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238화 (238/340)

0238 / 0340 ----------------------------------------------

과거

그의 눈에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기미가 보이지는 않았다. 보이는 것은 단순한 진실을 담담하게 말한다는 의지뿐.

그저 시야에 보이는 것을 믿기에는 케이슨이란 남자는 너무나도 뛰어났기에, 다시금 질문을 날려보았다.

"그렇다면 서서히 인간들의 세상에 마도를 퍼뜨리면 되는 것 아니냐? 그 때부터 지금까지 대략 십만년이 넘어가는 세월이 있었을텐데."

"맞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먼저 그것을 실행했지요.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실패. 케이슨이 말하는 것치고는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기에 순간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멍하니 있었다.

저 케이슨이 실패했다. 상당한 세월이 있었음에도 과학과 마도의 동시발달이라는 간단한 정책(사안 자체만 보자면 상당히 간단하다. 물론 그들의 능력이 뒷받침된다는 가정하에서)을 황룡이라는 마수들의 인지도가 높은 존재가 실행 했음에도 실패했다는 것. 나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누구도 필요없이 황룡의 무력이라면 국지적인 정신조작계 능력을 지속적으로 펼치는 것만으로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여러번 조절해서 사용한다면 과학의 발전 또한 유지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설명은 케이슨의 입에서 나왔다.

"시행은 순조로웠습니다. 하지만 첫번째 전쟁에서 불사가 무너지고, 인간들의 왕조가 무너지고, 삼신장이 무너지면서 세계는 한번 멸망을 겪고 말았죠."

그러고보니 삼신장에 속하는 마종과 검제가 언뜻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김새는 확실히 그랬지.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뇌공의 실력이 더 기억에 남는군. 뇌공은 혈루를 제치고 우리 삼신장에 들어올 실력이 되었으니까.]

[아, 그것도 그러네. 혈루가 폭주해서 인간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할 때 태어났다면 그 녀석이 삼신장의 세번째를 맡았을텐데.]

"혈루..!"

마종의 말에 검제가 받았던 그 대화. 기억났다. 그들이 하도 별 생각없이 말했던지라 그리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아서 그렇지 대화자체는 살벌했던 것이어서 그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케이슨이 의외라는 듯한 얼굴로 탄성을 질렀다.

"혈루를 알고 있었습니까? 의외로군요. 알고 있었다면 유추할법한데도."

자신의 실책에 머쓱해서 뺨을 살짝 긁으며 그에게 설명을 계속해보라고 손짓했다. 그도 입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는지 잠시 헛기침하고 이야기를 이었다.

"당시의 혈루는 여성의 몸으로 삼신장의 자리에 오른 강자였습니다. 당시 왕의 정부였던 분이기도 했죠. 하지만 왕조가 거의 파탄이나자 그녀는 미쳐버렸습니다. 지상에 남아있는 민간인을 한명도 빠짐없이 박살을 내버렸거든요."

".... 겨우 혼자의 힘으로? 마수들이 개입하지 않았다고는 해도 그리 약하지만은 않을텐데?"

내 기억에는 당시 마수들은 인간에게 되도록이면 간섭하지 않는다(이것도 케이슨의 술책이었으리라)는 계율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개입은 없었다하더라도 당시의 인간들은 혼혈도 꽤 많았고, 그 탓에 강자들이 상당했다.

그런데도 혼자서 세계를 몰살시켰다는 것은 설사 유다라 하더래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가능했다.

검제와 마종이 유다정도. 그들 중에서도 최약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유다만도 못한 실력이라는 것인데 그런 일이 가능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강했죠, 인간들은. 하지만 혈루의 힘은 '검술'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진짜 강함은 대범위 마법진... 지금 당신이 '잔재주'랍시고 부리는 것의 최종형태였습니다. 게다가 당시에 존재하던 방주의 힘을 이용해 날려버렸으니, 문화고 뭐고 남아나는 것이 없었죠."

그의 말에 나는 가슴을 날카로운 무언가로 후벼파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입이 참을 수 없을정도로 근질거리는 감각에 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작전의 최종장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었으니까.

케이슨은 나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새롭게 작전을 실행한 적도 있습니다만 그것들도 인간의 흥(興)에 눌려 지워져버렸죠. 현대인들에게는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마법의 존재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져 있다는 것이... 우리 최후의 발악이었다는 증거물일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불사가 힘을 견디지 못 하고 폭주해가고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의 의지와 구속구로 어떻게든 막고 있지만 그것도 곧 풀릴테지요."

"그래서 이리 급진적인 방법을 써야만 했던거로군."

"그도 그렇습니다만..."

뒷말을 흐리는 케이슨. 불안한 마음이 가슴속에서 뭉글뭉글 거품처럼 증식해나갔다.

"당신들은 약했습니다. 강해질 필요성이 있었지요. 게다가.... 내가 만들어놓은 '카타스트로피'라는 이름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 한다면.. 결국 그뿐인 세계라 생각하고 포기하려 했습니다."

내가 물을 질문들을 일거에 소거시키는 한마디였다.

돌이켜보면 적들이 나를, 우리를 죽일 방법 따위는 얼마든지 있었다.

일본에서 청룡회의 마법사들이 가진 광진은 불안정 형태이기는 했지만 완전해방을 한다면 개개인이 당시 내가 쓰던 삼식 수준의 속도와 무력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막에서도 잠든 우리를 먼저 습격했다면... 아니, 두패로 갈라졌을 때 하나씩 처리했다면 쉽사리 이길 수 있었다.

유다의 침공 때도 팔대간부 중 하나만 더 추가시켜서 덤볐다면 이기지는 못 하더래도 몇몇은 죽일 수 있었다.

그런 방법을 몰랐다던가 하는 문제가 아닌, 순수하게 치우회의 일원들이 강해지길 그가 바랬기 때문에.

나는 테이블에 턱을 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쩔 생각이지? 네 말대로... 아니, 네가 벌여놓은 일들로 우리들은 충분히 강해졌어. 솔직히 누가와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을정도지. 더이상의 시련은 필요하지 않아."

이미 전세계적으로 벌여놓은 일,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케이슨이라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되었다.

허나 케이슨은 고개를 저었다. 나의 말이 틀렸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 아닌, 단순한 고집이 엿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의 적인 카타스트로피의 외주 케이슨입니다. 이것이 저에게 하늘이 내려준 운명... 즉, 천명입니다. 당신들의 적으로서 당신들이 미래로 나아갈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고 스러져 갈 겁니다."

기어코 우리의 적이 되어 사라지겠다고 선언하는 케이슨이다. 나는 운명이란 말로 자신을 설명하는 그를 더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미 답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렴풋이 천명이란 단어에서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해진 일이라는 것을.

자리에서 일어나 더이상 말을 걸지 말라는 것처럼 실로 깔끔하게 돌아선다.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는 케이슨을 향해 나는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말이야 케이슨."

발소리가 멎었다. 이쪽을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이쪽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쯤은 능히 알 수 있었다.

"소유에게... 히탄 그레타리아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나?"

소유가 배반룡이라고 불렸던 두번째 전쟁에서 소유는 케이슨과 함께 대책회의에 갔다. 소유 스스로는 아련한 추억일지도 모르는 그 시점에서 그는 배반 당했다.

배반룡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적들을 끝장내느냐 아니냐를 가르던 순간을 결정짓는 전투를 논하는 자리에서 당시 능파밖에 되지 않는 순진한 소유를 데리고 갔다?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용이 적진까지 들어가는데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더불어서 그 말을 순순히 믿어줬다고?

거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지, 라며 넘어가줄 수 있다. 적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하지만 소유가 넘긴 정보로 순식간에 전세를 뒤집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거의 '전멸 직전까지 몰릴 적에게 어째서 그런 힘이 남아 있었느냐'가 설명되지 않으니까.

케이슨이 뒤로 돌았다.

공포스러울정도로 일그러진 미소가 얼굴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피와 기만, 폭력으로 얼룩진 얼굴에 구역질이 나올정도다.

끼익, 탕.

문이 닫히고, 긴장된 공기가 스르륵 풀려나갔다.

"개자식, 더러운 놈."

친한 척 담소를 나누던 내가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말을 내뱉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케이슨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버렸다. 자신을 따르던 소유라는 존재를. 하지만 소유는 아직도 저놈을 좋게 보고 있다.

최소한 나는..... 아니, 나도 같은 놈이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 하고 살아 있을뿐이다. 명예라고 말할만큼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의지를 지키기 위해 늘리지 않아도 피해를 늘리고 있다.

내가 케이슨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말하건데,

동족혐오.

하지만, 나와 케이슨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하나 있다.

"나는 물러나줄 생각은 없다. 부정할 생각도 없어."

죄가 있다면 받아들여 주겠다.

벌을 받으라고 한다면 이겨내보겠다.

하지만 절대로 이곳에서 물러날 수는 없다. 리타이어 같은 말은 어불성설,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케이슨, 난 너와 다르다. 다르게 살아갈거다. 결국 운명에 수긍해버린 네놈과 운명에 맞서는 나와의 차이를 가르쳐주마."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향해 나는 깊은 한숨을 뿜어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