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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살인!? 하고 멋없게 외치지는 않았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다행히도 능파가 끌고 오는 그것의 모습을 육안으로 약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과 같은 피부색을 가졌지만 부드러움이 존재하지 않았다. 매끈하게 뻗은 다리와 팔이지만 탄력이 없었고 아름다운 눈이지만 인간과 같은 수분이 없다. 인간과 같은 크기지만 살아있는 자들 특유의 생기가 있지 않았다. 입혀져 있는 옷도 현대는 물론이고 과거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복식이다.
인형. 가까이서 봐도 인간과 착각할 외모의 그것이 능파의 손에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슈도 인형의 파츠 같은 것을 한아름 들고 있다.
"능파. 뭐랄까, 너 다운 정보구나 그거."
능파는 비웃는 것 같은 미소로 인형을 휙 던졌다. 인형이 내 앞에서 육중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진다. 의외로 무거운 소리에 등줄기가 오싹하는 것을 느꼈다. 능파는 그걸 증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가 이쪽을 보았다.
"할아버지야말로 이런 것 하나 구해오지 못 하다니 의외네요. 아니, 짐작은 가지만."
뭔가 저 비슷한 인형을 가져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투. 짐작은 갔다는 말은 이해가 가능했지만 그 말은 뭔가가 이상했다.
저렇게 이상한 물건을, 발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어딜봐도 저런 것이 발견될 법한 구석은 없다. 그런데도 저런 말이라는 건, 솔직히 짐작가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더욱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능파가 슈에게서 인형의 팔 다리를 받아들었다.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걸레짝이 되어있는 인형의 팔다리를 빼버렸다. 안쪽에 근육으로 된 이음쇠가 보이고 그 부분에 새로운 팔 다리를 끼워넣는다. 그러곤 인형의 등짝 부분에서 여러가지 조작을 하는가 싶더니 그걸 내팽겨치곤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아무도 저 같은 걸 구해오지 못 했나요? 산책나간 할아버지야 그렇다쳐도, 요연이랑 엄마는..."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능파의 시선에 호지는 개선장군의 그것처럼 당당하게 가슴을 피면서 웃었다. 호탕하게 웃는 것이 상당히 재밌는 것을 가져온 것인지 요연의 얼굴색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호지가 당당하게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것을 플레이트를 하나 꺼낸다. 검정 일색의 흑요석 같은 얇은 판으로,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헤에. 엄마 답지 않게 제대로 된 걸 구해왔네요. 그런데, 제가 가져온 건 본 적 있나요?"
"모른다구, 그런건!"
한심함의 절정을 맛 본 것처럼 능파가 고개를 젓는다. 능파는 바닥에 적당히 버려진 인형 파츠를 들어올리더니 검지손가락으로 인형의 피부를 튕겼다.
뚱, 땅.
마치 거문고를 뜯는 것 같은 청명한 소리가 났다.
"이건 여기에 산재해 있는 건물에 하나도 빠짐없이 빼곡히 있던 거에요. 건물에 들어가봤으면 뻔히 아는 것이거든요?"
호지는 고개를 돌리면서 휘파람을 분다. 호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호지는 척보기에도 굉장히 중요해 보이는 것을 찾곤 바로 이 자리에 돌아왔다. 뭐가 어떻든 생색은 낼 수 있고, 좋은거면 그 이상으로 (나에게) 이쁨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능파는 딱히 추궁할 생각은 없는 듯 따로 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능파의 시선이 차갑게 인형을 향했다. 상당히 껄끄러워하는 눈빛. 아니, 보는 것 자체로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는 얼굴을 하는 것이, 인형의 정체가 짐작이 갔다.
"할아버지, 이거 역시 신의...."
"아아. 짐작하고 있어. 최악이군, 신이란 작자는."
인형은 문자 그대로 인간이다. 케이슨에게 듣자하니 진인과 신들의 시대에는 진인들이 노예로 부려지는 시대였다. 한마디로 자잘한 일은 전부 진인들에게 맡기고 신이란 작자들은 호의호식 했을 것이 불보 듯 뻔하다.
그런데 세상에 이변이 일어났다. 죽고 싶지는 않으니 도망쳐야 한다. 그래서 도망치려고 방주를 마련하고 보니 잔심부름을 들어줄 존재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인간'이란 소리다. 세상에 뿌려진, 현대로 전해진 인간은 그 인형의 진화종. 저 인형처럼 팔다리를 교체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합체품으로 만들어진 것이 현시대에 볼 수 있는 인간.
지나친 비약인 감이 있었지만 인형을 보고 느껴지는 이 '역겨움'은 분명히 그 증거다.
"...호지야, 일단 카드를."
내 얼굴색을 보고 걱정하던 호지는 냉큼 그 검은 플레이트를 넘겼다. 그것을 받아들고 손가락으로 치수를 재던 나는 생각대로 자판기 형태의 무언가에 딱 알맞는 크기라는 것을 알았다.
모가 될지 도가 될지는 모르지만 집어넣는다, 는 선택지가 있지만 망설여졌다. 쉽사리 해보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컸다. 멋모르고 잘못 건드리면 이족보행 기동병기라도 출진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기술력을 가진 곳이 방주였다.
카드를 이리저리 뜯어보고, 마력도 집어넣어보고(내부에 있는 회로가 마력에 반응한다는 것정도는 알았다. 참고로 인형도) 하다보니 능파가 카드를 빼앗았다. 나처럼 둘러보던 능파는 그걸 들고 인형에게로 다가가 발끝으로 퉁퉁찼다.
위이잉, 하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리가 울린다. 끼긱, 하고 잠시 어긋나는 움직임을 보이던 인형이 바르게 몸을 곧추 세웠다.
곧게 뻗은 자세. 분명히 일본에서 본 듯한....
"메이드다. 아빠, 메이드야."
"응. 그런 것 같구나."
호지의 말에 나는 일본의 가짜(아무리 그래도 프로는 아니니까) 메이드들을 생각하며 실소했다. 아무래도 옛날의 하인들이나 현대(?)의 하인들의 개념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다행이네요. 하인들이 있을 법한 곳에서 가져왔는데. 하지만, 말이 통하려나요."
능파가 배부근을 통통 친다. 인형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곤 입을 열며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 일단 말이 통했으면 좋겠는데요. 엄마."
"응?"
중얼거리던 능파가 호지를 부르자 호지는 총총 걸음으로 능파의 곁으로 갔다. 능파가 인형의 이마와 가슴팍 몇부근을 손으로 짚어준다. 마치 혈도를 가르쳐주는 것 같은 능파의 손짓에 호지는 고개를 끄덕여보이고 인형의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손이 모든 것을 포용할 것 같은 부드러운 빛을 쏟아냈다. 그 빛은 일반적으로 뻗어가는 것이 정상인데 마치 물질이 된 것처럼, 인형의 머릿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위이이이이이!!
급격하게 내부의 톱니가 발버둥치는 것만 같다. 비명을 지르는 인형이 이내 정지했다.
"역시 안되는 건가요.... 별 수 없죠. 새로 하나...."
"무스, 무스은? 일, 이십니, 까?"
반응을 보였다. 더듬는 것이 퍽 인간답다.
아무래도 능파는 호지에게 이 시대의 말을 집어넣는 것을 익히게 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호지는 내 머릿속에다가 여러가지 언어를 집어넣은 적도 있고 가끔이지만 멋대로 내 속을 읽어냈던 적도 있었으니 최적의 상대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인형의 몸도 플레이트처럼 마력이 전도되는 걸 일찍 눈치챈 것 같으니 당연한 일.
고개를 좌우로 몇번씩이나 갸우뚱하더니, 혀를 낼름 거린다. 말을 하기 위한 준비운동이라도 되는 것일까, 그것이 행동을 멈추었다.
"이곳은 어디죠?"
"천지의 가운데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존재, '신'들의 안식처.. 방주. '방주 아크'입니다. 미천한 인형이 신을 뵈옵니다."
".... 엄마? 이거에다가 뭔 짓을 한 거죠?"
아무래도 이런 반응에 대해서는 부탁한 기억이 없는 모양이었다. 호지는 뒷통수를 긁으면서 난처한 낯으로 웃었다.
"아니, 그래도 우리 말을 알면 좋잖아. 그런데, '신'? 그 시대에는 신이란 존재가 대중적이었나봐."
"그러게 말이에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응수하던 능파는 날카로운 눈으로 인형의 위 아래를 살폈다. 몸가짐이 바른, 나무랄데 없는 하인의 자세다. 그것이 기분 나쁜지 허벅지를 걷어차지만 하인의 표상인 그것은 전혀 반응이 없다.
능파는 다시금 걷어차며,
"신으로서 묻겠는데, 여기서 가장 빠른 이동수단은 뭐지?"
이제는 숫제 하대다. 어지간히도 저것의 존재자체가 마음에 안드는 것 같다. 능파가 잠깐 이쪽을 힐끔거리더니 얼굴을 돌렸다. 아무래도 나와 관련된 일일 것 같다.
역시 '인간'이라는 느낌 때문인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각일뿐이고 실재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아니면 나의 생각이 틀린 건가.
여심의 오묘함을 통감하고 있자니 인형이 능파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방주철도, '아크 레일'이 있습니다."
"방주...철도?"
번역체라서인지 인형이 말하는 그것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짐작은 갔다. 하지만 이 미래도시의 철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이미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목표는 잡혔다.
인형이 말하는 이 방주 최고 속도를 가진 철도, 아크레일. 어느정도의 속력을 가지고 있을까, 어떤 형태를 하고 있을까.
인간이 상상도 하지 못 하는 형태일 것 같은 느낌에 소년처럼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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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철도 뜨는구나!
안녕하십니까, 아이젠입니다. 방주에 대한 것이 슬쩍 슬쩍 나오는 군요, 벌써 여기까지 연재를 했다니 왠지 꿈만 같습니다.
저 검은 플레이트는 '승선권'. 스네이크를 보셨던 분이라면 이해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주에 올라서야 스네이크와 공통점이 보이니까요.
아, 이 벅찬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