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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준비
"요애, 왜 막는 겁니까."
정말로 모르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의 침묵에 요연은 혀를 차면서 내 어깨를 붙잡았다.
"요애.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한번 들었던 요연의 고백이었지만 머리에 피가 솟는 것이 느껴졌다. 머리에 피가 몰린 탓인지 혀끝이 부드럽게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나에 반해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요연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렇기에 전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막에서, 눈앞에서 요애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아십니까?"
재차 날아드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그 때 내가 광진 육식을 발동했던 것은 경솔했다. 그 당시의 나는 진짜 분노로 머리가 완전히 굳어서 해결책이라고는 간부들의 완전섬멸밖에 떠올리지 못 했다, 남아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지 못 했다.
그렇기에 아무말도 못 하고 고개를 젓는 것이 전부였다.
"좀 더, 좀 더 당신의 곁에 있으면서 지키겠다. 그것이 제가 내놓은 생각입니다. 그건..."
나의 눈만을 직시하던 요연의 시선이 내 어깨를 넘어 뒤로 향했다. 시선을 돌리니 슈가 숙연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슈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렇기에 저는 한 가지 행동을 하기로 정했습니다."
다시 내 쪽으로 돌아오는 시선에 나도 그녀를 마주 보았다. 요연의 단호한 눈빛에, 나는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잠시 말하는 것을 주춤하던 요연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의심스러운 것은 모두 배제한다. 이것이 저의 행동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리바이어던도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그것은 유운이 맡았다니 넘어갔지만 세현은 안됩니다."
요연이 여전히 등을 돌리고 있는 세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는 물론이고, 능파, 소유, 호지도 느끼지 못 했던 남자 입니다. 위험성은 높습니다."
확실히 요연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현이 '정말로' 마법사나 그에 준하는 마수 중 하나라면 현재 우리나라를 습격하려 한다는 괴물인 유다정도의 실력자라고 보아도 무방 할 것이다. 아니,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럴 경우의 일이다.
만일 세현이 그냥 일반인이라면? 그건 단순한 살인에 불과하다. 교내에서도 사람이 하나 죽으면 파장이 일 것이고, 친했던 우리에게 사정 정취가 들어올 터. 정부도 휘어잡는다니 상관은 없겠지만 그런 일에 시간을 빼앗길 수는 없다.
나는 팔을 뻗어 요연의 어깨로 넘겨, 그대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적당히 풍만한 감촉이 가슴팍에서 느껴졌다.
"고맙다, 요연. 하지만... 나에게 맡겨줘. 난 너의 왕이니까."
"...칫."
얼굴을 붉히면서 혀를 찬 요연이 내 뒤로 물러났다. 등을 보이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세현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끝났어?"
나는 대답을 하기보다 세현의 몸을 이쪽으로 향하게 했다. 눈가에 살짝 눈물이 고여있고 다리는 조금이지만 후들거리고 있다.
누가보아도 공포에 질린 모습이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다. 요연의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주 부정한 건 아니다. 세현이 적일 거라는 의심은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었다.
"조금 늦었지?"
"아, 아니. 살아남은 것도 감지 덕지지."
요연과 내가 대화로 잠시 시간을 끌었던 탓인지 세현의 목소리에서 공포심이 조금 누그러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세현을 마주 보면서,
"질문하겠어. 넌 정말로 일반인이냐?"
"물론... 이야."
아까 요연이 물었을 때와 같은 일관된 대답에 요연이 검갑에 칼끝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세현이 겁먹고 뒤로 물러났다. 나는 요연에게 그러지 말라는 눈짓을 보내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두번째. 내가 죽는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아, 그건... 문화제 하기 전에 너희가 이사장실 앞에서 하는 소리를 엿들었어."
문화제 전에 있었던 이사장실에서의 대화. 그것은 분명히 내가 소유와 치우회의 의도를 완전히 걷어버렸던 대담이었다.
떠오르는 그 당시의 상황에 나는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 것을 느끼면서 머리를 쳤다.
세현이 이사장실에 귀를 들이민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세현은 우리가 이사장실에서 나왔을 때 슈가 외쳤던 것을 들었을 터. 그렇다면 세현이 내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도, 학교에 소문(슈가 고백했던 것. 아마 친한 련택에게 고백한 것만 말했고, 그대로 전교생에게 퍼졌으리라)이 퍼졌던 것도 모조리 설명이 가능하다.
생각해보면 세현은 단 한번도 '마법'에 대해서 입을 연적이 없었다. 그저 죽지말란 소리와 무리하지 말라는 것 정도.
완전한 오해로 이루어진 지금 상황에 하하하, 하고 감정없는 메마른 목소리만 나왔다. 세현은 내가 깨달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솔직히, 듣기 전에도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어. 동아리 시작 때 너희만 미리 정해진 상태였던데다가 이사장실 패밀리 끼리의 미묘한 유대감이 보였으니까."
세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당연하다는 듯이 끄덕였다.
그건 다 티가 나는 일이었으니 당연할 것이다. 게다가 요연처럼 특이한 사람(복학했고 부하였다고는 하지만 학생에게 '님'이라는 극존칭을 붙이는 것은 만화에서도 버림받은 소재다)이 학교에 들어왔다.
의심하지 않을리가 없다.
"그래서... 어쨌든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는거야?"
"아, 응. 그렇지. 전혀 몰라. 병원에 입원하는게 자주 있는 것 같아서 갱단이라도 된 줄 알았어."
"그래도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알고 있잖아? 그런데, 무섭지는 않았어?"
처음 내 살인을 목격했던 하여의 경우에는 청접륜으로 정신을 백업받고 있었다. 하지만 세현은 아무것도 없는 일반인. 무서워하는 것이 정상이다.
세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넌 우리의 친구잖아? 네가 무엇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네가 함부로 피를 묻힐 녀석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정말 바보잖아...."
정말 바보다. 그런 자신의 생각이 어느 순간에 부서질 줄 알고.
"너도, 바보잖아?"
부정할 수 없는 세현의 말에 하하핫, 하는 웃음을 내놓던 도중, 나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상황을 의도하지는 않았다. 이 상황은 어디까지나 우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 하지만 이런 우연이라도 이용할 방법은 몇 가지나 있었다.
"세현.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
"음... 사람을 죽이는 건 꺼리는데. 간접이든, 직접이든."
이사장실 패밀리가 완전히 살인집단인 걸로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세현의 말에 나는 단호하게 반박했다.
"그런 거 아니야. 소문을 내주었으면 좋겠어."
"...소문? 설마 네가 살인자라던가 하는?"
"에이, 설마. 내가 원하는 소문은 '전쟁이 터진다'는 소문이야."
세현의 얼굴이 굳었다. 마음 넓은 세현이 저렇게까지 굳는 것은 처음 봤기에 사진이라도 찍고 싶었
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용건이 먼저다.
"소문 내용은 '전쟁이 터진다. 하지만 건물에서 나오지만 않는다면 다칠 일은 없다'. 이것이 내가 퍼트려 주었으면 하는 소문이야."
"... 진짜로, 터지는 거야?"
"그래. 그러니까, 퍼트려 줘."
이 소문이 최소한 우리나라 전역에 퍼져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만일 레플리카들이 처들어와도 희생은 최소한으로 할 수 있다.
세현은 그러기 위한 시발점. 전역에 퍼지는 것은 소누에게 맡기면 된다. 그렇게 해서 퍼진 소문으로 이사장실 패밀리와 치우회의 공동 방어전의 배틀필드가 만들어진다.
세현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어떻게든 해볼께."
지금 당장에 소문을 퍼트리러 가려는 듯 발걸음을 옮기는 세현을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하나 더,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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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오오오오!!
곧, 한국에 레플리카 부대가 쏟아지는군요!
구상으로만 해왔던 이장면이 곧 나온다니 감개무량합니다.
열심히 즐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