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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전.
방주의 중심에 있는 기둥탑. 마치 거대한 돌을 기둥의 형태로 깎아놓기만한 것 같은 기묘한 형태를 가진 탑의 위에 서서 군림자의 기분으로 지상을 바라보았다.
화약, 마력의 불태움이 담배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인간과 인외의 존재가 결합된 군세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앞으로 있을 전투에 대비를 하고 있었다.
군대가 발을 앞으로 한발자국 내딛었다. 퉁, 하고 북을 치는 듯한 군진(軍進)소리가 울리면서 주변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보고 있던 사람은 물론이고 보지 않던 사람의 시야조차 휘어잡는 군기가 그곳에서 발현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전쟁이라는 단어를 뼈저리게 느꼈던 적은, 솔직히 처음이었다. 유다전 때, 런던전 때도 그저 넓은 곳을 배경으로 한 '전투'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하지만 지금 위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자니 전쟁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오겠지... 놈들."
동방삭을 필두로 한 부대가 오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받아둔 상태다. 적들은 남극쪽에서 태평양의 중심에 있는 이쪽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었다.
바보 같이 정면으로만 치고 들어오지는 않을테니 아마 중간쯤에서 두 부대로 휘어질 터. 요격부대가 레플리카들을 모조리 작살내주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확실하게 결판이 나는 것은 이 방주에서다.
"이길 수... 있을까."
패색이 짙다. 런던에서는 건곤일척{승패(勝敗)와 흥망(興亡)을 걸고 마지막으로 결행하는 단판승부}의 수로서, 지느냐 이기느냐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전투는 다르다.
뒤를 생각해야 한다. 이번 싸움에서 이겨도 가장 중요한 마지막 전투가 남아있다. 전력을 최대한 온존시키고, 다음 전투에서 승패를 가릴 수 있게 해야하는 것이 이번 전투의 최우선 과제다.
어렵다. 모든 전력을 투입해서 싸워도 모자란 판인데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어...."
"한심하지 않다."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등장한 유다. 나는 기둥탑의 천장에 비밀통로가 있는지 의심해보아야만 했다.
유다가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한 손짓은 보이는 것이 아닌, 무언가의 흐름을 잡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왕은 '이것', '흐름'에 대해서 어렴풋이 느끼고 있어. 그걸 해석하고, 전개하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왕은 가능해. 넌... 진정으로 멋진 남자다."
무엇보다도, 라고 덧붙이는 유다의 눈은 멍하니 어딘가로 향해 있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왕은 내가 도달하지 못한 곳에 있어. 왕과 나는 닮은 꼴이니까."
"힘은 정반대지만 말이야."
내 말에 유다는 난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정말로 보기 힘든 것이어서 언제까지고 보고 싶은 미소였다.
이거다. 내가, 챠이에게 쥐어주고 싶었던 웃음. 바로 그것이 유다의 입가에 걸려 있었다. 왠지 모를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문득 이상해서 유다에게 물었다.
"그런데 유다는 전투준비 안 해? 동방삭이 위험한 건 네가 가장 잘 알잖아."
유다는 내 말에 묵묵히 검을 뽑았다. 불사의 파편으로 만들어졌다는 칠흑의 성검이 공기를 가르면서 이물을 태운다. 그리고 능숙하게 허공을 두어번 쳐내던 유다는 검을 등에 걸치고 기둥탑의 끝자락에 섰다.
유다는 내 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은체 앞만을 보았다.
"내 능력은 '업(業)'이다. 단련하고 싶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야. 잊은건가?"
업. 죄업, 악업, 선업.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지만 결국 업이라는 이름으로 귀결된다. 유다의 힘은 어떠한 업이라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므로서 강해지는 타입. 참고로, 사람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업이 늘어난다'. 그렇기에 유다에게 훈련이란 의미가 없고 그저 강해질 때까지만 기다리면 된다.
일견 괴물 같은 능력이지만 그렇기에 자신의 한계조차 알 수가 없고 스스로 공격을 받아가며 한계를 측정해야 한다. 게다가 '업'이라는 것 자체가 본디 인간에게 독이 되는 힘이다. 유다라고는 해도 언제 자신이 잡아먹힐지 모르는 양날의 검.
그것이 업술이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고려하지 않았을리가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건, 업술을 빼고 다른 걸로 싸우지 않겠냐는 소리야."
유다는 무려 2000년간 업을 이용해 싸워왔다. 유다 본인도 느끼고 있겠지만, 그것은 몸 내부부터 파괴해 가고 있을 것이다. 유다가 죽을 이유는 전투뿐만이 아닌, 자멸이라는 방법도 있었다. 한시바삐 새로운 싸움법을 찾아야만 했다.
유다는 칠흑의 검, 마왕을 뽑아 기계적이지만 유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인간들의 파동을 가리켰다.
한발자국 전진, 후진. 느릿하게, 빠르게. 그렇게 움직이며 있을리 없는 가상의 적에게 공격을 하고 있었다.
"그 '영역'이 아니다. 저 '남자'다."
전신에 옷처럼 두른 무기들. 일반적인 총, 검, 창은 예삿 것이고 갈고리처럼 생긴 무기에 구불텅거리는 봉 같은 기이한 무기들이다. 그것을 시기 적절하게 바꿔가며 공간을 잘라내고, 틈세에 찔러넣는다.
빠르지만 느리고, 강하지만 약하다. 그 상반된 관계를 연결하 듯 공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공격이 지나가는 모습 뒤로 희미하게 적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본다는 것자체가 무인에게는 공부나 다름 없다. 무인이 아니더라도 무리를 터득하게할 것만 같은 힘이, 그곳에 있었다.
한국의 삼가 중 무의 가주 유운천. 상처는 다 낫지 않았을텐데도 저만한 움직임이라는 것은 놀랍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저 사람이 뭐? 강한 건 알겠지만..."
"나와 저자는 영생방법이 다르다."
"...?"
그러고보면 운천 아저씨도, 유다도 인간임이 분명함에도 살아있는 영생자. 어떠한 연유로 영생을 유지하는지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유다는 운천 아저씨를 가리킨 상태로 말을 이었다.
"영생을 유지하는 방법은 세가지. '변이(變異)' '이변(異變)' '기이(奇異)'. 변이는 인간이 마수와 같은 존재로 탈바꿈 하는 것. 사신검주가 여기에 속한다. 이변은 어떠한 사건으로 몸의 기능이 정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운천이란 남자가 이에 속하지. 기이는 아직 해명되지 않은 방법에 의해 영생을 유지하는자다. 나와... 챠이가 속한다."
챠이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껄끄러운 것인지 말을 흐렸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듣고만 있었다. 유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변이와 이변의 경우에는 조건이 명확하지만 기이쪽은 그렇지 않다. 위험천만한 것들 뿐이지. 챠이쪽은 그러하지 않았다만, 내쪽은 더더욱 위험해."
"어째...서?"
"...내 영생을 유지하는 것이 업술이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짐작했었다. 그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생각과 직접 듣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죽을지도 모르는 힘을 써야만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그것은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유다가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크고 따뜻한 손이 관리되지 않아 푸석푸석한 머릿결을 매만졌다.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익숙해졌고, 이 힘이 없으면 삭을 대적할 수 없어."
검을 등에 찬 유다가 기둥탑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허공임이 분명한데도 마치 바닥이 있는 것처
럼 걷는 그의 모습은 분명히 신비로운 부분이 있었다.
"왕. 왕은 왕 답게 신하들을 무시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해. 너무 위할 필요는 없지. 무엇보다..."
위이이이이잉!!
시끄럽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방주 전역을 강타했다. 사람의 정신을 각성시키는 소리에 단련을 하고 있던 사람들의 행동이 멈추고, 기민하게 움직여 자신들의 자리에 섰다.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카타스트로피 최강의 적인 동방삭 참전의 전투가.
유다는 소리를 즐기는 것처럼 눈을 감더니 리듬을 탔다.
"이 순간에는 남을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을거다."
타아아아아앙!
유다가 허공을 박찼다. 마치 탄환을 쏘아내는 것 같은 울림이 유다가 서 있던 공간에 파문을 그렸다.
치우회 최강이 카타스트로피 최강을 맞이하러 가버렸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잊고 있던 통신기를 꺼냈다. 일전에 경홍이 준비해줬던 보청기 형태의 자그마한 것이 아니라 뺨에 붙일 수 있게 넓적한 모습을 한 푸른 빛깔의 통신기. 그것을 왼쪽 뺨과 귀가 연결되도록 붙이자 능파의 호된 꾸지람이 들려왔다.
[할아버지! 지금 뭐하고 있던 거에요!]
"미안. 나 나름대로의 대비는 끝났으니까"
[그렇다면 상관은 없지만. 아니, 지금 할아버지에게 할말이 있다는 신호가 왔다구요. 그것도... 팔대간부한테.]
카타스트로피의 최고 중역이 나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은 솔직히 의외였다. 그것도 이런 시기에 통신이라니, 배신자로 찍혀도 이상할 것 없다.
선전포고라고 하기에는 시기가 이상하다. 전투직전의 이 순간에 그런 걸 보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배신자의 연락...일 수도 없는 것이, 카타스트로피에 심어둔 배신자는 누님이 꼬셔둔 시바로 끝.
연락 올 이유가 없다.
"그래서, 누구한테?"
그렇기에 질문했다.
능파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라이칸스로프. 그라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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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드로 부터의 러브콜~
안녕하십니까, 아이젠입니다.
드디어 방어편도 거의 막바집니다. 아니, 마지막 파트에 돌입했지만 꽤 길어질 겁니다.
이거보고 질문한 사람이 있어서(저의 프렌드) 말하는 겁니다만.
유다는 사실상 무한성장이 가능합니다. 불사, 불패급의 전력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죠. 하지만 불사와 불패의 힘 특성상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청출어람이 불가능하다는 느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