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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공준비!
능파가 입에 담은 뇌공.
그것은 나에게 다른 사람들보다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저 나보다 먼저 광진을 썼던 초대 사용자라는 의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에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지금 상황은 그 당시에서 비롯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단정해도 좋을 것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다. 그 당시나, 조금 시간이 지난 중세에서도 그는 굉장한 학자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틀린 이론은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짓만을 고수했다.
요컨데 그 때부터 내려져온 '거짓'이 지금의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라는 소리와 같다.
"뇌공은... 아니야. 그 사람은 될 수 없어."
"... 어째서죠?"
"광진 육식을, 썼을테니까."
"...! 그건..."
광진 육식.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광진이 만들어내는 강화의 최고점에 자리하면서 휘하의 광진과는 궤를 달리하는 절대적인 강화다. 그것을 쓰면 필연적으로 사용자는 '죽는다'.
강하고 약하고, 마의 인자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광진이 몸을 부수는 것은 비율에 따라서 하는 것, 어떠한 자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나처럼 다른 누군가가 생명을 바친다면 살아날 가능성은 있지만, 그게 한계다.
광진은 그 자체로도 마력 운용식이면서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힘'을 가졌다.
잠재력의 폭발. 그것으로 인해 광진은 인간의 몸으로 신의 영역에 달하는 힘을 일순간이나마 가질 수 있으며, 잠재력을 하얗게 태워버린 사용자는 죽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지금의 나도 느끼고 있다.
"난.... 더이상 강해지지 않을테지."
나는 쓰고도 살아남은 예외적인 케이스다. 하지만 광진의 지속시간이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더이상의 성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살아남기는 했지만, 불완전해진 것이다.
인간으로서도, 전사로서도.
"... 그랬던... 건가요.... 미묘하게 느낀 위화감은."
역시나 능파랄까, 그런 것도 이미 짐작한 모양이었다.
내가 안심했다는 듯이 한숨을 짓자니 능파가 화난 듯 잔뜩 뿔난 얼굴로 내 양볼을 집게처럼 꼬집었다.
그야말로 용 다운 근력에 나는 볼이 얼얼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슨 표정이에요, 그건!? 그런 것도 말하지 않고 도대체...!"
"말해도 소용 없으니까. 결정된 일에 태클을 걸만큼 나는 미련을 두는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할아버진 지금 껏 자신의 약함을 견뎌왔잖아요. 하지만 이대로 계속 약한체라니, 슬프지 않아요?"
슬프지 않냐고 묻는 능파의 눈망울을 이미 수분으로 가득해 지금 당장이라도 망막의 둑을 터뜨리고 물을 방류할 것만 같다.
그런 능파에게 나는 즉답했다.
"슬프지 않아."
단정하는 것 같은 나의 말에 능파는 방울진 눈망울로 찌릿 노려봤다. 마치 '믿을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이라 나도 모르게 식은 땀이 났다.
솔직히,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난 전혀 슬프지 않았다. 힘을 더이상 키울 필요가 없다는 것에는 확실히 실망했지만, 능파가 말했던데로 난 지나간 일에 그리 크게 미련을 두는 스타일이 아니다. 실패를 했다면 다음을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나는 성장하지 않아도 쓸만한 비술은 얼마든지 있다.
공격의 질을 높이지 못 한다면 양.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나는 생각했던 바를 입에 올렸다.
"난 약하지만 마음이 여린 것은 아니야. 잃어버린 강함의 가능성은 너희가 이루어주면 그것으로 족하니까."
반론을 불허하는 나른한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놓은 나는 말하면서 감았던 눈을 지그시 떴다. 그리고 경악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내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마 지진과 화산, 운석, 홍수, 가뭄이 동시에 일어나는 재앙보다도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사람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인식 밖에서 일어난 일.
눈 앞의 현상을 간단히 정의하자면,
'능파는 마치 사랑하는 남자에게 차인 가련한(!?) 여자아이처럼 눈물을 뚝뚝 볼 아래로 흘리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능파가 저런 행동을 했는지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단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일났다...!"
잘은 모르지만, 능파가 저런 모습을 한 것은 의도한 것일 터이다. 그리고 그 의도는 분명히 나의 파멸로 이어진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훌쩍 거리는 능파 덕에 주변의 시선이 조금이지만 이곳으로 모였다. 게다가 구석자리라 시선을 피하기에도 마땅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능파 특유의 야릇한 말을 입에 올리기라도 한다면, 거기에 내 정체가 탄로난다면 공중파 방송으로 남의 눈을 확실히 호강시켜줄만한 글이 전국으로 날아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것이다.
예를들면 '구국의 영웅, 열살남짓의 어린애와 열애!?'라는 내용으로.
일단 겉보기로는 능파도 어린데다가 그런 류의 기사는 진실(이기는 하다)이건 거짓이건 재밌으면 그만이니 인기가 있을 것이다.
최대한 모자를 눌러쓰고 계산을 마친 나는 능파의 손을 붙잡아 부리나케 레스토랑을 도망쳐나왔다. 미쳐 다 먹지 못한 스테이크가 아쉬웠다.
능파를 기다렸던 놀이터의 벤치에 능파를 앉히고 나는 깊은 숨을 앞으로 뱉어냈다.
"능파야...?"
"흐, 으윽...."
내 말을 무시하고 계속되는 반응. 정말로 우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정말로 울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말을 무심코 던지는 경향이 있으니까.
차근차근 내가 했던 말들을 되짚어보았다.
[난.... 더이상 강해지지 않을테지.]
[말해도 소용 없으니까. 결정된 일에 태클을 걸만큼 나는 미련을 두는 사람이 아니야.]
[슬프지 않아.]
.... 전혀 울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더욱이 이성적인 능파가 이런 것으로 눈물을 흘릴 아이라곤 상상이 되지 않는다.
능파도 날 좋아한다 하였으니 사막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난다면 확실히 울지도 모르지만 이건 아니다.
난 침을 삼키며 벤치에 앉은 능파를 쪼그려 앉아 올려보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억지로 막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떨어지는 눈물들을 털어냈다.
"울지마렴, 능파야."
"안 울어요."
즉답. 번쩍 고개를 치켜드는 능파에게 눈물이 흘렀던 기색은 없다. 마력으로 주변의 수분을 끌어모아 눈물처럼 만들었던 모양이었다.
여자가 가진 최강의 무기는 역시 눈물이라는 것을 실감하곤 허탈하게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런 나를 향해 능파가 사악하게 웃었다.
"쿡쿡쿡. 이런 걸로 당황하다니, 나쁜 여자에게 걸려서 울게 될 거에요?"
"그 나쁜 여자가 눈 앞에 있는 것 같은데."
"후후, 할아버지의 눈은 천리안인가요?"
완벽하게 놀아났다는 것을 실감하곤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난 평생을 여자에게 놀아나는 인생인건가. 어렸을때는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누님에게, 미래에는 한명도 아니고 여러명(능파, 호지, 요연, 슈)에게. 인기가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도 생각해볼만한 문제다.
능파가 슬픈 눈을 하며 주저앉은 내 손을 붙잡았다.
"하지만... 슬픈 건 사실이에요. 전... 할아버지가 좋으니까요. 그렇게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은 삼가주세요."
"아아, 미안."
확실히 그런 건 나도 슬플 것 같기 때문에 쉽게 긍정할 수 있었다.
잠시 그렇게 있던 중, 본능적으로 발현시켜둔 풍백에 한 남자의 체형이 잡혔다.
크기는 나정도로 얼굴에 잡다한 것이 없는 것을 보아선 학생 정도의 나이를 먹었을 것 같았다. 슬쩍 시선을 주고, 눈을 때지 못 했다.
노련택. 특이한 이름을 가진, 같은 학교의 친구이며, 이제 돌아오지 못 할 세현의 가장 친한, 친했던 친구였다.
"...요냐?"
대뜸 물어오는 그의 말에 나는 부정하기도 뭐해서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련택의 시선이 마치 칼처럼 매서워졌다.
성큼성큼 다가오면서 련택이 말했다.
"세현은 어딨지?"
"어째서 그걸 나에게 묻는거야?"
"네가 가장 수상하니까."
적당히 거짓말로 발을 뺄 생각이었건만 그는 이미 확신을 가진 듯 했다.
아마 거짓말은 통하지 않을테지.
나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맞아, 내가 알고 있어."
"어딨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것 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날의 전투 이후로 세현은 누님에게 맡겼다.
몸이 망가져가는 것은 확실히 소누가 막아놓았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막기만' 한 것이라 거의 회복에는 거의 효과가 없어서 생각대로 누님에게 맡겨놓았다. 하지만 누님의 말은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거 힘들겠네."
다름 아닌 나의 누님은 그렇게 말했다.
있을 수 없는 일도 현실로 바꿔버리는 누님이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기적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나 진배 없는 일이다. 아마 살아나더라도 같은 시간대는 힘들테니 최소 십년은 기약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나의 최선. 그리고 지금 해야할 최선도 알고 있다.
"아마... 더이상 볼 수 없을거다."
휘익, 퍼억!
일언반구의 선언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분노를 담아 내지를 련택의 주먹에 고개가 돌아갔다.
련택은 다시금 주먹을 내지르려 했지만 몸이 굳었는지 인상을 썼다.
나는 손대지 않았으니, 능파일 것이다.
벤치에 앉아서 우리의 일방적인 대화를 보고 있던 능파는 혀를 차면서 바닥에 사뿐히 내려섰다. 바람이 작게 소용돌이 치는 바닥을 구둣발로 톡하고 치니 바람은 넓게 퍼져나가 주변의 공간을 휘어잡았다.
역시나 능파랄까, 말을 하지 않고도 자신을 어필하는 법을 안다.
"네... 짓이냐."
"할아버지가 맞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손녀는 없지요."
능파의 대답에 련택은 분위기 잡던 얼굴이 절로 풀려, 얼빠진 물음을 되뱉었다.
"소, 손녀?"
후후, 하고 능파는 련택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그런 것보다, 어째서 다짜고짜 할아버지를 공격했나요?"
".... 그녀석이 행방불명이 된 이유가 네가 할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의 탓일테니까."
그 말에 능파는 내쪽으로 시선을 주며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제야 세현에 대해서 능파에게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능파의 머리에는 '괜히 깝치다가 눈 맞고 죽을 뻔한 놈'정도로 밖에 인식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조금 노골적인 말이지만.
나는 능파라면 쉽게 알 수 있을만한 단어를 툭 내뱉었다.
"천리안의 포섭, 말야."
"아아. 그 주제 넘게 행동해서 죽을 뻔한, 미련한 사람이요? 그 사람은 왜요?"
내 생각과 거의 다르지 않은 말을 직접적으로 내뱉은 능파에게 련택이 주먹이라도 갈기려는 듯, 발작한다. 하지만 능파의 포박을 일반인인 련택이 쉽사리 풀 수 있을리가 만무했고 설사 풀어도 피할 것이다.
말도 못 하고 정지한 련택에게서 시선을 땐 능파는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장난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걸려있다. 의도하는 것을 아는 나는 발걸음을 돌려서 련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운을 땠다.
"....오랫동안 보지 못할거야. 원망해도 별 수 없어. 하지만......"
련택의 얼굴에 손바닥을 얹었다. 이 몸짓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째는 무너질 것만 같은 몸을 지탱하는 용도고, 다른 하나는 같잖은 자존심을 위햐 흘리고 있는 눈물을 감추기 위함이다.
"반드시, 데려오겠어. 몇 십년이 지난다하더래도."
그렇게 단정하고 나는 등을 돌렸다.
더이상의 할말은 없다. 이것으로 내가 이 나라에 남겨둔 미련은 없다. 이해하지 못 하더래도 별 수 없다.
나아가지 못 하면 용서받지도 못 하고 끝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는 나의 뒤를 따라온 능파가 날 힐끗 보았다.
".....계획과는 조금 다르지 않아요? 괜히 장단 맞춰준 저만 나쁜 여자가 됬어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만일 나는 련택을 만난다면 최대한 그 악의를 살 생각이었다. 뭐가 되었든 세현이 그 꼴이 된 것은 나의 탓이고 모른 척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최후에 나는 어리광을 부리고 말았다.
이곳에 남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이해 해주길 바랬다.
"뭐, 괜찮지 않나요? 지금까지 위축되어 왔던 할아버지니까."
마치 위로라도 하려는 것처럼, 능파는 그렇게 말하곤 종종 걸음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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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 하셨던 일들이 조금 풀렸나요?
예, 아이젠입니다.
원래는 슈 때 넣고 싶은 장면이었는데 어쩌다보니 능파로 옮겨왔군요.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요.
다음편부터는 여러분의 흥미를 약간 돋울만한 소재가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뭐래도 (삐!)..니까.
능파의 데이트가 마음에 안든다는 사람들이 계십니다만....
예. 로리콘(은 아니라고 나는 주장하지만)인 저에게는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막판에 조금 강한(!?)걸 준비해두었으니 로리콘 혹은 로리콘에 근접한 분들은 기대해주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그거 보고 강하지 않다고 하면 어쩔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