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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드
음속에 비견가는 속력을 실어 발을 차올렸다. 대기층에 만들어지는 단층이 거대한 칼날이 되어 공간을 둘로 쪼개놓았다. 내 쪽으로 도약하는 그라드의 속력이 줄지 않고 단층을 받아내며 돌격해온다.
두쪽으로 나누어진 팔과 몸, 피가 살아있는 쇠사슬이 되어 서서히 엮여가며 잘려나간 부분을 다시 붙인다.
라이칸스로프와 뱀파이어의 두 힘이 만드는 조화다. 재생력을 상징하는 두 종족이니만큼 이만한 기술로는 쉽사리 회복하고 만다. 좀 더 '특별한 공격 혹은 특별한 무기'가 필요했다.
휘리리릭!
형광등이 아닐까 싶을정도로 청동빛을 뿜어대는 보검이 그라드의 코 앞을 스친다. 내 공격에도 아랑곳 않던 그라드가 기겁하며 뒤로 몸을 물린다. 하지만 그는 바보가 아니기에 물리는 그 동작에서도 내 쪽으로 공진격을 쏘아냈다.
그라드가 쏘아내는 진공의 참격, 참격에는 참격으로 승부다.
혈문신 검의 형. 폭주하는 뇌기를 검의 형태로 엮어낸다. 자연력을 물리적인 날카로움으로 바꿔낸 혈문신의 비기가 공진의 참격에 맞섰다.
파아앙!
공진격으로 인해 비어있던 공간에 대기가 들어오면서 풍선 터지는 듯한 소리를 낸다. 무위로 돌아간 일격, 질쭉해진 혈심수의 손톱이 오오라를 넘실거렸다.
"피할 수 있나!"
오오라의 영역이 넓어진다. 그것은 그 자체러 거대한 해일이 되어 대지를 뒤집어놓으며 이곳을 휩쓸어버리며 다가왔다.
지상에서 피하는 것은 불가능. 피할 방향은 공중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고 있을 그라드가 아니다.
자신의 몸을 날려 친히 공중의 영역을 막는다. 뛰어오르려던 몸이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고, 발밑을 스쳐지나가는 청동빛을 밟았다. 나의 신형이 기이하게 흔들리고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점프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곡선을 그리는 나의 도약에 그라드의 눈이 번뜩인다.
검. 검이다. 능파가 가지고 있던 검 중 호랑이 문양이 음각된 검이 내 발밑에 있었다.
요연 수준의 능숙함으로 다루어내는 어검의 묘리, 사용장소는 잘못되었지만 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사용법이었다.
"호오. 훌륭하다, 소녀!"
"별 말씀을."
파아앗!
허공을 박차며 능파의 머리에 혈심수의 손톱을 찔러넣는다. 한손에 들린 용무늬가 음각된 검으로 혈심수의 궤도를 틀어내면서 허리춤에 발차기를 먹였다.
퍼억.
급소를 찌른 일격이지만, 그라드에게는 의미가 없다. 게다가 위력이 부족한지 타격에 의한 경직조차 굉장히 짧아서 능파가 피핱틈도 없이 반격이 날아들었다. 한번이라도 맞으면 명부의 손짓을 받을 공격의 직격코스에 노출되었지만, 능파의 표정은 평온하기 짝이 없다. 문득, 시선의 한쪽이 나를 향한 것을 보았다.
믿음. 나를 믿기에 저렇게 안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믿음에 부응해주지 않으면 남자의 도리에 어긋난다.
반월을 그리는 각법의 궤적, 혈심수의 위에 내려앉고 강철의 일격을 먹인다.
철의 형, 추의 형 복합 '철퇴'.
단단하면서도 무거운 전추(戰椎)가 혈심수의 위에서 터졌다.
꽈과광!
폭탄이 아닐까 싶은 폭음. 이쪽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혈심수의 에너지가 땅바닥을 전복시켰다. 자신의 살갗을 드러낸 땅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바닥을 가렸다.
직선적인 공격은 측면의 공격에 약하다. 그 정도는 상식. 사소한 것이라도 이용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아래쪽에 있는 그라드의 몸체에 연환격이 터진다. 그의 몸에서 피가 터져나오면서 육편을 흐트러뜨린다. 흔들리는 그라드의 신체, 능파의 쌍검이 빛을 토해냈다. 빛을 받아 수십개로 분열하는 검날이 그라드의 몸을 덮친다.
허나, 그라드의 몸은 이미 그곳에 없다. 머리가 부서져서 시야가 없을텐데도 그는 어떻게 알아내고 자리를 피한 것이다.
말도 안되는 상황, 혀를 내둘렀다.
"저놈은 도대체..... 괴물인가?"
"아무리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팔대간부가 둘이 모인 거에요. 당연히 저 수준은 되죠. 게다가 경험과 익혀온 무학.... 우리 둘이 덤벼도 승부를 내기는 힘들어요. 덧붙이자면....."
"응?"
"괴물 맞아요."
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뛰쳐나온 것처럼 그라드의 신체가 부활한다. 포효하는 그라드, 그 음파에 순간 압도되었다.
능파가 왔을 때, 공략법은 대충 찾았다. 그라드의 재생을 깨버릴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서 이쪽도 놀랄만한 것이었다.
그냥 부수면 된다. 부수고 부숴서 그라드의 '여력' 남지 않게하면 이쪽의 승리. 그라드는 더이상 재생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냥 공격하면 되는 것은 아니고 사막 때처럼 정화의 일격을 먹여야만 한다.
광진을 발동하고 있으니 정화는 패스. 불충분한 것은 없다. 하지만, 이만큼 공격을 먹여도 도대체가 약해지는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콰아아아아아아!!
옆에서 돌연 터져나온 힘의 격류. 사람의 자기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거대한 격류가 땅에 직선의 상흔을 남기면서 그라드의 몸을 휩쓸고 간다. 피부가 타올랐는지 녹아내린 육신의 흔적, 하지만 금세 본 모습을 찾는다.
경외감이 들정도다, 이젠.
"흐응. 참사쌍검에는 맥을 못추면서 드래곤 브레스는 저렇다니,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참사..쌍검?"
그러고보면 그라드는 능파의 검만큼은 반드시 피해냈다. 그라드라면 한두대는 맞아주고 회복하면 될텐데.
검을 자세히 보았다. 유려하게 뻗은 검신과 그 검에 음각된 호랑이와 용이 보인다. 깨끗한 검임에도 고풍스럽다는 느낌을 주는 정기(正氣) 있는 예기는 골동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좋아할만한 것이었다.
"아, 설마 사진과 사인?"
사진참사검과 사인참사검. 그렇게 유명한 검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최고에 속하는 보검이다. 사악함을 멸하고 참된 것을 바로잡는 성검이기도 한 보검.
보검의 입장에 있어서 그라드는 최대의 사악함. 검 자체가 약점인 것이다. 물론 맞더라도 회복은 가능하겠지만 빠른 속도로 그라드의 여력이 줄어갈 것은 분명하다.
능파가 검을 마스카라처럼 맞부딫혀보였다. 쨍쨍하는 소리가 맑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파사현정(破邪顯正), 위정척사(衛正斥邪)라고나 할까요?"
"위정척사는 그런데 쓰는 거 아니거든. 뭐, 어쨌건 비밀병기라는 것은 틀림없나. ....맞아주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라드는 빠르다. 광진 오식, 찰나로 압도하고는 있지만 빈번하게 따라잡힐정도로. 능파가 그나마 공격을 먹일 수 있었던 건 나와 맞붙는 그 틈바구니다. 그 틈세조차 번번히 놓칠정도로 그라드는 빠르다.
이 대 일. 나도 팔대간부 한명(오할과 오할을 붙였으니 한명)쯤은 상대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무리한 생각이었던건가, 열받는다.
사진과 사인을 내가 든다? 그건 불가능하다. 검에 있어서는 나 또한 사(邪)다. 잘못쥐었다간 간만에 돌아온 왼손을 또 다시 잃을지도 모른다.
"생각은 끝났나, 소년 소녀들?"
"...글쎄?"
능파에게 눈짓했다. 승부에 끼어들지 말라는 의지를 담았다. 능파의 얼굴이 구겨지지만, 능파는 뒤로 물러났다.
쉬이잇!
부메랑처럼 휘감기며 날아드는 공진격. 목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일부러 궤도를 틀어놓은 일격이었다.
간단한 위협. 지금 당장이라도 너희를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그리고 그라드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었다. 아마도 그는, 지금도 '봐주고 있는 것'일 터.
이길 방도가 없다? 아니, 있다.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은 건 그라드뿐만이 아니다. 이쪽도 비기 하나 둘 쯤은 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느리다. 솔직히 말해 저런 속도로 움직이는 그라드의 모습을 포착하는 것조차 불가능할거다.
최소한 다리를 묶어놓지 않으면 승부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타박, 콰아앙!
발을 앞으로 한걸음 내딛고, 그 발을 축발삼아 전력으로 도약했다. 튀어오르는 땅거죽, 맥동하는 심장의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이제 곧 바닥을 보일 것 같은 노심도 힘을 내서 계속 마력을 생성하고 있었다.
카아앙!!!!
도약의 힘을 실은, 깎아내는 듯한 발차기.
철의 형과 검의 형의 복합형식, 보검. 단단함과 날카로움에 특화한 발차기가 낫처럼 그라드의 혈심수와 부딫힌다. 보검의 겉을 일그러뜨리고, 내력을 전달하는 혈심수의 괴력. 정면승부는 이쪽에에 불리하다.
파바바밧, 파앙!
다리를 거두고 수십번의 주먹을 내지른다. 그리고 중심에 펜싱의 찌르기 같은 발차기를 꽂아넣었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다. 어느샌가 막아낸 그라드의 팔은 너덜너덜하지만 금세 자신의 본모습을 되찾았다.
허나.
"멈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맹격(猛擊)!"
퍽! 퍼억, 카가각! 타앙!
추의 형이 실린 주먹이 가슴을 때리고 순식간에 검의 형이 되어 팔을 베어냈다. 빠른 속도로 형식을 변화시키며 그라드의 몸체에 일격들을 먹였다.
변화의 변화. 속(速)의 속(速). 변화와 빠름에 치중한 일격들이 그라드의 신체 곳곳에서 터져나가며 그라드의 반격을 차단한다. 내 주특기인 속도전에서 압도하고 있었다.
돌이 된 것이 아닐정도로 말아쥔 혈심수의 주먹. 연환격의 틈세로 내지른다. 폭풍우 속에서도 끄떡하지 않는 거목과 같은 일격, 방어할 시간 따위는 없다.
콰아앙!
배 아랫쪽이 야수에게 물린 것처럼 뜯겨나간다. 치밀어오르는 고통과 피가 입 안을 메운다.
"내가 이긴 것 같구나... 육왕."
"그렇지만도..... 않을거다."
광진 오식, 거인. 나의 특기인 속도전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오식의 반쪽이다. 그 파괴력은 가히 '거인'이라 불려도 좋은 수준. 정화의 위력 또한, 압도적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라드의 몸체가 사선으로 부서져나간다.
포의 형으로 정화의 위력을 증가시키고, 검의 형으로 돌파력을 부여했다. 추의 형은 날카로움에 묵직함을 더하고 고의 형은 그 영역을 키워 그라드의 전신을 표적으로 설정한다.
내가 지금 내놓을 수 있는 최대의 일격. 머리 밖에 남지 않은 그라드가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정화의 힘으로 가루가 되어버린 몸체를 보며 그라드가 웃었다.
"미래로 나아가기에는 충분한가.... 뭐, 그쯤은 되어야 겠지."
그라드의 입에서 두개의 구슬이 튀어나온다.
검은 색과 은색의 그것은, 아마도....
"너의 운명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준비해뒀지. 받아두면... 쓸모가 있을거다."
휘청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세우며 그걸 잡아들었다. 그라드의 눈이 감겼다. 여러 사슬에 묶여있던 쾌속의 귀공자가 마지막 말을 남긴다.
"드디어... 죽어간 친우들을 만날 수 있겠어. 사막에서 한번 무너졌을 때 죽었어야 했거늘... 이것으로 만족했다........."
더이상 말하지 않는 그라드.
그라드의 머리는 모래처럼 바스러져서 바람에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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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왔다~~~~~~~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