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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224화 (22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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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나는 결국 그 말을 입에 담고 말았다. 유교의식이 철저한 이 동양권에서, 부모님에게 해서는 안될 말을.

다짜고짜 날아온 말이었기 때문인지 어머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노를 참고 있다던가 하는 것이 아닌, 단지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기에 하는 행동이었다.

몇 십초가 흐른 뒤, 어머니는 눈을 떴다. 그것과 동시에 내 멱살을 잡아챘다. 아까처럼 호지가 말리는 것을 기대했으나 호지로서도 의외의 발언이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와 어머니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 이 새끼, 뭐라 그랬어?"

"연을 끊겠다, 고 말했습니다."

되묻는 말에 나는 단 한치의 거짓도 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퍽.

용서없는 주먹이 내 안면에 적중하면서 몸이 뒤로 넘어갔다. 쓰라린 통증이 코에서 느껴지면서 입 안에 비릿한 쇠맛이 느껴졌다. 입 안의 혈관이 터진 듯 했다. 아팠지만, 화나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외에는 없었다.

확실히 누님이 있었을 때는 차별 받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어렸을 때는 원망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누님이 떠나고, 부모님들 또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사과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날 볼 때 느끼는 심정은 미안한 감정뿐. 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였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난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지 않으면 어머니는 보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 스스로가 날 대신해 '육왕'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어머니였다.

"너, 너...!"

팽팽하게 당겨진 분노의 끈을 덕분에 말을 미쳐 잇지 못 하는 어머닌 그 분노를 담아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챠이의 팔이 적당하게 흘려내 내 안면에서 빗겨나갔다.

어머니의 시선이 챠이에게 닿았다. 나를 볼 때의 헤실거리는 표정과는 정반대의 날선 눈빛이 어머니를 관통했다.

"당신이 폐하의 어머니라도 폐하를 공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네가 뭔 상관...."

"참고로 나는 삼백하고 서른 넷. 너보다 열배 가까이의 삶을 살아왔다. 이 나라에서는 직위보다 나이라고 알고 있는데?"

유교국가의 급소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유다의 말에 어머니는 침묵했다.

지금까지 챠이가 나에게 항상 존대를 해와서 잊고 있었지만 챠이는 확실히 나보다 연상이었다. 더불어 유다도. 냄비근성의 표본 답게 쉽사리 발끈하기는 하지만 어머니도 이 나라의 국민이고 이 나라에서 학력을 쌓아왔다.

자신의 할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을 사람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시끄러워. 나이가 많다고 집안 일에 끼어들어도 되는 것이 아니야."

적당히 물러날 것이라 예상했던 듯, 어머니가 다시 반격해오자 챠이는 주춤거렸다. 그러곤 시선을 내게. 아니, 내 목에 있는 능파에게 주었다. 어쩐지 챠이치곤 급소에 핀 포인트 일격을 가했다 싶었다.

아마도 능파가 챠이에게 '할어버지에게 도움되는 일인데 당신 밖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라는 둥의 핑계로 일을 시켰을 것이다. 그러면 나에게 점수를 따지 못 해 안달난 챠이는 좋아라하며 덥석 물테고.

뻔하디 뻔한 예상도에 한숨을 쉴 무렵, 어머니의 시선이 내게로 왔다.

나에게는 구세주, 어머니에게는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밥 다 됬단다. 일단 15인분으로 준비해두었는데 괜찮겠니?"

넓직한 앉은뱅이 식탁을 3개나 꺼내들어 상을 차린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죽여버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한 시선을 보냈다.

부드럽기 그지 없는 아버진 고개를 돌리는 것 밖에 도리가 없었다.

챠이와 슈, 요연이 나서서 식탁을 나르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밥상에서 소리칠 마음은 없는 것인지 조강지처마냥 얌전히 숟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능파가 밥 한 숟갈을 입에 담고 나물 하나를 입에 넣었다.

"이, 이럴수가..."

"응? 왜 그러니 능파야."

마치 죽기직전의 사람처럼 손을 떠는 능파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 것처럼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내가 누님과 나의 격차를 입에 담을 때와 비슷했다.

"맛있어요..."

"그러게. 그런데 그게 왜?"

호지가 이해 못 하겠다는 듯이 갸웃했다. 나로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슈만이 무언가 짐작한 듯 쓰게 웃고 있었다.

능파는 드물게 투지를 불태우며 입을 열었다.

"제가 만든 요리보다 맛있단 말이에요. 설사 프로 요리사가 와도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데서 허무하게..."

"하하, 그야 당연하지."

난처한 웃음을 띈 내 대답에 능파가 갸웃했다.

아빠는 능파가 말하고 있는 프로 요리사였다. 그것도 보통 요리사가 아닌 두바이 어느 엄청난 호텔에서 굉장히 호평받고 있는 치프. 듣자하니 어머니 못지 않게 상당히 능력 있는 분이어서 여러 나라의 초대를 받고 있는 것이 바로 나의 아빠였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능파의 눈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매의 눈빛과 동일하게 변했다. 그 눈에 담긴 흑심을, 나는 보았다.

"후후, 그렇다면 그 기술, 훔쳐오지 않을 수가 없네요. 증조 할아버지~."

능파는 수저를 질려버린 애인을 버리는 것처럼 내팽겨치곤 아버지에게로 날아갔다. 아버지는 능파의 모습에 잠시 놀라는가 싶더니 담소를 나누곤 부엌으로 사라졌다. 나는 다시 팽팽하게 조여진 분위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렇게 누그러진 분위기는 아버지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체없이 아빠를 시체로 만들기는 했지만 어머니는 분명히 아빠를 사랑하고 있었으니 조금은 억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남이 보기에는 믿기지 않는 소리겠지만.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어느정도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름돌을 능파가 가져간 상태. 능파도 아버지가 그런 기능을 하고 있다고 알고는 있을테지만, 데리고 가버렸다. 아마 이대로 냅두면 골이 더 깊어질 것이라 예측한 것이리라.

"요."

아버지가 나간 탓에 가라앉은 식탁의 위, 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까의 분노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에 다른 의미로 긴장감이 내 털을 곤두세웠다.

"그렇게까지 죽으러 가고 싶은 거냐?"

"죽지 않습니다."

"예언되어 있을텐데."

허를 찌르는 한마디. 그 말에 나는 안색을 굳히며 지금까지의 상황을 돌이켜보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했다. 누님과의 비교로 상처받았던 이후로 어머니는 나에게 매우 잘 해주었다. 확실히 보호가 조금 심하긴 했지만, 내가 억지를 부리면 이내 승낙해주곤 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보통은 허락할 것이다.

관련이 없는 존재가 감놔라 배놔라 할 문제가 아니니까.

그런데도 어머니는 안된다고 일단락 시켰다. 게다가 예언이 되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역시나, 그랬던거냐?"

"...어떻게 아신겁니까."

어머니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뽑아들었다. 거기에는 내가 유다를 포섭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이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 내용 또한, 아주 잘.

"이런데도 내가 허락해야 하는 거냐? 반드시 죽어버린다는 것을 아는데도, 내가 너를 보내야 하는 거냐?"

"... 제가 가지 않으면 결국 모두 죽습니다."

"그래서 희생하시겠다?"

"아니오."

비꼬는 물음에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부정했다. 어머니는 내가 무슨 대답을 할지 아주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보았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챠이도, 유다도, 슈도, 호지도, 요연도, 누님도. 그외의 모두들도 아무 말 없이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이 떨렸다. 지금 내가 할말은 모두가 받아들여줄지 장담하지 못 한다.

양손을 맞잡아 떨리는 몸을 다 잡았다.

"반드시, 이깁니다. 운명을 뒤집어 보이겠습니다."

"말로는 뭐든지 할 수 있다."

"... 그런데도 제가, 하는 수 없이 죽는다면."

비꼬려던 어머니의 입이 슬며시 다물어졌다. 뒷말을 기다리는 공기가 오라처럼 휘감겼다.

"저를 따라 모두 죽어주길.... 빌겠습니다."

"하?"

어머니가 넋이 나간 얼굴로 숨만 뱉어냈다. 식탁에 둘러앉은 다른 사람들도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이다.

이런 말,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한 핑계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내게 남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이기심.

미안하지만 난 누굴 위해 희생해줄 생각은 전혀 없다. 모 아니면 도, 함께 죽든가 함께 살던가. 둘 중 하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어쩔 수 없겠지만, 실날 같은 가능성이 있다면 난 그곳에 건다.

그런데도 실패해버리면, 별 수 없는거다. 죽을 수 밖에. 하지만 남는 사람들이 따로 행복해지는 건 솔직히 마음에 안든다. 나를 좋아한다고 들러붙은 녀석들도, 다른 놈팽이에게 붙는 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함께 해주길 바래요, 이들에겐. 이승이던, 저승이던. 내가 싫다면 별 수 없겠지만, 따라와 주었으면 좋겠어요. 따라줄지는 장담 못 하지만."

말을 끝맺는 것과 동시에 등에서 따듯한 체온이 느껴졌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검은 단발머리, 요연이다.

"당연한 말씀을 하셔도 소용 없습니다 요애."

"아앗, 사신검주! 너 혼자 폐하께!"

챠이가 그렇게 내 옆구리에 들러붙으려는데 챠이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강력한 타격음이 동반되는 것을 보아선 무언가에 맞은 것 같다.

꽈당.

재밌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꼬꾸라진 챠이를 내팽겨치고 호지가 내 허리를 안았다. 꺼이 꺼이 울면서 들러붙는 것이 그야말로 나의 딸다운 모습이었다.

"아, 아빠가 죽으면 나도 주, 죽을거... 우에에엥!"

급기야 울어버리는 호지. 슈도 슬며시 내게 다가와 훌쩍거렸다. 나는 난처했지만, 기쁘기 그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리 잘 대해준 것도 없는데, 나의 무엇을 본 것일까. 하지만, 그런 것은 모두가 기뻐하는 것으로 됬다.

어머니를 보았다. 날 키워온 세월을 증명하는 주름이 이마의 군데군데 보였다.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무슨 말을 하던간에 듣지 않겠다는 완고한 고집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인 모습이란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게, 나올 수 없는 이유입니다, 어머니."

"시끄럽다. 이제 내 아들놈도 아닌 녀석이. 외국이든 저승이든 아무데나 가버려."

뒤로 돌아앉으며 망연히 천장을 보는 어머니의 어깨를 누님이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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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부모편이 끝났습니다.

드디어 방대한 주인공과 유운의 계획이 드러나는 편!

역습편의 초입부분에 드디어 선겁니다.

현재 저의 비축분은 역습편의 다음인 방어편의 막바지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무지 힘듭니다. 협공 스타일의 전투는 쓰기 힘든데 이런 전투는 좀... 유다 전 때도 마음에 안 드는 상태로 끝맺었고요.

하여간, 재밌기를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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