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5 / 0340 ----------------------------------------------
데이트 계획, 호지
능파가 계획한 데이트 계획의 그 두번째 날. 나는 누님이 내 뇌에서 뽑아낸 호감도 수치를 이용해 만든 순위로 다음번 여성과 데이트를 준비했다.
"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저번에 날 꼬시려고 했던 속옷(특별편 참조)을 들었다가 던지고, 그 외에도 괜찮다 싶은 옷을 집고 던진다. 나와 갈 데이트에는 평소보다도 좋은 옷을 고르려는 모양이리라. 이해는 하지만 저것은 조금 심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어제 슈와의 데이트가 끝나고 돌아왔을때 호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전날에 능파가 억지로나마 납득시켜 사과시킨 후로는 어느정도 여유가 생긴 것이다.....라고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버렸다. 호지는 그냥 이를 갈고 있을 뿐이었다. 덕분에 지금 데이트를 나가는 당일 날 3시간에 걸쳐 옷 고르는 것을 구경만하고 있는 실정. 솔직히, 아빠고 뭐고 간에 짜증이 활화산처럼 치솟는 걸 느낀다.
"호지야. 빨리 나오지 않으면 데이트 시간이 줄어버린다."
"아, 그렇지만 조금만...."
대답을 듣자니 알고는 있는 모양이었다. 호지는 계속 우물쭈물 거리면서 옷들을 마구마구 헤집어놓았다. 나중에 정리하는 건 바로 나이기에 또 다른 의미로 화가 온도계의 한계치까지 치솟을 것 같다.
한숨을 내쉬면서 방을 나오자 설거지를 하던 중이었는지 능파가 고무장갑차림으로 사뿐사뿐, 소리나지 않는 조용하게 걸어왔다.
".... 아직 안나갔나요? 할아버지라면 모를까, 엄마가 이런 시간을 놓치고 싶어할 것 같지는 않았는데요."
능파가 상대이니 감추는 것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전부 말해주었다. 모두 들은 능파는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겨우 그딴 이유로 아까운 데이트 시간을 낭비했다구요? 이제 곧 있으면 점심인데요?"
"뭐... 그렇지."
능파가 짜증이 어린 얼굴로 참담하다는 듯, 숨을 토해냈다. 묘하게 공감이 가서 나도 공중으로 한숨만 내쉬었다.
내 딸이다. 하지만 아버지로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아량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제는 못 참겠으니, 내가 억지로라도 아무거나 입혀서 나가야겠다. 옷은 물론이고 될 수 있으면 속옷의 색깔까지도...
내가 딸에게 하기에는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을때, 능파가 호지가 있는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버렸다.
찰칵, 하고 문이 닫혔다. 그리고 들려오는 말소리들.
"어라 능파?"
"어머니?"
왠지 말 뒤에 하트가 붙을 것만 같은 능파의 부름. 하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 능파가 호지 가까이에 다가가 귀엣말이라도 하는 모양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문이 벌컥 열리면서 호지가 급하게 뛰쳐나왔다. 입고 있는 옷은 분명히 처음에 골랐던 옷이지만, 급하게 나오느라 그런지 군데 군데가 흐트러져 있었다. 나는 영명하신 능파님이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인지 나는 궁금해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바보는 아니다. 세시간이나 되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호지에게 아무런 말도 않한 것은 아니란 뜻이다. 나 나름대로 호지를 설득하려고 했고, 실패했다. 하지만 능파는 들어간지 몇초만에 호지를 끌어냈다.
"아, 아빠! 빨리 가요."
벌써 신발을 신고 기다리는 호지의 뒤를 따라가려고 할때, 방에서 능파가 걸어나왔다.
"능파야. 어떻게 호지를 끌어낸거야?"
"쿡쿡. 글쎄요, 비밀이랍니다."
능파 답다고나할까, 뒷모습에 악마가 투영되는 사악한 미소를 지은 능파는 부엌으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에서 시선을 땐 나는 손짓하는 호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문 밖은 챠이가 나른한 얼굴로 지키고 있었는데 내가 나오자 허리를 꼿꼿히 세워 인사한다. 거북하기까지 한 그의 충의에 적당히 대답해주고 호지와 함께 아파트 단지를 나왔다. 그리고 어제 일을 생각해냈다.
어제 데이트 했던 슈는 전혀 목적지를 결성하지 못 했었다. 당사자는 기뻐했지만, 지금 호지는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목적지를 고를 틈이 없다.
"후후후.... 하지만 나는 성장하는 남자. 어제의 실책에서 발견해온 것이 있다!"
그렇다. 나는 슈 때의 실책에서 성장해, 목적지와 데이트 코스의 발견 및 계획을 철저하게 준비해온 것이다. 이미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은 물론이오, 모르는 사람이라도 30분만에 넉다운 시킬 수 있는 비장의....
"아빠, 나 백화점가고 싶어!"
...목록이 적힌 쪽지가 내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심해에서 끌어내리려는 것과도 같은 절망감이 내 몸을 사로잡았다.
내가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절망하자 호지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는지 내 손을 붙잡고 자신이 정한 목적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걸어서 가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내가 저지른 실책(이랄까, 삽질)에 절망하고 있자니 금방 도착했다.
"아빠, 빨리빨리."
"그래. 알았으니까 조급해하지 마렴. 넘어질라."
그야말로 딸과 아빠의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백화점 안으로 들어섰다. 주변에서 눈길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검은 야구모자로 푹 눌러써서 최대한 나의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나의 연령조차 추측하기 힘들 것이다. 호지는 검은 치마에 축구복을 모델로 한 흰색 윗옷을 입었고, 머리에는 긴 챙모자를 썼다. 솔직히 얼굴이 드러나기 쉬운 차림이지만 관심같고 쳐다보지만 않으면 괜찮은 수준. 그래도 적당히 긴장하며 안을 둘러보았다.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사람들의 분위기는 그때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호지야. 여기서 뭘 하고 싶은 거지? 백화점에 뭔가 할 일이라도 있니?"
나긋나긋하게 물었지만 호지는 입가를 검지손가락으로 누르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백화점이란 존재는 돌이켜보면 데이트 장소로 그리 어울리지 않는 장소라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쇼핑이 데이트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건 보다 전문적인 장소에서 하지않는가?(편견)
호지는 손을 마주 잡았다.
"헤헷, 아빠가 옷을 사줬으면.... 해서. 그리고 밥도 먹...는 건 역시 됬어."
"....그걸로 되겠어?"
내 딸이 욕심없는 아이인 것은 아니라고 아버지로서 장담할 수 있다. 실재로 거의 돈을 쓰지 않는 요연과 능파{능파는 가끔 썼지만 그것도 자신이 공수(훔쳐)해 왔다}는 내가 쓰는 돈의 반의 반도 쓰지 않았지만, 호지는 나의 세배를 사용했다. 덕분에 재정이 거의 파탄나기 일보 직전의 지경에 이른 적이 있었다.
호지는 전혀 사심이 없는, 하지만 조금 그늘진 얼굴로 대답했다.
"응. 이거면.... 만족해."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머릿속으로는 호지가 이런 반응을 보일만한 일이 있었는지를 머리를 회전시켜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호지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능파에게 사과하라는 질책을 받았다. 호지는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 일이 잊고 있던 일을 다시 생각하게 한 것이 틀림없다. '밥을 먹는다'는 부분에서 황급히 말을 바꾼 것이 그 증거다.
루그로 사건. 그 당시, 나는 동료들에게 죽었다고 알려졌다. 내가 그렇게까지 자신의 정보를 숨겨야 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호지 때문. 호지가 케잌이 먹고 싶단 이유로 날 빵집으로 출타시킨 것이 이유였다. 분명히, 호지는 그것을 떠올리고 먹거리에 대한 것은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호지로선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을테니.
"흐으음."
숨을 코로 소리내어 내뱉는 것으로 정신을 환기보니 나는 여성의류 매장까지 당도해 있었다. 호지에게 오른팔을 붙잡혀 있는 것으로 보아 끌려온 것이리라. 호지는 여전히 기쁜 듯, 싱글벌글 거리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호지야."
"응? 왜 아빠?"
"내가 옷 골라줄까?"
호지는 입을 벌렸다. 아마, '능파는 짐작하지 못 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굉장히 신선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호지가 옷 갈아입는 것을 멈춘 이유는 능파가 한 말 때문. 그리고 그 말은 대략 '엄마 취향의 옷보다 할아버지 취향의 옷이 더 중요하니 나가서 사와라'정도의 말일 것이다. 그리고 대충 아무 옷이나 골라주면 호지라도 나오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에게 평가를 들으라는 것이지 직접 골라달라는 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봐야 내 입에서 나오는 건 이거나 저거나 어울린다는 소리일테니까.
파리가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포즈로 입을 벌린체 서 있는 호지가 쑥쓰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헤헤헤.... 여, 역시 능파 말이 맞았네."
"뭐?"
내 직감이 빗나갔다는 것을 말하는 호지. 나는 멍청하게 반문하는 것 밖에 도리가 없었다.
"느, 능파가 남자가 옷을 사준다는 건 그 옷을 입은 여자를 벗겨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오늘 가게 되면 적지만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어. 옛날에."
"아니,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닌데."
집에 누님만 있다면 모를까(그것도 큰 일이지만) 슈에 요연, 옛날과는 다른 능파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이기라도 한다면 (능파의 부축임으로) 처음은 5P가 될지도 모른다.
망측한 상상을 하는 머리에 주먹을 먹인 나는 호지의 머리를 한손으로 꾸욱 누르면서 강하게 쓰다듬었다.
"우우웅!"
"그런 짓 못해. 아쉬워도 참고."
"히잉."
아쉬운 듯(남자로서 나도 아쉽다) 콧소리를 내는 호지의 등을 밀며 여성의류 매장의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가지 옷들에 눈을 빼앗긴 듯, 호지는 시무룩하던 얼굴을 펴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리 어려도 여자란건가..."
"아빠! 이거 어때?"
혼잣말을 하면서 나 나름대로 옷을 찾고 있을때 호지가 옷 하나를 들고 내 쪽으로 왔다. 푸른색이 바탕에 깔린 원피스. 예쁜 옷이기는 하지만 그건 호지보다 슈에게 더 어울린다. 호지에게는 조금 어른스러워도 붉은색의....
"이거다. 호지야, 그거 말고 이건 어때?"
내가 옆에 있는 옷걸이에서 붉은색의 원피스를 빼들고 보여주자 호지는 자신이 들고 있던 것을 적당히 던져버리곤 내 것을 들고 꺅꺅거렸다.
솔직히 둘 중 어느 것이 더 예쁘냐고 묻는다면 비등비등 했겠지만 내가 골랐다는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
옷을 들고 빙글빙글 돌면서 기뻐하던 호지는 잠시 행동을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호지의 얼굴을 살펴보니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하고 호지에게 물었다.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빠. 그냥 너무 기뻐서."
역시 그렇게 넘어갈 생각인가. 그렇다면 나에게도 방법이 있다.
나는 배를 잡으면서 천장을 보았다.
"그런데 시간이 좀 된 것 같은데, 밥이나 먹지 않을래?"
내 말에 호지의 등이 크게 떨렸다. 역시나 내 생각대로의 반응을 보이는 호지에게서 시선을 돌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했다.
"기왕 밖에 나온거니까 밥을 먹기는 그런가? 역시 외식하면 삼겹살이나, 갈비지. 하지만 호지는 치킨이라던가 피자라던가...."
살짝 말을 끌면서 호지를 곁눈질했다. 비정상적으로 떠는 모습이 보였다. 근처를 걷고 있던 직원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케잌, 도 괜찮겠지."
"싫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비명과도 같은 외침. 그것도 그냥이 아니라 마력이 담긴 외침이었다. 주변의 공기를 비꼬고 휘어잡는 목소리에 백화점 손님들의 경직된 시선이 이쪽에 꽂혔다.
"이거 위험하군."
여기서 시간을 더 끌었다간 사람을 모으게 된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나와 호지의 정체도 탄로날 터. 그런 상황은 피해야 한다.
황급히 직원을 붙잡아 옷을 계산하곤 호지를 허리에 끼고 부리나케 백화점에서 도망쳐나와 근처의 벤치를 찾아 자리잡았다. 호지는 의자에 앉을 쯤에는 그럭저럭 진정이 됬는지 숨을 고르고 앞을 보고 있었다.
"아빠... 난...."
"루그로 때의 일을 신경 쓰고 있는거지?"
정곡을 찔린 듯, 호지가 크게 움찔하고 떨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리 길지 않았다.
"아빠는 그 날.... 나 때문에 죽을 뻔 했으니까. 사막과 이번 능파의 말로... 똑똑히 깨달았어. 내가 욕심을 부리면 아빠가 다쳐. 그러니까..."
루그로 때는 먹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사막때는 단순한 질투, 자신을 바라봐 주길 바라는 욕구. 확실히 호지의 말이 맞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상황에 불과하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호지의 앞에 쪼그려 앉아 올려다보았다. 호지는 그리도 슬픈지 굵은 눈방울을 똑똑 바닥에 떨구고 있었다.
"호지야."
나는 호지를 부르면서 무릎을 누르고 있는 손 하나를 잡았다.
"난 너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하루하루가, 나날이 재밌고, 위험한 날도 적지 않았지만 그 일로 인해 조금씩 내 안을 채워갈 수도 있었어. 난 너에게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많아. 조금쯤은 욕심을 부려도 돼."
"하지만! 아빠가 위험해지는 걸! 그건.... 싫어. 아빠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건... 보고 싶지 않아... 흐, 윽."
울어버릴 것만 같은 호지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맞췄다.
"걱정해주는 건 기뻐. 하지만.... 난 그런 일이, 아픈 일이 있는 것도 괜찮아."
결코 내가 맞는 것을 즐기는 변태이기 때문이 아니다. 아픈 것은 나 역시 싫고, 평온한 삶을 목표로 한다.
호지는 이해할 수 없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죽지 않았어. 확실히 호지 때문에 다쳤을지도 몰라. 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아 지금 네 곁에 있어."
맞잡은 호지의 손을 끌어들여 내 이마에 댔다. 나는 마치 경건하게 수행하는 수도승처럼 고개를 숙인체 말했다.
"난 약해. 남을 지켜주기에는 작은 존재지. 그렇기에 조금만 더... 강해질 필요가 있어."
그것은 내 소망. 닿을 수 없더라도, 세계에 거역하더라도 이루고 싶은 내 꿈이다.
"호지의 말은 분명히 날 위험에 몰아넣었지만, 그로 인해 더욱 강해졌어, 살아남았어. 잊지마. 위험해진 것뿐이라는 걸. 너의 말에 의해서 난 반드시 살아서 귀환했어. 기왕 생각할꺼면 그렇게 생각해."
"응..... 응!"
고개를 들어 웃는 것을 보니, 그늘진 모습은 날아간 듯 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지에게 물었다.
"배가 고픈데, 뭐 먹고 싶은 것 있어?"
"케잌!"
=============================================
예, 호지입니다. 딸입니다.
1살(강조)입니다. 주인공은 변태입니....
안녕하십니까, 아이젠입니다.
어째 호지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는 가운데(아마도), 두번째 데이트를 꺼냈습니다.
재밌길 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세계 정세 같은 이야기는 쓰기 힘들군요 역시. 저에게 거창한 스케일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육아일기는 상당히 거창한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