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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237화 (237/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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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얼굴이 굳는다, 그런 수준에서 케이슨의 표정이 끝나지 않았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쌓아온 수천겹의 가면이 일시에 금이 가고 무너져 내린 얼굴.

현재 케이슨은 평소에 보아왔던 웃는 낯이 아니었다.

"어.... 떻게? 들킬 이유는.... 없었을텐데...!"

"그랬다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겠지."

이유가 없었다면, 내가 알아챘을리가 없다. 내가 그 사실을 알아낸 건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보아옸던 전투와 정보들 때문이었다.

하나 하나 열거하자면 굉장히 많지만 손에 꼽자면 대략 넷.

첫째로는 일본에서 요연과 호지가 맞승부한 청룡의 존재.

둘째로는 요연에게 사신검을 전달한 사람, 운천아저씨가 말했던 검들의 제작연도.

셋째로는 일본 청룡회의 야쿠자들의 광진과 광진에 대해서 기이할정도로 많이 알고 있다는 점.

넷째로는 배신자가 상당히 오래전에 우리나라에 침투 했음에도 아무도 몰랐다는 것.

첫번째 이상한 점은 최근 들어서 느낀 것이었다.

영왕 유운에게 듣자하니, 자신이 현계시킬 수 있는 영혼은 '인간' 한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더불어 영혼이 스스로 현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소리와 함께(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저 부풀려진 것).

그런데 청룡은 현계했다. 당시에 그 가면을 쓰고 있었으니 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 때 두번째 조건인 사신검의 제작연도가 나온다.

사신검들은 천년전에 제작된 것. 즉, 가면은 죽은 후에 씌워졌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청룡을 현신시킬 필요성이 있다. 혹시나해서 유운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상대방이 황룡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구소는 가면이 제작되던 시기에 존재했다. 영왕의 비전인 현계의 매커니즘에 살짝 한발을 대고 있다하여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리고 세번째. 광진에 대한 지식.

이것 또한 그 시대의 존재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아니, 구전되었으니 존재는 알고 있었겠지만 '육식'의 특이성에 대해서는 알 턱이 없다. 내가 광진을 사용하기 전까지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단 한명, 첫번째 전쟁이라 불리는 전쟁에서 뇌공이 한번 사용했다. 그것을 보고, 알고 있을 법한 사람이며 네번째 조건인 우리나라에 배신자를 심어놓는단 대목을 충실히 행하고 당당히 행동할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단 한사람뿐이다.

뭐, 누님의 개입은 즉흥이었던 모양이지만.

"... 이런 이야기지. 틀린 말이 있나?"

배신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쏙 빼놓고 내 추론등을 이야기하자 케이슨은 웃었다. 다른 간부들과 함께 있을 때보여주던 부드러운 미소가 아니라 한껏 일그러져 망가진 미소였다.

"치즈마냥 구멍난 추론이로군."

"훗, 원래 추리의 최종점은 감이야. 뭐가 어찌됬던 간에 아닐 가능성은 항상 있거든. 네가 멍청하게 낚인 것 뿐이지."

배신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긴 했지만 지금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마법의 존재, 불패의 위용을 보고 이 세상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에 크게 자리잡고 말았다.

케이슨은 신사다운 면모를 벗어버린체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걸쳤다.

"과연.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몸소 위험에 몸을 던지셨나?"

이제는 숫제 하대다. 게다가 비꼬기까지. 정체가 드러난 것이 그에게 상당히 파격적인 이미지 탈피를 불러온 모양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쿡쿡 웃으며 그를 보았다. 조롱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자니 정기(正氣)가 넘치는 존재라고 불리는 황룡의 힘이 무색할정도로 탁해져 있었다.

"날 얕보는 것 아니야? 이래뵈도 예언에 언급된 몸, 다른 목적도 충분히 있지."

"호오. 네놈이야말로 얕보는 것 같군. 그렇게 목적을 드러내놓고, 내가 아무런 대책도 안 세울 것 같나?"

"큭큭큭, 타락해버린 용이 내놓은 대책 따위에 무너질 재미없는 계책을 내가 쓸 것 같은가 보지?"

본성을 드러내놓고 응수한다면 이쪽도 그에 걸맞게, 질문으로 공격한다면 이쪽도 질문으로 되받아치면 그만이다.

이대로 가다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화. 먼저 손을 든 것은 케이슨 쪽이었다.

".... 좋습니다, 항복하죠. 당신이 원하는 것은 이 계획이 실시된 이유... 겠죠?"

"그렇지. 그외에도 묻고 싶은 것이 있고. 그런데 그런 말투로 다시 할 생각?"

그는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얹어보였다.

"지금은 케이슨이니까요."

저렇게 주장하니 나도 할말이 없어 그저 어깨만 으쓱했다. 게다가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지금 그가 존대를 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니다.

후욱, 하고 폐 깊숙히 잠들어 있던 긴장을 뿜어냈다. 앞서 날릴 질문에 대한 대답에 어떤 것이 돌아올지 기대가 됬다.

"첫째로.... 어째서 지려고 하지? 기왕 시작한 싸움, 이기는 것이 좋을텐데."

유다 이전에도 어렴풋이 느꼈던 사실. 카타스트로피는 케이슨의 의도로 인해 패배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것도 타의에 의한 파멸이 아닌 자의에 의한 의도된 파멸.

일반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임은 틀림 없다.

케이슨은 굉장하다고 손뼉을 쳐 칭찬해보였다. 어찌보면 조롱이 깃들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한 칭찬이다.

"지는 것 자체가 저의.... 아니, '우리'들의 목표니까요."

"우리?"

"예, 우리. 카타스트로피... 아니, 본래 이름 '나라'. 이미 무너져버린 파국(카타스트로피)이지만 세계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세계를 지킨다. 인간말살이라는 위험한 간판을 내놓은 조직의 수장이 말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 하지만 그 인간말살이라는 문구조차 그의 진정한 목적으로 향하는 교두보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내가 아니었다.

내가 의문점을 짚기 전에 케이슨은 먼저 이야기를 했다.

"먼 옛날, 세상을 지배하는 '신'이란 존재와 그저 살아가기만 했던 존재인 '진인'이라 불리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말하는 케이슨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 같은 것이 보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신들은 오만했고, 강했습니다. 그렇기에 얼마되지 않아 세계를 좌지우지할 힘을 갖고 싶어했지요. 그래서, '세계의 핵'이라 불리는, 이 세계를 유지시키는 힘의 정수를 추출해내 동료의 몸에 박아넣었습니다."

"그것이 불사로군."

케이슨은 묵묵히, 잔잔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대답도,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부정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눈에 드러났다.

'신'의 존재. 케이슨이 말하는 '신'이 기독교 같은 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의 신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다. 허나, '불사'가 한때 신이었다는 건, 그것이 '들'이라는 복수형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세계의 핵이라 불리는 힘을 집어넣은 것은 불사 하나인 것 같으니 다행이기는 하지만. 허나 그렇다 하여도 세계의 핵이라는 것을 일시적으로나마 다룰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

아직 정보는 더 필요했다.

"하여튼, 신들은 세계의 핵이라는 것을 얻음으로서 세계를 지배하는 자리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허나, 멋대로 움직인 세계의 핵 덕분에 세계는 위험해졌습니다. 하지만 힘을 버릴 수 없었던 그들은 세계의 핵을 분할, 다른 세계로 떠나기 위한 '배'를 만들었지요."

배. 그것은 분명히 유운이 먼저 선점하러간 방주를 의미하는 것.

인간이 살았던 세계라면 모를리 없는 유운조차 모른다고 했던 방주는 본디 신들이 존재했던 세계에서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하긴, 그 정도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물건이기는 했다.

방주란 물건은.

"그렇지만 그 때, 노예처럼 부려지던 진인들 몇이 건설되던 배와 가짜 배를 바꿔치기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덕분에 불사를 제외한 나머지 신들은 알 수 없는 차원으로 사라지고 말았죠. 게다가 남아 있던 불사조차 다시 이등분되고 말았습니다. 불사는 잠들고, 배는 가라앉았으며, 나머지 조각은 세계를 유지하는데 쓰였습니다."

"잠깐. 나머지 조각이 세계를 유지하는데 쓰였다고?"

".... 그렇습니다만?"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세계의 핵은 단 둘로, 방주와 불사만이 남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온의 말을 듣고 확신했다. 불패와 불사는 본디 같은 존재라고.

아무리 누님이 천재라지만 결국 인간이다. 인간으로 타고난 이상 인간의 한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할 터. 하지만 누님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애초에 다른 존재인 것처럼.

"그 후, 불사는 한번 폭주했던 적이 있습니다. 대책이 없었던 진인들은 배에 담겨 있는 커다란 조각을 양분해서 새로운 존재를 만들었죠."

"불패로군... 그리 예상밖의 이야기는 아니야. 그래서, 불사를 죽이기 위해 이 시대까지 끌어온건가?"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틀린 질문이라는 것은 이미 짐작했던 바이기 때문에 그리 놀라지 않고 뒷말을 기다렸다. 케이슨은 천장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다른 차원으로 사라진 다른 9명의 신. 아직 머나먼 미래의 일이지만, 그들이 돌아올겁니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과학과 마도의 경계가 지어진 상태로는 싸울 수 없어요, 지고 말겠죠. 그렇기에 이러한 전쟁을 일으키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이라는 존재가 언급됬을때부터 예상한 일.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허나, 이상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굳이 전쟁을 치룰 필요는 없다. 그것이 목적이라면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천천히 했으면 그만인 일.

케이슨을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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옙, 늦었지만 안녕하십니까. 아이젠입니다.

스네이크를 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알겠지만, 신이란 존재는 육아일기 편에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후속작의 스네이크에서나 등장할 예정이랍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간지는 여기가 한곕니다. 도저히 잘난 모습으로 쓸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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