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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준비
내가 일전에 소유를 가루가 될 때까지 갈궜던 도넛모양의 탁자에 이사장실 패밀리의 인원들이 빙 둘러앉았다. 앤트로아와 챠이는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내 뒤에서 왼팔과 오른팔처럼 바른 자세로 서 있었다.
도넛 모양의 원탁의 중심에 시신들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있던 소유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하고는 침중한 얼굴로 말했다.
"리바이어던이 말했던 공습건.... 지금 우리나라로 진격해오고 있는 괴물들로 보아 거짓일 가능성은 사라졌다."
소유가 말을 끝 맺었지만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리바이어던의 말이 거짓일 가능성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 불만스런 표정을 짓는 사람 또한 없었다.
이미 그들도 피부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카타스트로피가 공격해올 것이라는 것을. 막연한 짐작에 불과하지만 우리들은 느끼고 있었다.
가만히 침묵을 지키는 우리들 앞에 종이 한장이 허공에서 팔랑거리면서 내려왔다. 그것에는 여러가지 것들이 적혀 있었다. 나는 거기 있는 것들을 한차례 읽어나갔다.
"숫자... 최소 이백만. 힘은 중하. 속력은 하, 내구력은 상이라... 게다가 이상한 특수 기술 보유? 척보기에도 시간벌이로군."
속력이 낮고 힘도 낮은 것을 보면 그리 강한 적은 아니다. 하지만 내구력이 상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총알받이'로 써먹기 위한 것이란 소리다. 물론 우리들의 공격력을 생각해보면 이정도 내구력은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200만이라는 수를 생각해보면 오래 걸릴 것은 자명한 이치다.
유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것들의 전력은 솔직히 무의미하다고 보아도 될 겁니다. 숫자가 조금 많기는 하지만 현재 공중전이 가능한 제 동료(유령)들이 숫자를 줄여가고 있고 국내에 닿았을 때는 모든 전력이 투입 될 테니까요. 하지만 진정한 위협은...."
유운이 말꼬리를 흐리는 것을 내가 받아 이름을 입에 올렸다.
"칠흑검주 유다. 그렇지?"
내가 되묻자 유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칠흑검주 유다. 팔대간부를 혼자서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다는 삼검주 최강의 사내이며 유다라는 이름 답게 현재 우리를 배반하고 적의 편에 서 있는 자였다. 개인적으로는 유다의 위험성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팔대간부를 워낙 쉽게 작살냈기 때문이다. 광진 육식 때는 도대체 눈에 뵈는 것이 없었으니) 유운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남자다. 대비할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유운이 탁자를 검지 끝으로 주욱 그으면서 말했다.
"유다의 표적은 아마 카타스트로피에게 있어서 최고의 위험요소인 삼왕일겁니다. 하지만 여왕은 이곳에 없고 영왕인 저는 유다라 해도 이길 수 없죠. 아마 일 순위의 척결대상은 육왕인 당신이 될 겁니다. 그러니 분명히 다른 곳을 노리지 않고 이곳으로 곧바로 오겠지요."
"역시나. 그런데 너라면 유다를 이길 수 있어?"
그것은 개인적으로 놀랄만한 일이었다. 유다를 그렇게나 위험하다고 표현하는 녀석이 유다를 이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유운은 난처한듯 볼을 긁적이면서,
"하하, 유다는 이길 수 있습니다. 마종과 검제, 그리고 제 안의 혈루까지 일 대 일이라면 죽을 각오를 하고 말이지요. 하지만 마종과 검제는 공중전력을 전담해야 할 사람들이고 혈루는 자칫 썼다간 죽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소환하는 병사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제가 현계 시킬 수 있는 것은 인간 밖에 없으니까요."
마종과 검제. 언젠가 유운의 사업장(집이 아니었다)에서 본 적이 있었던 강력한 노괴들이었다. 왠지 어렴풋이 이해가 갔다.
나는 턱끝을 손끝으로 매만지면서 물었다.
"마종과 검제, 둘 중 하나를 빼낼 수는 없나?"
"불가합니다. 공중 전력의 팔할은 그 둘이 맡아야 할 정돕니다. 그들을 뺐다간 국내의 사람들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죠."
"그래? 그렇다면...."
지금까지 계속 생각해왔던 유다의 대응책을 쓸 수 밖에 없나.
한숨을 폐안에서부터 끌어모아 한번에 공중을 향해 뱉어냈다. 친구들은 내가 큰 것을 말하려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유다를 막을 사람을 배정하겠다. 일단, 요연."
옆에 앉아있던 요연이 눈을 빛냈다. 나는 시선을 돌려 뒤의 두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슈, 챠이, 앤트로아. 너희들이 전력을 다해 유다의 발목을 붙잡는다. 죽을 것 같다면 도망쳐도 좋아."
그 말을 끝으로 내가 생각한 작전을 끝 맺자 소유가 태클을 걸었다. 팔대간부를 모조리 상대하기는 커녕 반대로 몰살될 인원을 보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반대다. 너는 유다의 위험성을 제대로 모르고 있어."
"그건 네 판단이고."
태클을 걸어오는 소유의 말을 챠이가 성의 없이 잘라내고는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쳤다.
"왕의 충실한 검인 나, 챠이는 왕의 명이라면 모든지 행할 준비가 되어있지. 그리고, 왕 또한 생각없이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은 아니야. 못 들은 것 같으니 내가 다시 말해줄까? 폐하는 분명히 '발목을 붙잡아'라고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의 논지를 정확하게 집어낸 챠이를 향해 나는 가볍게 박수를 쳤다. 챠이는 겨우 내 박수소리 몇번에 혼절하려는 것처럼 몸을 비틀었다. 이미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챠이는 내버려둔체 나는 입을 열었다.
"맞아. 지금 내가 말했던 사람들은 시간만 벌어주면 돼. 레플리카들이 어느정도 줄어들었다 싶으면 모조리 모을테니까."
"하지만 위험성이 크다."
소유의 당연한 반론. 그 점은 나도 알고 있었다.
"알아. 그렇기에 우리들의 최강자들만 구성해서 유다에게 붙여놓은거야. 이 이상의 반론은 불허 하겠어. 이것으로 결정을 낼테니까."
소유가 마치 꿰뚫기라도 할 것 같은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았지만 나는 팔대간부 중 일곱명과 외주 케이슨을 한꺼번에 대적한 적이 있었다. 소유의 시선쯤은 이제 가볍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유운, 후인계획에 참여한 사람들의 전력은 어떻게 쓸 셈이야?"
지금 우리가 있는 수상고 말고도 후인계획에 쓰이는 조직, 단체, 개인은 상당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암중으로 조종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 최강의 정보력과 전투력을 가진 유운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유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골고루 퍼져 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전력이 조금 다른 건 제가 소환한 정병들의 수를 조금씩 조정하면서 이용할 생각이죠."
"우리가 싸울장소의 후인들은?"
"전경들입니다."
전경. 보통 시위하는 것을 막는 경찰들을 말한다. 짤막하고 거무튀튀한 진압봉과 인간 하나를 충분히 가릴 크기의 거대한 사각방패를 들은 그들의 전력은 알 수 없지만 의외로 쓸만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뭐, 좋아. 소유, 여기서 토론은 끝내. 어차피 우리들은 각자의 장소에서 분전해야하니까 사소한 일에 에너지를 소비할 여유는 없어. 지금부터는 내가 생각해두었던 것을 이야기 할테니까."
소유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임으로서 이 자리의 모두는 사뭇 긴장하면서 내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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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이걸로 드디어 전쟁준비편이 끝났습니다. 드디어 다음편부터 제대로 된 전쟁이로군요.
진실된 전쟁은 피부로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