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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호지가 나오고 다른 도깨비들이 나왔다. 그 뒤로 공간이 일그러진 틈세에서 불꽃의 거인이 한발짝 한발짝 걸어나온다. 약간이지만 안개 희미해져 있던 안개가 마법의 불꽃에 서서히 점멸해 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도깨비들의 돌격대 대장이자 호지의 친아버지이기도 한 가온. 그는 강력한 전사이니, 아마도 이번 전투에서 상당히 힘 좀 쓴 것이 틀림없다.
불이 마치 청소기에 빨려드는 것처럼 그의 얼굴 부위로 사라져 간다. 보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위협하던 기색은 사라지고 평범한 장년인의 모습만이 남았다.
정적이 흐른다. 어색함이 감도는 이곳에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나는 가온에게서 딸을 빼앗은 파렴치한이나 다름없다. 사막에서는 돌려줄 마음이 없다고 큰 소리치기는 했으나(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역시 껄끄러운 것은 피하기 힘들었다.
"...간만이다."
"그렇군. 별레 무양하셨나?"
"이쪽은 여왕의 무리한 부탁 때문에 등골이 휜 녀석들이 대다수다만."
여왕.
그것은 공식적인 호지의 칭호. 이름 대신 그런 호칭으로 부른다는 것은 진심으로 호지를 자신의 딸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로서는 이해 할 수 없다. 이해 하고 싶지도 않다.
확실히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자신의 딸이지 않은가? 애정을 표현해달라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생각을 끊었다.
호지가 받지 못한 사랑을 내가 주면 된다. 아버지의 일을 포기한 이상, 내가 진정한 아버지로서 살아주겠다.
"받아라."
생각을 비집고 들어오는 한마디. 그가 아이들이나 쓰는 곤충채집망처럼 빽빽하게 되어 있는 그물망을 적당하게 던져 주었다.
그 안에는 곤충처럼 날개를 파닥이는 인간의 형상을 한 작은 것들이 한 가득이었다.
요정. 영국을 수호하는 거인과 같이 이 땅의 주민.
날 괴롭힌 이 안개도, 마법협회라는 존재가 왜 하필 영국에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전부 이 요정들 때문이었다.
요정들은 일반적인 마수들보다 인간과의 관계가 밀접하다. 특히 영국에는 픽시라는 숲의 요정이 존재해 옛날부터 많은 간섭을 해왔다.
대표적으로 아서왕의 엑스칼리버나 란슬롯 같은 기사문학. 그리고 그것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증거다.
굳이 말하자면 서양의 우리나라쯤 되는 굉장히 강성한 영(靈)국이다.
".... 그런데 정작 중요해 뵈는 것은 없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왕과 왕비가 없다.
"아빠! 그건 내쪽에 있어."
호지의 부름. 나는 적당히 챠이에게 그물망을 던져주었다.
"아, 그래? 챠이. 도망치지 않게 잘 들고 있어."
"알겠습니다."
충심을 담아 대답하는 챠이를 뒤로하며 호지에게로 다가갔다. 양 옆으로 본 적이 없는 사람(도깨비)들이 무언가를 둘러싸고 모여 있는 것을 보아 그곳에 왕과 왕비가 있는 듯 했다.
"자, 풀어줘."
자랑스럽게 말하는 호지의 명에 그들은 다양한 복식과는 반대되는 질서로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하지만 어느때라도 그 둘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만한 자리에서 호지를 호위하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민족, 도깨비. 그 이름에 걸맞지 않은 단련됨이다.
팔이 묶인 듯, 뒤로 뒤틀린 자세로 꿇려진 붉은 호박바지 차림의 어린 남자아이와 그것의 어머니로 보이기까지 하는 초록색 드레스의 여성.
요정왕 오베론과 그의 비(妃)인 티타니아.
"큭... 무슨 짓이오! 갑자기 난데없이 습격해오다니!"
어린모습은 저주 때문이었던가. 하지만 그에 걸맞지 않은 왕의 위엄이 그의 목소리에 어려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르는 것이 있다.
"챠이. 머리를 발로 갈겨."
빠각.
대답 따위는 없었다. 챠이는 들고 있던 그물망을 슈에게 넘기곤 그 즉시 오베론의 머리를 걷어찼다. 뼈가 뒤틀린 것만 같은 소리가 숲을 울렸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하얀 피부에 핏물이 터졌다. 교섭의 여지도 없이 머리를 차인 것을 이해 할 수 없는 듯, 얼떨떨한 눈으로 날 올려보았다.
"머리를 밟아 누가 위인지 가르쳐 줘라."
쿠웅.
이번에도 대답은 없다. 챠이의 발에 찍혀 바닥에 고개를 쳐박은 오베론의 곁으로 티타니아가 다가왔다. 그녀 또한 팔을 묶인 터라 울먹이는 눈으로 오베론을 보다가, 이쪽을 쏘아보았다. 살의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이라는 의념이 전해져온다.
짜증이 났다.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난다.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는 놈은 나 밖에 없는 것일까. 포로가 된 주제에 배짱은 두둑하다만 그것도 도망칠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고압적인 태도는 피를 부른다는 것을 몸으로 가르쳐줄 필요가 있겠다.
"슈."
"에, 엣? 나?"
"망에서 픽시 다섯마리만 죽여."
난데없는 참수명. 그 누구도 말하지 않고 멍하니 바라본다. 슈 또한 내키지 않는 듯 들고 있는 그물망과 나를 번갈아보았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얼굴로 손을 망 안으로 집어넣었다.
인간의 팔은 들어갈 수 없는 망임이 분명한데도 슈의 팔은 너무나도 쉽게 그것을 파고 들어 요정 하나를 쥐어, 뭉개버렸다.
그것이 다섯차례.
피와 살점이 뚝뚝 흘러내리는 슈의 손.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이 슬픔에 잠겼다.
사람을 죽인적은 있어도 이런 방식으로 죽인 일은 없었던 것이리라. 아니면 영국에 있었을 때 요정과 조금 친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잔인하게 사라져 가는 생명의 빛을 보며 챠이에게 밟혀 있는 오베론이 소리쳤다.
"너, 너무한 처사요! 포로가 된 것도,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건지도 인정하겠소. 그러니 우릴 포로답게 대우해주셨으면 하오."
"포로답게?"
"그, 그렇소. 포로답게."
나의 반문에 그는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듯 살짝 입술을 떨었다. 잠시동안 생각에 잠겨 고개를 숙였지만, 답은 금방 나왔다.
원래부터 카타스트로피{파국(破國)}를 진짜 파국으로 만들기 위한 작전에 요정들이 마법협회에 선물한 이공간의 이용도 포함되어 있다. 지금이 딱 적기이니, 지금 그가 말하는 '포로답게'라는 말은 받아들여도 될 듯 싶다.
"챠이. 포로답게 다루어줘라."
챠이는 무감정한 얼굴로 발을 들어올렸다. 흙을 약간 먹은 것인지 왕의 위엄과는 어울리지 않게 기침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챠이를 향해 덧붙였다.
"슈, 챠이. 모조리 죽여버려라. 그래도 포로이니 아픔을 느낄 세도 없이 순식간에 숨통을 끊어서 편하게 해줘."
"요, 요!?"
"폐하...?"
이번에는 보통 반응이 아니다. 죽이려는 당사자의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것은 물론이요, 동료들도 무슨 소릴 하는 거냐고 묻는 듯한 반응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아까까지 말을 잘 듣던 챠이조차 검을 휘두르기보단 반문하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능히 짐작해 볼만 하다.
그 모습을 조금 불쾌한 눈으로 바라보던 난 잊었던 말을 생각해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잊다니, 죽이는 것은 '아직' 아니 될 말씀이다.
손을 젓고 일단 멸절명령을 중지시켰다.
"아, 미안. 말이 헛 나왔다."
안도하는 목소리가 주변에서 흘러나온다. 나는 말을 덧붙였다.
"요연. 요정계의 공간을 장악할 수 있겠지?"
"... 예. 할 수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그것을 장악해 줘."
마법협회가 있는 영국의 런던과 요정계는 겹쳐져 있다. 그 차원과 차원의 경계에 마법협회가 존재하는데 요정계의 공간을 장악하게 되면 공간째로 짓눌러버릴 수 있다.
물론, 그들은 최대한 방어하며 도망칠 시간을 벌 것이다. 하지만 내 작전은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 지금에 해야할 것만을 집중하면 된다.
요연, 그녀가 장악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왔다.
"끝났습니다."
"오, 빠른데. 좋은 일이지. 그럼 챠이? 멸절시켜라. 쓸데없이 요정계가 무너질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방해되는 것은 없어."
다시금 시작된 멸절명령. 챠이는 머뭇거렸다.
"진, 심이십니까..? 여기서 1만에 가까운 요정들을 모조리 살해하란 말씀이..."
"1만이나 됬어? 뭐, 그건 내 알바 아니지."
무언가가 이상하다. 그렇게 말하고들 있는 눈빛에 나는 기억력이 나쁜 이들에게 사막에서의 말을 상기 시켜줄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빙룡 자비나타에게 뭐라고 했지? 중립은 인정할 수 없다. 아군, 아니면 적. 그 뿐이다라고 난 말했어. 중립이라도 쳐죽일 내가, 적을 살려둘거라 생각하는거냐? 설사 배반하고 아군이 된다고 해도 배신한 놈은 몇번이라도 배신하게 되어 있어. 가뜩이나 위험한 상황에 믿을 수 없는 놈은 당장이라도 잘라낼거다, 나는."
배신하겠다면 너희들이라 하더래도 잘라내겠다는 의지를 표방하자 모두의 입이 다물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들 사이에서 능파가 걸어나왔다. 능파는 만면에 미소를 띄운 채로 내게 손짓 했다. 영문은 몰랐지만 키를 맞춰주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시선을 낮추어 그녀를 보자 순식간에 주먹이 얼굴에 꽂혔다.
빠각.
내 얼굴에 나는 소리라곤 믿기지 않는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뒤이어 천천히 화끈한 충격이 볼에서 느껴졌다.
"참수는 중지.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날 대신해 명령하는 능파. 화끈한 감각이 볼에 따끔거렸지만, 이상하게도 화는 나지 않았다. 이성은 이것을 당연한 조치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도 반문했다.
"무슨 짓이야, 능파. 난....!"
"전 할아버지의 작전에 큰 불만은 없어요."
담담하게 대답하는 능파. 하지만 진실로 그녀의 말대로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죽이나 살리나 득실은 비슷... 아니, 죽일 때보다 못 하겠죠. 하지만 이번 행동은 할아버지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그런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름 아닌 능파가 날 보며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것이다.
능파가 머릴 긁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은 노숙! 하루동안만 여기서 버틸거니까 준비하세요."
능파의 말에 몇몇은 요정의 포박을 위해 남고 다른 몇몇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노숙을 준비했다.
나 이상의 통솔력. 과연 나의 판단은 틀리지 않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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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쳐맞았군요.
이번 내용 특성상 다음편을 저녁쯤에 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좋은 부분을 집필중이라 먼저 가도록 하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