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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솔직히 마법을 쓰는 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불안불안 했지만 의외로 요연의 공간전이 마법은 완벽했다. 한번에 내륙지방으로 전이시킨 요연은 관광을 하기도 전에 다시금 손으로 허공에 문자를 그리더니 또 전이를 시전했다. 몸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과 같은 느낌이 잇따라 피부를 훑었다.
그런 행동을 몇번이나 반복되었을 쯤에야 요연의 마법은 정지했다. 어디에 도착했나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니 안개로 가득끼어 있었다.
평소라면 안개의 도시 런던답다고 말했을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이 안개에서는 마력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일반인조차도 거북하다고 느낄정도의 마력안개. 마법사라면 마법조차 쓰지 못 하게 하는 결계형의 안개다.
"큭... 아프잖아."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 안개는 폐로 스며들어 내부의 마력을 강제로 흩어놓는 기능이 있었다. 내 마력속성 중 하나인 '정화' 때문에 마력 자체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반발'속성에 맞물린 탓인지 통각은 느껴졌다.
내가 괴로워하자 황급히 요연이 내게로 다가왔다. 표정을 읽기 힘든 얼굴이지만 걱정하고 있다는 진심은 엿볼 수 있었다.
"요애, 괜찮으십니까?"
"조금 아픈 것 뿐이야. 데미지는 없어. 신경 쓸만한 것은 아니지."
광진은 안전권이라 할 수 있는 일식을 제외하면 모두 몸을 깎아먹는, 그야말로 양날의 검인 기술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기술이 주력기.
통각에는 익숙해져 있다.
짐짓 괜찮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요연이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않도록 되물었다.
"그런데 요연이야말로 괜찮아?"
요연은 자신에게 질문이 날아오자 예상하지 못한 듯,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니오. 공기의 냄새가 다르다는 것은 알정도이지만 딱히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군요."
사소한 일(이라고 하기는 조금 뭐 하지만)에서조차 요연이 가진 황룡의 스펙을 느낀 나는 자신과 요연의 격차를 실감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나랄까, 타격을 받은 사람은 나 혼자 밖에 없어보였다.
핵폭탄을 맞고도 멀쩡할 것 같은 유다는 일단 논외. 챠이도 일단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능파 역시 용종 특유의 정화 능력으로 인해 별 영향이 없다. 호지는 기분 나쁜 듯 손을 휘젓고는 있지만 타격은 없어보였고 슈는 전신의 빛무리로 보아 시간계 마법으로 안개가 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듯 했다. 부럽기 짝이 없다.
나보다도 심하게 타격 받았을 운은 다행히도 슈가 손을 썼는지 하얀 빛이 그녀를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었다.
일단은 모두가 무사한 것을 알았기에 우선 유다를 불렀다.
"유다. 이것에 대해서 뭐 아는 것 있어?"
"본 적은. 허나 정체는 모른다. 나의 힘은 일반적인 마법과는 개념이 다르니까."
마력이라 불리는 자연계의 힘과는 다른, 세상을 초월한 철학적인 힘. 업(業). 그 힘을 다루는 유다에게 그런 질문은 핀트가 빗나간 모양이었다.
어린애다움은 집에다가 두고 온 능파가 고까운 눈으로 이쪽을 쏘아봤다.
"할아버지. 충분히 알고 있잖아요, 이 마법을 사용한 존재쯤은?"
핵심을 찌르는 능파의 말에 난 그저 난처하게 웃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난 능파의 말대로 이 안개의 사용자를 알고 있었다. 능파가 뒷말을 잘라먹기는 했지만 그녀의 예상대로 사용자를 알면 안개의 대응법 또한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쉬운 대응법을 알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서 문제가 있었다.
그 대응은 마치 김이 서린 안경처럼 시야를 완전히 봉쇄하는 안개의 속에 숨어 있는 '숲'을 완전히 불살라버려야 한다는 것.
우리가 서 있는 곳 또한 숲이다. 물론 피해는 입지 않겠지만 그랬다간 우리가 있는 장소를 들켜버린다.
"호지야."
나지막히 사랑스러운 딸을 부르자 파리를 쫓는 것처럼 손을 휘젓던 호지가 토끼마냥 깡총깡총 뛰어왔다. 뛰어오는 그대로 내 배에 얼굴을 파묻은 호지는 귀여운 얼굴로 갸웃했다.
"왜? 이 안개를 날려버릴까? 아니면 숲을?"
... 아무리 양딸이라지만 정말 파괴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다.
"아니. 이것을 만든 장본인을 찾아줘."
"에엑, 그거 귀찮은데."
"하지만 너 밖에 할 수 없단다. 너의 그 '군단'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어."
내 말에 볼을 감싸며 기뻐한다. 그 행동에 나는 자신과 호지의 상황을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현재 마력 안개라는 특이한 트랩을 쓰는 장본인을 포획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너 밖에 할 수 없다는 말에 쉽사리 받아들인다.
대화와 상황이 완전히 따로 논다. 하지만 뭐 어떠랴. 호지가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 내가 '작전'을 시작하면 울고 불고 난리가 날테지.
호지는 입고 있는 코트형태의 특이한 옷을 손으로 펄럭였다. 코트의 펄럭임이 허공에 낳는 잔상에서 붉은 빛 수십개가 번뜩였다.
"자, 가자!"
호지의 뒤에서 돌연 나타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이물(異物).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것들은 그 다양함과 어울리지 않는 질서를 보여주면서 허공에 파문을 그렸다.
마치 종잇장처럼 허공이 찢겨나가고 이물의 군대들은 그곳으로 천천히 행군한다. 앞장서서 나아가는 호지가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가장 활기찼던(나쁘게는 시끄러웠던) 호지가 사라지자 주변은 정적에 휩싸였다.
이곳이 전장인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안개의 고통에 익숙해져 갈 쯤, 누가 나에게 용건이 있는지 내 어깨를 흔들었다.
어째선지 안절부절하는. 슈다.
"저기, 요. 여긴... 영국인거지?"
"응. 그런데? 아, 그러고보니 슈는 이곳이 고향이구나."
현지인의 뺨을 후려갈길만큼 한국어가 능숙한 슈다보니 잊고 있던 사실이지만 슈는 순수 영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언젠가 길시언과 술을 먹었을 때 들었으니 절대로 틀릴리가 없는 사실이었다.
여전히 머뭇거리는 몸짓으로 슈가 말을 입안으로만 굴렸다. 슈가 평소에 보여주던 부끄러움과는 다른 모습이다.
보통은 이해하지 못 하겠지만, 난 '이해'한다.
그녀가 어째서 저리 안절부절 못 하는지. 어째서 지금 나에게 말을 건 것인지.
슈는 두 검지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머뭇거리다가 결국 말을 입에 올렸다.
"그... 할거야? 요가 짠 작전."
"응. 애초에 계획된 것이니까 말이지."
"그, 그렇구나."
내 말에 마지 못해 수긍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가냘픈 손자를 걱정하는 할머니 같은 수심이 가득해보였다. 나는 의수가 아닌 오른팔을 들어 가볍게 쓰다듬었다.
"... 신경 쓸 것 없어. 위험하지 않아."
"아니야, 요는 여기가 어떤 곳인지 모르니까....!"
"그럼 여긴 '어디'지?"
공식적으로 이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나와 능파, 누님, 유운. 이렇게 네사람이다. 비공식적으로도 그러 할 터이다.
하지만 슈는 이곳이 어딘지 짐작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온 뒤 단 한번도 이곳으로 소식을 보냈을리가 없는 슈가.
마법협회의 총단이라서? 요정의 가호가 함께 하는 나라라서?
말도 안되는 소리다.
마법협회의 총단은 물론이고 지부를 모조리 끌어들여도 챠이 하나 어쩌지 못 한다. 요정은 확실히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방금 보낸 호지의 도깨비군단만으로도 몰살시키는 것이 매우 간단할 터.
불안요소는 없다. 그것을 마도의 극한을 본 슈가 모를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안해 한다는 것은 이곳이 카타스트로피의 총단이기도 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
나의 추궁에도 대답하지 못 하는 슈. 나는 등을 돌렸다.
".... 대답하지 못 하겠으면 하지 않아도 좋아. 어차피 넌 이 작전에서 '제외'니까."
"어, 어째서!?"
".. 대답할 필요도 없어."
슈는 입을 다물었다. 슈 스스로도 어떠한 억지를 쓰던 간에 이미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설사 친인이라 하더래도 '방해'가 된다면 잘라낼 수 있는 사람이다. 설사 슈라고 하더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가슴 아픈 선택이지만 망설임이 있는 상대에게 등을 내줄 수는 없다. 날 믿고 따라와줄 동료들의 목숨을 맡겨둘 수도 없다.
발을 옮겨 슈에게서 멀어졌다. 슈와 적당한 거리가 되었을 쯤에야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조금 무른가. 하지만 나로선 이게 한계.....니까."
슈는 날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해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심한 말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은 차별이었다.
스스로도 적이라면 아군이라도 베어낸다, 그렇게 다짐하고 말했다. 하지만 날 사랑해준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유보하고 있었다.
물론 배신은 아니라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통은 그냥 죽였겠지."
"제가 쳐죽일까요?"
담담하게 무서운 말이 내 혼잣말에 끼어들었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붉은 코트가 인상적인 챠이다. 삼검주 최약이라고는 하나 강대하기 그지 없는 챠이가 내 근처에 있으니 마력 안개의 힘이 조금 옅어진 느낌이 들었다.
"적이 되면 무서운 녀석이라는 것은 유다전 때 느꼈습니다. 그러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이미 대응법은 생각해뒀고 지금 죽이면 사기가 떨어져."
냉정한 표정으로 논리적인 반박을 해내는 나. 혼란스러운 것이 분명한데도 이렇게까지 해내는 것도 웃기기 그지 없는 일이다.
게다가 슈는 배신자가 아니다. 그것만은 장담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슈는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누님의 보증이니 그것은 틀림없이 옳을 것이다.
그녀가 걸리는 것은 아마 유다가 말했던 것.
그 순간, 공간이 비틀리면서 호지가 가볍게 내려섰다.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행한 군인처럼, 호지는 경례를 해보였다.
이것으로, 작전 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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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쓰기는 했지만 작전 자체는 나중입니다. 소설상 다음날이던가.
여하튼, 비축분상으로 현재 방어편이 거의 끝났습니다(짝짝짝). 쳐낼놈은 쳐내도 중용할 놈은 중용하고 있지요.
막판인 최종편과 방어편의 사이에는 자그마한 에피소드들이 왕창 들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쓰고 나니 필요할 것 같아서요.
게다가 주인공녀석의 빈곤한 연애경험도 채워줘야 할 것 같구요.
하여간, 즐겁게 봐주십시오.
..............그런데, 설문에서 미쳤다를 클릭한 사람 나와요. 나만큼 정상인 인간(!?)이 어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