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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235화 (23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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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개시!

쿵!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 그 소리가 앞에서 터져나온지라 짧은 금발머리의 소녀, 슈는 몸을 움츠렸다. 다시금 앞에 있는 도깨비의 여왕, 호지가 발을 굴렀다. 안개 때문인지 약간 물렁한 바닥을 타고 충격이 슈에게 닿았다.

데미지를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즐거움조차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행동의 진의를 아는 슈로선 공포에 떨 수 밖에 없었다.

죽음. 그 단어를 느낀 적은 많았지만, 지금처럼 확실하게. 그것도 동료에게 살해당할 것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호, 호지야. 진정해..."

"진정!? 될 것 같아? 아빠가, 아빠가 붙잡혔다는데!"

호지의 말에 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잘못은 전혀 없다고 딱 잘라 대답할 수 있는 그녀였지만 지금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거짓말이 될 것이라는 것 또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요가 출전한지 약 여섯시간. 그녀들이 머물고 있는 통나무집에 단 하나의 해골병사가 편지를 들고 찾아왔다.

내용은 '육왕을 잡았다'는 그 한마디뿐. 그것을 본 능파는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다들 그 편지를 보았음에도, 실질적인 두뇌라고 할 수 있는 능파가 움직이지 않겠다고 암묵적으로 시인해보이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호지는 열이 머리끝까지 솟은 상태. 사실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능파는 계속 추궁해도 입을 다물고 있고, 심지어 요에게 무언가를 들었다던 챠이조차 아무런 반응없이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한 슈를 위협하는 것이다.

아빠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가만히 있으면 딸이 아니라고, 호지는 생각했다.

"적당히 해요, 엄마."

호지와 슈의 사이로 손을 뻗으며 제지하는 능파. 도깨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위협하던 호지였기에 도리어 능파를 올려다 보면서 이를 드러냈다.

"능파. 너도 마찬가지야. 어째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잖아. 지금쯤 아빠는.. 아빠는....!"

"할아버지는 괜찮아요."

한치의 의심도 없는 단정. 자존심이나 그런 사심은 전혀 끼어들지 않은 말이었기에 잠시 호지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할아버지는 애초에 15일을 전제로 하고 나가셨으니까 잡힐 것정도는 예상해두었겠죠. 설마하니 하루만에 잡힐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능파는 아군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아이였다. 그렇기에 요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가 비장의 무기를 모조리 쏟아낼 것이라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허나 잡혔다. 이건 너무 빠르다. 작정하고 침투한 요라면 빨라도 사흘은 걸릴 것이라고 계산한 능파로서는 이상하기 그지 없는 상황이었다.

일부러 잡혔거나 아니면 상대방의 대응이 요를 앞질러갔거나. 그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후자일 경우에는 어떤 상황이든 손을 쓸 수가 없으니 일단 전자를 기준으로 생각해보자면, 지금은 가만히 신호가 올때까지 기다리는 것 밖에는 수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신호를 보낼 것이냐는 것.

잡혀있으니 감시는 심각. 마력이 폐지당하거나 봉인당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신호를 보낸다?

불가능이다. 설사 유다라해도 그런 상태라면 힘들 것이다. 하물며 요인 경우에야.

'하지만.... 역시 걸리는 것은 그 택배...죠.'

일본에서 온 그 택배. 그리 큰 힘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무심코 지나치기는 했지만 그것을 받았을 때 그의 얼굴에 각오가 어린 것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요가 그런 얼굴을 지을 때는 성공확률이 낮은 것을 생각할 때나 지었다.

'불안한 작전이란 소린가?'

"능파야...?"

"아, 생각하느라 그런 거니까 신경쓰지 말아요."

능파의 반응에 호지는 안도한 듯 숨을 길게 빼내곤 슈를 매섭게 노려봤다. 작은 동물처럼 공포에 떨며 웅크리고 있는 슈를 보자니 측은지심이 들었다.

애초에 슈는 잘못한 것이라곤 없으니까. 단지 진짜 배신자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였기 때문에 의심 받을만한 짓을 끌어내긴 해야 했다.

그냥 냅두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기는 했지만 자칫하다간 사단이 날 것 같았기에 호지를 제제하기로한 능파는 슬쩍 헛기침을 했다.

"큼. 슈를 괴롭혀봤자 아무것도 안나오니까 그만둬요."

"하지만 능파야. 슈는 위험하다고...."

그런 반응에 넘어가준 것이 능파가 바란 것이기는 했으나 이런 상황까지 오면 곤란하다. 능파는 헛기침을 하면서 호지의 귀에 낮게 속삭였다.

"이건 의도한거라구요. '진짜'를 낚기 위해. 그러니까 조용히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눈을 이리저리 힐끗거렸다. 주변에는 자신과 호지, 웅크려서 이쪽을 힐끔거리는 슈 밖에 없었다.

배신자는 다행히도 요의 낚시에 걸려 힘껏 퍼덕이고 있는 듯, 이쪽의 동향에는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 어쨌든 그렇게만 알고 있어요. 전 이만 갈테니까."

적당히 호지와 슈의 관계를 정상으로 되돌려놓은 능파는 발길을 돌려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사신검이 꽂힌 검갑을 장비한체 여유로운 얼굴로 차(커피일지도)를 한잔 마시고 있는 요연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검을 갈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능파의 턱이 내려갔다. 여유를 즐기고 있던 요연은 능파가 온 것을 보았다가 다시 마시는 것에 집중했다.

무시당했다. 그것을 인지하자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 무시 하지는 말아주죠? 이래뵈도 아군의 생사를 위해 뛰고 있는데."

"요애만큼이나 뛰고 있지 않으면서 그래봤자 무용하다."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말을 내놓는다. 그것에, 그 말에 반박할 대답을 찾지 못한 능파는 지금 저것이 진정으로 요연인지 돌이켜 보아야만 했다.

지금쯤 요연이라면 몸소 슈를 베어보이며 '무슨 짓을 한 거냐~~!!'하고 외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렇기에 일격에 목을 베버릴만한 틈을 노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마치, 자신과 이 일은 동 떨어진 일인 것처럼.

"화... 안나요? 슈한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요애는 단 한번도 슈를 공격하는 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곧, 카타스트로피와 관련은 있되 연계하고 있지는 않은 자... 라는 것이겠지요."

너무나도 확실하게 진실을 짚어내는 요연. 능파는 다시금 저것이 요연인지 차분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봐도 진짜 같아보인다.

요연이다. 요연이란 말이다. 그런데 지금 하는 말은 전혀 요연 답지 않았다.

우직하고 무식하게 달려들어 베어내는 타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꼭 그런 것이 아닌 것 같다.

아니, 아니다. 그녀는 '그랬다'. 하지만 '바뀐 것'이다.

요를, 할아버지를 만나고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덧붙이는 요연의 말에 희미하게나마 슬픔이 어려있었다.

"요애는 슈에 대한 애정도가... 높으니까요."

그것은 비단 이번 일에 대해서만 평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요의 손에 죽기로 결심하고 승부를 걸었던 때도, 그는 너무나도 쉽게 분노했다.

슈를 죽였다고 거짓말했기 때문에.

아닐 수도 있었다. 요는 기본적으로 친한사람에게 매우 상냥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요연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흐응."

능파는 부정하지 않고 요연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언젠가 요가 주었던 종이쪽지를 꺼내들어 그곳에 쓰인 글을 눈으로만 읽어내렸다.

평범한, 자신마저도 짐작한 내용. 그 끝에 종이가 접혀 있는 것이 보였다.

살짝 펼치자 그곳에 적힌 글 하나가 눈에 아프게 비쳐들었다.

'내가 죽는다면, 네가 이대째 육왕이다.'

요의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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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어스름하게 빛난다. 그 달빛이 떨어지는 중심에서 붉은 코트의 전사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결연한 눈으로 달을 보고 있었다.

부드럽게 몸을 감싸는 달빛. 만월이다.

"폐하는.... 무슨 생각이신거냐, 달아."

왕을 지키는 충심의 검인 챠이는 아무도 답해주지 않을 물음을 입에 올렸다. 허나, 대답이 없어야 함에도 대답은 그의 귓전을 때렸다.

"헤에. 니도 요런데서 소원같은 거슬 비는기가?"

어색한 사투리지만, 익숙한 사투리. 챠이의 시선은 그곳으로 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영신마 최강을 자랑하는 무고경주의 후인이자 자신이 열광하는 폐하의 친우인 운이다.

그녀는 슬쩍 웃어보이면서 그의 옆에 자리잡고 앉았다.

"이햐... 멋진 달이지 않노. 상황도 좋았으면... 더욱 좋겠지만서도."

"폐하가 없는 나날의 달은 무의미하지."

담담하게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해버리는 챠이를 운은 어이없게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그녀는 자주 보았다. 그의 그런 모습은. 이제는 익숙해져서 화가 난다기보다는 이냥저냥 이해하고 넘어가는 수준이 되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그녀는 질문해보았다.

"기럼, 내가 없는 달은 어떻노?"

".... 신월."

딱딱하게,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신월.

월광이 지상에 닿지 않는 시간. 아마 빙 돌아서 이쪽을 생각해준 말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어째서냐고 묻는다면, 아마 주먹을 먹이겠지만 지금은 그 한마디로 일축할 수 있었다.

"챠이."

"...뭐냐."

".. 아니데이. 그만 됬다."

운은 챠이의 어깨에 기대면서 가슴속에서 솟아오른 사심을 눌러담았다.

지금은 그저 이 순수한 감정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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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 어느새 너희 그런 관계가 되었니!?...라고 물으신다면, 나중에 특별편으로 나갈겁니다.

게다가 요가 감기 때 슬쩍 언급도 했구요.

하여간, 안녕하십니까, 아이젠입니다.

다음편부터 주인공의 간지폭풍이 시작되는군요! 나만 그런가.

어쨌든,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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