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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189화 (189/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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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준비

내 말은 다 듣지도 않고 하늘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운천 아저씨를 뒤로하고 집에 돌아오던 중, 나는 요연을 먼저 집으로 보낸 뒤 으슥한 골목길에 들어섰다. 깡패가 드잡이질을 하고 있다면 어울릴 배경이었지만 그곳에는 쓸쓸한 바람만이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나는 그 무기질적인 배경에다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나와, 앤트로아."

휘이이... 철컥.

하늘에서 2미터 크기의 커다란 쇳덩이가 내 뒤로 떨어졌다. 여성의 모습에 은빛의 피부를 가진 그녀가 기계답지 않게 부드러운 몸짓으로 고개를 숙였다.

"주인, 어떻게 아셨습니까."

마치 목석(어쩌면 가장 목석에 가까운 존재다)과 같은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오랫동안 누님을 안 만나기는 했다. 하지만, 나와 누님의 인연은 시간이란 가벼운 것으로 쉽사리 깨질만한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누님이 앤트로아에게 내렸을법한 명령은 모조리다 짐작하고 있으며, 행동 패턴 또한 모두 앞 질러 갈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유일하게 자부심을 갖는 체스로 강력 무쌍한 누님을 이길 수 있었다.

"난 유능하니까. 그런데 앤트로아."

"말씀 하십시오."

그야말로 기계답게 내 질문을 받는 앤트로아에게 나는 주머니에서 매끈한 메모지 한장을 건넸다. 공손하게 양손으로 내가 넘긴 메모지를 받은 앤트로아는 메모지에 적힌 내용을 보지도 않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마 펼쳐보면 안되는 것이리라 직감(기계인 앤트로아에게 있는 기능인지는 모르겠지만)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내가 그곳에 써놓은 '부탁'은 내가 앤트로아에게 할 명령과 거의 비슷한 것. 읽으면 차라리 내가 입을 놀릴 필요가 없어서 편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앤트로아가 들고 있는 메모지를 다시 잡아 펴서 보여주었다. 앤트로아의 눈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더니 메모지에 적힌 글자들이 눈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우와, 놀라운 기술인데?"

"예. 그런데 이 내용, 직접 전해야 되는 건가요."

"아니. 직접 전해야 하는 거 였으면 너보다 적임인 사람은 많아."

앤트로아의 실력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슈가 말하기를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평가 했으니 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강하고 자시고 간에 그것은 위험하다. 중간에 가로 채이기라도 한다면 상당히 괴로울 터. 좀 더 신중해야만 한다.

앤트로아는 톱니바퀴의 기계음을 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전송, 끝났습니다."

"그래? 그럼 돌아가자."

능파가 이 일을 들으면 이런 일에 굳이 먼저 둘을 보내는 신중함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고 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천만에 말씀이다. 요연은 일단 아무래도 상관 없겠지만, 슈는 상당히 위험했다.

슈가 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카타스트로피는 슈에게 접촉해왔다. 겨우 전화를 통한 구두 접촉이었지만 루그로 같은 유능한 마법사를 이용해먹은 그들이 어떻게든 정보망을 뻗을 가능성도 있었다. 혼잣말으로라도 내가 했던 이야기를 입에 올린다면 지금까지 세워뒀던 계획은 모조리 무너진다.

앤트로아를 남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하늘에 높이 띄워두고 집에 들어온 나는 기지개를 한번 피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요즘 여러가지로 생각할게 많아서 그런지 몸이 굳었나. 이럴땐..."

카타스트로피의 공습 계획은 모조리 잡은 상태였고 딱히 세워둔 계획도 없다. 그렇기에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중, 나는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있었던 나의 취미를 기억해내고는 옷을 벗으며 욕실로 들어섰다.

나는 거울 앞에 서며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천만한 시련으로 단단하게 단련된 나의 몸을 바라보았다.

"역시 목욕이 제일이지."

우사를 이용해서 욕탕에 물을 가득(우사를 쓰지 않으면 돈이 나간다. 가뜩이나 식비다 뭐다 해서 어려운데) 채운 후 몸을 욕탕에 뉘였다. 다른 집에 비해 두배가량 넓은 욕탕이 빛을 발했다.

근 일년간 호지가 들어오고 마법에 관여하게 되면서 거의 언급한 적이 없기는 했지만, 나의 취미는 목욕이었다. 입욕제 같은 것을 넣는 것이 내 취미의 극의(?)지만 애석하게도 호지가 온 뒤로 전혀 보충을 해두지 않았으니 그저 미지근한 물로 참아야 했다.

"할아버지에요?"

내가 가만히 물을 즐기고 있으려니 능파가 말을 걸어어오기에 나는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아아. 화장실에 가고 싶은 거라면 안방으로 가도록 해. 너만 좋다면 여기로 들어와서 같이 씻어도 되고."

들어올리는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한 말이었는데, 능파는 도리어 내 얼굴이 화끈해질 말로 받아쳤다.

"그럼 사양않고 들어갈께요."

내가 놀라서 문쪽을 바라보자 능파가 인간상태의 모습이 아닌, 길쭉하도 흰 비늘이 보이는. 즉, 용의 모습으로 둥실둥실 내가 있는 욕조 안으로 들어왔다. 머리만 비죽 내밀고 나를 주시하는 눈빛이 장난스러워졌다.

"어라, 기대했어요?"

"그럴 턱이 있냐!!"

능파는 끽해야 유치원생정도의 몸을 유지한다. 처음에 고백 했을 때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혼란스러웠다지만 지금은 다르다.

무엇보다 나는 로리콘이 아니야.

"할아버지, 느긋하네요."

능파가 일견 진지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기 때문인지 나는 순간 가슴을 부여잡고 말았다. 아니, 정곡을 찔렸다는 표현이 더 좋을 것이다.

난 확실히 능파 말대로 너무나도 느긋한 상태였다. 평소대로라면 유다의 대응책이니 뭐니로 작전을 짜고, 강해지기 위한 훈련을 할 터. 그것을 옆에서 보며 감놔라 배놔라 하던 능파였으니 내 이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나는 손아귀에 물을 모아 능파의 머리에 끼얹었다. 능파가 기분 좋은듯 몸을 떨면서 고개를 처들었다.

"패가 있어. 아주 강력한 패가."

"그렇다고 너무 느긋한 것은 좋지 않아요."

"그렇지."

그것은 나도 동감하는 바. 하지만, 그 패는 절대무적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왜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없겠지만(감성적인 의미로) 그 패에 보내는 나의 신뢰는 신봉이라 해도 될 터.

능파는 내가 무슨 대답을 할지 이미 짐작이라도 한듯, 뱀 같은 몸을 물 안으로 완전히 잠기게 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삐진 것 같은 반응의 능파를 슬쩍 끌어안았다.

첨벙첨벙첨벙.

갑작스런 스킨십에 능파가 물고기처럼 퍼덕거린다.

"능파야, 지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아니?"

능파는 파닥거리던 것을 멈추고 머리를 갸웃했다.

"... 사고회전은 조금 아니고... 상황에 따른 작전의 수정?"

상황은 언제든지 바뀌기 마련. 그렇기에 작전은 때에 따라서 몇 번이나 바꾸어야 한다. 능파는 지금 그 점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진짜는 '직감'이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패... 하지만 적을 완벽히 알 기회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고, 자신(아군)을 알아낼 기회 또한 적어. 그렇기에 그 모든 것을 커버할 직감. 알겠니?"

"...납득이 가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할아버지는 전혀 직감에 의지 하지 않는걸요."

"그야.... 불안하니까. 내 직감만으로 위험하게 할 수는 없잖니. 하지만, 꼭 중요한 순간에는 그것이 필요해.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

직감이 필요한 순간, 내가 움직일 수 없는 순간에는 알아서 처신하란 이야기다.

능파는 담담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았...."

"능파입니까? 잠시 저도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요연의 목소리. 미래의 예상도가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과 동시에 지옥의 문이 열렸다.

"그런데 요애가 언제쯤...."

침묵.

나는 단언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침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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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아이젠입니다.

지금 마지막 침묵은 '이 도둑 고양이'하는 느낌으로 읽어주세요.

전쟁준비가 의외로 길군요. 올리고보니까. 하지만 세편 뒤엔 진짜로 '공습'이 일어나니 기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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