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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254화 (25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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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철컥.

문을 고정하는 격철이 얇은 소리를 냈다. 닫혀버린 문의 밖으로 나온 능파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런 능파에게 요연과 호지, 슈가 모여들었다.

"요애는.... 어떻습니까?"

걱정스럽게 묻는 요연. 그녀 말고도 다들 말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요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띄게 표정에 드러났다. 할아버지의 상세를 직접 보고나온 능파의 표정 또한 그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운의 정체를 폭로하고, 나흘째. 반쯤 넋이 나간 모습의 할아버지는 따로 마련한 독방에서 두문불출했다. 챠이의 죽음은 모두에게 충격이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할아버지에게는 가장 큰 충격이라는 것을 능파는 모르지 않았다.

챠이의 그릇된 충심을 돌려놓으려고 노력한 사람이 할아버지고, 그에게 행복을 찾아주려고 했던 사람도 할아버지다.

챠이는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아들과도 같은 존재. 할아버지의 가장 좋은 이해자인 능파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운과 챠이가 잘되기를 바랬던 것도 알고 있었다.

충격이 많이 클 것이다.

"말을 해보십시오, 능파! 요 나흘간 식사도..."

"걱정마. 내가 그 나흘간 억지로 쑤셔넣었으니까."

"아니,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가...."

요연이 당황하자 능파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뭐, 그리 크게 신경 쓸 것은 아니에요. 아마 방주에 도착할 쯤에는 정신을 차리겠죠. 그동안은 제가 수발을 들어볼테니까 신경 꺼요."

능파의 말에 요연들은 못내 수긍했지만 관심어린 시선을 굳게 닫혀진 철문에서 때지 못 하고 있었다. 능파 또한 남들에게 티나지 않도록 힐끗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을 잊으려는 듯, 자신의 뺨을 친 능파가 입을 땠다.

"것보다 요연. 운의 처리는?"

"아, 요애의 말씀대로 일단 가둬두기만 했습니다."

운은 죽어마땅한 죄인이다. 비밀을 감춘 상태라면 모를까, 밝혀졌는데도 살린 이유는 요가 막았기 때문. 살아서 죗값을 마련하라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풀어놓는 것은 꺼림칙했기 때문에 요연의 사신검을 방 주변에 꽂아 소통불가의 절대결계를 펼친 상태였다.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사신검의 주인인 요연이나 결계를 박살낼 수 있는 유다 밖에 없다.

요연은 슈의 어깨를 잡고 능파가 있는 공간을 빠져나왔다.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요연의 등을 찔렀지만 지금 당장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자리를 옮겨 도착한 슈의 방. 능파라면 분명히 슈의 방에 몰래카메라 같은 장치를 해놨을테니,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긴다해도 괜찮으리란 생각에 이곳을 왔다.

어깨를 쥐었던 손을 풀어내자 슈가 공포어린 눈으로 요연을 올려다봤다.

"저기, 어째....서?"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

슈가 방의 구석으로 틀어박히면서 오들오들 떤다. 아마도 말 뜻을 착각한 것 같았다. 요연은 머리에 손을 얹었다.

"파묻는 것이 아니라,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단 겁니다."

"에, 아. 그렇구나. 뭔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슈가 다가오자 요연은 침대에 앉으면서 시선을 날카롭게 바꾸었다. 그 칼날 같은 시선을 받은 슈의 몸이 굳었다.

목 언저리에 칼끝이 디밀어지는 듯한 느낌. 살기다. 그것을 요연에게 느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짐작가는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카타스트로피의 전 일원이었다는 것. 분명히 그것이다.

"슈. 만일 제 대답에 거짓으로 답할 시에는 손가락부터 친히 베어드리겠습니다."

"아, 알았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요연이 눈을 감았다. 청각에만 의지 하는 것 같은 그녀의 행동에 슈는 갸웃했지만 그럴 틈은 없었다.

질문이 날아온 것이다.

"카타스트로피에 있었던 것은 언제부터?"

"그건 잘...."

슈는 정확히 몰랐다. 영국에 있을 때는 아빠의 친구라는 사람들과 접촉하고, 칠흑성검 마왕을 받고. 여러가지로 그냥 살아만있었다. 마법 단련도 조언이라면 꽤 받았지만 딱히 훈련 받은 것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눈을 뜨지 않은체로 요연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히익, 하고 슈의 몸이 떨리지만 요연의 행동은 그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잠든 것이 아닐까 싶은 요연의 모습에 슈는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어보지만 무반응.

요연에게로 다가가서 동태를 살피려는데 요연의 입이 열린다.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자신이 그들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언제입니까?"

"저번해 여름 바다야. 그 때 카타스트로피가 접촉을 해왔어."

"옛날 일을 생각해봤을 때 언제부터 접촉해온 것 같습니까?"

"아마도... 내가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응.... 한 열 셋미만... 정확히는 요가 언데드 퀸이 되기 전부터 그랬던 것 같아."

만약 그런 것이라면 거의 십년. 그들의 기술로 한명의 인간을 이만한 수준으로 키워두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요연의 질문이 멈췄다. 대신 주변의 공기는 더욱 무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말하지 않았던 겁니까? 카타스트로피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핵심을 찌르는 말, 슈는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거짓말을 준비하지는 않았다. 최대한 막힘없이 말을 할 수 있도록 조금씩 준비해두고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어. 바다에서 접촉해온건 알았지만 그 때는 누구인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뒤에 삼검주라는 이름이 거론 되고서야 눈치챈거야. 그.... 적의 본단과, 내가 누구였는지를. 하지만 말하기 어려웠어. 내가 적들과 친했다는 것이 알려진다는 것이 싫었어. 그래도, 이해 해줄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말하려고 했지만 계속 부정적인 생각만 떠올라서..."

벌떡.

요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칼이라도 날려오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슈 였기에 그녀의 반응은 상당히 의외였다.

요연이 문을 열고 닫으려했다. 닫히기 직전, 요연의 입이 열린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당신이 만약 거짓말을 했다면 베어버렸을테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겠죠."

요연은 슈의 반응을 보지 않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에 머리를 싸맸다.

그건,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능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니 해결책은 있을 것이지만 그 해결책은 '안된다'. 해선 안된다.

만약에 슈가 그렇게 되기 전까지 해결책을 찾지 못 한다면. 그 때는 요애의 미움받을 것을 각오했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고, 스스로도 분명히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요연이 슈의 목을 끊는다, 는 장면을 직접 본다고 해도.

"무슨 이야기 했어?"

슈와의 대화를 끝내고 식당쪽에 돌아오자마자 호지가 요연에게 날린 질문. 상당히 마음에 안드는 눈초리였기 때문에 대답도 나빠졌다.

"호지가 알바 아닙니다."

조금 어른스럽지 못 했다고 생각하면서 돌아서는데 호지가 가로막아섰다.

"난 알아야겠어. 아빠가 저꼴인데, 따로 가서 할 이야기가 뭐 있는데?"

호지의 언동. 요연과 슈를 싸잡아 배신자가 아니냐고 묻는 것이다. 자신의 애정(愛情)조차 깎아내리는 말에 주먹을 쥐었지만, 날리지 않았다.

의심받을 짓은 확실히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런 행동은 분명히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화를 눌렀다.

호지에게 최대한 성의 껏 대답했다.

"슈에게 물어본 것 뿐입니다. 카타스트로피 때의 이야기를."

"언제부터 그렇게 머릴 쓰셨다고? 머리 쓰는 건 능파하고 아빠에게 전담했으면서."

이제는 대놓고 시비조다. 열이 뻗쳐오르고 감정이 뒤엉킨 것은 요애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인 듯 했다.

예비용으로 구해둔 허름한 철검을 비스듬하게 쥐었다.

"...싸우자는 겁니까?"

"헷, 해보려구?"

"하아아아...."

전기를 고무시키는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드는 한숨소리. 백색머리카락을 두개로 묶어 트윈테일로 만들더니 말한다.

"바보들뿐."

"...죄송합니다. 너무 감정이 고양됬는지도 모르겠어요."

"흥. 그런 반응을 바란 건 아니지만요. 일단 그렇다고 해두죠. 할아버지라면 재밌었겠지만..."

이해 못할 소리를 하는 능파에게서 눈을 돌려 호지를 보았다.

"호지도 적당히...."

"마침 잘왔어. 요연보다도 더욱 의심스러웠던 참이야."

능파의 한쪽 눈이 치켜올라간다. 눈빛이 의문과 분노를 띄고 호지에게 꽂힌다. 호지는 오히려 당당한 얼굴로 능파의 눈빛에 맞선다. 치직, 하고 번개가 튀기는 것 같은 소리가 나는 것만 같은 상황에 요연이 그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더이상 냅두면 사단이 날 것 같았다.

"호지. 적당히 하십시오.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요연에게 묻겠어. 능파가 의심스럽지 않아?"

"...."

고개를 돌려 대답을 회피한다. 대답의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그것 자체가 최고의 대답이나 다름 없었다.

사실, 요연은 확실히 능파를 의심하고 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누구도 믿기 힘들었다. 그나마 적과 관련이 있다는 슈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역시 전부 다 의심스러워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의 소꿉친구인 운이 배반자로 둔갑하고 있던 마당이다. 외유를 두번이나 떠난 적 있던 호지조차도 의심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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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아이젠입니다.

우선 옛날 이야기를 잠시 하고 싶습니다.

이 육아일기는 무계획으로부터 시작한 이야기입니다. 아실분들은 알겠지만... 초반에는 패러디들이 조금 있었지요.

그것들은 전부 초반에 그만뒀지만.

소누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기본 토대가 있기는 했지만, 그 때는 소유를 중심으로 일을 벌이는, 그런 이야기 였습니다.

토대가 완전히 굳어진 건 일본에 갔을 때. 조금씩 살을 붙이는 건 다음에도 했지만 그 때가 가장 중요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소유'를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을 보시다 보면 아시겠지만, 소유의 전 동료들은 대부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전투는 하겠지만, 지면으로 등장할 일은 없죠. 민초나 춘운, 하윤정도는 등장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본편에서 후일담 같은 형식으로 소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건 꽤나 즐거웠던 작품이니까요. 금방 끝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뭐, 스네이크는 조금 연재가 힘들어지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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