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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칠흑의 검이 내뿜는 힘은 보통의 힘과는 다르다. 유다의 힘 자체가 일반적인 마력과는 궤를 달리하는 업(業)이라는 것도 있지만 칠흑성검의 힘은 업보다도 더욱 이질적이었다.
아니, 그것은 유다 개인의 생각이고 다른 사람이 썼을 때는 너무나도 쉽게 동화된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유다는 장담했다.
이 무기는 다름 아닌 불사의 파편. 아득한 옛날에 불사가 패퇴 되었을 무렵 남겨진 잔해로 만들어진 검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었다. 유다는 인지하지 못 하고 있지만 불사의 힘은 곧 세계의 핵, 세계의 힘.
세계의 의지를 반하고 역행하는 유다에게 있어선 그리 좋은 무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유다는 칠흑성검을 들었다. 지금은 배신자 유다도, 마인사냥꾼 유다도 아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칠흑검주 유다.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이름이다.
콰아아앙!!!
상당한 내력(內力)이 일시에 폭발하면서 먼지의 폭풍을 일으키고, 검이 멈췄다. 미쳐 다 베지도 못 했는데도 검은 어중간한 상태에서 정지하고 말았다. 검끝을 걷어낸 당사자의 모습이 먼지가 가라앉자 차츰 눈에 비쳐들었다.
먼지로 더러워졌는데도 아름다움이 사라지지 않은 파란색 전포. 그 위에 장수를 상징하는 용과 거북이의 모습이 수놓아져 있다. 그런 고풍스러운 옷에는 어울리지 않은 젊은, 많이 쳐 줘도 약관을 많이 넘기지 못 했을 것 같은 청년.
삼천갑자 동방삭. 약 18만년을 살아왔다는 마수 이상의 괴물이며, 유다와는 일면식이 있는 남자였다.
"간만이로군 유다. 사막에서의 만남 이후로 처음인가?"
"수다쟁이가 되었어 동방삭. 옛날에는 조용해서 좋았는데."
검을 막아내고 있는 동방삭이 칼날을 뿌리쳤다. 팔대간부 전원을 상대할 수 있는 강력함을 가진 그 답지 않게 검은 너무나도 쉽사리 튕겨나가고 말았다.
"그 때는 할말이 없었을 뿐이지. 친하지도 않은 녀석에게 해줄 말은 없으니까."
"지금도 친하지는 않을텐데?"
"육왕이랑 만나서 입담만 늘은건가."
틀린 말은 아니지, 라며 혼자서 중얼거린 유다의 입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것을 언뜻 엿본 동방삭의 얼굴이 흥미로 가득찼다.
유다는 폐쇄적인 남자다. 얼마만큼 폐쇄적인가 하면 아군으로 끌어들였던 날 여러 방면으로 힘을 써봤는데도 전혀 마음을 열지 않고 스스로 독방에 틀어박힐 정도로 폐쇄적이다. 그런 남자가 저런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놀랍기 짝이 없는 일이다.
새삼 육왕의 굉장함에 놀랐다.
'이승의 인연을 지배하는 왕...이란 말인가? 재밌군. 이정도라면 그를 위해 미래를 열 거름이 될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허나....'
언젠가 자신에게 내려진 운명,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너무 이른 순간이었다.
"물러나지 않을 셈이냐 유다."
"....날 살려주시겠다?"
동방삭은 그리 잔인한 성격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만났던 시간은 짧았지만 성품을 못 알아챌정도는 아니란 소리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거짓이라는 주석을 달아놓을 남자가 아니었다.
"물론이지."
"그런 말을 하면 안됩니다, 삭!"
단숨에 태클을 걸어오는 케이슨. 확실히 응원군이라 생각하고 온 남자가 적군을, 그것도 최대급 전력을 멀쩡하게 보내주겠다는데 발작하지 않을 자는 없다.
"유다는 적입니다. 적들 중에서도 최대 전력, 필히 죽여야하는 자란 말입니다!
"그게 어쨌는데?"
"뭐....?"
배째라는 듯한 동방삭의 말. 일순 사고가 날아가버린 케이슨이다.
"시끄럽게 쫑알쫑알 거리지마라. 언제부터 네놈이 나에게 명령을 내리는 처지가 된 거지? 착각하지마. 난 어디까지나 내 운명을 따를 뿐이다."
오랫동안 내려져 온 힘의 구도를 다시금 절감한 케이슨,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더이상의 말은 동방삭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케이슨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십팔만년. 동방삭이 살아왔다고 '추정'되는 시간이다.
문자 그대로 추정. 실재 나이는 황룡이었던 케이슨보다도 많다. 진인의 시대까지 거슬러 오르는, 그야말로 영생불사자의 표본이 바로 그였다.
그런 그는 듣기 싫은 말(이랄까 명령)은 모두 나이가 어린 놈에게 명령을 받을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번번이 놀러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되면 케이슨의 말은 뭐가 되었든 간에 듣지 않고 드러누웠다.
"하아아.... 마음대로 하십시오."
케이슨이 한숨과 함께 항복을 선언하자 동방삭도 어스름하게 깔아두던 살기를 지웠다. 유다도 뒤로 물러나면서 검을 등에 걸쳤다.
유다가 사라질 때까지 동방삭과 간부들은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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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잉!
쇠가 서로 마찰하면서 내는 불쾌한 소리. 그것과 흡사한 괴성이 귓바퀴를 뒤흔들었다.
런던의 파괴가 완벽하게 진행되고 앤트로아가 있는 전함으로 돌아왔다. 그곳의 갑판에서 멍하니 하늘을 보았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아직 계획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만한 일을 더이상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좀 더 단호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앞날을 걱정하고 있을 때였다. 그 불쾌한 소리가 들린 것은.
전함 트러블이 생긴걸까 싶었지만 그랬다면 앤트로아에게 소식이 왔으리란 것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빠르게 풍백을 펼쳐 태세를 갖췄다. 내 등 뒤에 기댄체 눈을 감고 있던 요연도, 내 한팔을 점령한체 번데기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던 호지도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잡았다.
따박.
경박한 발소리, 쇠와 쇠가 맞부딫히는 소리다. 쇠굽이 달린 신발을 신은 하얀 코트의 남자, 유다가 느긋한 발걸음으로 내 앞에 내려섰다.
의외로 멀쩡한 모습의 유다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유다가 안전했다면 그걸로 좋지만, 아직 그 이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챠이는, 챠이는 보지 못 했어?"
"왕. 챠이는 어떻게 된 건가?"
서로에게 적중하는 말. 유다와 나는 침묵했다.
유다의 저 반응, 챠이를 결국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유다라면, 무적의 전투력을 가진 그라면 어떻게든 해줄 것이라 믿었다. 실날 같은 생명을 붙잡고 날 기다리고 있을 챠이를 내 앞으로 데려와 주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못 했다. 최후의 최후에도, 챠이는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왕.... 챠이는, 어째서?"
챠이를 구해내지 못 했지만 그의 소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바가 있는 듯, 그렇게 물어왔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 못 했다. 그저 머리에 손을 얹고 안일했던 자신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바보였다. 목숨을 건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는데. 이정도나 됬기에 망정이지 여차하면 챠이만 그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심하다...! 한심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그렇게 외쳤다. 어디에 쏟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머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미칠 것 같다는 감정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 감정에 휩싸여 있다간 내 몸이 망가질 것만 같다.
"잠만, 무슨 소리가? 도대체 챠이가 어찌 된 거냐꼬!?"
어중간한 사투리의 운이 내 멱살을 틀어잡으며 묻는다. 나의 대답이 나오기 전에 유다의 입에서 진상이 흘러나왔다.
"죽었다. 아마 그라드에게. 시체를 치워놨다는 소릴 보면 필시 그럴테지."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유다의 반응을 보면 못 알아챌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해도 충격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리라.
"챠이가... 죽었단말입니까?"
"에, 그럴수가..."
"거짓말이다!!!"
웅성대기 시작하는 좌중을 깔아뭉개는 외침이다. 옷이 뜯겨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악력이 더욱 거세지면서 내 늑골부근에 화상처럼 붉은 손작국을 남긴다.
조용해지자 운은 내 목줄기를 잡아챈 상태로 흐느꼈다. 너무나도 애절하게 느껴지는 감정이라 모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짓말이제? 평소에 잘 하던 거짓말인거라꼬 말 하그래이. 그리 말 몬 하나!!"
퍽, 퍽.
크게 움직이는 감정, 그것과 반비례하는 위력의 주먹이 내 가슴에 떨어진다. 아프지 않아야할 주먹이건만 그것은 너무나도 아팠다. 아프고 아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흐느낌에 섞여서 날 향한 원망이 찾아들었다.
"네... 라면, 할 수 있었잖노.... 챠이를 살려내는 일쯤... 가능했을 거 아이가! 어째서, 어째서 그를 구해주지 않은거야...!?"
사투리가 점점 잦아들고 평범한 소녀의 말투로 되돌아왔다. 가슴을 때리고 있는 그녀의 감정에는 슬픔과 분노로 메워져 있었다.
난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못지 않게 나도 맹렬한 분노로 가슴이 막혀버려,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늘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앤트로아."
"예."
"아무거나... 총을. 단발식의 쓸만한 것으로."
앤트로아는 자신의 허벅지를 열며 그 안에서 총을 꺼내들었다. 기종은 잘 모르지만 앤트로아가 몸 안에 둘만한 것이라면 쓸만한 권총이리라.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들고 운을 밀쳤다. 눈물이 바람에 날리고, 운이 바닥에 허망한 얼굴을 하며 쓰러졌다. 주저앉은 것이나 다름 없는 자세로 날 바라보는 눈에 보이는 감정에 놀람 따위는 없었다.
보이는 것은 그저 순수한 분노. 하지만 그런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그녀만이 아니다.
철컥.
트리거(방아쇠)에 손가락을 가볍게 걸쳤다. 총구가 운의 이마를 향하고, 주변에서 만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분노를 얕보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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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연참을 했군요.
드디어 등장한 동방삭입니다. 일명 삼천갑자 동방삭이라고들 하죠.
18만년이 넘어가는 늙은이가 되어야 겠지만 전 팔팔한 놈이 좋기 때문에 젋은 놈(얼굴만)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맛가서 총을 빼들었군요. 다음편이 궁금하신가요? 죄송하지만 다음편과 다다음편은 특별편입니다.
그런데...'첫키스로 시작되는'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첫화야 그렇다치고, 솔직히 말해서 그걸 쓴 제 두뇌가 의심스럽기 시작했습니다.
난 변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