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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아무 것도 몰랐다. 주변의 상황을 보아도 원자분광기에 넣고 갈아버린 것처럼 땅이 쓸려 있는데 그 위로 동료들의 큰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다. 유다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숨을 뱉어냈다.
차근 차근, 이렇게 되기 전에 있었던 일을 돌이켜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상황이 정리되지 않으면 뭐가 뭔지 알 수 없으니까.
유다는 동료들과 말 없이 동방삭을 기다렸다. 동방삭이 내려왔고, 백색아성과 방주가 싱크로 해서 만들어진 육각형의 백색방패다발이 유다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그걸 동방삭은 무식한 힘으로 내려쳤고, 방패는 꿰뚫려 남은 여력을 안으로 허용했다. 그 힘은 산탄마냥 땅을 휘갈기면서 바닥에 준비해둔 요격병기를 반파시켰다.
유다는 머리가 아팠다. 여기까지만 생각 했을뿐인데 도통 이길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육왕이 말하는 '상식적인 생각'을 해도 그렇다.
그 방패의 다발은 유다의 최종비기를 먹여야 겨우 뚫리는 것. 뚫었다해도 요격병기의 포격한발이면 사라질 것이다. 그런 걸 동방삭은 아무렇지도 않게 뚫어버렸다.
땅에 내려선 동방삭의 모습은, 평범한 청년이다. 하지만 피부가, 오감이 말한다. 저 존재는 신대(神代)의 인간. 덤벼서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그렇기에 계책 중 하나를 다시 사용했다.
마법이 연달아 터졌다. 유다가 알고 있는 마법부터 모르는 마법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자신이 저런 곳에 있다면 단번에 죽겠지, 하는 허망한 생각을 할 정도의 위력이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동방삭이었다. 최후에 날아든 사천발의 징벌포좌를 맡고 하는 말이,
"이거 이거, 꽤 많이 깎였군."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노인네 말투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끝이다. 그 뒤로는 슬쩍 웃으며, 전신에서 기괴한 오라를 퍼뜨린 것 밖에 없다.
생각이 미쳤다. 기괴한 오라가 주변을 좀 먹을 무렵, 분명히 여러개의 팔을 가진 청색 피부의 남자가 푸른 뇌광을 휘감으며 돌격했던 것.
유다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는다. 상처를 입고 쓰러진 다른 동료들이 보이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어보이기에 지나쳤다. 그리고 보았다.
시선의 끝자락에 하반신만 남아 검게 타 있는 시바. 인도 최강의 신이라 칭송받던 파괴신이, 동방삭이 쏘아낸 일격을 맞고 그대로 절명한 것이다. 다름 아닌 이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져서까지.
"시바.... 명복은, 빌어주겠다."
"그럴 틈이 있었나? 생각외로군."
상념에 끼어드는 불쾌한 목소리. 단순한 말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것은 이 시대의 존재가 범접하기 힘든 기운을 담고있었다.
무한대의 시간을 살아온 남자의 힘이란 이런 것일까, 눈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리고 눈이 질끈 감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육왕을 위해서라도, 자신은 저 남자를 부수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이 되지 못한 것을 이룬 육왕, 그 모습을 지키기 위해 동방삭을 맞아주지 않으면 유다가 아니다.
"크...."
발을 내딛는다. 땅바닥에 닿고, 흙을 비비 듯이 뒤로 밀었다. 흙에 닿은 발이 떨리는 감각, 공포라 부르는 감정.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그 때가, 사랑하는 존재가 죽었다는 사실이 상기된다. 그 때의 무력감이 전신을 휩쓸고 악감정을 점차 솟아오르게 했다. 위험할정도의 감정이 머릿속을 몰아치고 대적하는 것조차 싫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린다. 이만한 적을 두고 도망치더라도 그것은 잘못된 일이 아닐 것이다.
[어이, 유다. 들리냐?]
뒤로 빼려던 발이 멈췄다. 어쩌면 가장 듣기 싫었던, 그럼에도 가장 듣고 싶었던 육왕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왠지 모를 고양감이 공포감을 밀어내는 듯한, 말도 안되는 기분이 들었다.
"왕...이냐."
[아아. 멀쩡한 모양이네. 다행이야. 다른 녀석들은?]
"시바 외에는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더이상 전투를 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렇게 말하자 육왕의 말이 멈춘다. 무서운 것일까, 하고 유다는 생각했지만 육왕은 그런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처럼, 약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그곳으로 간다. 기다리고 있어.]
"온다니, 왕이 직접!?"
유다 답지 않은 큰 목소리에 육왕이 으엑 하는 신음소리를 낸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던 걸까. 아니,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동방삭의 면전 앞에 선다는건, 사자의 아가리에 머리를 디밀고 향긋한 먹이감이라고 써넣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치우회 최강전력이라 할 수 있는 유다조차 두려움에 떨고, 도망치고 싶다는 감정을 갖게 하는데 육왕 같은 것이 상대될리가 없다.
일전에 사막에서 썼다던 광진 육식? 끽해야 자신과 같거나 좀 높은 수준에 불과하다. 동방삭은 자신과 그 육왕의 힘을 합쳐도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력, 덤벼봤자 개죽음에 불과했다.
"동방삭의 전력은 보통이 아니다! 나조차도...."
[너조차도, 뭐?]
"큭..."
입을 다물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는 걸 깨달은 유다가 머리를 싸맨다. 어렴풋이 육왕의 목소리가 험악하게 들린 것 같았다. 이유 모를 부끄러움과 당황이 피부위로 드러난 것처럼 붉어지기 시작했다.
육왕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도망치고 싶다면 도망쳐. 네가 그런 판단을 내렸다면, 동방삭은 그런 남자겠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육왕의 목소리에는 티끌만큼의 질책도 담겨 있지 않았다. 무감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말 속에 담긴 것은 '걱정'이라는 이름의 포용의 감정. 유다라 불리는 존재는 단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그런 단어였다.
게다가 육왕은 혼자서 돌격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공포를 집어먹고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동방삭과 싸우겠다 선언한 것이다.
강하다. 정말로 강한 남자다. 어떤 때에는 지략만으로 싸워 자신의 몸만을 건사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남자로도 보이지만, 스스로 일선에 나서면서 동료들 못지 않은 용맹함을 보인다.
종잡을 수 없지만, 존경스러운 남자다. 자신은, 유다라 불리는 남자는 그렇게는 하지 못 한다. 옛날에도, 지금도.
그렇기에 자신은 육왕을 막아야만 했다. 지금은 '배신자' 유다도, '마인사냥꾼' 유다도 아닌 '칠흑검주' 유다이니까.
"오지마라 육왕. 오면 반드시 죽는다."
[죽지 않아.]
"어째서 그렇게 단언할 수 있지!? 동방삭의 강함은, 너도 알고 있을 터다!"
연락을 보냈으니, 아마 이곳의 상황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당하는 장면을 못 보았더라도 이만한 인원의 대부분이 전투불능이 되었다. 머리가 좋은 육왕이 이곳의 위험성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전송되는 소리라고 믿을 수 없게 깨끗한 목소리가 충격적인 형태로 돌아온다.
[죽으면, 겨우 그뿐이었던거야. 운명을 뒤집을 가치도 없다는거겠지. 하지만 난 뒤집을 거고, 그럴 수 있어.]
도대체 어디서 저런 근거없는 자신감이 나오는 것일까. 그 육왕이 진정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모르게 되었다.
육왕은 덧붙였다.
[운명은 내 손에서 뒤집힌다. 난, 죽지 않아.]
흔들림따위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단언. 그 말에서 자신은 무엇을 느꼈는지, 유다는 몰랐다.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를 '얻었다'. 그것은 틀림없다.
검을 들어 앞에 세웠다.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광택하나 내지 않는 칠흑의 성검에 마력과는 다른 힘이 흐른다. 마치 육왕의 광진처럼 검의 힘과 반발하는 힘의 기류는 인간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다.
절대라는 이름이 허락된 '불사'와 '불패'에 대적하려는 힘. 그것이 지금 마왕에 어른거린다.
"...좋다. 육왕, 네가 그런 길을 가겠다면...."
촤아아악!
칠흑성검이 대기를 갈랐다. 검끝과 대기가 마찰하면서 새빨갛게 허공을 태웠다. 희미하지만 붉게 달아오른 검이 앞으로의 격전을 생각하며 운다.
"나는 이곳에서 네 앞길을 열뿐!"
자신이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잊어버렸다.
[....좋은 생각이야. 한 30분정도면 도착할거다.]
통신이 끊긴다. 그 나름의 동방삭 대책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기에 유다는 동방삭을 보았다. 공격할 틈은 많이 있었을텐데도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곳에 가만히 있었다. 동방삭은 신발굽으로 바닥을 두어번 리드미컬하게 치더니 유다에게 물었다.
"자, 대화는 끝났나?"
"...그렇다."
저 여유로움, 강자의 기도다.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을 압박하는 그 힘은 유다로서는 견디기 힘든 것.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공포를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기묘한 고양감마저 느껴졌다.
육왕이 오기 때문일까. 아니, 그의 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다가 입을 열었다.
"30분."
그것은 육왕이 이곳에 오겠다고 논한 시각.
"....?"
"그 안에 죽여주겠다."
자신은 칠흑검주이니, 왕을 지킬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금 자신의 소중한 것이 되어갔다.
그를 이곳에 오게 하는 불상사가 없도록.
촤아앗!
바람을 찢어발기는 검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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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