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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자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마종의 말에 나는 스스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광진 육식을 쓰고 나서부터 깨달은 것이 몇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내가 쓰고 있는 광진의 정체'.
물론, 광진이 이상하다는 것은 아니다. 광진 스스로도 비밀을 품은 마법이기는 하지만 내가 쓰는 광진은 진정한 광진과는 조금 달랐다. 그 이유는 내가 광진을 배운 행위에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광진을 몸에 담았을 때는 호지에 의해 강제적(실재로 내가 받아들였다고는 하지만 신체적으로)으로 부여받은 힘이다. 훈련으로 얻은 힘과는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데다가 진정한 광진보다 위력이 떨어지는 것은 자명했다.
그래서 결국 일식부터 육식까지 나누어지는 본형태로 돌입했다. 아니, 돌입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막에서 내가 광진의 끝자락을 맛보고 나서 내 광진은 여러모로 단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그런 광진의 육식은 진정한 광진에 닿아있던 터라 '살계'의 사용법을 깨달았다. 아마도 진정한 광진에 도달한 댓가로 얻은 것이리라.
그러한 이야기를 입에 담자 마종은 고민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더니, 잠시 뒤에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틀렸다. 아마 네가 정말로 적을 죽이겠다는 살의를 내비쳤기 때문에 살계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일게다. 뇌공이 말하기를...."
기억이 나지 않는 듯, 마종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마종을 보던 검제가 혀를 차면서 마종의 말을 받았다.
"살계는 '인간'의 몸이 만들어내는 싸움 중 가장 효과적인 것... 이었지, 영감. 그녀석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무서울 정도로 몸이 뒤틀리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스스로도 인간의 한계까지 몸을 비틀면서 공격할 수도 있다고 말했으니 말이야."
마치 비웃는 것처럼 검제가 키득거렸다. 광진 육식을 쓰고 난 뒤로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에 반박하지도 못 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버릇없게(나이만 따지자면 우리의 수십배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지만) 행동하는 검제의 머리를 쥐어박은 마종. 그는 손을 허공에 집어넣어 찢어발겼다. 어린애가 잡아 뜯은 것처럼 일정치 못 하게 뜯긴 공간에서 기이한 악세서리가 걸려나왔다.
"그 당시 뇌공이 나에게 준 것이다. 후계자가 나타나면 전해주라고 한 물건이기도 하지. 그냥 마력만 눌러넣은 것에 불과하지만 광진 사용자들에게만 통하는 것이 있을 터. 안 그런가?"
나는 마종이 내미는 악세서리를 받아들고 찬찬히 모습을 살폈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금빛이 나는 반지였다. 마치 번개로 깎아낸 것만 같은 무늬들이 복잡하다기보다 아무렇게 그어져 있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외관만으론 줘도 안 가질 물건이지만, 반지를 쥐고 있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보통이 아니었다.
가벼운 것이 분명한데도 무거운 것을 들고 있다는 착각이 들정도의 '마력량'. 이것은 광진의 강화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나는 마종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뇌공에게 제사라도 하면 된다. 그런데, 광진의 탄생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화두를 돌리는 마종의 말에 잠시 생각해보다가 아쥴이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식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가 아닌가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광진을 단련하고 있는 너라면 알고 있다 생각한다만."
'그것'을 입에 올리는 마종 덕분에 기껏 회피했던 화제들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그건 됬습니다. 솔직히, 이성에 문제가 가는 것만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이야기니까요."
"그렇다. 하지만, 이 시대에서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지."
나와 마종의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던 능파가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광진... 사용자를 '인간이 아니게 만드는 기술'이군요? 아마 마수겠죠?"
딱히 감정의 높낮이가 느껴지지 않는, 그저 단순한 물음이었다. 의외의 반응인지라 조금 놀랐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실은 솔직히 사막에서가 아니라 혈문신을 얻고 훈련에 돌입했을 때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광진이 강해지면 강해질 수록 몸의 일부분이 조금씩 변화해 가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일단 외형적으로는 변한 것이 없는지라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마종은 능파를 보면서 턱을 쓰다듬었다.
"호오. 꼬마 아가씨는 그리 화가 나지 않는 모양이로군."
"어째서 화가 나야 하는거죠? 전 본디 용. 사랑하는 사람의 수명이 늘어난다면 좋을 따름이지요."
생각해보니 우리 집안에서 유일하게 능파만이 인간이상의 수명을 허락받은 존재였다. 인간인 모습으로 자주 있는 터라 잊고 있던 문제 였는데.
능파는 내 시선을 느끼더니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 모습을 보던 검제가 키득거렸다. 비웃음이라는 느낌보다는 순수하게 재밌다는 느낌의 웃음이었다.
"하하핫. 정~~~말로 뇌공이랑은 안 닮았어. 그녀석은 여자에게 그리 인기 있는 녀석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솔직히 말해서 뇌공은 미남이었다구?'라며 키득거리는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악의가 없는 말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리 잘 생기지 못 한 사람을 잘 생긴 사람에게 비교하면 누구라도 화가 난다.
마종이라면 말려주지 않을까 싶어서 돌아보았지만 마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검제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생김새는 확실히 그랬지.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뇌공의 실력이 더 기억에 남는군. 뇌공은 혈루를 제치고 우리 삼신장에 들어올 실력이 되었으니까."
"아, 그것도 그러네. 혈루가 폭주해서 인간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할 때 태어났다면 그녀석이 삼신장의 세번째를 맡았을텐데."
"멍청하군. 만일 그랬다면 세계는 불사에 의해 끝 났을 터."
가만히 듣고만 있자니 이상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잘은 모르지만 혈루는 검제와 마종. 그 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실력에는 이상한 점이 없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의 폭주다.
듣자하니 그들이 따랐던 왕은 남아있었던 모양인데 그런 것을 무시하고 폭주?
눈 앞의 두 사람이 남을 가볍게 무시하는 버릇이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왕을 입에 올릴 때는 상당한 충성심이 묻어나왔다. 그런 사람의 동료이니 혈루란 사람도 충성심이 굉장할 것이다. 그런데도 폭주했다.
이상한 점을 입에 올리려는 순간, 뒤의 문이 드르륵하고 거칠게 옆으로 밀려나면서 처음보는 남자가 뛰어들어왔다.
"폐하! 큰일났습니다!"
아마도 현신한 유령 중 하나인듯, 존대하는 그를 향해 유운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큰일이라고 큰 목소리로 보고할 필요는 없지. 그래서, 무슨 일?"
침을 꿀꺽하고 삼킨 그는 뒷말을 덧붙였다.
"리, 리바이어던이 남해에. 아쥴 레이키아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