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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전야
어머니를 어떻게든 설득한 그 다음날 아침. 평소대로라면 새소리와 함께 나는 애인들(?)과 함께 반정도만 에로한 생활을 즐기고 있어야 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내일 아침에는 드디어 우리들이 밖으로 나가는 날. 하지만 목적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정이 되어있지 않다. 아니,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머릿속의 이야기. 말로 하는 것관 다르다.
게다가 이건 우리 팀 안에 있는 배신자를 색출해낼 방법이기도 하다. 중요한 물밑 작업이다.
뭐, 색출이라고 해봤자 이미 알고 있는 상태고 역으로 이용할 생각뿐이지만.
탕.
각자의 담소로 시끌시끌한 거실 바닥을 거친 손놀림으로 내려쳤다. 공기에 실린 파동이 온갖 곳을 훑으며 지나갔다.
"자자자, 전부 조용히. 내가 여기로 부른 이유, 설명했었지?"
"안했다카이."
"모르는데?"
운과 우의 연타. 과연 소꿉친구라 그런지 척척 들어맞는 콤비네이션이다.
... 나도 같은 소꿉친구였지.
헛기침을 하면서 목소리를 조금 고르게 했다. 아마도 상당히 이야기를 길게 해야 될테니, 조금 고를 필요가 있었다.
"이번을 기해서 우리는 이 나라를 뜬다. 이것에 대해선... 모두 알고 있지?"
대중의 몇몇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을 확인하고 나는 유운에게 눈짓했다. 팔이 없어서 펄럭거리는 소맷부리를 만지작 거리던 유운이 웨이터들이나 지을 것 같은 영업용의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보였다.
"우리는 이 나라를 뜨기 전에 두 팀. 아니, 세 팀으로 갈라질 겁니다. 첫번째는 불패이신 고소야님. 팀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분 혼자서 첫번째 팀을 맡아주실겁니다."
누님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모두들은 유운의 조금 억지스러운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도 별로 신경 쓰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이다. 난 기절해서 몰랐지만, 전국으로 퍼져나간 TV로 누님이 그날밤에 한 행동을 확실히 보았다.
인간이. 아니, 마수라 하더라도 낼 수 없는 마력량이 하늘로 솟구치고, 떨어져내렸다. 도시 하나 수준이 아니라 나라 하나를 손짓하나로 멸망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불패의 괴물이 바로 우리 누님인 것을, 그들은 보았다.
반론 따위는 있을 수 없고, 실력을 의심할리도 없다.
양팔을 뒤로 빼내 껄렁껄렁한 자세로 앉아있는 누님이 불현듯 손을 들어올렸다.
"그런데 말이지, 난 뭘 하면 되는거지?"
"그것에 대해서는... 아니, 지금 말씀 드리겠습니다."
유운은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가방에서 몇 장의 종이로 된 서류첩을 꺼내어 누님에게 건넸다. 누님은 그것을 받아들고 읽는가 싶더니 가볍게 흔들어 불태워버렸다.
"이미 알고 있는 장소들이야. 내가 아는 것보다도 적어."
누님의 말에 유운은 쓰게 웃었다. 건방지기까지한 행동이지만 그런 것에 쓴 웃음을 지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 누님에게 넘어간 종이 뭉치는 적들이 몰려 있는 곳. 즉, 지부다. 내가 알기론 상당한 숫자의 지부가 적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것들을 다 알고 있다니, 놀랍기 그지 없는 일이다.
누님이라는 전제가 붙는다면 당연한 일로 전락하지만.
유운은 여전히 난처한 미소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시겠지만, 불패께서는 거기에 적힌 카타스트로피의 지부들을 모조리 섬멸해주시면 됩니다. 정보, 포로. 전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기불능이 될때까지 뭉개주십시오."
"알았으. 한 열 닷세쯤 걸릴 것 같지만, 괜찮겠지?"
누님이 하는 말이 섬멸보다 이동시간 때문에 오래걸린다는 것을 아는 유운은 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님은 자신에게 볼 일이 더 없으면 간다는 듯이 손짓하곤 거실에서 사라졌다.
어제 우리 집에 있던 인원들에 더해 선생님과 소유, 유운, 소화까지 있으니 나름 우릴 배려해준 것이리라.
게다가 누님의 성격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렴풋이 눌려 있던지라 확실히 공간이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오해받기 쉬운 누님의 성격에 한숨만 나왔다.
친인만을 사랑하는 저 성격만 아니라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이 바로 누님이다. 그런 소릴 했다간 '동생이 책임져 주라?'라는 헛소리나 해대니 말은 안하지만 확실히 아름다운 분이다, 나의 누님은.
유운이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이야기에 임했다.
"두번째 팀은 바로 저를 필두로 한 소화와 백색아성과 성녀를 필두로 하는 컬러나이츠입니다. 아, 물론 소유도 포함이죠. 우리들은 지부가 있건 없건 바로 '소라'로 직행해 탈환할 겁니다. 소라란..."
"잠깐만~~~!"
하여가 마치 선생님께 질문하는 학생의 자세로 손을 들었다. 유운은 하던 말을 멈추며 하여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런데 꼭 우리일 필요가 있는거야? 요녀석이랑 의논을 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상관없는 인원으로 고르지는 않았을 것 같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리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한 유운은 잠시 숨을 고르려는 듯 말을 멈췄다. 그리곤 컬러나이츠인 선생님과 하여를 번갈아 쳐다보곤 이야기를 진행했다.
"나중에 말할겁니다만, 세번째 팀에는 육왕이 들어갑니다. 상대적으로 강자층이 많고, 돌파력이 높죠. 그에 반해 컬러나이츠는 수호의 의미가 강합니다. 탈환한다고는 했지만 제가 움직이기 때문에 그리 의미가 없거든요. 세번째 팀과 첫번째 팀이 소라로 올 때까지 버티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두번째 팀의 목적입니다. 이것으로 만족하셨습니까?"
"아, 뭐. 그렇지."
적당히 대답하는 하여에게서 눈을 돌린 유운이 헛기침을 했다. 다음에 나올 말을 알고 있는 유운이 가지는 긴장감을 능히 알고 있었다.
유운 왈, '소라'.
"그럼 말을 바꿔서. 소라란 '방주'입니다. 생김새를 보고 제가 소라라 적당히 이름붙인 것이지만 정식명칭은 '방주 아크'입니다."
"방주라카믄, 슬마 노아의 방주이가?"
사이가 나쁜 것도 잊고 되묻는 운에게 유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주 아크. 나도 그것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것이 없지만 유다전(戰)을 준비하기 위해 유운과 따로 만나면서 조금씩 듣던 것 중 하나다.
그것은 남한의 약 1.5배 크기를 가진 거대한 공중섬. 간단히 말해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땅이다. 물론 땅이 아니라 SF영화에나 나올법한 대형 구조물이라고 들었다.
외형은 소라껍데기를 눕혀둔 모양으로, 그 자체로 공격병기이기도 하며 거주지이고 거대한 자연조성지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 이상적인 환경의 표본이란 소리다.
"소라는 제가 한번 기동하려 했다가 실패한 것입니다만, 아마 카타스트로피의 손에 기동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탈환... 입니다만, 위험하지는 않을겁니다. 이성이 남아있지 않은 불사가 조종할리가 없으니 분명히 조종은 다른 것이 맡고 있을 터. 저 혼자서라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엿보이는 말이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다전 때 누님과 더불어 한국을 지키는 수장의 진면목을 보인 그다. 그 능력을 제외하면 일반인이나 다름 없다지만 그것을 꼬투리 잡을 사람은 없다.
유운은 잠시 눈을 감더니 이쪽을 보았다. 세번째 팀은 나보고 설명하라는 것인가. 확실히 세번째 팀의 리더는 나이니 그래도 상관 없을 것이다.
나는 앞에 놓인 물을 한모금 들이켰다.
"세번째 팀은 바로 나를 필두로 한 호지의 도깨비군단, 그리고 삼검주, 앤트로아, 운, 슈, 능파. 이렇게 갈거야. 우리의 임무는 바로 누님과 같은 지부의 습격. 단, 조금 커다란 곳을 습격해서 본부의 정보를 빼내는 쪽이지."
나는 시선을 던져 운을 보았다.
"난 운에게 상당히 기대하고 있어. 지금까지 활약하지 못 했으니까, 이번에는 부탁한다?"
운의 능력은 정신조작. 전투에 활용하려고 해도 그것을 받쳐줄만한 능력이 없는 것이 바로 운이다. 솔직히 전략적 가치는 극히 낮았다.... 는 것은 지금까지의 이야기.
하지만 이제 우리들의 싸움은 장기전이다. 단기전에서 운의 능력은 식충이에 불과하지만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전투는 정보전의 양상을 띈다.
세계 최고, 최강의 영신마인 무고경주의 후인이다. 실력은 확실하다.
운은 팔을 굽혀 알통을 만들어보였다.
"맡겨두그래이! 나라꼬 활약 못 할 것 같나? 해주겠데이."
내가 유운을 보자 유운은 어느샌가 감았던 눈을 떴다. 내가 말할차례가 끝났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리라.
유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온 소화도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갈 채비를 갖췄다.
"출발은 1주 뒤의 아침 9시. 인천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 날 떠날 것이라고 미리 언질을 주었으니 준비는 끝나 있을 것이라고 믿죠."
신사처럼 허리를 숙여 모두에게 인사하곤 소화를 데리고 깔끔하게 집에서 나가버린다. 선생님도, 하여도, 운도, 우도, 소누도.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지 않는 인원 전부가 유운마냥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한번 펴고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다.
"방에서 자고 있을테니까 오지마. 요즘은 통 편히 쉬지 못 했거든. 챠이,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내가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문을 닫았다. 문에서 누군가가 기댄 것인지 약간의 진동이 느껴졌다. 그것을 확인하고 내 방 침대에 앉아있는 누님을 보았다.
"누님. 이동을."
"알았어."
누님이 있는 곳의 바닥에서 원형으로 파문이 뻗어나갔다. 세상을 감싸안는 푸른 빛은 이윽고 내 발밑까지 침범해 몸을 바닥으로 끌어들였다.
그것에 반항하지 않고 그대로 빨려들었다.
마치 물에 몸을 뉘인 것 같은 신비로운 감촉이 느껴졌다. 언젠가 써보았던 요연의 '이동'과는 격이 다른 정밀도다.
눈을 뜨자 정육면체의 푸른 공간이 보였다. 그곳에는 유운과 소화. 그리고 우리집에 거주하는 마수 중 하나인 모색심명이 있었다.
"오셨습니까."
짤막하게 부르는 모색심명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보이곤 소화를 보았다. 영문을 모르는 듯 알쏭달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화. 모르는 것 같아서 이야기 하겠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배신자가 있어."
"뭐!? 누군데?"
"알고는 있지만, 말할 필요는 없어. 위험하니까."
소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입이 그리 가벼워 보이냐는 얼굴이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기에 덧붙였다.
"입이 무겁건, 가볍건. 상관 없는 거니 신경 쓰지마. 너에게는 그 배신자 중 하나의 처단을 맡기고 싶어."
배신자의 처단. 그 단어에 소화는 흠칫 떨었다. 아마 자신이 아는 누군가를 벤다는 것이 조금 형용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하긴, 보통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아니다.
"네가 알리가 없는 자야. 나도 잘은 모르고. 그러니 베는데 거부감은 없을거야. 인간의 모습조차 아닐테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알았어. 해볼께. 하지만 내 능력은..."
"알고 있어. 그래서 이녀석을 준비한거야."
내가 손을 뻗자 모색심명이 머리를 디밀었다. 빛나는 털가죽의 부드러운 감촉이 손끝에 감돌았다.
소화의 능력은 통칭 '군신의 기'. 아군이 많으면 많을 수록, 적군이 많으면 많을 수록. 자신이 강해지고 아군의 능력을 상승시키는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혼자서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힘.
그렇기에 우리집에 거주하는 마수군단이 있다. 이들이라면 충분히 도움 될 것이다.
소화는 처음 보는 표의 모습에 눈을 빼앗긴 듯 피부를 쿡쿡 찔렀다. 표는 싫지만은 않은지 털을 부르르 떨었다.
유운은 나를 보았다. 나도 유운을 보았다.
함께 푸른빛으로 감싸인 공간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