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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유려하게 뻗은 은빛의 총신. 총 자체의 재질은 하나의 재질로 통일된 듯 앤트로아의 피부색과 다르지 않은 은빛이었다. 피부가 오싹해질만큼 매끄러운 총, 허나 그 특이한 질감 덕분에 그 총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물건이었다.
장전된 탄환은 두발. 어째선지는 모르지만 알 수 있었다. 아니, 광진의 힘을 일시적으로 잃은 상황이라 운사와 풍백의 힘이 제멋대로 발동해버린 것이다.
검지 손가락에 감기는 트리가의 단단한 감촉. 마치 당겨도 미동조차 안 할 것 같지만 당긴다면 운의 머리통은 확실하게 날아간다.
그런 위력의 무기다, 이건.
"요애! 안됩니다, 화가 난 것은 알지만....!"
날 만류하던 요연이 주춤거렸다. 내가 운을 향한 총을 요연에게 겨누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의 분위기가 더욱 어둡게 고조되었다.
"닥쳐라 요연. 다가오면 네년의 머리통을 먼저 갈겨버리겠다. 황룡의 힘을 가졌으니 머리에 총탄 하나 박힌다고 죽지는 않겠지."
"요애...."
요연이 충격받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폭언,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들으리라고 생각도 하지 못 했겠지. 나도 그런 말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다. 내가 이런 화풀이나 다름 없는 일을.
총구를 운의 이마에 댔다. 운의 눈이 분노와 의문에 빛이 같이 떠오른다. 그 모습을 보니 머리가 조금씩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햐지만,
'가슴은 뜨겁지.'
이성적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그것은 알고 있지만 챠이의 죽음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행위에 면죄부가 되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난 인간이 아니다.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마저도 마도로 타락한 것이된다. 그리고 그것 이상으로 챠이를 향한 애도가 컸다.
"요연뿐만이 아니야. 여기의 전부, 내가 무슨 말을 하건 간에 끼어들지마라. 이건 설사 능파라해도 마찬가지다. 이 말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능파의 조력과 간섭을 완전히 배제해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건 듣지 않겠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내가 이 장소에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의 간섭조차 무시하겠다고 선언했으니 아마 내 기분을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으리라.
주변의 분위기가 마이너스로 치닫는다. 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대상이 된 능파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능파답달까, 나의 좋은 이해자다.
"운... 정말로 슬프냐?"
화두를 운에게로 돌렸다. 대상이 된 운의 눈이 분노로 휘몰아친다. 아플정도로 비쳐드는 운의 감정, 그것이 말이 되어 내 가슴에 적중했다.
"그러면!? 나에게는 챠이를 위해 눈물조차 흘릴 수 없어? 도대체 뭘 원하는거야, 살인마!"
"운!"
요연이 운의 말에 뛰쳐나가려 하지만 능파가 가로막았다. 요연이 호된 눈빛으로 능파를 쏘아봤지만 능파는 팔랑거리는 '사진' 한장을 요연에게 넘길 뿐이었다.
지금까지 나의 행동에 능파가 제지를 걸지 않았다는 것이 궁금했던 사람들은 요연의 곁으로 모여들어 사진을 주시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자신들이 이런 것을 몰랐다는 것과 이런 일을 말하지 않은 능파에게.
"능파! 이건...."
"다 봤으면 내놔요."
휙.
요연의 손에서 사진을 빼앗아들고 나에게 넘긴다. 단번에 쓰러트리라는 무언의 압박을 느끼며 능파가 등을 돌렸다.
아무래도, 능파 또한 챠이의 죽음에 상당히 화가 솟은 모양이었다. 능파라면 분명히 아직 쓸데가 있다는 말부터 할 줄 알았는데.
능파에게서 받아든 사진을 운에게 던졌다. 팔랑거리며 그녀의 손안에 떨어진 사진으로 자연스럽게 눈길을 주고, 성난 파도처럼 눈빛이 흔들린다. 설마 이것이 이곳에서 나타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 같은 얼굴이다.
"이걸 봤으면서, 나의 반응을 모른다고는 하지 않을테지 배신자 해운."
사진이 바닥에 떨어진다. 갑판에 약간 고여있는 물웅덩이에 빠진 사진에는 언젠가 금와가 보여주었던 것. 나에 대한 비방글이 마구마구 적힌 칠판의 사진이다.
이것을 운이 모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운이기에.
쓴 당사자이기에.
"이것뿐만이 아니야. 네녀석이 배신자라는 것은 옛날부터 알고 있었어. 만났을 때부터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
너무 적절한 타이밍에 왔다. 그것은 그저 의심의 계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녀가 온 뒤로부터 묘하게 카타스트로피의 대응이 기민해졌다. 사막에 간 틈을 타서 사진의 상황을 만들어낸 것도 그렇고, 묘하게 유다의 전투에서 레플리카의 대응이 빨랐던 것도 그렇다. 아니, 애초에 내가 운을 소누의 곁에 둠으로서 그러한 상황을 연출했다.
확신이 필요했다. 일본에서 온 녀석들에게도 부탁해두었던 운의 반응도 완벽하게 일치했으니, 배신자라는 것에 거짓은 없었다.
그렇기에 일단 기본적으로 능파와 나는 역정보를 흘리는 쪽으로 선택을 했다. 그것이 우연을 가장한 이번의 본단습격. 가까워질 때까지 눈치채지 못해서 상당히 안전하게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깊숙히 침투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있었던 일 그대로다. 그 이후로는 내 작전이 성공만하면 어떤 수를 놓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일련의 사건들을 입에 담자 운의 눈이 눈에 띌정도로 흔들렸다. 주변에 있는 동료들의 눈도 험악해졌다.
"말도 안돼... 지금껏 고생해온 일이....."
"설마 요애의 소꿉친구이던 당신이, 설마 이런....."
모두가 말을 잇지 못 했다. 하지만 요연의 말에는 확실히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이녀석은 내 소꿉친구가 아니다. 옛날과 지금은 존재자체가 다르다. 어렸을 적 누님과 일견식이 있는 운을, 지금 본 운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누님의 말은 가히 절대적인 것. 틀릴 일은 없다. 아마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까지의 공백. 그 때 바꿔치기 된 것이리라.
"하, 으, 으으으으...."
대답을 하지 못 한다. 설마 들켰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 한 것 같았다. 나 또한, 이번 전쟁이 끝날 때까지 되도록이면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편이 챠이에게 좋았다. 날 향한 충의는 고맙지만 그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주기를 바랬으니까, 조금 지켜주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녀가 배신자라는 것은 분명히 진실이지만 챠이를 좋아했다는 것도 누님이 보증한 진실이니까.
하지만.... 챠이는 없다. 두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넌 챠이의 죽음에 대해서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았지.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아마 이 나라에 와서 보낸 정보라고 해봤자 이들의 분위기정도 밖에 없을테니까. 이건 단순한 화풀이야. 내가 아직 인간이라는 증거지."
"인간...?"
"맞아. 조금쯤은 안심했어. 하지만 말이야...."
그녀를 겨냥한 총구가 흔들렸다. 내 마음과 같이 부들부들 떨린다.
"한구석에는 챠이의 부재라는 마이너스를, 어떻게 메꿀 것인지에 대한 잔인한 생각이나 하고 있다고..."
총을 결국, 놓아버렸다. 갑판 바닥과 부딫인 총은 거친 쇳소리를 냈다. 그것과 동시에 운과 시선을 맞추려는 것처럼 허물어지고 말았다.
"응....? 난 어찌해야 되는거냐. 말을 해봐, 운.... 지금까지 소꿉친구라고 속여왔잖아. 좀 더 속여보란 말이야..."
더이상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변의 친우들도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지독할정도로 묵직한 침묵뿐. 그것은 간단히 떨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챠이는 불쌍한 남자였다. 300년이란 세월을 혼자서 떠돌며 나라는 존재를 찾아다녔다. 인간은 자신에게 정해진 세월만을 살아야한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무언가가 결여된다는 것.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챠이는 '왕'이라는 존재를 향한 마음을 기점으로 망가졌다.
하지만 그것은 고쳐지고 있었다. 운이라는 해약과 인간과의 엮임으로 인해서. 애초에 지성체와의 접촉이 적었던 탓이기는 했지만.
그저 인간이 되어가던 남자를 위해, 오늘은 그저 울고 싶었다.
툭, 투둑.
빗물이 조금씩 떨어져내렸다. 물방울은 내 얼굴로 떨어져 눈물이 나오지 않는 얼굴에 눈물을 그려넣었다. 운의 눈물을 감추어주었다.
이 자리에 무겁게 내려앉는 빗물은 너무나도 차고 쓸쓸했다. 빗소리가 거세지고, 우리가 입은 옷을 전부 적셔갔지만, 아무도 이 자리를 뜨지 않았다.
감정의 고양. 지금만큼은 모두가 어떤 마음일지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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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재밌는 소리를 하셨군요."
"어쩔 수 없잖아. 너도 알고 있었으면서."
"확실히 그렇죠. 하지만, 여전히 여리다는 것을 재확인 했을뿐이에요. 그 '일', 말하지 않았잖아요?"
"그런 것까지 짐작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네."
"당연하죠. 제가 누군데. 단지 이번 일에서 마음에 안드는 건 너무 성급했던 거에요. 남겨뒀다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화가 나서 어쩔 수 없었어."
"그런가요. 그런분이니, 저도 딱히 말하진 않을께요. 그런데, 그녀의 대응은 그걸로 충분할까요?"
"아아. 능력자체는 이미 파악해둔 바대로야. 알고 있다면 연락을 막는 것은 어렵지 않아. 신호는 그것만으로도 분쇄되겠지."
"그도 그렇네요."
뿌드득, 툭.
붉은 가면의 질감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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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안녕하십니까, 아이젠입니다.
드디어 역습편이 끝났습니다. 다음편부터는 방어편이 되겠군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다음편과 다다음편은 매우 재미가 없기 때문에, 화요일에 2연참으로 갈 겁니다.
뭐, 고로 재밌게 즐길 수 있으시다면 전 대만족. 그러니 열심히 즐겨주세요.
그런데, 육아일기는 뒤로 가면 갈수록 진지해지기만 해서, 굉장히 쓰기 힘듭니다. 괴로워요. 이렇게 짙은 느낌만 있으면 나중에 다른 걸 쓸 때 영향을 받는데.
예를들면 스네이크라던가, 첫키스로 시작되는 이라던가.
후자는 못 믿겠습니까? 죄송하지만 현재 비축분은 벌써 그런 낌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괴로운 일이죠.
참고로, 다른 아이디로 쓰던 '신들의 연회'는 이 아이디로 게시할 겁니다. 그쪽 아이디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못 쓰게 됬거든요.
그쪽에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달까.... 에, 뭐 그런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