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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 상륙!
파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피할 틈세도 없이 짓쳐들던 마력이 순식간에 또 다른 마력에 휩쓸려 사라졌다. 방주의 대지가 깎아나가는 두 힘의 충돌이 커다란 역장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모두가 쓸려 날아가지 않도록 자세를 바로 잡았다.
엄청난 힘이다. 힘에 직격한 것이 아니라 그 영향으로 일어나는 '사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뇌광을 견뎌낸 것이 거짓은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주는 일격이었다.
그런데 그런 공격을 맞서서 상쇄했다?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힘과 같은 부류의, 같은 수준의 힘이 존재한다면.
"기다렸지?"
붉은 머리카락이 아름답게 휘날린다. 밤바다를 비추는 태양처럼 빛나는 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 남자뿐만이 아니라 여자라도 반해버릴 멋진 모습이었다.
나의 하나밖에 없는 누님이다.
"너무.... 늦었어요."
결국, 눈물이 나왔다. 이미 지나쳐버린 일을 누님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는데. 최후에는 마음 속에 쌓아두었던 말들을 쏟아버리고 말았다.
카타스트로피를 무너뜨렸던 철혈의 왕이었던 나는 없다. 지금은 그저 누님의 동생으로 울었다. 너무 늦었던 누님과, 너무나도 무력했던 나를 향해 원망을 퍼부으면서 울었다.
반쯤 주저앉은 나를 마주 안은 누님이 내 등을 쓸어내렸다. 그 손짓이 또 내 감정을 자극했는지, 눈물이 흘러나왔다.
"미안, 미안해 나의 동생. 걱정마, 지금부터는... 더이상 떠나지 않을테니까."
껴안은 나를 옆으로 넘긴다. 마치 돌처럼 딱딱한 질감.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이런 질감의 사람은 없었다. 내 곁에 있는 여자들은 하나 같이 부드러운(...) 여자들 뿐이고 남자는 단단하기는 했어도 근육질이라는 것을 알정도였다. 하지만 이건 인간다운 굴곡만 없으면 완전히 돌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황급히 묻었던 고개를 빼서 보았다. 푸른색 피부, 시바와 흡사하다. 하지만 흡사하다 뿐이지 실재로는 조금 옅었다. 완벽한 청색이라기보단 하늘색에 더 가깝다.
"으하하하핫. 이거, 아가씨의 말과는 거리가 먼 것 같소."
"시끄러워 둘째. 잔소리하면 날려버린다?"
"오오, 죄송하오. 실언이었다오."
나와 누님에게 동시에 사과하는 청색의 남자. 황금빛 머리카락이 구름 같은 형태로 곱슬머리가 되어 있고 2미터가 넘어가는 장신. 백색의 아무런 무늬 없는 모시 옷을 걸쳤다. 게다가 목의 양쪽에 보이는 칼집 같은 상처 각각 3개씩 있다. 아니, 상처라고 하기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것 같은게, 조금씩 미동을 보이면서 대기를 빨아들이고 내뿜는다.
아가미. 보통은 대지에서 살지 않는 해양 생물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물속에서 호흡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기관이었다.
인간의 형태에 아가미. 이 존재를 칭할 말은 '인어'라는 단어 뿐이다. 하지만 물고기 지느러미로 되어있지 않고 다리인 점이 신기했다. 아니, 원래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인어가 기사서임을 받는 기사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묘하게 고어(古語)더니 인사하는 것조차 옛스럽기 그지 없었다.
"처음 뵙겠소, 도련님. 난 인어족의 족장인 '소요'라고 한다오. 이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약하지 않다 자부하는 몸.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오. 잘, 부탁드리겠소"
"아, 응. 잘 부탁해."
"그런데 말이오...."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소요. 고개를 갸웃하며 물음표를 띄웠다. 무언가 찾는 것이 있는 것일까.
소요는 결국 못 찾겠는지 나에게 물었다.
"시바형씨는 어디있소?"
시바. 카타스트로피를 배반하고 나를 도와주었던 강력한 마신이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죽지 않을 것 같은 남자였다. 하지만 그는 죽었다. 소요는 영원히 그를 볼 수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소요에게는 제대로 의미가 전달된 탓인지 하늘을 보며 눈을 감았다.
소요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지만, 시바와 상당히 친했던 것일까. 미안한 짓을 해버리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미안한 감정은 그칠 줄을 몰랐다. 아마도 유다의 죽음이 겹쳤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붙잡힐 수 없다. 지금 당장은 상대해야할 자가 있다.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지금 내 눈에 이글거리는 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콜로세움의 검투사 같은 강렬한 투지다.
"자, 힘으로 밀어붙이겠다 했나 케이슨? 어디 한번 힘으로 밀어붙여 보시지. 이 숫자를 상대로."
케이슨이 웃는다. 하지만 뒤로 한발자국 물러났다. 승부를 벌이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게다가 저 눈빛에서 느껴지는 것은 '지금 승부를 내지는 않겠지'라며 묻는 눈빛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공격해서 죽여버리고 싶지만 지금은 안된다.
확실히 여기서 달려들면 이길 수는 있겠지만 과반수가 죽을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요연, 슈, 호지, 아쥴, 리바이어던. 어쩌면 누님까지.
다음 전쟁으로 넘어가면 더욱 더 많이 죽을 것이다. 하지만 난 내가 알지도 못 하는 사람의 죽음 같은 것은 내 알바 아니다.
투두두두두두, 하고 울리는 기계음이 서로의 소리를 고조시킨다. 나를 필두로 한 이쪽은 물론이고 케이슨조차 입을 다물자 아무런 전장에는 있을 수 없는 침묵이 생겨났다.
발로 바닥을 두어번 찼다. 조용하게 굳어있던 분위기가 유리창마냥 깨어지고 각성한다. 정적을 깨버린 당사자인 나는 케이슨 쪽을 힐끗 쏘아봤다.
"뭐, 좋아. 여기서는 승부를 피하지."
사실, 피해주는 쪽은 케이슨 쪽이다. 만약 케이슨이, 불사가 덤비면 누님도 이길 수 없다. 누님이 지면 바로 이쪽이 사망. 가세를 하더라도 공멸이 한계다. 아니, 둘의 승부를 따라갈만한 속력을 낼 수 있을지조차 의심이 간다.
손을 뻗어 케이슨들을 가리켰다. 난데없이 케이슨쪽을 가리키자 그는 한쪽 눈을 감고 무슨 의미냐고 물어왔다.
"기한을 정하겠어."
"...기한? 무슨 기한 말입니까?"
"최종전투의 기한이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도 분위기가 술렁거린다. 그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 케이슨이 얼굴을 찌푸리며 뭐라 말하려는데 불사가 어깨를 잡아 만류했다. 불사는 희미한 미소를 띄며 이쪽을 보았다.
옛날에 날 이기기 한수 전에 보여주었던 미소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당시 그 미소를 봤을 때 내가 움직였던 말은 최대의 악(惡)수가 되어 날 무너뜨렸다.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기껏 바로 잡은 마음이 흔들리면서 공포심이 솟아오른다. 이길 수 없다, 또 저버릴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다시금 날 괴롭혔다. 이 감정, 옛날부터 억눌러왔던 그것과 흡사하다.
그 옛날, 내가 지고 난 체스계에서 잠적했다. 애초에 정식기사도 아니었기 때문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녀... 불사 때문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을, 난 보았다. 졌을 때까지만 해도 별로 크게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던 항공편에서 체스판을 만지작거릴 때 알았다. 백의 말이 움직이는 형태, 순서.
무엇 하나 자신의 그릇을 보여주는 수들 뿐이었다. 마치 누님을 보는 것만 같은 무력감이 날 지배했다. 그렇기에, 난 그 뒤로 체스를 잡지 않았다. 그래도 훗날에는 좀 더 수를 바꾸면 되지 않았을까,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거다, 라는 자기 변명으로 어떻게든 그 감정을 무시할 수 있었다. 간간히 능파랑 체스도 두었다.
그 때와 지금은 다르다. 더이상 성장할 틈도 없다. 이번에는 지면 끝나고 만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행복한 시간들이 일거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턱.
어깨에, 등에, 다리에, 손에. 내 신체에 느껴지는 감촉들이 있었다.
누님, 요연, 호지, 슈.
[무섭지 않아요. 저도... 같이 있으니까.]
그리고 능파까지. 모두가, 나의 곁에 있었다. 지금까지 내 시야를 막아왔던 공포가 일거에 사라져간다. 상쾌한 기운이 내 안에 충만하고, 자신감이 샘솟았다.
스스로도 깨달았으면서, 뭘 망설였던 걸까. 지면 진 거다. 어쩔 수 없는 일. 퍼센트가 한 없이 0에 수렴해도 포기하지 않는다고, 마음 먹었다. 잠시지만 잊고 있었다.
바보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옆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더라도, 혼자는 아닐 것이다. 체스를 두던 때처럼 혼자서 싸우는 고독한 것이 아니다.
뻗었던 손의 진동이 멈췄다. 산들바람에는 미동하지 않을 굳건함이 내 손끝에 자리했다.
"최종전투, 내년 6월! 정확히 일년이 되는 날이다. 그 때까지 서로에게는 무간섭. 그것을 조건으로 기한을 붙이지."
당당한 나의 말. 케이슨이 탄성을 질렀다. 감탄이라기보단, 순수하게 놀랐다는 의미가 강한 탄성이었다.
"의외로 깁니다. 끽해야 사흘 남짓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미안하지만, 그렇게 짧게 잡을 생각은 없어. 어쨌건, 어때? 일년."
케이슨이 박수를 쳤다. 짝짝, 하고 울리는 메마른 소리가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요연과 슈, 챠이가 여차하면 검을 날릴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추고 발도의 자세를 취했다.
케이슨의 시선이 요연에 잠시 닿았다가 나를 향했다.
"좋습니다. 이쪽으로선 나쁠 것 없지요."
"그 때가 되어서도 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저를 얕보는 겁니까. 전, 외주 케이슨입니다."
절대로 봐주지 않겠다는 사명감을 띈 눈. 나도 반드시 이기겠다는 눈으로 대응했다. 불사가 등을 돌렸다. 주변의 억눌린 공기가 조금이지만 풀려나간다. 그녀를 뒤따라 케이슨도 바다의 서핑보드에 뛰어들었다.
불사가 바다를 밟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처럼 예의 바르게 인사해보이고 천천히 사라져갔다.
최종전까지, 전력을 비축해둘 플랜이 머리에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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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방어편이 거의 다 끝났습니다.
최종편을 앞두고 잠시의 휴식기가 있겠죠. 물론 작가 말고 작중의 인물들에게 말입니다. 여러가지로 준비하는 기간,
1년.
좌충우돌의 이야기를 펼쳤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