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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바라본 주인공
"잠시만."
그 때, 마치 구원의 동아줄처럼 누님이 모두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능파는 자신의 계획이 도중하차 당한 것이 기분 나쁜 듯, 눈썹을 가운데로 모았다. 누님도 능파의 시선은 견디기 어려운지 난처하게 웃으면서 손을 저어보였다.
"아니 아니, 너희들이 말하고 싶은 바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몰아붙이면 동생도 힘들잖아."
"...하지만 고모 할머니가 해주시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네요."
능파가 입에 담는 명백한 거절의 말. 모두 말은 하지 않지만 긍정의 빛을 띄우고 있었다. 나의 얼굴에는 절망의 빛이 띄고 있으리라.
누님은 손가락을 잘난 듯이 흔들어보인다.
"후후, 내가 설마 그럴라구. 내가 하려는 것은 조금 더 원론적인 거야."
원론적인 것이라는 말에 나는 뇌리를 불연 듯 스쳐지나가는 듯한 미래 예상도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미래 예상도는 나로선 최악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슴팍을 부여잡고 심호흡을 한 뒤, 마음을 안정시켰다.
지금 만일 내 생각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난 파멸이다. 하지만, 누님은 그 거대한 힘의 특성상 마력의 섬세한 행위가 불가능하다. 고로 내가 생각해낸 미래 예상도는 완벽한 허구. 일어날 일이 없는 실현 가능성 제로의 미래다. 너무나도 불길한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지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없을 것이다.
누님은 흔들던 손가락을 멈추더니, 식탁을 치우고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내 관자놀이를 가볍게 찔렀다. 눌렀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요 머릿속에 있는 너희들의 애정도를 알아보면 되는 거지."
내 불안감을 직격하는 누님의 한마디. 그것과 동시에 내 시야를 푸른 빛이 휘감았다.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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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야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요를 안아올려 소파에 눕혔다. 강제로 잠든 것임에도 표정은 구름에 감싸인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이걸로 일단락."
하고 말하며 손을 터는 소야를 향해 능파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마법을 쓸 수 있죠? 분명히 과한 마력량으로 인해 마법이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능파의 말에 그것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요연이 선뜻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긍정했다.
소야의 마력은 인간. 아니, 마수의 한계조차도 가볍게 무시하는 양이다. 측정이 되지도 않는 무한한 힘. 그로 인해 그녀는 마법을 쓰지 못 했다. 신체적인 결함이 아니라 그야말로 '마법이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스승이자 요연의 스승이기도 한 공간의 대마법사는 트윈홀이라는 인륜을 어기는 비술로 그녀에게 힘을 전수했다.
거기까지 떠올린 능파는 희미하게 한 단서를 잡은 것 같았다.
"... 공간마법?"
혼잣말이었지만 소야는 장난끼 어린 얼굴로 대답했다.
"정답. 잘 아는데?"
비현실적인 그녀의 말에 능파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불패의 존재가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더욱 희미해졌다.
소야가 행한 일은 간단히 말해서 여분의 마력을 공간마법으로 전이 시켜 마법이 견뎌낼만큼으로 제한 했다는 이야기다. 여분의 마력이 어디로 갔는지는 그녀가 알바 아니고.
"그런 고로, 요의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너희의 애정도 순위를 발표하겠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모두가 소야의 앞에 무릎을 꿇고 냉철한 얼굴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지금 소야가 입에 담으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때로 핵폭탄과도 같은 것. 묵직한 분위기는 필수다.
"자~ 공개한.....어라?"
발표하려던 소야가 고개를 갸웃하자 호지가 불안불안한 얼굴로 되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설마 잘못 됬다던가..."
소야가 쓴 기술은 필시 뇌에 간섭하는 기술일 것이 뻔 했다. 그렇다면 가장 위협적인 것은 뇌에 무리가 가서 폐인이 되는 것. 하지만 그 가능성을 소야는 부정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이것 참, 명백한 조작이잖아."
소야가 혼자서 중얼거리더니, '일단은 발표한다'고 말하면서 반론을 제지했다.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솟은 순간, 입을 열었다.
"동렬 1위. 슈, 능파, 호지, 요연. 이상 끝."
""""뭐야, 그게에에에에에에~~~~~~!?""""
기절해버린 요가 다시 깨어날 것만 같은 이구동성의 통렬한 외침. 소야가 '풋'하고 참지 못하는 것을 뱉어내는 것처럼 웃었다.
"큭큭큭.... 아니, 동생녀석이 잠들 때 뭔가 이상한 걸 쓴다 싶더니 머릿속의 기억파편을 하나 하나 끌어모아서 평가를 깎아내리고 올리고 하면서 순위를 맞춘 모양이야."
참기 힘든지 또 다시 웃어버리는 소야를 향해 능파가 묻는다.
"그걸 알았다면 본래 순위를 아는 것도 가능하겠죠?"
"아? 아, 그렇지. 이미 기억해두고 있어."
뒤로 뒀던 중심을 앞으로 끌어내면서 소야가 다시 목을 가다듬었다.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안 그녀들은 몸을 정갈히(?)하고 기다렸다.
긴장된 순간, 소야는 입을 열었다.
"일단 애정도를 기점으로 1위.... 슈드나이 랑페르제."
"에, 에에에? 저, 정말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되묻는 슈에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틀림없이 네가 1위. 하지만, 다른 녀석들과 별 차이 없으니까 노력하는 것이 좋을거다. 이만한 양이면 그냥 단 둘이 있는 것만으로도 뒤집힐테니까..... 라고 말하지만 듣지 않는군, 저녀석. 뭐,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헤롱헤롱 거리는 슈를 구석으로 치워버린 호지가 그야말로 도깨비 같은 얼굴로 소야를 직시했다. 소야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두번째 사람을 불렀다.
"2위는... 호지, 너다. 그러고 보니 이건 거의 동생이랑 만난 순서로군. 부르는 의미가 없겠어."
호지가 기뻐하는 것을 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한 소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에 요연은 시무룩해졌다.
그녀는 가장 요와 늦게 만났다. 게다가 처음에 만났을때도 싸웠고, 그 다음에 루그로전 이후로도 싸웠다. 4위여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기대를 안하고 있던 요연을 향해 소야는 무심하게 말했다.
"요연 3위, 능파 4위. 이것으로 끝."
"에엑, 에엑, 에엑!!! 잠깐만요, 어째서 제가 4위죠? 분명히 만난 순서라고....!"
"'거의'라는 수식어가 빠졌어."
우욱, 하고 입을 다무는 능파를 소야는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다시 한번 목을 고르면서,
"신뢰도의 독보적 1위는 능파. 그걸로 일단 만족하는 것이 어때? 그걸 연애도로 바꾸는 건 당사자의 몫이고."
능파는 못 마땅한 듯,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신뢰도 1위라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듯, 얼굴이 봉숭아를 물들인 것처럼 붉게 변해 있었다.
호지는 뾰루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1위랑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니, 아빠도 너무해. 우리들은 무지 진심인데."
호지의 말에 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조했다. 소야는 그런 그녀들을 보다가 뒤로 고개를 젖히면서 탄식하듯이 말했다.
"뭐... 그건 어쩔 수 없달까, 이해해 줘. 동생으로선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을테니까."
이해할 수 없는 소야의 말에 그녀들은 한몸인 것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진의를 물어오는 그녀들의 눈빛에 소야는 일순, 당황하는건가 싶더니 머리를 벅벅 긁었다.
"간단히 말하면 차별 받아서랄까.... 아아, 이런 이야기는 하기 싫었는데."
"어라, 부끄러운 이야기인가요?"
쿡쿡, 하고 웃는 능파의 의도는 분명히 농담이었지만 소야는 너무나도 슬프게 웃어보였다.
"괴로운 이야기야."
슈가 소야의 손을 잡아보이면서 시선을 마주쳤다. 소야의 감정을 받아들인 것처럼 슈가 울먹거렸다. 소야는 마주 잡은 두손을 부드럽게 감싸쥐면서 울먹이는 슈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댔다. 따듯한 체온이 대화처럼 소통되는 느낌이 들었다.
슈와 떨어진 소야는 평소처럼 낙천적인 얼굴을 지어보였다.
"기왕 이렇게 된 것, 모조리 이야기해 줄까나."
소야는 그렇게 먼저 말을 꺼내더니 옆으로 치워둔 앉은뱅이 식탁에서 물한잔을 들어올려 단숨에 들이키곤 말을 꺼냈다.
"동생녀석이 어렸을 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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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였어.... 라고 쓰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