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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느껴지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밤바다처럼 새까만 것. 즉,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 어떻게 된 건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유다라는 존재가 존재했던 건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이 새까만 암흑 속에서도, 무섭지 않다. 어째서일까, 어째서일까.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웃는 것처럼. 함께, 함께. 사라져, 사라져간다. 세상의 중심에서, 그저 죽어갈 뿐. 세계의 의지를 반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 뿐이다. 그래, 그것으로 그저 끝나면 된다. 그것이 정해진 일이라면.
"하아?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거야."
암흑을 울리는 아련한 목소리.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왠지 굉장히 소중한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 득이 되는 운명이라면 순응해주겠지만, 그렇지 않잖아?"
말이 점점 또렷해졌다. 암흑으로 가득찼던 세상에 서서히 빛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희미하게 귓전을 울리는 목소리의 주인공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잊어버리면 안되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었다.
"운명에 반대하면서, 살아야지. 궐기하는거야. 포기 할 수 없으니까."
육왕... 고요. 그 남자의 신념을 알게 되었던 그 순간의 대화였다. 하지만 그 말이 어째서 지금 자신의 귓전을 울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면서, 그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이 이상할만큼 웃겼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조소가 아니다. 왠지 모르게 기쁨이 묻어나오는, 언제 지어봤는지조차 까마득한, 순수한 웃음.
요라는 남자가 그 웃음을 되찾아주었을까. 알지는 못 한다. 죽음의 감각은 그의 목소리를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도와다오, 유다."
죽음의 감각이 지워져간다. 정신을 침범한 독이 서서히 물러가면서 서서히 정신이 깨기 시작했다. 세상을 메우는 암흑도 이제는 옅어져 색을 알아볼 수 있게 변했다. 아직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어두운 색체를 가지고 있었다.
유, 다. 천천히 자신의 이름을 되새겨 보았다. 아플만치 여러 의미가 담긴 이름. 이것이 자신의 이름인걸까. 모르겠다.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저 목소리만큼은 무시해선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운명으로 엮어진 상대인 것 같은 느낌. 운명에 저항하면서, 운명에 따른다니 웃기기 그지 없는 일이다.
어라, 그런데.. 유다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있어?
"나에게 와라, 칠흑검주! 지키지 못 했던 너의 소중한 것이 되어주겠어!!! 대신 난 너의 곁에서 공포를 가져갈테다! 그 업조차 베어버리는 검으로, 업을 힘으로 삼는 너의 의지로! 날 지켜내 보아라, 유다!!"
마음을 뒤흔드는 목소리. 자신이 그를 따르겠다고 결정한 최고, 최대의 계기다. 이날의 자신은 분명히 구원받았다.
신도, 마수도 아니다. 단한명의 인간에게 자신은, 유다라는 이름의 존재는 구원받았다. 이런 곳에서 쓰러져 있을 때가 아니다.
시야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뱃놀이를 즐기던 것치고는 빠르게 원상태로 돌아오고 있었다.
꽈악.
손 끝의 감각이 돌아왔다. 차가운 칠흑성검의 감촉이 지금처럼 기쁠데가 없었다. 다리의 감각도 서서히 찾아오면서 움직이는 것도 가능해졌다. 몸 내부의 혈액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업보를 전달하고, 완벽하게 기능이 되돌아온다. 잊혀졌던 것마저도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머리가 상당히 개운해졌다.
"음?"
동방삭의 얼빠진 소리. 유다의 검이 '불사'의 기세를 품고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왼쪽 가슴에 박힌 팔을 억지로 붙들어놓았다.
"넌, 요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 한다."
그는, 유다의 왕은 같은 상황을 겪었음에도 너무나도 간단하게 떨쳐내고 말았다. 자신마저도 놀랄만큼 굉장했다.
그것이 육왕, 그것이 요다. 운명을 뒤집을 절대적인 의지를, 자신은 맛 보았다. 이런 곳에서 포기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불사의 검력이 인간의 업보를 실고 동방삭의 몸을 양분한다. 검력에 휩쓸려 몸통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삭은 놀란 눈을 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두 개의 몸으로 나뉘어졌음에도 동방삭은 바로 죽지 않았다. 피를 흘리면서도 끈질기게 버텼다.
"과연..... 난 여기서 무너져야한단 말인가. 인정할 수 없다만. 내 역할은 이미 끝났단 것이겠지. 뭐, 좋아아아!! 뒷 일은, 과거의 인연을 매듭짓는 자들에게 맡겨야 할 터....! 이걸로, 안녕, 이, 다..... 불, 사아...."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하늘을 향해서 유언을 남겼던 삭의 눈이 감겼다. 상반신이 돌처럼 굳어간다. 완전히 굳어버리자 암석처럼 금이가서 부서져내렸다. 도달할 수 없다고만 여겨졌던 강자의 최후는 시신조차 남기지 못 했다.
어째서일까,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심장을 다시 찔린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에서 힘이 빠졌다.
땡그랑...
검이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검은 평범한 소리를 내면서 미동을 멈췄다. 그것과 동시에 시야가 점점 새카맣게 점멸해 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죽음의 감각. 업보로서 피해왔던 그것이다. 아직 죽을 수 없는데도 죽음은 평등하게 자신을 찾아왔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아직, 아직 자신은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다. 조금 더 싸울 수 있다. 찰나라도 좋다. 싸우게 해다오. 업이든, 신이든, 뭐든 좋으니까.
아름다운 세상을 가려가는 암흑이 더욱 커졌다. 인간의 바램은, 세계의 의지에는 무력하게 사라졌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번쩍, 하고 빛나는 무언가가 암흑을 깨고 유다라는 존재를 찾아왔다.
빗속에서 만났던 구원의 손길과 같은 것이 빛 속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바라고 바랬던 자신의 모습이. 자신이 되고 싶었던 이상형이 그곳에서 유다를 기다리고 있다.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으면서 그 손을 마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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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눈 좀 떠봐! 유다!"
그렇게 부르는 것이 몇분, 유다의 몸이 약간이지만 움직였다. 감겼던 눈이 뜨이는 것은 나중이었다. 먼저 팔을 들어 내 손을 붙잡고 천천히 눈을 떴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약하지만, 따뜻한 생명의 빛. 안도하자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떨어져 유다의 입술 안으로 사라졌다. 유다는 내 손을 잡은체 가만히 있다가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짜군. 소금을 많이 먹은 것 같다."
"일어나자마자 그 소리냐."
"요, 너에게 배운 것이다."
보는 사람조차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깔끔한 미소와 함께 날 '요'라고 불렀다. 유다의 입에서는 처음 듣는 말이라 솔직히 조금 놀랐다.
무뚝뚝하기 그지 없는 유다가, 내 이름을 직접 불렀다. 그것도 내 앞에서 당당하게. 놀랄만한 일이다. 동방삭과의 싸움이 그의 내면을 바꿔놓은 것일까, 어찌되었든 기쁜 일이다.
유다가 수전증 환자처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칠흑성검 마왕을 들었다. 나에게 손잡이를 내밀길래 반사적으로 잡았다. 유다의 맑은 눈에서 소망이 빛났다. 아름답게 빛나는 그 눈은 진정한 칠흑검주의 것이었다.
"그것을, 맡기겠다."
"아아. 다친 녀석에게 들라고 할 생각은 없어. 너까지 업으면 무게가 좀 나가겠지만, 지금 그런게 대수냐."
유다가 솜방망이처럼 휘두르기 때문에 눈치 못 챘었지만 마왕은 꽤나 무게가 나갔다. 내가 전에 들고 있던 병기 중에서 가장 중장비였던 필멸의 활이 정확하게 24kg으로 굉장히 무거웠다. 하지만 마왕의 무게는 체감으로 약 세배. 추정 무게만 72kg이다.
다쳐서 거동조차 힘든 사람에게 물건을 들게 할만큼 나도 몰상식하지는 않았다.
유다가 고개를 젓는다. 직접적인 부정에 고개를 갸웃했다.
"가지고 갈 것은 마왕뿐이다. 난... 그럴 필요 없어."
"무슨 소릴 하는거야? 바보같은 소리 마라. 죽을 뻔한 몸도 되살릴만한 기능이, 이 방주에는 있다고?"
"과연, 하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하하핫, 너 무슨 소릴 하는거야? 잔소리말고 빨리 가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 나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유다는 살지 못 한다. 동방삭을 죽인 것이 최후의 힘. 아마도, 방주의 기능으로는 유다를 살릴 수 없다. 유다의 힘은 방주와 불패, 불사의 힘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것이다. 사용하더래도 마이너스 영향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눈물만이 나왔다. 지금은 실날 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아야만 한다.
"심장이 꿰뚫린 것으로 영생자는 죽지 않아. 천천히 시간을 들이면 회복 못할 것도 아니야. 그렇게 포기하지마."
"잊은거냐. 내 영생은 기이(奇異)에 속 한다. 업술로 연명하던 삶에, 남아있는 업이 더이상 없어. 난 '죽는다'."
"웃기지마. 되살려보겠어! 너의 운명조차, 내가 쓰러트리겠다!"
당당하게 선언했다. 마음을 담아 내지른 외침은 유다의 마음에 닿은 것일까, 유다의 손이 천천히 내 볼을 쓰다듬었다.
하늘은 어두웠다. 그것은 마치 슬픔의 빛을 빨아들이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나도 슬퍼서 나는 그저 울었다.
이 남자는 여기서 사라지면 안되는 남자였다. 나로 인해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그가 이렇게 죽어선 아니된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더욱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을거다, 소중한 것을 다시 한번 얻었을지도 모른다.
왜 하필 이번에도 나의 말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간 것일까. 하지만 내 이성은 그것에 대해 '그것 밖에 대책이 없었다'고 무정하게 답하고 있다.
젠장, 죽지마 유다.
그의 손이 내 뺨을 쓸어내린다. 아무것도 담기지 못한 공허의 눈동자는 이전과는 달리 빛이 있었다.
"그 때에 비하면 무미건조한 나날이었다. 하지만 요가 무심코 던져주는 말들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따뜻한..... 그래, 기적이었다. 난 요에게 기적을 받았다. 하지만.... 그 기적은 돌려주지 않겠어."
그래, 돌려주지 마라. 돌려주지 않아도 좋으니까 일단 살아남아라.
내 뺨을 쥔 그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 기적은, 때가 올 때까지 내....가, 맡....고 있겠.....다..... 푸른 하늘, 을 뒤.....엎....는, 한이....... 있더라......도........"
이윽고, 그의 손은 내 볼에서 떨어졌다.
유다의 손을 붙잡았다. 생명을 상징하는 따뜻함이, 사라져 있었다. 손을 붙잡은체로 작게 흐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는 통한이 뼈를 울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무 이유도 없이, 무슨 마음을 담았는지 모르게 소리질렀다. 유다의 몸이 남기는 잔해는 천천히 내 몸을 끌어안았다.
마치, 울지말라는 것처럼. 동생을 걱정하는 형처럼.
이 순간만큼은 순수하게 그를 위해서 울었다. 조금씩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져 흙만을 적셔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