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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편 -능파vs 요연, 호지, 슈-
분노로 떨리는 요연의 손이 화이트보드를 가격한다. 일부분이 운석을 맞은 대지처럼 움푹 패이자 요연은 당황하며 그 부분을 종이로 가리고 다시금 화이트보드를 쳤다. 다시 부서져 나가는 화이트보다을 보며 요연이 우물거리면서 다시금 종이로 그 부분을 가린다. 그것이 기이할만큼 여러번 반복 되고 요연은 헉헉 거리며 화이트보드를 다시금 쳤다.
타앙!
큰 소리가 나지만 우직, 하는 파괴음은 나오지 않았다. 요연은 자신의 성장에 안도하면서 그 감각 그대로 다시 한번 화이트보드를 쳤다.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행동, 하지만 상대방이 너무 나빴다.
반쯤 자고 있는 상태의 호지를 끌고 왔다. 아니, 자고 있지 않았더라도 호지는 워낙 마이페이스니까 거의 듣지 않았을 것이다. 두번째 인물인 슈는 잘 들을지도 모르지만 거기서 끝, 동조는 해줄 턱이 없다.
"바보! 바보, 요연!"
왜 이런 인원만 불러왔을까 고민하는 요연을 깎아내린다. 졸린데다가 아빠의 곁에서 끌려나왔으니 저러한 반응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잘보니 슈 또한 마음에 안드는 눈치인 것 같으니 별 수 없으리라.
요연 또한 같이 있고 싶었지만 그 꿈 때문에 멀어지고 싶어하는 감정이 얽혀서 상당히 복잡한 상태였다.
그건 접근(!?)하다 보면 괜찮아지는 거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현자라 불리는 일족 답지 않게 사악함만이 가득한 능파다. 그녀 때문에 도대체가 요의 옆에 붙어 있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놀려먹은 것은 의외로 간단히 끝났다. 그 무렵에는 다음에 있을 최종전 때문에 제대로 괴롭힐 수가 없구나~하고 생각했다만, 상대는 능파였다. 너무 능파의 정신용적을 얕보았던 것이다.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요에게 다가가자 옆에서 불쑥 능파가 튀어나왔다. 그러고서 요연과 요를 붙잡고 하는 말이,
"아침에 하려던 말 기억해요?"
였다. 참고로 말하자면 아침에 하려던 말은 요가 잠에 취해서 못 들은 상황, 들었다면 능파를 날려버렸을 것이다.
요연은 그 즉시 능파를 밖으로 던져버리고 요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거짓말이었지만, 배려심이 강한 요이니 잘 받아주었다.
거기서 끝났다면 그냥 끝났을 것이다. 그러한 장난은 안그랬을 때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요를 만나려고 하면 그 때마다 어디선지 튀어나와서 아침의 일을 들먹였다. 이제는 다른 의미로 욕구불만에 걸릴 지경. 능파를 때려주고 싶은 욕구로 요연의 가슴은 충만하게 차올라 있었다.
무도를 걷는자로서 그러면 안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다.
요연도 인간이다. 쌓이고 쌓이다보면 역시 폭발한다. 그것이 이런 때라는 건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한번 쓴맛을 보여주지 않으면 앞으로 있을 대결(?)에서도 밀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으로, 능파의 약점찾기를 제안하는 바입니다!"
"바보 아냐?"
"그건 좀...."
따로 설득할 틈도 없이 바로 거절의 답이 날아온다. 시간을 날렸다는 듯한 감정이 이미 얼굴에 한가득이다.
호지는 어이가 없어서 먼저 나왔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데 안에서는 밖이 보이도록 공간을 구성해놨더니 퍽 괜찮았다.
"아빠랑 같이 보면 좋을텐데."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고 말았다. 바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저정도일 줄은. 검술에 매진할 때는 굉장했는데.
자신이 바보라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호지가 투덜거리며 망연하게 걸었다. 목적지가 없는 걸음은 탑의 이곳저곳을 쏘다니게 했지만 운이 나쁜건지 좋은건지 누구 하나 만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산책하고 있을 자신의 아빠(요의 행동 패턴은 모두 머리에 넣어놓았다. 다만, 시간 외에는 정확한 것이 없었다)조차도!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도깨비의 체력은 사흘밤낮을 걸어도 멀쩡할테지만 요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은 크나 큰 마이너스였다.
"히잉. 아빠아아아. 훌쩍."
걸어도 걸어도 찾지 못 한다. 요연이 도망쳤다고 주술이라도 걸어놓은 것일까. 진짜라면 너무한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그런 쓸데없는 얘기를 해놓고 이런 저주를 걸어놓다니, 속이 너무나도 좁다.
어째선지 요연의 짓으로 단정지어진 상황에 훌쩍거리면서 호지가 일어났다. 앞으로 한발자국 내딛자,
미끌.
"에?"
꽈당.
재밌는 소리를 내면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어째선지 눈 앞에는 본 적 없는 바나나 껍질이 절묘하게 깔려 있었다. 더욱 서러워서 훌쩍거리던 소리가 커지고 말았다.
"흐에에엥!!"
"....쿡쿡...."
울던 것을 그쳤다. 희미하지만, 울음소리에 웃음소리가 섞여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다.
착각? 그럴리가 없다. 물리적인 '시야'에서는 안 보일지 몰라도 마법적인 시야라면 분명히 무언가가 보일 터. 호지는 땅에 발끝으로 진식을 새겨넣더니 가운데를 쿵 밟았다.
위이잉!
구의 형태로 뻗어가는 보라색의 영역, 전방위를 노리는 마력이 세상을 좀 먹어가기 시작했다. 마력이 1cm 뻗어갈 때마다 벽과 바닥의 모습이 활자로 변해간다. 조금씩 조금씩, 병들어가는 것처럼 변해가고 눈 앞에 인간의 형태가 하나 드러난다.
자기보다도 작은 체격, 백색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려놓았다.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고 있는 모습이 아주 짜증나는게, 능파 같았다.
"능파, 너어어어어어!!"
"쿡. 왜 그러죠, 엄마? 그냥 장난인데. 그리고 저에게 엄마를 가둘 능력은 없다고요?"
능파의 힘은 용이기는 하나 아직 단계(등용문)를 거치지 못한 이무기에 가깝다. 설사 거쳤다 하더라도 호지의 힘에는 당적하는 것이 불가. 하물며 가두어 놓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설사 가능했다 하더라도 호지가 눈치채지 못 했을리는 없다.
하지만, 호지는 능파가 한 말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네 입으로 장난이라고 했잖아!"
"어머, 그랬던가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벽 안으로 사라져가는 능파다. 쫓으려고 따라갔다가 벽에 처박혀 코를 부여잡았다.
"느으응파아아아아아!!!!"
분노의 힘으로 루프를 깨버리곤 순식간에 체감속도 마하7까지 도달했다. 호지가 바람인지, 바람이 호지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정도로 빠른 도약. 탑에 만들어져 있는 공간이란 공간은 모두 샅샅이 뒤지고 최상층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능파가 간사한 얼굴로 사랑스런(호지의 시각) 요의 옆에서 석쇠를 굽고 있었다.
'그런 짓을 해놓고 자기는 저곳에서 아빠랑 분위기 좋게 있었단 말이지!?'
분노의 힘이 곧 물리력이다. 호지는 말도 안되는 이론을 앞세워 전력을 전개시켰다. 탑전체가 자기보호를 위해 경질화를 개시하면서 적습을 대비한 포대를 구성했다.
적의. 그자체를 읽어낸 것이다. 방주의 시스템이 움직이자 벽과 바닥에서 포대가 세워졌다. 어떻게 반격을 할 사이도 없이 포격을 맞고 쓰러진 호지는 얌전히 탑의 최하층까지 일직선으로 떨어졌다.
단거리 코스마냥 일직선으로 나 있는, 그런 길은 없었다고 생각할 틈은 없었다. 빠르게 자세를 잡고 다른 층으로 들어선 호지는 자신이 있던 방으로 돌아가 화이트보드를 내려쳤다.
"능파 약점, 그거 찾자!"
"바보 아닙니까?"
"그건 좀...."
요연이 말 했을 때와 같은 반응, 평소의 호지라면 열 받아서 분개했겠지만 지금은 몸(포격)도 마음(능파아앗!)도 망신창이다. 사소한 것에 목 매일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호지는 의외로 시크한 요연의 태도에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얼굴로 청룡검을 뽑아 사과를 깎는 요연이다. 호지가 말로 뭐라 못 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가장 먼저 이 논제를 꺼내놓은 인물은 바로 요연이다. 슈의 경우에는 크게 동의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논제를 꺼낸 당사자가 저런 꼴이니 계속 밀어붙이는 것도 뭐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꿇릴 능파가 아니다.
"요연! 어째서 그렇게 의지박약인거야? 네가 먼저 말했으면서!"
"그것도 그랬죠. 하지만 말입니다."
사과껍질이 끊어지지 않고 접시에 떨어졌다. 사과라는 물체에서 껍질만 뺀 것처럼 매끈한 촉감의 그것이 거기에 있었다.
사과를 한입 베어물면서 남은 것을 접시에 잠시 내려놓았다. 호지를 보는 요연의 눈빛은 권태로 가득했다.
"찾는 것도 힘듭니다. 무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능파가 오히려 이런 싸움에는 더 유리합니다. 당하기는 했지만 참을만한 것이고요. 열 받는건 매한가지지만."
"그렇게 물러나다니, 자존심도 없어!?"
"요애가 말하기를, 자존심은 쉽게 버려도 된다 했습니다만?"
한 사람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으로 반박을 묵살한다. 능숙하기까지한 요연의 대응에 호지는 우욱, 하면서 물러난다. 요연이 사과를 다시금 먹어대기 시작하자 호지는 화이트보드를 탕탕 치면서 말도 안되는 것을 작전이라 말하며 연설한다. 어이가 없어진 슈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이라는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턱턱 막히는 숨통을 트이기 위한 것이었다.
"에휴.... 호지도 참. 능파도 너무 장난이 심한걸까...."
슈는 한숨만을 내쉬었다.
장난끼라 불리는 표적의 화살이, 자신을 향했다는 것도 모르는체.