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3 / 0340 ----------------------------------------------
사일런스
특수제작의 폭약이 하늘을 격하고 지귀심화의 머리 위에서 폭발한다. 불꽃이 아니라 얼음이 급속도로 영역을 벌려가며 지귀심화의 머리를 얼려갔다. 하지만 지귀심화를 덮는 불꽃의 피부는 간단하게 얼음을 녹였다.
"루카! 남은 게 더이상...!"
"안다! 그냥 버텨!"
사일러스는 대인(代人)부대다. 아니, 비단 사일런스뿐만 아니라 숭례문자체가 용병조직이다 보니까 인간을 상대로 하는 부대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보니 무기자체도 인간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가 많았다.
그런 점을 못 고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와의 상성이 너무 나쁘다. 이건 무기를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전투방식부터 뜯어고쳐야만 한다.
지귀심화. 온몸이 불꽃으로 뒤덮인 대형 괴물이다.
피부의 불꽃은 총탄을 녹이고 폭약의 화력을 흡수해 자신의 힘으로 바꾼다. 그것도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일련의 행동들이 본능이다. 아무리 공격해도 상대방은 데미지를 입지 않고 강해지기만 할뿐.
그래도 아까까지는 특수전용 빙결폭탄이 있어서 그나마 버텼는데 그것도 이젠 없다. 시간을 버는 것조차 가능할지 미지수다.
"큭... 다른 쪽은...."
루카의 시선이 지원군에게로 돌아간다. 거검이 단단한 비늘을 튕겨내고 거대한 돌덩이를 방패로 막아냈다. 하지만 움직임이 유기적이지 못 했다.
'압도적인 신체능력이지만 기술이 없어. 경험의 문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기술의 문제'인 건가? 게다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다전 때의 신체능력에 4분지 1도 안되는 것 같다. 아니, 그 때 이하야.'
루카의 생각대로 소화는 그 때보다 못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녀의 능력인 군신의 기에 기인했다.
'군신의 기'는 아군이 많을수록 강해지는 이능(異能). 마수들의 숫자와 사일런스의 숫자를 고려해보면 적은 양은 아니지만 유다전 때는 국가를 덮을 정도의 아군들이 산재해 있었다.
당시 소화의 능력은 삼검주 이상. 요연에 버금가는 무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 특출난 특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술적인 문제가 묻히고 말았다. 하여와의 대련으로 어느정도 기르긴 했지만 거의 쓸모가 없었고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 적용도 어려웠다.
비우내포를 상대하고 있는 마수들쪽도 마찬가지였다.
다행이도 그쪽은 이기고 있었지만 소마(小魔:어린 마수)들을 특성상 노마(老魔)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상황만 보자면 어떻게든 될 것도 같지만, 그 전에 이쪽이 전멸하면 얄짤없다.
"어떻게든 버텨! 장기전이 되면 우리가 이긴다!"
"무슨 소릴 하는거니 내 사랑...?"
루카의 시야가 타오르는 불꽃으로 명멸한다. 순식간에 시야를 빼앗기고 배에서 짐작하기도 힘든 통각이 엄습한다.
치이이이익...
"끄아아아악!!!"
불꽃을 배에다가 생으로 지지는 느낌. 아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불꽃이 둘러진 손가락은 그 자체로 쇳물에 담근 몽둥이나 다름 없었다.
살이 녹아내릴 것일까. 배에서 기이한 감촉의 액체 비스무리한 것이 흘러내렸다. 피랑은 다른 감촉이니 아마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이한 것이라면 불꽃에 의해 변하더라도 이렇게 녹아버리지는 않았는데 녹았다는 것. 아니, 지금은 그런 것조차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콰과과과과!!!
불꽃으로 된 손이 땅을 헤집어놓는다. 땅거죽이 크게 패여나가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해놓았다.
불타오르는 대지. 미쳐버린 마수는 루카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주변에서 동료들의 병기가 다리를 붙들지만 순식간에 흐물흐물해져 의미는 없었다.
죽는다. 그것을 느꼈다.
"업보...겠지."
그는 많은 사람을 죽여왔다. 자신이 살해당하더라도 별 수 없다고는 생각했다. 용병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건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친구를 제 손으로 보내버렸다.
이것은 용병이고 무엇이고를 떠나서 인간으로서는 그래선 안된다. 이유가 있더라도, 죄는 무거울 것이다.
하지만....
"문주님을 죽일 수는 없지...!"
단검으로 심장을 덮는 왼쪽 가슴에 빠르게 마법진을 그렸다. 기이하게도 핏물이 흘러내리지 않고 바로 굳어버리며 거대한 마력을 끌어모았다.
대(代) 화력 살(殺) 생폭진식. 자결하는 것으로서 이루어지는 대마법진으로 금기술. 아마 이것으로 자신은 죽겠지만, 지귀심화에게 큰 타격은 줄 수 있을 것이다. 움직임을 몇분정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떠올리자 루카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겨우 몇분이다. 어찌보면 정말로 짧은 찰나이지만 생명값으로는 너무 쌌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느 한 사람이 떠오른다.
육왕 고요. 일본에서의 싸움 때까지만 해도 장비만 갖춰지면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유다를 상대로 싸워서 버텼으며 그 스스로의 무력도 이제 문주님 못지 않다. 패널티가 있기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전적이 화려했다.
자신은 그에 못지 않은 사람을 살아왔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부족한걸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해도 생각해도 머릿속에 차오르는 것은 지금까지 쌓아온 죄업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는 것뿐.
'결국 이것뿐인 인간이란 건가....'
대(大)자로 뻗어있는 그의 옷가지가 조금씩 타올랐다. 얼마남지 않은 생명의 빛이 꺼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눈꺼풀 아래로 희미하게 천천히 다가오는 지귀심화의 몸체가 보였다.
타오르는 백색빛. 온도를 짐작할 수 없다. 아직 닿지도 않았는데도 옷가지가 타들어가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보통 온도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후우웅...
지귀심화의 주먹이 치켜들어진다. 희미하게 보이던 상황을 감아 무시했다. 그저 명부로 이송되는 느낌이란 것은 어떤 것인지, 자신을 죽인 친우를 보면 무슨 소리를 할지가 궁금했다.
부우웅!
죽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it's show time~~~~~~~!!!!!!!!"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 감기던 눈이 번쩍 뜨였다. 눈 앞을 가리던 지귀심화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아니, 상체를 세우니 보이기는 했다.
상반신은 어디로 날아간 것인지 하반신만.
치이이익....
하반신에 둘러져 있던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불꽃이 사라지고 남은 검은 것은 재가 되어 석고상처럼 부서져 바람에 날려갔다.
"쯧, 옛날부터 네놈의 성깔은 변하지 않았군."
"큭큭큭! 너무 그러지 말라고? 옛날에 잃어버렸던 힘을 완전개방하는 날이다! 어찌 기뻐하지 않을쏘냐!"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자그마한 여자아이와 그와 비등한 나이 또래의 남자 꼬맹이가 펑키한 옷차림으로 치우회의 영역에 들어오고 있었다.
"당신들은...?"
"난 아쥴 레이키아. 최후의 귀수산이다. 너, 희귀한 구경을 한거야. 참고로 저기에서 폭주하려는 남정네는 리바이어던."
"아, 그런가요."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아이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문주가 말했던 귀수산이란 종족에 대해서도 상기할 수 있었다.
먼 옛날, 팔대간부이던 리바이어던과의 전투로 힘을 잃은 최후의 마수로서 강력한 해양마수...지만, 특이한 성격 때문에 오랫동안 사귀어온 친구조차도 꺼린다는 노마(老魔)였다.
리바이어던은 비교적으로 세상에 많이 알려진 해룡공으로서, 그 강함은 인지도에 비례한다고 얼핏 들었다. 일전의 싸움으로 힘을 잃었다고 들었지만 둘이 같이 있는 것을 보아선 서로에게 걸어둔 금제는 해제한 모양이었다.
"하하하하핫!!! 멋진데, 역시 힘이란 좋은거야!"
미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웃어재끼는 리바이어던의 다리가 채찍처럼 휘둘러진다. 마수들에게 서서히 포획 당하던 비우내포의 몸이 세로로 쪼개졌다.
피가 흩뿌려진다. 어째서 고전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쉽게 공격하던 마수들이 유린당한다.
강하다. 이것이 문주님과 동렬의 실력자.
문득, 의문이 들었다.
"헌데..."
"음? 뭔가 알고 싶은 것이라도 있나?"
"예에. 이곳은 바다가 아닌데 어째서 저만한 능력을 쓸 수 있는겁니까?"
게다가 본모습조차 아니다. 저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옳다면 저렇게 쉽게 당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약해졌어도 리바이어던의 능력 밖이다.
아쥴은 아이잡지 않은 얼굴을 해보였다.
"이거 때문이지. 꽤 쓸만한 물건이거든."
그것은 푸른색으로 빛나는 단창, 우사였다. 분명히 육왕이 가지고 있는 삼신기 중 하나인 물건으로 분명히 주인이 다르다.
그런데 어째서?
루카의 생각을 읽은 듯, 아쥴이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나중에 이곳을 공격하라고 명령한 것이 바로 그 꼬마니까. 약해질 것이 뻔하니까 이걸 주는 것도 잊지않고. 정말이지, 예언가가 아닌가 싶다니까."
"하, 하하. 그렇군요.... 그랬었어."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육왕이 직접 나서서 준비하라고 했던 일이다. 그 스스로도 대비를 하지 않았을리가 없었다. 그 보험으로 보내놓은 사람이 군신과 저 두 마수. 과연 이만한 일을 처리하는데 딱 적당한 전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리바이어던의 다리가 용연용신의 머리를 찢어발기는 것으로 모든 전투가 끝났다. 아쥴은 그 모습을 보면서 루카에게 명령했다.
"자, 운천을 옮겨라."
"...어디로 말입니까?"
"당연한걸 묻는군."
아쥴은 잠시 후에 사악하게 웃었다.
"방주다."
======================================================
예, 아이젠입니다.
예고 했던데로 재미없습니다.
현재 최종전의 초입부분을 집필하고 있습니다만, 대군 대 대군의 묘사는 어렵군요. 일 대 다수까지는 어떻게든 커버가 가능했는데 이쪽도 다수가 되어버리니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최종전이 끝나고, '이 세상의 기묘한 이야기'와 'sixth 스네이크', '첫키스로 시작되는'을 동시에 연재해야 하는데, 더럽군요.
죽을 맛입니다....만, 좋아하니까 하겠습니다.
응원해주십시오! 오오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