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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243화 (24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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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붕괴

용암처럼 펄펄 끓어오르는 손이 순식간에 검의 궤적을 벗어나 안면을 노린다.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오는 공격을 피해내며 백호검을 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피싯!

아수라왕이 얕지만 확실하게 턱끝에 일격을 찔러넣으며 뒤로 물러나는 요연을 쫓는다. 수백년을 인고해왔던 결과로 얻어낸 염화가 요연을 덮친다.

검을 들고 있는 두 손은 활짝 벌어져 막을 수 없는 상태. 언뜻 보면 피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요연의 눈빛은 아직 죽지 않았다.

파라라라락!

종잇장이 빠르게 넘어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요연을 덮치던 화염구가 잘려나갔다.

사신검의 염열계, 도저히 검으로 봐줄 수 없게 휘어져 있는 주작검. 겁화를 다루는 아수라왕에게 있어선 천적이나 다름 없는 물건이다.

허나 손바닥에서 퍼져 나가는 물리력은 감당해낼 제간이 없는지 요연의 몸이 거칠게 아래쪽으로 튕겨나갔다.

"큭....!"

촤아악!

요연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건물에 미끄러지 듯이 균형을 잡고 선다. 입가에 핏물이 흐르지만 그저 입술이 터진 것에 불과하다.

턱 끝을 베어낸 것과 맞바꾼 것이나 다름 없다.

"하아앗!"

무서운 기세로 쫓아와 일격을 먹이는 아수라왕의 손을 허공에서 놀고 있는 현무검을 잡아채 막아냈다.

꽈앙!!

흡사 전함의 포탄이라도 받아친 것 같은 충격이 손을 떨게 한다. 하지만 그것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강자와 맞붙는다는 희열을 느끼기도 전에 아수라왕의 맹공이 터져나온다.

수를 짐작하기 힘든 손에서 빠른 공격에 요연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것을 용인하고 있을 아수라왕이 아니다.

이미 잔해 밖에 남지 않은 건물 위를 질주한다. 발이 닿는 모든 공간이 터져나가고, 그렇게 거리를 두는 요연의 뒤를 집요하게 아수라왕이 추격하며 공격을 내지른다.

파바바바바, 콰광!!

급격히 선회하며 아수라왕에게 백호검을 찔러넣은 요연. 아수라왕의 다섯 손에 묶여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검을 놓았다.

"무인이 검을...!"

그가 질책하려던 것도 잠시다. 그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요연은 네개의 검을 다루는 어검사. 검을 놓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그리 수치스러운 일이 될 수 없다.

스칵!

한순간의 오인이 아수라왕의 손바닥에 검흔을 남긴다. 피가 묻어 더욱 잔혹하게 보이는 청룡검이 땅에 꽂히고 위로 솟아올랐다. 삽처럼 잔해더미를 퍼올려 시야를 가리고 그 사이로 허공을 부유하는 백호검을 다시금 던졌다.

타앙!

아수라왕의 팔에 감겨 있던 금빛의 팔찌가 백호검을 막아냈다. 시야가 가려졌음에도, 일반적인 무인에게는 볼 수 없는 기행임에도 막아낸 것은 그야말로 수라장을 거쳐온 왕의 모습임을 부정할 수 없다.

흙먼지를 뒤집어 쓴 아수라왕, 허나 우습지는 않다. 오히려 고풍스러운 멋을 더하는 것 같아 놀라울 정도다.

"강하군. 게다가 그대도 상당히 많은 경험이 있는 것 같아. 옛날에는 많이 겪어보았지만... 간만이로군."

"그저 어렸기 때문에 얻은 것이지만 이런 곳에라도 쓰일 수 있다니 다행일 따름."

어렸을 적, 소야를 죽이려 했을 때 정공법은 통하지 않았다. 상대가 상대이기도 했고 그 당시에는 무식하게 강해진 신체능력 외에는 믿을만한 것이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시선을 돌린다던가, 주의를 바꾸는 기술등은 굉장히 많이 익히고 있었다.

"재밌어. 간만의 좋은 상대다. 이쪽도 그 당시의 모습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겠지."

구리처럼 붉은 손 하나가 바닥을 가격한다. 먼지가 피어올라 아수라왕의 모습을 감춘다. 하지만 그 영역은 매우 협소해서 검으로 베어버리면 아수라왕과 함께 베일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모래먼지가 퍼져나가며 이 일대를 휩쓸었다. 요연의 감각상으로는 상당히 먼 곳까지 퍼져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것에 당해줄...."

그렇게 말하는 요연의 뇌리에 언젠가 있었던 일이 스친다.

[난 담배 같은 거 피우지 않아. 믿어줄래?]

생각이 난 즉시 땅거죽을 차올렸다. 흙먼지의 영향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자그마한 불꽃이 구름처럼 바뀌었다.

팍!

순간 켜지고 꺼지는 성냥처럼 불꽃은 사라졌지만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언젠가 요애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보여주었던 기술로, 숨이 좀 막힌다는 것 외에는 별 데미지가 없었지만 사용자가 다르면 위력도 바뀐다.

분진폭발. 그날 이후로 기억해두었다.

"호오! 이걸 피해냈다?"

어느샌가 솟아오른 아수라왕, 수십번의 장타(掌打)가 요연의 후위를 습격한다.

치리링!

현무검이 검음을 울리면서 그녀의 뒤를 보호한다. 전투기가 내려꽂는 박격포 같은 위력에 현무검과 함께 요연의 몸이 튕겨져 날아갔다.

"크, 허...!"

고통을 입 밖으로 토해냈지만, 그런 것에 휩쓸릴 틈은 없었다. 아수라왕은 그야말로 수라장의 왕,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았다.

고통, 경직의 틈 바구니를 정확하게 노리곤 불꽃의 창을 내질렀다. 대기를 집어먹는 열화가 요연의 등쪽을 노렸다.

"이정도는...!"

청룡검을 내던지고 주작검을 받아들며 불꽃의 창을 베어냈다. 상당한 밀도를 가졌는지 창은 사라지지 않고 두개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그래도 되는건가 어검사?"

요연이 의문을 느낄 틈은 없다. 두개로 나뉜 불꽃의 창은 이미 먼지로 가득 채워진 땅에 박히고 있다. 그리고 요연의 몸은 창을 받아내던 기세 덕에 땅 쪽으로 몸이 쏠려 있는 상태.

화아아아악!

단순하기 짝이 없는 연격이지만 주변의 지형지물을 완벽하게 이용해낸다. 순수한 무력은 분명히 비등함에도 실력에는 벌써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수라들의 왕. 그렇기에 아수라왕.

그 이름이 걸맞는 자다.

"일어나라, 어검사여. 겨우 이정도에 쓰러질 그대가 아니지 않은가?"

아수라왕의 오연한 부름, 이미 승자나 다름 없다는 듯한 목소리다. 사라져가는 불꽃의 구름 속에서 요연이 일어섰다.

단정하게 차려진 전투복은 이미 너덜너덜하고 일부는 타들어가 있다. 깨끗한 피부는 검댕이가 묻고 아까의 일격으로 타들어갔는지 고왔던 모습은 상상도 하지 못 하게 되버렸다.

하지만 요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겉멋을 가꾸는 여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싸움판의 모습이 진정한 그녀의 모습이었다.

휘릭, 탁.

허공을 날던 청룡검을 잡았다.

오른손의 청룡, 왼손의 백호. 그리고 등을 수호하는 것 같은 주작과 현무. 사신의 기운이 요연의 몸으로 흘러들었다.

일 대 일이라는 상황에서, 그것도 비슷한 무력을 가진 자들 끼리 이정도로 밀렸다. 그녀 스스로도 조금쯤은 싸움 방식을 바꿀 필요성을 느꼈다.

"오호, 기도가 바뀌었군. 조금쯤은 다른 모습을 보여줄텐가?"

"조금정도가 아닐겁니다."

그녀의 눈이 번뜩, 혈광을 빛냈다. 아까까지 보이던 정심함은 온데간데 없고 살의만 가득한 눈에 아수라왕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흠. 설마 정도(正道)에서 변칙으로 나오는 것뿐이라면 굉장히 실망인데."

"그정도가 아닐텐데요?"

수십미터나 밖에 있던 아수라왕의 코 앞에 도달한 요연. 방심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인식하지 못한 속도에 뒤로 엉거주춤 물러나고 말았다.

츄화아악!

아수라왕의 가슴에 엑스(X)를 그리는 검흔이 남았다. 아수라왕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는 굉장한 경험이 있는 자, 이정도에 당황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수라왕이 당황할 일은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까와의 상황은 반대로, 아수라왕이 거리를 벌리기 위해 달렸다.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먼지를 일으키는 그를 따라 요연이 집요할 정도로 검격을 쏟아붓는다.

일순, 먼지가 휘감기면서 퍼져나가고 시야가 완전히 잠들었다. 달려나가려던 요연의 움직임이 멎었다.

푸욱.

뒤에서 주먹을 내지르고 있는 아수라왕의 손등에 청룡검이 꽂혔다. 붉은 피부에 걸맞는 붉은 피가 대조적인 푸른검신을 타고 바닥에 떨어졌다.

휘릭, 푸욱.

마법으로 지각을 끌어올린 듯, 솟아오르려는 바닥에 주작검을 찔러넣었다. 검게 변해가는 돌바닥, 그것을 짓밟듯이 진각(디딤발)을 밟아 백호검을 어깻죽지에 밀어넣었다.

소리따위는 없다. 미끄러지듯이 아수라왕의 어깨를 관통한 백호검을 비틀어서 반격하려는 다른 팔을 막아냄과 동시에 마지막 검인 현무검이 묵광(默光)을 발한다.

현무검을 쥔 팔이 뒤로 젖혀졌다.

"현무검 비기, 현공포(玄空砲)."

아수라왕의 품 안에서 연계되는 연격을 마무리짓는 포대가 포격을 쏘아냈다. 아수라왕을 집어삼키는 묵광의 구체가 대지를 휩쓸고, 파괴한다.

차자작!

아수라왕의 몸에 꽂아두었던 삼검이 검갑으로 귀환했다. 등 뒤에 가로로 매인 현무검의 검갑에 현무검마저 집어넣고 쓰러져 있는 아수라왕을 보았다.

"어떻습니까. 이정도면 충분히 달라졌다 생각합니다만."

"놀랐다. 존경스러울 정도야. 분노의 힘으로 검이 날카로워진 것만이 아니라 정심했을 적의 검술을.. 약간 변하기는 했지만 거의 완전히 재현하고 있었어."

마치 항복선언인 것 같은 그의 말. 요연은 웃었다.

"'살계'... 라고 하는 모양이더군요. 사람이 가진 힘을 가장 몸에 걸맞는 형태로 무력을 발휘하게 해준다 들었습니다."

"과연... 그래서 내 피부를 그리 쉽게 꿰뚫은 것인가."

검이 좋아도, 힘이 좋아도 참선(斬線)을 제대로 가르지 못 하면 베이지 않는다. 그것을 살계로 충당했다.

옳은 선택이다.

"충분하겠지, 이정도면."

아수라왕이 일어섰다. 투기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충분했겠지. 이쪽은 먼저 가겠다."

공간을 비집고 사라져가는 아수라왕을 잡을 여력은 지금의 요연에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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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요연 반쯤 졌네요.

다음편이 궁금하신가요!? 하지만 다음은 특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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