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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223화 (22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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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하는 수 없이 마법으로 감기를 뽑아낸(솔직히 마력으로 된 집게를 몸에다 쑤셔넣을때는 무서웠다) 다음 거실에서 모두와 함께 원으로 둘러앉았다.

호지, 능파, 슈, 길리안, 요연, 앤트로아, 챠이, 유다, 누님, 하여, 운. 그리고 나. 총 열두명이라는 대인원이 우리집에 있다. 아마 부모님들이 오면 들어오자마자 숨이 막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쩔거에요, 할아버지?"

내 목에 용의 모습으로 감겨 있는 능파의 물음에 난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뭐 별 수 있겠어? 그냥 정면승부지."

정면승부. 그 말만큼 이 상황에 어울리는 말은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빠는 워낙 서글서글해서 이런 상황을 봐도(유다와의 싸움을 봤다 해도) '그렇다면 별 수 없지~'라며 넘어갈 사람이다. 하지만 저번에도 찾아온 적이 있는 어머니라면 분명히 엄청나게 분개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 서글서글한 아빠가 아니면 어머니의 더러운 성깔을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 간혹 보았던 부모님의 친구분들의 말이었으니까.

게다가 어머니는 상당한 능력을 가진 커리어우먼이라 그런지 굉장히 머리가 좋으시다. 무슨 말을 해도 곧이 듣진 않겠지.

그러니 정면승부.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후욱, 하고 한숨을 뱉어내면서 앤트로아를 보았다. 강철의 처녀는 천으로 자신의 몸을 손질하고 있었다.

"앤트로아.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어?"

"주인, 생체파동은 알고 있습니다."

"찾아봐. 어느정도의 거리가 있는지도."

앤트로아의 눈이 전자적인 초록빛을 띄면서 0과 1이라는 숫자가 좌우로 수십번 오간다. 그녀의 전신을 이루는 쇳덩이들도 하나의 회로가 되어 수많은 숫자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숫자들은 이윽고 바닥으로 가라앉아 마치 나무뿌리처럼 주변으로 뻗어나갔다.

방 바닥이 숫자로 가득 해졌을 쯤에 앤트로아가 입을 열었다.

"현재, 엘리베이터. 도착 예상시간, 5분 뒤."

"빨라!"

내 새된 비명에 누님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앤트로아의 말로 폭주하던 머릿속의 위험신호가 그 행동으로 조금씩 작아졌다.

그러고보면 옛날에도 누님은 가끔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내 불안을 없애주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때는 누님과 부모님이 같이 있었지.

비록 부모님은 내게 신경 쓰지 않긴 했지만.

갑자기 떠오른 옛 생각에 슬쩍 웃곤 문을 주시했다. 그러자 앤트로아의 말문이 트였다.

"지금, 문 앞에 있습니다."

달칵, 달칵, 벌컥.

앤트로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벌컥 문이 열리면서 정장차림을 한 나의 어머니와 난처한 낯으로 어머니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아버지가 들어왔다.

어머니는 상당히 급하게 온 것인지 항상 깔끔하던 옷차림이 굉장히 흐트러져 있었다. 아버지는 평소에 흐트러진 것인지 아닌건지 알 수가 없는 분이라 잘 모르겠지만 집 안에 모여 있는 우리들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옆에서 분을 못 이겨 씩씩 거리는 어머니를 뒤로 재쳐둔 아버지가 앞으로 나서더니 입을 열었다.

"오오, 돌아왔구나 소야. 그리고 요? 그...."

시선이 닿은 나의 동료들은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앤트로아에 챠이, 유다정도 되는 괴이한 행색(일단 외국인들이고 하난 기계니)을 한 녀석들이 인사할때는 아버지도 마주 고개를 숙여보였다.

오오, 나의 아버지. 그 부드럽고 예의 바른 성격은 어디 가지 않으셨군요.

아버지는 당황한 것인지 눈을 감았다가 뜨는 것을 반복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요. 친구를 많이 사귀었구나. 잘됬어."

"잘됬을 턱이 있냐, 이 화상아!"

빠각.

뒤에서 날아드는 돌려차기 한방이 아버지의 볼짝을 겨냥하고 크게 짓눌러버린다. 뼈가 부러지는 듯한 파열음이 들리면서 바닥에 처박혔다.

갑작스런 유혈사태에 챠이가 깜짝 놀라 아버지를 부축하곤 소파에 눕혔다. 순식간에 중상을 입고 누워 있는 아버지의 얼굴은 평소처럼 웃는 낯이었다(기절은 안 했다).

발차기 한방으로 순식간에 아버지를 빈사상태로 만든 어머니는 내게로 다가와 나를 매와 같이 매섭게 노려봤다.

"어, 머니."

"오냐. 내가 네 애미다. 그런 애미에게 그 날 거짓말을 하셨구나?"

어머니가 말하는 그 날은 분명히 요연과 함께 부엌을 망신창이로 만들어놓았던 그 날을 말함이라는 걸 모르는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때는 이유가 있었다.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것은 둘째문제다. 문제는 어머니가 알 경우에 무슨 수를 쓰던 간에 만류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누님이 우리나라를 나간 뒤로, 부모님의 관심은 확실히 내게로 집중 되었다. 하지만 누님처럼 강하지도, 잘나지도 않았던 나는 은근한 보호를 받았다. 외국으로 나갈 때 쯤에는 어떻게든 구워삶아서 됬지만, 지금은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니.

당황하고 있는 나의 멱살을 어머니가 잡아채 끌어올렸다. 그리고,

짝.

잡았던 손이 튕겨나갔다.

"어... 호, 지?"

내가 놀라서 어머니의 손을 날려버린 호지를 불렀지만, 호지는 여전히 무서운 얼굴을 할뿐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상당히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째서? 라고 생각하던 것도 잠시, 이내 기억해냈다.

데이트를 하기 바로 전날. 앞 내용은 잘 모르지만 누님이라면 가감없이 당시 어머니의 실태를 밝혔을 가능성이 있다.

내 생각은 그리 틀리지 않은 듯, 호지가 으르렁거렸다.

"이 위선자가..!"

하지만 어머니가 그런 걸로 물러날 사람이 아니다. 어머니의 성깔을 간단히 평가하자면. 아니, 조금 바꿔서 설명하자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격을 비벼 먹은 것이 나. 한마디로 내가 보이는 카리스마, 살기등등의 것들은 전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 대응면에서는 호지가 밀린다.

"어쩌라고 꼬맹이. 가족도 아니면서 우리 집안 일에 끼어드는 것 아니야."

처음 보는 것일 어머니의 반응에 호지가 주춤하지만 이내 내 품으로 뛰어들곤 고양이처럼 갸르릉 거렸다.

"난 아빠 딸이다 뭐. 가족이란 말이야!"

"비혈연(非血緣)이 어디서...!"

"자자자. 전부 릴렉스."

한판 맞붙기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아버지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머니의 사나운 시선이 아버지에게로 향하자 아버지는 겁 먹고 내 등 뒤에 숨었다.

모두의 어이 없는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자 난처한 얼굴로 웃었다.

"미, 미안."

누구를 향한 사과인지 모를 말을 하곤 내 등 뒤에 숨은체로 어머니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매서운 어머니의 시선을 마주한 탓인지 조금 위축된 듯 싶었지만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보? 그렇게만 말하지 말고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 누구더라?"

이야기를 잇지 못 하고 우물거리자 유다가 곁으로 다가오며 아버지를 거들었다.

"나다."

"그래. 저 사람과 싸울 때 모두 지켜줬...."

거기까지 말하고 아버지는 숨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아마 어제 유다를 꼬신 방송은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유다는 아버지에게 간략하게 귀엣말 했다.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던 아버지가 안심한 것인지 숨을 골랐다.

"휴우. 어쨌든 여보. 여기서 아들에게 해가 될 사람은 없지 않소."

"내 알바 아니야."

"우음."

침음성을 흘리면서 내 등 뒤로 가라앉는 모습을 보면서 난 우리집 가부장의 권위가 어디까지 추락해 있는지 궁금해졌다.

딱히 남녀 차별을 할 생각은 아니다만 이건 다른 의미로 남녀 차별이 아니던가?

아빠의 모습에 한숨을 내쉴 때, 가볍게 목을 조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내 목에 감긴 백색의 어린 용, 능파다.

"할아버지. 이 집은 원래 이런 건가요?"

"아~ 뭐. 그렇지."

"...어째 할아버지는 저 두분을 적당히 합쳐놓은 모습이군요."

"....부정할 수가 없네. 어쨌든, 아빠는 먹을 것이나 조금 마련해 주세요. 이 일은 저와 어머니가 처리할 일입니다."

아빠는 훌쩍 거리면서 부엌 구석으로 걸어갔다. 불쌍하기까지한 등을 보면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아빠를 보는 가슴 한구석에 왠지 미래의 자기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가 말 없이 내 앞에 앉았다. 마주 앉은 나의 시야에 아까처럼 불타오르는 눈을 가진 어머니는 없다. 지금은 불꽃과 반대되는 얼음의 눈을 가진 어머니가 있을 뿐.

긴장되는 느낌을 받으면서 가만히 있자 어머니의 입이 먼저 열렸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인간말살을 목표로 하는 조직과 '우리들'의 싸움입니다."

간결하게, 하지만 주된 목적은 빠지지 않게 말하자 어머니의 눈이 빛났다. 내 속을 관통하는 것 같은 기운이 내 전신을 옭아맸다.

"그런 것을 굳이 네가 할 필요는 없을 터다."

"전 선택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반응이 나올 때가 가장 머리회전이 잘 돌아갈 때다.

"예언에?"

일침이 아닌 질문. 그렇기에 더욱 불안했지만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어차피 네놈의 이름이 나온 것도 아닐 터. 그에 걸맞는 대역을 구하면 그만이다."

핵심을 찌르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침을 삼켰다. 목에 감긴 능파가 의외로 까다로운 어머니의 눈치에 신음을 흘렸다.

어머니의 말은 옳다. 나와 능파는 그것과 비슷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고 그것 덕분에 요연과 나는 축제 밤에 칼부림을 벌여야만 했다. 어머니의 말대로 다른 대역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딘가에는 있다.

하지만 쉽사리 물러나 줄 순 없다.

"이미 너무 깊게 담가버렸어요. 전 더이상 빠져나갈 수 있는 몸이 아닙니다. 적들도 분명히 저를 노리겠지요."

"그것 또한 대역을 세워서 먼저 처리하면 그만."

과연 어머니다. 내가 대답하지 못할 말을 확실히 꿰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나에게도 오기가 있다.

"이들은 제가 아니면 따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통째로 갈아치우면 될테지."

조금 억지스러운 말이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대답할 거리는 많지만, 아마 어머니라면 그에 걸맞는 대답을 다 하실 수 있겠지.

전투, 전략에 대해선 어머니보다 몇 수나 높을지 모르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의 상대에서는 내가 어머니를 따를 수 있을리가 없다.

이 말만은, 솔직히 하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리 나에게 나쁜 기억을 심어준 장본인이라도, 이분은 나의.... 어머니다. 제대로 그렇게 부르기도 전에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유교의식이 철저한 우리나라에선 용납되기 힘들겠지. 화내실거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안된다. 이들의 옆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은 나다.

"그렇다면."

내가 크게 결심한 듯 말을 끊고 호흡을 고르자 어머니도 고요한 눈으로 이쪽을 보았다. 나는 그 눈을 피할 요량으로 눈을 감으며 뒷말을 이었다.

"부모자식간의 연을 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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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인륜을 거부하는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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