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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231화 (23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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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개시!

숲이라는 주제의 그림에서 일부를 때어내고 다른 그림의 집을 가져다 붙인 것 같은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몇분 걸리지도 않고 만들어졌으면서 의외로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하루를 보내기에는 아주 적당했다.

아침 일찍 모두가 일어나 집을 만들 때 함께 만든 것 같은 탁자에 둘러모였다. 조금 피곤해보이는 요연이 찌뿌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공중을 보았다.

뒤로 다가가 슬쩍 가슴으로 끌어들이자 잠이 달아났는지 끔벅거리며 날 보았다.

"피곤해?"

"아, 아닙니다. 마력을 조금 많이 써서..."

"그게 피곤하다는 소리가 아닌가?"

요연 스스로도 그것을 느꼈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 피곤함이 나 때문인 것을 알기 때문에 순수하게 즐길 수 없다는 것이 슬퍼 쓰게 웃었다.

요연 정도의 전사가 이만큼 지쳐 있는 이유는 내가 부탁했던 공간장악 때문이다. 아무리 황룡의 진전을 이었다지만 결국 개인. 요정왕과 여왕이 힘을 합쳐서 세운 요정계를 혼자서 제어하기란 무리가 따랐을 것이다.

요연은 내 일그러진 얼굴에 손을 저어보였다.

"그, 그래도 능파가 오베론과 티타니아를 이용해 지금은 그들이 맡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역시,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으며 말릴 때부터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그 정도가 아니면 능파에게 건네준 그 쪽지에 그런 말을 써넣지는 않았을 것이다.

능파가 탁자를 탕탕쳤다. 남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행동이다.

"자자, 오늘 친다고 했으니까 작전에 대해서 설명해 줘야 하잖아요? 잔소리 말고 빨리 앉아요."

"예이 예이."

능파의 질책에 나는 자릴 찾아 적당히 앉았다. 장난스러운 얼굴을 지우고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이 순식간에 고요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들에게, 먼저 다짐 받아야 하는 것을 입에 올렸다.

"너희들에게 말할 작전은... 위험도가 높다. 이 작전을 너희들이 '절대로'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 할거야. 승낙... 하겠어?"

나의 말에 단 한사람을 빼놓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사람에 속하는 능파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본다.

과연 능파. '절대로'란 대목과 '거부하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무언가를 짐작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여기까지 온 이상, 머뭇거리면 배반자가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작전 내용을 알아채지는 못 하겠지만, 위험도가 더욱 높아진다.

능파의 반응을 무시하며 나는 그 작전을 입에 담았다.

"너희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곳은 카타스트로피의 총단이다. 짐작한 사람도 있을거고, 이미 알고 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말에 모두가 숨을 삼켰다. 공포와는 다른 긴장감이 탁자를 휘돌았다.

우리 팀은 강력하다. 어떠한 장벽도 넘을 수 있고 어떠한 난관도 무너뜨릴 수 있다. 하지만 카타스트로피의 총단은 사정이 다르다. 다른 누구도 아닌 팔대간부가 집결해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위험도는 사막전과 유다전 이상.

그들의 홈그라운드다.

나는 먼저 작전의 세부사항을 입에 올렸다.

"일단 장악이 끝난 요정계를 이용해서 런던을 포위, 그리고 특제 폭탄의 설치. 이것에 대해서는 호지, 너 밖에 할 사람이 없다."

호지는 이곳에서 상당한 군력(軍力)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강해도, 한손은 두손을 못 이긴다. 누님처럼 존재자체에 물음표가 들어가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 법칙은 깨지지 않는다.

호지는 내 팔에 들러붙었다.

"히힛, 알았어."

"그리고 다음은... 챠이. 너에게는 따로 전해둔 사항이 있었지. 입 다물고 있어."

챠이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순간 몇사람의 눈이 빛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머지는 전부 대기. 최종신호(라스트 콜)가 올 때까지 전부 전방위를 점한 도깨비군단과 같이 대기하고 있어야 해."

덧붙이는 마지막 말에 능파가 탁자를 내려쳤다. 얼굴은 이미 병자처럼 창백해서 보는 것조차 안쓰러울 정도였다.

능파의 저런 반응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 당연한 것이었다. 이것은 아마 그녀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작전, 그 이하의 것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이번 작전은 '불가능'일테니까.

나의 작전. 그것은,

"혼자서, 카타스트로피의 본단에 뛰어들겠다고요...!? 미쳤어, 사막과는 격이 달라요! 할아버지가 죽는다면....!"

"능파."

짤막하고, 낮게 내뱉은 말은 능파의 외침을 틀어막는다. 헉헉거리면서 내 뒷말을 기다리는 능파의 시선에 맞섰다.

"난 죽지 않는다."

담담하게, '거짓말'을 뱉었다.

거짓말. 거짓말이다. 이것을 지킨다는 것은 그녀의 생각보다 덜 어렵기는 하지만 어렵다는 기준에서는 매한가지. 게다가 능파가 날 '생각하는만큼' 이 계획은 깨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힘든 작전이었다.

능파가 다른 말을 제차 잇기 전에 호지가 내 팔을 흔들었다.

"지지지지지지지, 진짜야!? 아빠, 혼자 뛰어들꺼야?"

"안됩니다. 사막에서처럼 손도 쓰지 못 하고 일이 끝나는 것은 사양!"

요연까지 합세해 날 말리기 시작한다.

이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 껄끄러웠던 것인데. 기어코 이런 상황이 오고 말았다. 그래도 날 생각해준다는 것은 기쁘다.

뚝.

탁자의 일부가 뜯겨나갔다. 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소리에 파도를 일그러뜨리는 소리가 난 곳을 보았다.

시간의 대마법사이면서 카타스트로피와 기이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슈. 그녀가 쓸데없는 말을 입에 담았다.

"차라리 내, 내가 갈께! 요가 그런데를 가게 둘 수 없...."

휘익.

마치 나는 것과 같은 동작으로 능파가 슈의 앞으로 짓쳐들었다. 공격과도 같은 돌격에 슈가 황급히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콰득.

자신이 있던 자리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지는 것을 본 슈. 하지만 능파의 오만하기까지 한 시선에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슈? 착각하지마. 다른 사람이 다 되도 너는 안돼. 어째서라고 묻지는 않겠지? 할아버지가 알고, 내가 알고 유다가 알아. 적당적당히 속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

"아, 아니야! 속일 생각은 전혀...!"

"그러면 어째서 가만히 있지?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어, 바다 때부터."

바다. 슈가 일으켰고, 결국 슈의 항복으로 종결지어진 사건을 말함이다.

슈의 반박이 사라졌다.

"카타스트로피가 접촉해온 것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어. 게다가 외국인이라는 특성은 한국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겠지. 하지만 어째서 '가면'을 가지고 있었지?"

가면. 그것은 연락만으로는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배달을 해야만 하는 것. 하지만 그랬다면 어디서 걸렸을 것이 분명하다. 가면의 힘에 대해서는 민감한 치우회가 있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

가면의 힘은 일반적인 마법으로 억누른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이상한 점은 그것말고도 더 있었다.

"게다가. 듣자하니 협박은 전화...였지? 어째서 전화만으로 납치당했다는 것을 확신했을까? 목소리? 위조가 가능하죠. 마력? 애초에 전달할 수가 없어! 할아버지를 좋아한다는 가면을 쓰면서, 뒤에서 뭔짓을 저지르는 여자에게, 무슨 일이든 넘겨줄 것 같나요?"

"능파야 말이 심하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죠. 할아버지가 정에 매달린다면 제가 쳐내줄테니 그리 아세요. 적당적당히 넘어가다간 세현이란 분의 복수도 안되니까."

대뜸 아픈 곳을 찔러온다. 일부러 찌르는 것이 분명하지만, 틀린 말 또한 아니었기에 반박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그리 쉽사리 수긍할만한 말 또한 아니었다.

슈는 내 친구다.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적일 수도 있고 이도저도 아닐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이 정확하다면 슈는 나에게 있어서 '요연과 챠이에 해당하는 인물'일 것이다.

내가 탁자를 내려쳤다. 마력을 담지 않은 행동이라 능파처럼 무언가를 부시지는 못 했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정돈 되었다.

"어쨌든, 슈의 사안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하겠어. 능파 너는 다른 일에 신경을 써다오."

"흥, 마음대로 해요. 어차피 이번 작전도 알아서 할테죠."

내 말에 마음에 안드는 듯 능파가 손을 휘저으며 침구쪽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꾸욱.

팔을 잡아당기는 이 느낌. 호지다.

능파조차 손을 들었는데 끈질기게도 내 팔에 들러붙어서 놓지 않고 있다. 팔을 빼내려고 해도 태생적 근력의 차이는 넘어설 수가 없는듯 빼낼 수가 없었다. 호지는 눈물을 내 옷소매로 닦아내며 나를 올려보았다.

"아빠... 슈가 좋아?"

... 뭔가 주제의 핀트가 많이 어긋난 느낌이다.

"왜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아빠는 어지간해선 그렇게까지 남을 위하지 않는걸. 부, 분명히 아빤.... 우엥."

급기야 울어버리는 호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 아이의 감정변화는 정말이지 따라가기 힘들다.

고개를 돌려 슈를 보았다. 아까 능파의 추궁으로 창백해져 있지만 호지가 말하는 것을 듣고 기분이 조금 나아진 얼굴이었다.

그걸고 만족이지만.... 그런데 말이야.

"...근데, 내가 혼자 돌격하는 것엔 이제 아무도 관심이 없는건가?"

요연만이 내 등뒤로 다가와 꼬옥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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옙. 아이젠입니다.

슈에 대한 것은 예상하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혼자서 돌격하는 것을 예상하신 분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릅니다만.

하여간 이 다음 부터는 주인공의 독무대입니다. 주인공인데도 중간중간에 미출현인 부분이 있다던가 주인공보다 더 멋진 놈이 있다던가, 뭐 그런 적도 많이들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표를 뒤집을 겁니다.

작가의 힘으로! 멋지고! 아름답게(?)!

뭐, 그렇다고 다음편부터 멋진건 아닙니다. 다음편은 단순한 '돌파'니까요.

주인공의 진면목은 세편 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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