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269화 (269/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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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문득 알았다. 무언가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알게되는 것과 같은, 그런 감각. 그것이 전신을 강타한다. 마치 내 뱃속의 장기들은 액체가 된 것처럼 파도를 일으켰다. 이 울렁거리는 감각의 학문적 정의를 어떠한 이름으로 내렸는지 나는 기억해냈다. 태어나서 제대로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단어를 상기하는게 늦었지만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멀미. 많은 사람들이 탈 것에 오르면 느낀다고 하는 것으로, 현재 나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사실, 난 멀미와 인연이 없었다. 탈 것에 타도 무감각했고 어지간하면 수면으로 때웠기 때문.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싸우기 위해 감각을 극한까지 단련했다. 조절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마저도 불가능한 이 상황에서 멀미는 최악의 적이었다.

위로 뛰어오르고, 아래로 하강한다. 체공시간이 늘어나고 줄어들고 하는 것이 내장들을 뒤집어놓는 것 같았다. 더불어 상처의 통각이 버무려지니 맛깔스럽게 차려진 비빔밥(빈사상태)이나 다름 없었다.

"느, 능파야. 나 죽을 것 같애...."

"죽어요, 그냥."

내 살기 위한 몸부림을 단번에 깔아뭉갠 능파가 앞을 가로막는 고층빌딩을 발로 딛었다. 움직이던 흐름이 깨지자 멀미의 균형도 일순 커지고 말았다.

목구멍 바로 앞까지 시큼하고 비릿한 무언가가 치솟았다. 능파의 앞이니 참아낼까 싶었지만 이런 건 바로 바로 빼내는게 나았다. 남자의 자존심 같은 것은 옛날에 버린지 오래고 이런 걸 이해하지 못할 능파가 아니었다.

"욱, 우웨에엑..... 크, 칵!"

피가 섞인 토사물이 쇠냄새와 산의 시큼한 냄새를 함께 내면서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러던 도중에 안의 상처가 터졌는지 순수한 피가 토해지기는 했지만 한결 속이 편해졌다.

능파가 그 모습을 보더니 짧게 말한다.

"더러워요."

"아니, 아픈사람에게 그딴 소릴!? 뭣보다 토한 건 네 때문이라고."

"여자에게 죄를 덮어 씌우다니, 최악이네요. 저 아니면 장가도 못 가겠어요."

"호지나 슈, 요연도 있어!"

"한 여자로는 만족 못 해요? 저질."

더이상 대답했다가는 나라는 인간의 정의가 어디까지 낮아질지 알 수가 없어서 더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열었다간 버러지 이하로 강등될 것 같았다.

울렁거림이 멈췄다. 멀미에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 그저 능파가 멈춘 것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창문도, 문도 없는 그저 백색의 커다란 막대기가 굳건히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방주의 중심부.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잠시만."

나를 내려놓은 능파가 벽에 손을 댔다. 고여있는 웅덩이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킨 것만 같은 파동이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파동과 함께 썰물처럼 쓸려나가는 물들의 사이로 능파가 날 다시 들쳐업고 지나쳐갔다.

하늘색의 종유동. 그런 말이 떠올랐다. 지금 우리(랄까 날 들쳐업은 능파)가 걷고 있는 회랑은 그런 진부한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런 회랑의 끝자락. 그곳에 청동의 문이 있었다. 능파는 그 문을 호방하게 걷어차곤 들어섰다. 안에서 깜짝 놀란 듯한 기척이 두개, 느껴졌다.

"어, 요!? 잠깐, 너 어떻게 된거야!?"

어렸을 적부터 들어온 특유의 곰 같은 목소리. 우다. 백색아성으로서 방주의 방어시스템과 싱크로하여 내외의 공격에 간섭하고 있을 남자였다.

"잔소리 말고 우물이나 가져와요. 그럴 수 있죠?"

"아, 물론."

우의 발 옆으로 시커먼 구멍이 솟더니 그곳에서 요요한 녹색빛의 물이 가득 차오른다. 놀랍다, 그렇게 말할 틈도 없이 내 몸이 그곳에 던져졌다.

칠공(七孔)이라고 말하는 구멍속으로 물들이 들어찬다. 산소를 들이쉴 수 없기 때문에 숨이차야 하건만 물이 산소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있을 수 있었다.

평범한 물보다는 조금 끈적거리는, 약한 크림 같은 느낌의 액체가 코로, 입으로, 귀로 밀려오면서 몸 안의 망가진 곳을 하나 하나 수복해갔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몸의 감각이 하나씩 되살아나고 통각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간다.

세포들이 서로 결합되어 가는 것을 눈으로 지켜본 것마냥 세세하게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가 있다. 놀라울정도로 섬세하기에 오히려 무서울 정도다.

그럭저럭 몸이 회복 된 것 같자 얼굴만 쏙 뺐다. 머리쪽은 공격의 피해가 거의 없었고 우와 소누가 무엇을 하는지도 봐야만 했다.

새하얀 방이었다. 곳곳에 기묘한 보석이 박혀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는, 창고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우가 서 있는 곳의 양 옆에는 두개의 기둥이 솟아있어 손을 얹게 되어있고 소누가 있는 곳은 하나의 기둥이 있어서 그곳에 한손을 끼우고 있었다.

"뭐 하는거야?"

"방주의 방어시스템 조작. 방주의 내부에 눈이 있는 듯한 감각이라 꽤 쓸만해. 정찰계는 린이 맡아야 하지만 걔는 지금 운천 아저씨의 옆에 있으니까."

그러고보면 린의 신병은 컬러나이츠 팀에 있었다. 잊고 있었는데 그런 곳에 있었나.

소누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대답도 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 여간 힘들어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피부 위로 드러나는 힘의 아우라는 소누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서는 것. 방주와 싱크로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낼 수 없는 힘이다.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입에 담았다.

"소누는 뭐하고 있어?"

"....전투보조."

그렇게 말하는 우의 얼굴은 험악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적의라고는 거의 내비치지 않는 우가, 저런 반응을 보일만한 것은 지금 단 하나뿐이다.

동방삭. 그다. 그가 아니라면 이런 상황일 턱이 없다.

"삭이야?"

"어. 무지막지해. 솔직히.... 너네 누님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으면 다행일거야."

"그 정도로..... 상황은 어떤데?"

우가 입을 다물었다. 말이 나오는 것이 도리어 두려워질 침묵이라 더이상 입에 말을 담을 수 없었다. 우는 그런 내 심정에 반하는 행동, 말을 입에 올리고 말았다.

"거의 전멸했다."

전멸(全滅). 모조리 죽거나 망하는 것. 사전적인 의미로는 분명히 그것이다. 대중적으로도 그렇게 쓰이니 틀리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누가, 어디서, 어떻게 전멸을 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최대 전력을 그곳에 쏟아부었다. 내가 대(代) 동방삭용으로 만든 계책도 네개나 발동시켰다. 세계전복도 가능한 무력이 그곳에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전멸했다? 있을 수 없다. 아니,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다.

생사(生死). 누가 죽었는지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보지 않으면 안된다.

"얼마나...... 피해를 입었어?"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우회적으로 물으니 우는 내 의도를 짐작하고 간단명료하게 내가 원하던 답을 말했다.

"거의 확인불능이야. 시스템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내 능력자체가 방어용이다보니까 제대로 된 탐색이 안돼. 볼 수는 있는데 기절한건지 산건지는...."

그 수준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내가 했던 최악의 상상은 대부분이 죽고 살아남은자는 동방삭에게 항전하는 것. 그 이상의 최악도 있지만 그건 '다음' 전투의 이야기였다.

문득, 우가 처음에 '거의'라는 단서를 붙인 것이 기억났다.

"확인할 수 있는 녀석은 몇명이지?"

"둘."

"생사는?"

아까의 대답을 들었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직구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우가 눈을 감았다. 차마 대답을 할 수 없다는 듯이 가만히 침묵했다.

그러지마라, 우. 불안해지지 않냐. 남자답게, 화끈하게 말해봐라. 곰 같은 체격은 장식이냐? 라는 장난스런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꺼내면 안되는 말이었고, 꺼낼 수도 없는 말이었다. 물었다가는, 대답을 들었다간 내 마음의 어딘가가 순식간에 모래가루가 되어서 바스러질거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우의 입이 열린다.

"한명이 죽고, 한명은 싸우고 있어."

"유다... 그녀석이 싸우고 있겠지?"

말 없이 고개를 상하로 왕복시켰다.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현실에 머리가 아파왔다.

벌써 유다밖에 남지 않았다. 짐작했다지만 너무 상황이 나빴다. 동방삭의 힘이 약해졌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물속에서 나왔다. 물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마치 생명체처럼 물속으로 파고들었다. 하나의 개체가 군체(群體)인 것 같은 움직임. 그것을 뒤로 하고 우의 어깨를 잡는다. 집중하고 있었는지 감겨 있던 눈이 뜨였다.

"죽은 녀석은 '시바'다. 그녀석이 동방삭의 일격을 확산시키고 집어삼키지 않았다면 모두 죽었다는 확신을 갖게 됬을거야."

"그런가... 시바가."

만난 시간이 짧기에 크게 정을 붙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희생은 솔직히 말해서 조금 슬펐다. 그가 나를, 우리를 돕는 이유는 이렇게 죽기 위해서가 아니었는데.

이가 갈렸다. 이 이상 여기서 이 한몸을 보전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행동을 개시했다.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차자 우가 짚고 있는 것과 같은 기둥이 하나 나왔다. 내 손바닥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홈에 손바닥을 끼우자 회로가 손바닥을 통해 침투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빠르게 내 뇌에 전달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방주'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아니다. 방주의 기능'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

"찾았다....!"

이것이라면, 승부수를 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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