 백미터나 앞에 있는 단 한사람이 내놓는 힘이다.
잘못 온 것은 아니라는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능파가 내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응? 능파야. 빨리가지 않으면 집에 늦는다."
"....할아버지. 지금까지 조금 의심스러운 수준이었지만 아까 모습으로 알았어요."
"뭐, 뭐를?"
어떤 것을 눈치챘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이 오답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물었다.
"할아버지. 어째서 그렇게 재촉하는거죠? 마치, 남은 시간이.... '경각'에 달한 사람처럼...."
능파의 눈에는 지금 내가 스스로의 생명이 닿는 곳이 어디인지 짐작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는 확실히 조급해 하기는 했지만 능파가 입에 담은 이유와는 조금 다르다.
나는 싱긋 웃어보이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일단 걸으면서 이야기할까?"
그렇게 말하고 몇 분 간 침묵을 유지한체 나는 입을 다물었다.
되도록이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 조금 꺼려진 것이다. 하지만 능파가 그런 것을 용납할리가 없을테고 나도 입 다물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사막에 있을 때. 정확히는 팔대간부를 내 눈으로 보았을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 줄 아니? 아, 광진 육식을 쓰고 난 후에 그들을 보았을 때 말이야."
도리도리.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젓는다. 솔직히, 그 때 나의 생각을 예측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리라.
나는 쓰게 입을 열었다.
"이놈들은 강하다... 였지. 그래서 내가 죽인다. 죽이고 죽이고 죽여서, 더이상 일어나지 못 하도록 밟아버린다...! 그거야. 하지만, 그것이 풀리고 난 후에. 아무도 죽이지 못 하고 나서야 깨달았어. 지금까지의 내 생각은 잘못 되었다는걸."
부르르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감아쥐었다.
"나는 약해도, 주변에 있는 나의 친구들은 강하다. 그러니까 나는 싸울 필요없다. 은연 중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 하지만, 그걸론 안돼."
내가 하고 있던 그 착오는 사막에서 호지를 잃을 뻔 해서야, 모두가 죽음에 몰려서야 깨닫고 말았다
.
난 너무 안일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아무리 실력을 기른다고 해도 목숨을 버릴 각오로 광진 육식을 펼치지 않는다면 그다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의 실력만큼은 길러야 했다. 그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너무 늦었다. 하지만, 그 위기는 나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광진 오식이라는 기묘한 식으로 인해.
광진은 사식까지는 별반 차이가 없다. 아니, 전체적인 능력의 상승은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 할 것이지만, 예컨대 '개성'이 없었다.
그저 단순한 강화뿐. 하지만 나는 이번 전투로 광진 오식을 깨우면서 사식까지의 기술은 전부 '기반'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 써보지는 않았지만, 본능적인 무언가로 깨달은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들은 능파는 의외로 꺼리낌 없이 수긍하는 표정을 보였다.
"흐음. 그렇군요."
상당히 의외인 능파의 반응에 나는 도리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를 좋아한다며 고백한 여자들(요연, 호지, 슈, 능파)은 대개 한번씩 내가 싸우는 것에 불만을 토로 했던 적이 있었다(능파는 사막에 가기 전이지만).
특히 내가 죽을 운명을 타고 났다는 그 말을 들은 직후부터. 하지만 능파는 좋아한다고 한 직후라고 할 수 있는 지금 반응을 바꾼 것이다.
의아한 것은 당연하다.
능파는 눈을 가늘게 만들어 웃었다. 비웃음도, 평소의 사악한 웃음도 아닌 보는 사람을 홀리는 것 같은 부드러운 미소였다.
"후후. 할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저도 딱히 반대할 생각은 없어요. 그리고 어쩌면 그쪽이 좋은 일일 수도 있구요. 게다가...."
말꼬리를 흐리면서 나를 슬쩍 올려다보는 능파의 얼굴은 희미하게 붉어져 있었다. 왠지 부끄러워진 나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던졌다. 그것이 마음에 안 드는 듯, 능파가 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내 시선을 자신에게로 맞췄다.
능파는 붉어진 얼굴로....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나보다 강해지면 덮쳐줄지도 모르고요. 후후."
그렇게 말하며 흐릿하게 보이는 산채 앞으로 달려가는 능파를 따라 앞으로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