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214화 (214/340)

0214 / 0340 ----------------------------------------------

데이트 계획, 슈드나이

능파가 데이트 계획을 내놓은 그 다음날, 나는 그녀들의 계획에 떠밀려 슈와 함께 거리로 데이트를 위해 나왔다. 슈는 내 옆에서 팔짱을 낀체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 웃음을 입가에서 지우지 않고 있었다.

순위 문제로 이런저런 말들이 많기는 했지만 '그런 것보다 어떻게 꼬실지를 생각해'라는 누님의 말로 일단락 되어 우리는 쉽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밖에 있던 기자들도 며칠 동안 챠이의 살기에 주눅이 든 건지 우리가 나올쯤에는 아주 없었다. 전처럼 챠이가 따라오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이 나라의 평온한(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지만 챠이의 기준으로) 분위기에 녹아든 것인지, 아니면 슈 때문인지 쉽게 우리 둘만 내보내 주었다.

밖으로 나와 간만에 느끼는 도시의 바람을 맞으며 답지 않게 내 옆에 찰싹 붙은 슈를 보았다. 몸의 윤곽을 드러내는 푸른색 청바지와 흰색 티셔츠는 뭇 남성을 흥분시키는 힘이 있었다.

"저, 저기 슈. 그렇게 붙으면.... 닿는데."

내 말에 슈는 기쁨으로 붉게 물든 얼굴에 더욱 피가 몰린듯, 시뻘겋게 타올랐다. 조금만 더 붉어지면 터질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슈는 내 팔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없는 기회니까... 그.. 괜찮아."

뭐가 괜찮은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우물거리는 슈가 귀여워서 가볍게 볼에 입을 맞췄다.

요즘 따라 하도 많이 해서 신선한 느낌은 없지만, 그것에 담긴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보다 더욱 허물 없어졌다는 표현이 어울리리라.

슈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내 팔쪽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덕분에 사람(정확히는 남성)의 정신을 헤집어놓는 부드러운 감촉이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하늘을 보면서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 그런데 일단 데이트잖아?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어?"

"에?"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난처해져서 시선을 막연히 허공으로 던졌다.

생각해보면, 능파는 이것을 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슈는 물론이고 호지, 요연은 계획(전투든 뭐든)에 대해서는 100% 나에게 맡겨두는데에 반해, 능파는 나와는 다른 형태의 계획을 여러번 짜본 적이 있다. 간단한 데이트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능파가 그런 생각으로 이번 계획을 작성했을리는 없었다.

"흐음.... 영화 뭐 보고 싶은 거 있어?"

"에, 그, 요가 보고 싶은 것이라면...."

".....그럼 가고 싶은 곳은?"

"어, 어디든 좋은데..."

참담하기까지 한 슈의 반응에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렇게까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게 하다니 나는 도대체 얼마나 슈를 방치한거냐. 아니, 그렇다기보다 더욱 사랑 받는다는건가?

갑자기 애처로워져서 슈가 잡고 있는 팔을 돌려 내 가슴으로 끌어들였다. 갑작스레 품에 안긴 슈는 놀란 눈으로 올려봤지만 이내 눈을 감고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뭐랄까, 어린애 같아. 하지만 그건 그거고.

"슈."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던 슈의 얼굴이 들어올려졌다. 백인 특유의 하얀 피부라 그런지 붉게 상기된 것이 더욱 두드러졌다.

"유원지 가자."

"으, 응."

연애, 여자친구를 사귄 경험 전무. 여자와의 인연이라곤 소꿉친구인 운과 누님, 어머니 밖에 없던 나는 결국 대표적인 데이트 코스인 유원지로 목적지를 잡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 팔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슈를 데리고 나는 가장 가까운 유원지에 도착했다. 가까운 곳이기는 하지만 어지간한 곳에 비해 놀이기구도 괜찮은 편이고, 무엇보다도 돈이 많이 들지 않는 것이 장점인 곳이었다.

표를 구하고 안으로 들어선 나와 슈는, 유원지에 입장했다. 그것과 동시에 나는 만리장성과 같은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다.

유원지에 오기는 했지만, 뭘해야 될지를 모르겠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놀이기구를 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천만에 말씀이다.

나는 근접 전투 쪽이 특기로, 상당히 격한 움직임을 보이며 싸우고 슈는 만능. 근접, 원거리를 모두 포함해서 싸운다. 그렇다보니 놀이기구의 특성인 '스릴'에 대해서는 상당히. 아니, 완전히 무감각하다

보통 롤러코스터를 타는 건 그에 걸맞는 스릴과 속도감을 즐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롤러코스터 이상의 속도를 자신의 발로 해낼 수 있다면?

스스로의 한심함에 한숨을 내뱉었다. 슈가 내 팔을 더욱 세게 끌어당겼다.

"괜찮아. 요가 이끌어준 곳이니까, 분명히 재밌을거야."

그렇게 말한 슈는 내 팔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자연스레 중심이 낮춰진 나의 얼굴에 슈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갑작스레 당한 것이라 당황했지만, 나는 슈의 허리를 끌어당겨 더욱 키스를 지속시켰다.

남들이봐도, 상관없다. 볼테면 봐라. 부러움에 떨어라. 어차피 이러라고 있는 장소가 아니냐 유원지는(절대 아님).

"아아아아아아아앗!!!!!"

키스만큼이나 갑작스러운 비명이 울려퍼졌다. 반사적으로 풍백을 일으킨 나는 그 목소리가 우리를 향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슈에게서 입술을 땠다.

"아...."

"이 다음은 나중에. 지금은 도망치자."

아쉬운 것처럼 인상을 쓰는 슈의 허릴 잡고 그대로 도망칠 준비를 했다.

여기서 잡히면 성가셔 지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그냥 TV에 출연한 것이라면 상관없다.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와 슈는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위협을 물리친 주역이니 내일 아침이면 신문 일면에 나와 슈의 이야기가 떠 있을지도 모른다.

"잠깐 잠깐! 우리야!"

누군가의 말에 나는 자세를 풀고 그쪽을 향해 슬쩍 시선을 주었다. 생각해보니 어렴풋이 들어본 것도 같은 목소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들의 정체는 슈의 입에서 나왔다.

"에, 얘들아...?"

우리 학교 같은 반의 여학생 다섯명. 슈에 관한 일로 뻔질나게 나를 포박해서 심문했던 그 아이들이었다.

-----------------------------------------

소리를 질렀던 탓에 시선이 모인 터라 우리는 여학우들의 손에 이끌려 유원지 내의 작은 카페로 들어섰다. 그곳의 사람 눈이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희는 어째서 여기에 왔어? 주말도 아니고 개교 기념일도 아닐텐데."

"아, 그거? 너희가 벌인 일 때문에 학교에서 여러가지로 처리할 일이 있는 모양이야. 모름지기 자신들의 학생이 그렇게 모습을 보였는데."

여학우의 대답에 나는 이마를 쳤다.

우리란 존재가 있으니 학교도 며칠 간은 휴식기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길어봤자 사흘. 소유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게다가 컬러나이츠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것 같으니 선생님도 일하시겠지. 다른 선생님에게 우리 동아리에서 뭘 가르친 거냐고 추궁할지도.

"그런데 슈."

"으, 응!?"

과도한 슈의 반응에 학우 중 한명이 슈의 옆자리로 돌아와 꼬옥 끌어안았다. 괴로운지 슈가 발버둥쳤다.

"아우 귀여워라. 저런 녀석이랑 결국 사귀어 버리다니, 우리가 돕기는 했지만 역시 마음에 안들어."

하고, 찌릿 날 쳐다본다.

미안하다, 이런 놈이라. 그런데 아까의 키스로 결국 우리가 사귀는 걸로 생각하는 모양인가? 뭐, 슈가 쓸데없는 소리만 안 한다면....

"에, 아직 사귀는 건 아닌데."

했잖아!?

"....뭐?"

마치 공명이 아닐까 싶은 그녀들의 물음에 나는 등줄기로 고드름이 지나가는 것과 같은 오한을 느꼈다.

잠시 후, 어떻게 된 것인지 슈가 모조리 불어버렸다. 여학우들은 마음에 안든다는 얼굴로 나를 쏘아봤다.

"사귀지도 않으면서 키스까지 하셨다?"

"죄, 죄송합니다. 죽이지만 말아주세요."

"죽어도 싸다! 이 놈, 그 유다란 녀석에게 칼침을 맞아봤어야 해!"

그렇게 말한 여학우는 스스로의 말에 침묵했다. 나 또한 장난스러운 반응을 지웠다. 옆에 있던 슈도 약간이지만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런데, 진짜 그 일은 뭐가 어떻게 된거야?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고, 용이 지켜주고... 뭐가 뭔지 모르겠어."

병사들이 촬영에 신경을 써줬다는 것 같던데 그것은 전투에 대해서일 뿐인 모양이다. 하긴, 찍는 사람도 긴장해서 제대로 묻지도 못 했겠지.

나는 턱끝을 쓰다듬으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어차피 전세계에 까발려진거, 감출 요량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을 말살시키려는 괴물들과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이랄까."

마치 영화 포스터에나 있을 법한 문구지만, 이것만큼 정확하게 이 상황을 요약한 말은 이 세상에 없었다.

여학우는 잠시 얼빠진 얼굴로 날 보다가 되물었다.

"진짜?"

"응. 세분화해서 말하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는 이야기지만, 대략 그런거야."

"그럼 그녀석들이랑 계속 싸워야 하는 것 아니야?"

"하하하. 우리에게도 휴식기는 필요하니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일이니."

여학우는 다시 한번 침묵했다. 역시 이런 일에 면역이 없는 아이에게 할말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하자니, 내 이마에 손가락을 튕겼다.

딱.

딱히 아프지는 않은 일격이지만, 각성하기에는 적당했다.

"멍청이. 그런 소리하면 슈가 울거야."

나는 슈가 내 옆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황급히 끌어안으니까 슈의 흐느낌이 조금씩 커졌다. 그런 모습을 보던 여학우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마지막이라고까지 말했던 탓일까,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느낌이 묻어나왔다.

"잠깐."

말로 그녀들을 붙잡자 여학우들의 시선이 이쪽에 닿았다.

"질문 하나 더. 되겠지?"

"물론."

대답을 듣기가 무섭게 나는 지금까지, 우물거렸던 질문을 입 밖으로 냈다.

"우리가... 무섭지 않아?"

그녀들은 잠시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던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우리에게 시선을 준 그녀들은 평소처럼 웃어보였다.

"전혀."

-------------------------------------------------------

그녀들이 떠나가고, 슈와의 유원지행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놀이기구는 재미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감각이 확장된 상태에서 느끼는 것이라 약했을때와는 다른 의미로 의외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유원지를 빠져나오면서 슈가 어린애처럼 즐거운 얼굴로 앞서 나갔다. 마치 술취한 사람처럼 빙글빙글 돌기도 하는 그녀의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요, 기억해? 처음 만났을 때 말이야."

"아아, 기억하지."

누님을 상대로 불패전적을 쌓아올리던 나에게 패배의 굴욕을 먹여줬던 그 괴물 같은 여자에게 이를 갈던 당시를 말함이다. 그 때 슈는 반지를 떨궜다.

"그때 요가 나에게 했던 말... 기억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앞에서 반지를 떨어트려서 당황하는 슈에게 무언가를 말했던 것 같은 기분은 든다. 하지만 그리 중요한 말을 한 것은 아닌지 기억에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슈는 웃었다.

"헤헷. 기억 못 해도 괜찮아. 지금 기억나게 해줄께. sorry, thank you등등.... 기억났어?"

기억났다. 아마 그때는 상당히 당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체스를 하느라 외국인을 만날 일은 많았지만 대화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 ring이라고 말하며 말을 걸어올때는 내가 아는 영어를 총동원했다. 아마 거기에는....

"I love you. 그 말도 했었어. 당황해서 한 말이겠지만.... 지금의 난 그걸 절대로 잊지 않아."

슈는 다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곤 마주봤다. 평소의 슈지만, 강철 같은 의지가 담긴 눈빛이 느껴졌다.

그것이 단지 당황했기 때문에 한 말이더라도, 보답받지 못할 마음이더라도 슈는 날 위해서 싸워줄 것이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반드시, 지켜줄께."

슈는 자신에게 다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

빈곤합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개입마저 있어요.

다른 삼녀(女)들은 그렇지 않은데.

하지만 이렇게 빈곤해야 다른 녀석들이 억울하지 않을 겁니다. 나중에 슈는 따로 파트가 나오니까.

그리고, 역습편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거의 방어편에 가까워지고 있군요.

솔직히 제대로 표현을 했는지 불안불안합니다.

그래도 즐겨주시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